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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1. 2020

나의 것이 아니었음을

퇴사 D-8

누군가 말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 즐거운 나의 집 - 





쌍둥이들의 어린이집 수료식이 있었다. 

깁스를 했지만 걸을 수 있었기에 친정 부모님과 함께 어린이집에 갔다. 태어난 지 꽉 찬 4년을 흘렀을 뿐인데. 어느새 쌍둥이들이 부쩍 큰 느낌이었다. 바깥에 꾸며진 장난감 조형물들을 배경 삼아 아이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아이들에게도 마지막과 시작은 존재한다는 것을. 넌지시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을 보다 나를 돌이키게 되었다. 마지막이든 시작이든 저 아이들처럼 그저 매 순간을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정답 아닌가 싶었다. 



귀가 후 아이들을 봐 주실 때 나는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왔다.

인수인계 파일을 정리하려고 MS word 문서를 열고 몇 문장을 적다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내려놨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끝까지 '충성'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덮쳤던걸 지도 모를 일이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다가 카카오톡을 열었다. 역시나 무음으로 맞춰둔 수많은 읽지 못한 메시지가 가득한 단톡 방이 보였다. 그 안에 하나의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는 내가 모순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단톡 방에서 '열심' 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보면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TFT 팀으로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혼란스럽다고 했었고 언제 회사에 오느냐고, 퇴사는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다급해 보였다. 여태껏 '제대로' 내 메일을 같이 트랙킹 했다면 큰 무리가 없는 일들을, 해당 국책과제 TFT의 연구비 정산의 A-Z까지 해당 재무 정산 및 부가세 복원 등의 주요 '돈' 관련 테스크는 온전히 '나 혼자' 처리하고 있었기에 그 '혼자'의 업무에 이제 그 1인이 없어지게 되었으니 당연히 홀은 발생하리라.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한 나름의 최선을 미리 해 놓고 나갈 테지만, 어쩐지 나의 퇴사 소식에 그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더 느껴졌던 그의 불안함은, 위로로 포장한 메시지 속에서 느껴졌고, 나는 그 덕분에 넌지시 TFT에 처음 소속되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하며 일처리를 해 나갔던 '충성' 했던 '나'를 떠올렸다. 



- 책임님, 저. 그 업무 담당하라 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알려준 사람은 없었어요.

- 네..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 닥치게 되면 다 하게 되는 것처럼... 제가 콜 센터에 외부 연구원분께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했던 것처럼 아마 하시면 또 금방 하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네.. 그래도 아무튼 저희가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언제 회사 나오세요?

-...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사실 없어졌어요... 그렇지만 정리는 해야 하니 차주에 뵙죠. 지금은 아이가 깁스해서 재택근무 허락을 받아둔 상태입니다. 

- 네....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 책임님. 

- 네?

- 누구만큼 혼란스러우시진 않으실 것 같은데요. 당장 데스크 빼라 하는 처지의 누구만큼 요. 

- 아...

- 걱정 마세요. 제가 그만둬도 일은 됩니다. 누군가 대신 또 그렇게 하면 그만인 게 일터의 일이라는 걸 저는 이제야 알았네요. '제 일'처럼 했지만 그건 막상 마지막이 되어 보니 '제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요. 

 



비행기는 하늘이 자신의 공간인듯 하늘을 난다. 그러나 곧 꺠달을지도 모른다. 정착하는 곳이 하늘이 아니라는 것을..나처럼.




대화를 마치고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길, 묘한 분함이 느껴지는 걸 간신히 막은 채로. 쌍둥이들의 수료식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들어갔다. 한 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 뜨거워진 마음을 차갑게 달래고 싶었던 내가 느껴져서 그랬던 걸까. 옥동자, 수박바, 죠스바, 스크류바, 메로나를 골고루 봉지에 담은 채 도서관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내 어떤 말이 떠올랐다. 



'내 것'이라 생각해서 했던 '나의 일들' 이 사실 나의 것이 아니었음을. 

내가 이제야 알았다는 나의 문장이 다시금 나를 콕콕 쑤신 채로, 현관문을 여니 아이들이 달려온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 봉지를 보더니 '엄마 최고'를 외친다. 난 그제야 웃었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랑받는다고 생각될지도 모를 일이겠다 싶었다. 



결국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하고 상처보다 사랑을 원한다는 것을. 

그러니 뭐든지 '열심히' 살려는 걸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사랑받기 위해,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부모든 자식이든, 직장 상사든 동료든 부하든, 고객이든 아니든, 인간에게 공통된 '본성' 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실은 나에게 무례하지 않은 다정한 사람과 진심의 교류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그저 엇갈리고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을...



퇴사 D-8일. 나의 것과 나의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나는 현재 곁에 함께 존재하는 나의 사람들과 '오늘의 사랑'을 나누며 비로소 선명히 깨달았다. 삶의 가치를 다시 배열되게 만드는 또 다른 시작 앞에서 더 소중하게 남겨질 것들을 위해서만

더 사랑해 보기로...



뒤돌아보지 않으면 몰랐을, 나를 밝혀주던 '햇빛' 같은 존재들에 더 집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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