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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0. 2020

엄마 화내지 마. 나 여기 있어...

퇴사 D-9  

어떻게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


- 아침의 피아노 - 





설상가상

아기가 깁스를 했다. '급'이다. 모든 건 그렇게 순식간, 그냥 흐르는 법이 없는 것이 인생이겠다만. 나는 아주 오랜만에 또 '팔자' 타령을 해 봤다. 쌍둥이 육아에 어쩌다 진입, '양육'의 세계에 들어가고 나서 그야말로 '급'으로 발생되는 동시다발적인 '사건' 들은 나를 언제나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많이 사그라들었다고 착각했던 육아로 인한 '우울감' 은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나를 덮쳤다. 



꽉 찬 12년 하고도 2개월. 곧 퇴사한다는 딸이 걱정이 되셨을 거다. 

아이들 하원 일찍 시켰으니 어린이집을 들르지 말고 그냥 오라는 메시지를 보고선 알 수 있었다. 주초에 친정부모님은 반찬거리를 싸들고 집으로 오셨다. 그런데 귀가를 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첫째 둥이는 왼쪽 발에 깁스를 하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 아.... 어쩌다가....

- 아니 조금 다쳤는데 깁스를 이렇게 해놨지 뭐냐 



다친 아이의 발과 두껍게 천으로 감싸진 발목

걸을 수 있는 수준의 경상이라지만 어쩐지 많이 다친 느낌의 두터운 깁스를 해 놓으니 마치 플라시보 효과처럼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기어서 내게 다가와 앉기는 첫째 둥이였다. 나는 기어코 참던 눈물을 와르르 흘려버렸다. 왜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는지. 퇴직서에 사인하던 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깁스를 하고 일주일 내내 꼼짝 마라 가정보육이 필요한 상태, 부모님은 다행히 봐주신다고는 하나 벌써부터 진이 빠지셨는지 손주의 다침에 괜히 오셨다는 옅은 자책으로 기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이 모든 상황들이 '내 잘못' 같기만 했다.



갈 길은 한참인데... 나는 어른 같지 않다. 몸집만 큰, 아이보다 못한...너희들을 지켜내야 하는데...말이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동시에 엉겁결에 다가오던 순간 

둘째 아이의 성화는 시작됐다. 이제 꽉 찬 4년과 5년 차 인간이 되어가는 그 어린아이의 나이에 맞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일 수 있으나, 나로 하여금 언제나 육아의 '한순간'을 못 참고 인내심 게이지를 건드려 기어코 내면의 야수 같은 공격성을 자극하는 둘째 아이의 행동들의 피날레는 기어코 말로 나를 건드려 폭파시켰고 그렇게 나는 5세 아이와 싸우려 들었다. 



- 엄마 미워! 

-...

- 엄마 미워! 

- 왜...

- 미워! 

- 내가 왜 미워! 누구 때문에 매일 고생하는데. 누구 때문에 내가 괴물이 되는데. 어떤 기분인지 알 턱이 없는 너는 왜... 내가 왜 미워. 왜!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와중에 넌.. 왜! 도대체 자꾸만 왜...!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의 나는 저격 대상이 필요했으리라. 

하필 그 공격 대상이 다름 아닌 아이라니. 정말이지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상황 상 누가 뭐래도 화를 내는 어른인 나는 아마 괴물로 보였을 테고 학대하는 엄마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아이와 그런 아이 앞에서 달래기는커녕 같이 울면서 화를 내는 애엄마...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친정아버지와 왜 애한테 화풀이를 하냐며 다그치시는 친정 엄마. 네 사람이 만들어내는 혼돈의 카오스 사이에서 나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발에 깁스를 하고 있던 첫째 아이였다. 



- 엄마 화내지 마. 나 여기 있어. 

- 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낯익은 단어, 한때 나도 엄마에게 건넸던 말... 언젠가부터 첫째 아이의 순간적인 문장들은 나를 놀라울 정도로 겸연쩍게 만든다. 그야말로.... '다섯 살 어른'을 만난듯한 영민함이 느껴지는 짧고 단호한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무기력함을 느끼고 만다. 화내지 말라며 나를 바라보는 첫째 아이를 보면서 그제야 상기된 얼굴의 둘째가 겹쳐서 보이고 만다. 쌍둥이들을 앉아주려 다가갔지만 화를 냈던 내가 무서웠던 모양인지 할머니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둘째다..



미안하다... 미안해서 나는 그저 말 없이 앉으려고 했다. 앉기는 첫째와 앉기지 못하는 둘째마저도 마음으로 모두 품은 채로...



친정 엄마가 아이의 '엄마' 나 다름없었던 

쌍둥이 신생아 육아 시절이 생각나서 2차 눈물샘이 가동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 다가오는 감정은 오직 죄책감, 죄스러움.... 우는 둘째를 몇 시간에 걸쳐 연속적인 인내와 노력 끝에 '겨우' 달래주었다. 그렇게 달래고 씻기고 재우고 같이 잠들다 다시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보였고 나는 노트북을 켰다. 글을 쓰려는 내가 보인다. 오기인지 독기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를 내적 동기에 힘겹지만 북받치듯.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어떤 감정에 떠밀리듯...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다. 

'우리에겐 필요한 순간에 길을 바꿀 능력이 있다'라고. 나는 잠깐 의심한다. 길을 바꿀 능력이 이런 나에게 있을까 라고. '이런 나' 라 함은 오늘의 나이고 화를 내는 엄마이고 희망 퇴사라는 명분을 걸친 권고 퇴사자이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쏀 척과 웃음을 선보이는 '만능 슈퍼맘'으로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눈물도 분노도 그득하여 감정 조절에 늘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이런 나'는. 



그럼에도 믿으려 한다. 새 길을 '만들'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모든 상황들이 적절한 '최악'으로 치닫는 '지금' 같이 느껴져도. '화내지 마'라고 다독이는 존재가 곁에 살아 있음에. 크게 다치지 않았음에 그 사실에 감사함만을 생각하면서...



가다보면 길은 또 나오겠지. 길을 내면 그만이리라. 



퇴사 D-9일

한 아이는 다쳤고 한 아이는 울었다. 한 아이는 내가 밉다 했고 한 아이는 자기가 있다고 했다. 내 곁에 있다고, 화내지 말라던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이번 생에 눈물은 결코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누군가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런 눈물샘의 길이라는 것을.

울기 좋은 공간을 찾으려 했다. 글을 쓰려하는 내가 보였다...




울기 좋은 공간, 숲 같은 존재... 나에겐 글쓰기. 못나도 내겐 그래서 글...쓰기....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크게 다치지 않아 줘서 고맙다....

#내 잘못이다..... 나의 업보다... 이 모든 상황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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