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Feb 23. 2020

지치지 않기를

퇴사 D-6  

당신이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기를, 눈물을 닦으며 응원한다.


- 출근길의 주문 -






식탁 위에 읽다만 책이 눈에 들어왔다. '출근길의 주문'이었다.

세 컵의 계량을 마친 쌀을 정수기 물에 씻고 잠시 불리는 동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눈을 돌려 집 전체를 둘러보았다. 놀이 매트가 펼쳐져 있는 흰 바닥의 거실, 한편에 정돈된 가득 찬 아이들의 장난감 통, 거실장을 중심으로 제법 잘 줄지어져 있는 책장 속 책들과 창문 위를 선반 삼아 차곡차곡 세워져 있는 책들, 그 위에 살포시 얹힌 오렌지색 라이언 인형 가족들과 분홍색 어피치 인형 한 개의 어설픈 4인 가족과도 같은 모습들. 쌍둥이들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인 연두색 장난감 모형 뱀 두 개까지...



잘 살고 있구나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려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딴 데 같으면 주말 아침이 분주하여 집을 둘러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테고, 식탁 위의 책을 물끄러미 바라볼 겨를 조차 없었을 것이겠지만, 요즘 들어 '안 하던 짓'을 꽤 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건 일상 속에서 나만 알 수 있는 작은 변화 들일 테다. 내가 아닌 사람들은 절대 눈치채지 못하는 절대적으로 '나'만 알 수 있는 것들...' 퇴사를 해도, 제 발이 아닌 권고 사퇴라는 주홍글씨가 붙었어도 그건 그저 한 때 지나가는 일상의 것들이라고, 괜찮다고 마냥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잘 살고 있는 상태'를 고의적을 확인하려는 듯한 행위들이었을 거다. 아침의 '안 하던 짓' 은...



내가 서 있는 이 장소 이 곳의 모든 것들에 애정을 느끼고자 했던 걸지 모른다.

사람이란 결국 '사랑'을 주고받으며 '보살핌'을 느끼고, 그 속에서 '안전하다'라든지 '좋다' 혹은 '설레다'와 같은 동사가 주는 긍정적 감정을 경험하며 결국 '만족'을 느끼니까.  신이 아닌 이상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불완전하고 불안함을 경험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방식대로 드러내려 하면서도 감추며 산다. 그 기준에서 따지고 보자면 우리들은 대게 엇비슷하게 사는 듯도 싶다. 부자든 빈자든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퇴사자든 현직자이든, 상사든 부하든, 워킹맘이든 워킹대디든, 기혼이든 비혼이든...



어디로 흐르듯 어떻게 보이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사랑' 이 있다면...




문득 어떤 장소 어떤 곳에 가 있어도 웃는 내가 돼보자는 절실함과 마주했다.

워킹맘 4년 차, 한 때 웃음을 잃고 집안에만 갇혀 있는 현실이 진절머리가 나서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 탈출하려 했던 나였다. 그랬기에 '회사'는 내게 숨구멍이었고 자유로움을 허락하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그래서 그런 '회사'를 좋아했었다.



남들은 '불금'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었다.

다음 날이 주말이라 온종일 아이들을 중심으로 풀 육아를 해내야 하는 현실이 여전히 달갑지 않았던 나였다. 회사에서 더 많이 웃고 집에서는 연속되는 가사 노동에 쉬이 웃음이 나지 않는 나였다. 아이들의 성장과 해맑은 애교들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기쁨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그 '찰나의 기쁨' 뒤에 가려진 양육이라는 긴 좌절과 고통의 그늘 속에서 '부모'는 버티듯 살지도 모르겠다. 내게 금요일은 그래서 달갑지 않았고 일요일은 기대되는 요일이었던 만큼. 다음 날은 월요일, 출근하는 날, 고맙고 기뻤던 요일의 한때...



어쩌면 아직까지도 혼자서 '짝사랑' 하는 것 마냥의

'출근하는 장소'를 향한 어떤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문득문득 옅은 슬픔이 주말 아침에 조차도 갑자기 차오르는 걸 보면. '비자발적 퇴사'가 내게 주는 감정이 애써 밀려오고 마니까. 이 감정을 당분간 붙잡듯 '퇴사 에세이'를 쓰려는 이유는 바로 이런 감정에서 시작될지 모르겠다. 미끄러지는 삶을 '혼자'만 겪는 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당신과 같은 누군가도 이 허무한 일상이라는 삶 군데군데 갑자기 불어닥치는 어떤 상실을 겪고 잡아내고 그렇게 다시 이겨내려 한다고. 그것은 현재 내가 '키보드'에 자꾸만 손을 얹으려 하는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라고.



이제는 회사 '밖' 의 공간에서 꽃을 피워내보려 한다.. 조금 더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며칠 전에 썼던 '권고 퇴사'를 당했다는 제목의 글 조회수가 급격히 올라갔다.

핸드폰의 알림음을 보고 조회수의 통계 수치를 보고서 잠시 느꼈다. 역시 글쓰기를 잘했다고... 자의 반 타의 반 가정에 다시 갇혀야 하나 라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불현듯이 떠올랐지만 한편으로는 또 지치지 않을 자신이 조금씩 밀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며 '나'와 '세상' 속, '사람' 들과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으려 분투하는 내가 있으니.

아직 손이 가는 다섯 살 쌍둥이들을 생각하면 잠시 이런 마음의 내가 몹시도 무거운 존재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머릿속은 퇴직금 정산과 위로금을 어떻게 활용해서 '재테크'를 해낼 것인가에 대한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기도 할 것이며, 가사에 집중하면서도 어떻게 다시금 나만의 '일'을 찾고 또 만들 수 있을 가라는 고뇌 앞에서 심각해지기도 할 테지만.  




퇴사 D-6일, 어딘가의 '소속인' 이 아닌 '개인' 이 되어버린 이 변화 앞에서 

어떤 삶으로 흐르든 지치지 않는 '나' 이기를 바랐다. 어디로 출근하든, 회사든 집이든 식탁 노트북이든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그 어디에서의 '나' 이든



지치지 않기를...



군중 속에서도 선명해지려는 '나' , 그리고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지치지 않기를 내내 바랐다.





#하루지나_쓰는_토요일_아침단상  



작가의 이전글 나의 처음, 너의 전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