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Oct 05. 2017

22. 명절의 단상   

제사상을 만들어낸 그녀들에게 특히 박수를....!

긴긴 연휴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 더해서, 약 10일이라는 올해의 긴 추석 명절 연휴의 반이 벌써 지나가고 있다.

귀성길 차가 막힐 것을 염려 하여, 미리 시댁과 친정에 다녀온 나는 어제 올 해의 숙제 하나가 끝난 듯한 느낌이다. 이런 ‘며느리’이자 ‘육아맘’의 마음은 비단 나 뿐은 아니었겠다. 내가 속한 지역 엄마들 커뮤니티의 수많은 폭발적인 조회수의 글과 댓글 잔치 속에는 명절을 맞이한 소위 ‘며느라기’들의 희로애락 애환의 글들이 가득했기에.  


 명절을 대하는 ‘며느라기’들의 단상   

 나의 힐링 공간이자 깨알 정보 및 재미와 웃픈 이야기들로 가득한 우리 엄마들의 커뮤니티의 몇 개의 글들을 가감 없이 공개해 본다.  


제가 첫 스타트 끊었나요 명절 5일전, 시댁 갑니다. 아이 신나라 즤집 ㅅㅂㄴ는 좋아라하네요   
(여기서 'ㅅㅂㄴ' 이란 순도 100%의 좋은 의미부터 최악의 단어까지 ㅋㅋ 상상에 맡기시는 걸로~)
이제 송편 지겨워서 피맥 하러 갑니다.
홈플에서 기네스 6개에 냉동 피자 사서 저녁 했네요. 아직도 몸에서 기름 냄새가 쩔어 있는 듯한.  
전 지금 충격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토일월화수 = 시댁, 목금토일 = 친정,이렇게 세웠던 계획친정 가려고 차에 짐 꽉꽉 싫어 출발한 지 5분만에 차가 엎어진…..결국 토일월화수목금 = 시댁. 황금 연휴를 시댁에 있게 생겼네요. 잔머리 굴린 벌 받나봐요 살려주세요 ㅋㅋㅋ
오전 9시~12시는 시댁, 오후 2시부터 8시는 친정, 명절 당일만 움직이는 저로선 뭐라 할 말 없네요.
친정에서 하우스 오픈 (고스톱) 점 100입니다. 큭큭 모두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어요   
여기서 이 글 쓰면 욕먹겠지만 저는 지금 스위스예요. 아 넘나 좋은 곳. 풍경 남깁니다. 죄송해요~ 
제가 위너인가요. 저희 시어머님, 제게 그간 아기 키우느라 고생했다며 용돈 주셨네요. 하아

  

 이 글을 보시는 ‘며느라기’ 분들은 어떤 추석을 보내셨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나의 마음에 비수와 자극을 준 마지막 그녀의 이야기는 단연코 위너긴 했다. 세상에 며느리에게 육아 한다고 고생한다며 용돈을 내미는 쿨내 진동하는 시어머님의 포스란...! 단언컨데 그녀는 전쟁에 나라를 구했으렸다.....!


하아 또르르..반면 용돈은 커녕 아기 낳고서도 미역국에 설렁탕 한 그릇 못 얻어 먹은 탓에, 어디가 못나서 그런 시집을 갔냐며, 못난 딸년이라 친정부모님 맘에 대못 밖고 결혼했.............(또르르르- 할 말 없음)  


나의 약과빨이 떨어졌다.   

 결혼 6년차를 지내고 있는 나는 증조 조상님들의 제사를 지내는 둘째 며느리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2달에 한번 꼴로 시댁을 찾아 뵈었다.


 처음엔 좋았다. 약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제사 때의 명절을 지내고 난 이후의 약과 먹는 재미가 있으니 제사도 괜찮다는 정말 어이 100% 없는 개취로 버텨왔으니.


 그런데 그 약과빨이 사실 몇 년을 못 가긴 했다. 유산 수술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찾아간 시댁에서 서서 설거지를 하다가 못내 눈물 콧물 다 뺐으니깐. 얽히고 꼬여 버린 과거 사 누군가의 아내와 어느 집의 며느리로 살기 시작한 6년 전 부터의 이야기를 줄줄이 글로 적자니 손가락이 찌릿하며 브런치 매거진 하나를 개설해야 할 판이기는 하다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워워) 나는 과거를 살지 않고 '오늘'을 살기로 결심한 덕분에 이젠 담담히 그 기억을 기어코 끄집어 내려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하아 글쓰기 자체 명상의 승리렸다)


뭐 사실, 처음처럼과 고기 덕분에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걸지도...모르는 며느라기님들 사..사랑합니다...!! ㅎㅎ

    

명절의 휴식이 누구를 위한 것?   

 인천공항에 명절 전후로 여행객들로 바글바글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내겐 남 얘기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22개월차에 접어든 아직은 영유아인 쌍둥이 ‘둘’을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온전히 심신을 다 바쳐 충성육아를 하려면 더더욱 휴식이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명절이 낀 이 고귀하고 귀중한 추석 연휴에 여행이 웬 말이던가.   


하하 여행이 진짜 여행이 아니라면 차라리 안가느니 못한...(하아 심슨님 사..사릉해요 오늘따라 고백 무쟈게 해댄다는)
남들 다 간다는 그 여행? 나는 못 (안) 가도 좋다.
그저, 읽고 쓰는 단 1시간의 나만의 시간, 딱 그 정도를 바랐다.


 결국 그럼에도 지난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단 1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집 남자 셋이, 잠시 내게 자유시간을 하사하심에, 쌍둥이 둘과 애비 하나, 그렇게 셋이서 아침 산책 하러 나가시자마자, 5분만에 씻고 바로 노트북을 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훈민이 똥 쌌네. 미안한데 기저귀랑 물티슈좀 갖고 나와줄 수 있어"
.......... 응 (띠로리 + 또르르 = 그럼에도 후다닥 달려 나가는 나는 '엄마'가 되어 버렸다)


 순간 나는 웃으며 노트북 키보드를 내리칠 뻔 했다. 하아. 이상하게 치밀어 오르는 화가 갑자기 마음에 차 오르려다가 스스로 다시 진정시키는 오늘 아침이었지만, 뭐 기저귀랑 물티슈를 챙겨 보내지 않고 그냥 '내보낸' 나를 원망했을 뿐이고.


 사실 나만의 시간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워킹맘의 요즘을 보내고 있다. 더군다나 읽고 쓰는 삶을 선택한 탓에, 그 나만의 자유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는 스스로 안간힘을 스스로 쓰지 않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와중에 이 나이에 이 환경에 읽고 쓰는 삶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지라며 나의 이런 욕심 어린 생각이 사뭇 반성도 된다. 너무나 잘 커 주는 사랑스러운 재간둥이들이 있으니...


시댁에서 추석에 이런 훈내사랑포스 진동하는 재간둥이들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나? 


 여전히 유교 문화의 사상에 익숙하신 시댁과 나의 남자를 잠시나마 탓했던 나를 다스린다. 그리고 더더욱 나를 겸손하게 만든 건 쉬지 않고 일하는 여러 모습들이 요즘은 더더욱 여기저기 보이기 때문이렸다.


이 분들이 잘 되셨으면 좋겠다. 

  다둥이 워킹맘의 똘기 어린 오지랖으로 해 두자. 그저 이 분들이 심신 편하고 꽤 행복한 각자의 일상이길 바라고 또 잘 되셨으면 좋겠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 재수생들과 취업 준비생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기사 아저씨들, 소방수와 경찰관, 긴급 구조에 대비해야 하는 24시간이 긴장의 연속인 사람들. 마트와 백화점의 캐셔 분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문어빵과 통감자를 계산해 주시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전국의 수 많은 시월드에 익숙한 깡과 인내로 무장한 며느라기 여러분들 등등. 만세 만세 만만세!!   

 

 명절에도 제대로 숨 한번 고르지 못하고 다른 일상보다 더더욱 마음과 몸이 이상하리만큼 바쁘고 여유 없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제대로 쉴 틈 없이 지내다 보니 이미 명절이고 자시고 그게 익숙한 탓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추석임에도 잠시의 보름달을 쳐다 볼 여유는 없다.
그들은 그저 한시 바삐 숨 고를 세 없이 시간을 보낸다.

나만의 우물 안 시야를 벗어나, 관점을 달리 하면,
꽤 많은 낮설고 또 익숙한 현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산 사람이 힘든 명절은 명절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명절이 명절 같지 않는 걸 느낀다. 명절이 사실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자 즐거움일 수 있다지만, 반대로는 큰 숙제 이자 골칫거리이고 때론 분노와 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는 걸 나이가 들고 이젠 엄마이자 며느리가 된 나는 더욱 현실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큰 며느리였던 친정 엄마가 수십년 간 차려내야 했던 제삿상 위의 산해진미들과 그 약과 먹는 재미에 명절이 재미있었던 철부지 꼬마 여자애는 어느새, 그 산해진미들이 산 사람인 친정엄마에게는 무의미한 숙제이고 고생임을 잘 알게 되었으니깐.

 

 지역 엄마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수 많은 명절증후군의 일상 글들을 유심히 엿보고 있자면 마음이 그닥 좋지만은 않다.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다반사이기는 하나, 잠시 곱 씹어서 좀 깊이 생각해 보자면 말이다.

조상님이라는 망자들을 향한 잔치를 해야 하는 탓에
산 사람들이 고달픈 명절이, 과연 진정한 명절일까 싶기도 하다.   


 

 물론 제사 문화가 있는 덕분에 온 가족 식구들이 모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분위기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느냐가 더 중요하다. 명절에 모여서 괜시리 자주 보지 않는 일가 친척에게 안부를 묻는 다는 것이 소위 ‘명절 막말 대잔치’ 라면 곤란하다.   


결혼 소식은 없나?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건데   
취업은 잘 되가? 명문대 나와 가지고 몇 년째 아까워서 어떡하니. 요새 참 힘들긴 하지만..   
애 소식은 언제 있니. 둘째는?   
송편 하나에 밥 한공기 라더라. 올해는 살 좀 빼야지.     


 그냥 흘려 들으면 될 법한 이야기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꽁 하고 담아 두면 모두 다 상처덩어리 막말들일 뿐이다.


 유산 직후 찾아간 시댁에서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식탁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던 내가 들었던 한마디도 마찬가지였다.   


“네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당시의 나는 또 꼬질꼬질 못나게 눈물만 흘렸다. ‘얼마나 힘들었니. 그래 잘 버텼다’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런 위로나 공감을 바랐던 맘 약한 나의 비수에콕 하고 박혔던, 시댁 식구들만의 캐릭터가 묻어나오는 안부였을 테니깐. 지금은 대인배의 마음으로 당시 그 분위기가 약간 이해 되기도 한다. 악감정은 없으셨을 걸 잘 알고 있으니깐. 허나 사실 아직도 과거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순간엔 뱃속이 느글거리고 괜시리 아픔이 밀려온다.   


 나와 같은 시댁과 명절에 얽힌 흑역사를 가진 며느라기 들이 전국에 더 없이 많을 걸 잘 알고 있다. 나 보다 더 한 분들의 이야기도 꽤 접해왔던 터라, 나의 환경에 그저 감사하고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명절엔 더더욱.  

 명절에 모이는 가족들의 시간이라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실 먹고 살기 바빠서 명절에나 겨우 고향에 내려가곤 하는 요즘의 실태이지만, 그러다 보니 서로 서먹하고 대면대면하다가, 결국 제대로 된 대화 없이 스마트 폰을 쳐다 보고 있거나, 혹은 안부를 묻는 다는 것이 그저 ‘막말 대잔치’에 불과한 모임의 시간들이라면 무의미하지 않은가.


 그럴 바엔 가족으로 얽혀 있는 관계들의 모임이 아닌, 피 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공감대’ 하나만으로 뭉친 타인들의 명절 모임이 훨씬 건전하고 바람직해 보인다. 씁쓸하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이혼율이 올라가며, 출산율이 저하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처한 사회상의 현실일 지 모르겠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명절에 만나는 그와 그녀에게,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주자. 


이런 말들 쉽진 않지만 또 한번 해 내고 나면 그닥 어렵지도 않은 말들이다.   


수고했네 우리 며느리, 올해 명절은 더 길어서 고생 많았지. 어서 친정 가서 쉬거라 아가  
우리 아내 고생 많았어. 내가 다리 주물러 줄까. 내일은 외식 하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께.   
아기들 보느라 고생 많았지. 하루 정도 시간 줄 테니깐 나갔다 와요   
대기업이라고 별볼일 있나? 먹고 살만한 정도면 뭘 해도 괜찮지 않아?
다만 네가 하고 싶은 걸 찾는게 더 중요하지. 너무 조바심 내지 말자.  
공부하느라 요새 많이 힘들지. 너무 강박 같지 말고 지금의 최선을 다하면 그 과정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어   
요샌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더라. 결혼 하기 싫음 안하는 거지 뭐
아니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면 인연은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니 너무 서두르지 마   
명절에도 일 하느라 수고 많아요. 별 거 아니지만 이거 집에 가져가서 식사 때 챙겨 먹어요
(라며 몇 만원 안 되는 김 세트라도 하나 턱 하니 건네는 센스 만땅인 점주/사장님/오너시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적고 보니 훈훈 오글 진동해서 손가락이 잠시 바들 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말들은 한번이 어렵지 두 세번 하고 나면 오히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더 하게 된다. 선순환의 시작인 셈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건 정말 진리의 속담이다.   


 명절의 마무리가 이런 훈훈한 결론으로 마무리 지으셨기를 바라며…!!그리고 보름달 보시고 어화둥둥 마음에서 바라는 작고 큰 소원들이 성취되기 시작하는 밑거름으로 '움직이는' 가을이 되기를, 나 또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해 본다.


맛있게 먹었어요....나 그럼 영칼로리.....응?? T-T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 위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사실 제가 듣고 싶은 말들 몇 가지 추려낸 것들이었다는....(쿨럭)
아무쪼록 남은 휴일도 심신 편안하시고, 특히 전국의 모든 '며느라기'님들, 존경+사..사랑..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며, 스스로 쓰다듬어 보는 거예요 어흑.....ㅋㅋ)





작가의 이전글 21. 오늘의 이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