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에 대한 썰을 잠깐 풀어 보아요
썸 탈거야
요즘 즐겨 듣는 노래가 있다. 나름 5일 동안의 무한 반복을 선택할 정도로 귀에 꽂힌 느낌 있는 멜로디, 유치 뽕짝 가사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만드는 노래. 그 덕분에 추석 연휴에도 나를 잘 버티게 만들어 주는 ‘썸 탈거야’. 볼빨간 사춘기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아침이 꽤 즐거운 요즘이다.
그러다 문득 ‘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썸이란 뭘까, 좋은가 나쁜가, 나는 지금 어떤 썸에 빠져 있나 라는 식의 내 머릿속 아무 말 대잔치. 이왕 이렇게 된 것 잠시 썸에 대한 썰을 풀어 보고자 한다.
썸이 뭐였더라
언젠가부터 생긴 신조어 ‘썸’ 정말 궁금해서 사전을 뒤져 보았다. 하- 설마 나올까 했는데 정말 나왔다. 그것도 ‘시사상식사전’ 코너에 버젓이 한 자리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섬싱을 타다(There is something between us)’에서 나온 말
남녀 간 탐색만 하는 단계를 이르는 신조어
즉, 남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애매한 단계를 이르는 말로 사용됨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잠시 썸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 봤다.
미끼를 던졌을 때 확 하고 물리는 촉이 느껴지는 순간, 확 당겨 버리기 (에라이)
관심과 호기심을 향한 어떤 것을 향해 밀고 당기기와 내려놓는 마음의 중간 상태 (에헤이)
확신과 결정 상태 이전의 상당히 뜨뜻미지근하여서 짜증 나기도 하는 어떤 단계 (에잇)
결말(?)을 알지 못하는 덕분에 핑크빛 상태를 상상하게 만드는 기특한 마음 (에헤라디야)
결말이 좋지 않았을 땐, 헛짓거리 (에효)
결말이 좋았을 땐 사랑의 시작 전 도약 단계 (에에~)
결론은 '에'로 시작하는 무언가냐 이런 아무 말대 잔치란 엿이나 바꿔 먹는 것으로.
이 외 무수한 썸의 정의를 머릿속에서 잠시 그려 봤지만 중지하기로 했다. 썸 탈거야 라는 노래 끝났다는 핑계로. 그리고 가사에 빠져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기도 한다.
그냥 좋아한단 말도 안 되는가요 (안 되는 게 어딨냐 좋아하면 해보는 거지)
솔직하게 난 말하고 싶어요 (말하고 싶음 좀 해보자. 속이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우리 그냥 한번 만나볼래요 (아이 배 아파, 누가 지친 내게도 좀 그런 말 해주면 와락 안아 텐데 젠장)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 마 (새우깡아, 내 눈앞에서 사라져 아니 흑흑 사실 사라지지 마 에라 다 먹어버렸네)
내 썸 경험기
생각해 보면 때론 나는 ‘썸’의 고수였던 것도 같다. 이 무슨 막되 먹고 재수 없는 자기 자랑이던가. 하나 최소한 20대 시절의 ‘사랑’에 있어서는 시사상식사전이 정의해 놓는 남녀 간의 ‘탐색’ 기를 거쳐서 ‘골인’이라는 결말이 승률 80% 였기에.
나머지 승률을 갉아먹은 20%? 그건 다름 아닌 ‘첫사랑’이었다.
첫사랑과의 썸
실패율 20%를 차지해 주신 그는 대학 봉사 동아리의 1살 많은 산업공학과 출신의 공돌 과 문 돌의 매력을 모두 지닌 ‘정우성’을 닮은 (그땐 그랬다.) 남자였다. 이상하게도 ‘오빠’ 소리를 하기 싫었던 나는 그에게 ‘OO군’이란 일본어 식의 웃긴 호칭을 부르는 동기였다. 그것이 그에겐 싫지 않았고 사실 신선 했고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게 ‘신선한 친구’라고 했다. 이런 망할) 나 또한 OO군의 겉모습에 푹 빠진 속물에서 시작해서 그와 ‘탐색하는 단계’인 ‘썸’이 점점 무르익어갈 무렵 일방통행 원사이드 러브 첫사랑을 시작했다.
들렸다 놓아졌다 하는 ‘썸’의 하수
내 첫사랑은 실패였다. 사실 사랑이라는 정의에서 승리와 실패라는 단어를 쓰는 게 참 우습긴 하다만 만약 ‘맺어짐’이라는 답이 수학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정의라면, 나의 첫사랑과의 ‘썸’은 실패였다.
알고 보니 사실 그 수학 공식은 애초에 풀 수가 없었다. ‘여자 친구 이미 있음’이라는 기준이 되는 절댓값을 나는 뒤늦게 알았으니깐.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사실 나는 고백을 해 버렸다. 어마 무시하고 적나라한 속물적인 어떤 여자의 ‘썸’이 깨지는 순간은 그의 집 근처, 산본역 개찰구 에서의 궁극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첫사랑은 실패했지만, 첫 키스는 성공하고 싶어..!
오글오글 두둥...........
지금 생각해도 도대체가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21살의 OO 군이라고 부르며 그와 야학 봉사를 한 덕분에 오후 늦은 저녁에 자주 부딪히며 지냈던 탓에 나의 마음도 커져만 갔고, 알고 보니 그는 착한 늑대의 탈을 쓴, ‘신선’해서 잠시 호기심 어렸던 나를 들었다 놨다를 참 잘 하는 ‘썸’의 고수였던 것이다.
첫 키스의 결말? 나름 성공(?)이었다. 썸을 끝내려 하는 내게 주어진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 모르겠다. 현재 나의 삶의 커다란 기준이 되는 한 가지의 철학.
나의 마음이 들렸다 놨다 대는 그놈의 ‘썸’에 대놓고 종료할 궁극의 용기로 무장한 순간, 삶의 기적(?) 이 일어나는 것을.
그리고 그 기적이란 당장 올 때도, 혹은 시간이 흘러 천천히 배달될 때도 있을지 언정
나의 삶에 ‘썸의 종료를 알리는 용기’를 내어 움직이는 ‘주체’가 되는 순간,
그건 삶에 어떻게든 좋은 영향을 끼친 다는 걸
이젠 10년이 지난 후의 첫사랑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 되새겨 보게 된다.
최소한 나의 첫사랑을 향한 ‘썸’의 결과가 비록 ‘맺어지는 연인’이라고 하는 사랑의 정의에서는 실패했지만, 그는 내게 말했으니깐.
여자 친구가 있어서 너랑 사귈 수가 없어.
근데 분명한 건 매력 있고 신선하고 그래서 같이 있고 싶은 여자야 너.’
망할 멍멍이 새끼 역시 그는 ‘썸’의 고수다. 나는 꽤 오랜 기간 그에게 끝까지 들렸다 놓였다 해야만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순간의 망설이는 ‘썸’들
위의 첫사랑 이야기는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되지만, 사실 일상에서도 수많은 ‘썸’을 겪고 우리는 삶을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런 일상의 썸들
안아줄까 말까
엄마 바라기인 둘째 둥이가 설거지를 시작하려는 내게 매달린다. 그 녀석과 나의 ‘썸’이 시작된다.
아기와의 긴장 타는 눈치게임은 시작된다. 탐색하기는 5초.
‘엄마 이것만 하고 안아 줄게’라고 하는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하는 순간 썸은 종료된다.
녀석은 쪼르르 붕붕카를 타기 위해 거실로 달려간다.
엄마를 잠깐 들었다 놨다 한, 대단한 녀석.....
쓸까 말까
아기들을 재워 두고 하루 1개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나는 다 재우고 난 이후에 서재 위에 놓인 노트북을 쳐다본다. 노트북과 나의 ‘썸’이 시작된다.
결과는 노트북의 참패.
파김치가 된 나는 손목의 터널 증후군이 생겨 다는 핑계로 이불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하아....
먹을까 말까
야밤에 새우깡과 ‘썸’을 탔다.
결과는 단연코 성공. 그것도 대성공.......
새우깡과의 썸에서는 항상 지고 마는 나다. 이길 수가 없다. 누가 이기는 법을 좀 알려주.......시길
만날까 말까
회사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냥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 혹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 뭐랄까 딥빡 치는 일을 하다가도 잠시의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그러다 잠시라도 ‘그들과의 결말을 상상하며 의도된’ 말을 걸기 시작한 순간
나와 그, 혹은 그녀와의 ‘썸 타기'승률은 거의 80%인 듯하다
- 목마르지 않아요 스티브? / 네. 8층 카페테리아 고고 하시죠
- 지영 책임님 지금 바빠요? /잠깐 차 한잔 해요~
- 맥주 일 잔은 언제 하실 겁니까 조 팀장 / 염 책임 출장 복귀하면 같이 맥주 해요
평생 썸 타도 좋은, 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것들
어쩌면 지금의 위의 관계들은 평생 썸만 타도 참 좋은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썸만 타다 죽어도 좋을 만큼의 ‘쓸데없는 행동 혹은 사람’ 이 누군가들에겐 분명 있을 거다. 내 세계관에서도 그런 일과 사람이 몇 개 존재하고 있으니깐.
가령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하고 있으면 기분 좋고 하고 싶게 만드는 글쓰기나 대화
훔쳐보고 싶은 그와 그녀들
내 얘기를 마음껏 들려주고 싶은, 아이스 민트 목캔디를 같이 좋아해 주는 누군가
그들의 삶을 엿보고 탐색하다 보니 어느새 사랑도 싹튼다. 그러다 보니 어떤 형태로든 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무한히 줘 보기도 한다. 애정과 마음을 그것도 듬뿍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썸은 종료되어 있다. 그 일과 그와 그녀도 어느새 내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삶과 함께 우리들의 삶은 같이 연결되어 간다.
모두, 솔직한 썸으로 맺게 된(?) 소중한 사람들이다.
삶도 돌이켜 보고 때론 애정도 줘 보기도 하며, 그렇게 유지하고 싶은 관계도 존재하는 게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일지 모르겠다. 유한한 시간 안에서 되도록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은 사람들. 그와 그녀들과 물리적인 살 섞음의 사랑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오래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살다 보면, 그것이 때론 삶에서 지칠 때 위로가 되고 때론 용기를 불어 일으켜 주기도 한다.
중요한 건 평생 썸 타도 괜찮다는 판단을 한 건 ‘나’라는 사실.
그러니 그 후폭풍도 그 결말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라면 그만인 셈이다.
저지르기
그럼에도 만약 사랑에 빠진 청춘의 누군가가 내게 ‘지금 썸 타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혹은 그녀에게 탐색을 하시다가 스스로 ‘끝’을 한번 봐 보시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생각해 보면 말이다. 우린 이미 잘 알고 있다.
살아있는 우리 삶이 그리 길지만도 않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 그 삶이 종료될 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역시, 평생 썸만 타면서 살 순 없는 노릇이다.
시간은 유한하니깐. 그 유한한 시간은 흐르고 그 흐르는 시간에 나의 행동에 대해 덜 후회되는 쪽은, 대부분 ‘저지르고 본’ 움직이는 주체라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난 말씀드리고 싶다. ‘저지르세요’라고. 그리고 당신이 그 주체가 되는 순간,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옴을 경험할 수 있다.
원하는 일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관계든, 사물이든지 간에, 그것을 현실세계의 지금 이 순간 내 앞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 주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그 ‘썸’을 종료시켜 쟁취하든 실패하든 상처 받든 사랑받든지 간에 끝을 낼 용기는 내가 낼 수 있다. 그리고 단언하건대 그 용기를 낸 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흑흑)
저지름의 24시간인 쌍둥이들의 세계엔 썸이 없다.
22개월 차 나의 쌍둥이들이 요즘 들어 푹 빠져 있는 건 다름 아닌 ‘동물과 자동차’다. 어디든 바깥 외출하러 나갔을 때 그것들이 눈에 포착되는 순간, 무조건 정면 직진 돌진이다. 그리고 만지려 들고 바로 말문을 튼다.
그 둘에게 뚜뚜 (자동차) 먼먼 (강아지, 멍멍이) 과의 ‘썸’은 있을 수가 없다.
저 강아지가 내게 올까 말까? 만지면 도망갈까 안 갈까?
자동차가 위험할까 안 위험할까. 가까이 갔을 때 나에게 해를 끼칠까 안 끼칠까.
뜨뜻미지근한 이런 생각이야말로 아이들에겐 의미 없는 ‘개소리’다.
그저 강아지가 좋은 나의 아가 둘의 시야에 멍멍이가 보이고, 마음에 멍멍이가 존재하는 한, 무조건 정면 직진 돌진이다.
도망가지 않고 순하게 아이들의 손길에 ‘개미 소’를 펼치는 멍멍이와 쌍둥이들의 그 순간은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차다.
궁극의 한 방
이 글을 식탁 위에서 서서 쓰고 있는 도중에 잘 놀고 있던 둘째 녀석이 또다시 달려들고 있다
어마 엄마
엄마아아아아아아아~~!!!!! (터.... 터졌다)
노트북 과의 썸은 이미 종료되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글감에 따라 한 편을 후루룩 써 내렸기에 일단 반 성공 (업로드까지는 시간이 좀) 그리고 나는 다시 둘째와의 썸을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알고 있다. 금세 종료될 거라는 걸.
왜? 바로 썸을 종료시키려는 궁극의 한 방이
내 마음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느새 내 두 손은 워드 문서를 저장시키고 키보드를 덮는다. 그리고 둘째를 안을 준비를 마친다. 이 한마디와 함께.
이리와 정음아 사랑해
그리곤 방금 아이를 재웠습니다. (만세)
저는 이제 마무리로 이 글을 업로드시키겠죠. 훗. 스스로 기특해서 자축으로 캔맥이라도 하나 따려했지만, 역시 혼자 먹는 맥주는 맛이 별로 없는 요즘입니다. 신랑은 뻗어서 자고 있군요. 아무래도 연휴가 끝나면 저의 '썸남썸녀'들과 맥주 원샷 원킬해야겠습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나의 잘생기고 멋진 썸남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소... 소설... 속에나?..... 퍽)
썸 타기 좋은 계절이라는 핑계 삼아, 원하는 것을 향한 솔직한 '탐색전' 썸을 타시는 기개를 마음껏 쳐보시길.
그리고 때론 썸을 종료시킬 줄 아는 과감함으로 무장하여 부디 좋은 '오늘'들 보내시기를요. (빙그레~)
고마워요. 오늘도- (라이 킷과 공유를 누르고픈 '썸'은 이제 그만 '누름'과 동시에 종료하셔도 된다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