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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09. 2017

25. 미안해 아가들아

오늘 나는 마녀가 되었다.

쉬는 게 허락되지 않았던 나의 솔직한 연휴   

  긴 연휴가 끝났다. 헌데 끝 마무리가 애석하다. 이유인 즉, 오늘 밥을 먹지 않은 아가들에게 불쑥 불쑥 잦은 화를 낸 연휴 마지막 날의 나 때문이었다.   


 사실 화의 원인을 넌지시 알고 있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는 걸 안다. 남들 다 쉬는 연휴에, 시댁과 친정을 다녀온 이후로도 장장 5일 여간을 나는 온전히 '집안일과 육아, 우리집 세 남자의 끼니챙김 등등'으로 정신 없는 매일을 보내느라 온 몸이 이곳저곳 다니다 부딪히고 넘어져서 멍투성이였으니깐.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발견한 멍자국들을 본 탓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시작이었다.


 손이 시큰거리고 사실 온 몸이 피로한 나날을 유지하고 있었고, 연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유아를 돌봐야 하는 엄빠들의 현실에선, 연휴 여행이 진짜 여행이 아니고 쉬는 게 쉬는 것도 아닐 지 모르겠다. 나를 위한 연휴가 아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연휴’의 시간이라면 사실 더더욱 말이다. 사실 이번 연휴의 내가 그랬다.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된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연휴여서,
내 시간은, 결국 그들의 시간이지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  


 일한다는 죄책감

 일하는 엄마가 된 나는 어딘지 모르게 항상 아이들에게 죄스런 마음 간혹 든다. 특히 1등 등원에 꼴찌 하원을 시킬 때면 더더욱 그렇다. 아침 저녁밥도 어린이집에서 먹고 와야 하는 탓에 도시락을 매일 준비하는 나는, 평일 5일에 제대로 된 이유식 반찬을 해 주지 못하고 매일 비슷한 야채들로 번갈아 가기가 일쑤다. 

  

 참고로 어린이집에서는 오전 오후 간식만 나오고 제대로 된 식단은 점심만 제공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침과 저녁의 도시락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그게 나도 편하고(?) 저녁 잠이 이른 아기들의 페이스에도 맞는다. 

  

 이번 연휴엔 아기들 영양소(?) 만회를 해 보겠다고 스스로 자처해서 이것저것 만들어냈다. 

 그러나 결과는 대 실패. 둘째는 그나마 많이 먹어 주었지만 뱉는 게 대다수였고, 첫째는 하루 이틀 정도 잘 먹어 주더니 결국 이후에는 김밥 (말 그대도 김에 밥을 싸 주는 주먹밥) 만 주구장창 드셔 주었다. 

    

그때 나의 엄마도 그랬을까   

  기껏 식구들이 잘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따뜻한 밥과 반찬들을 정성스레 준비하면서 부산스런 아침을 보내던 나의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그러나 다이어트 한답시고 등교길이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나는 엄마의 아침 밥상을 거부했던 철없는 여대생이었던 나였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정말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물밀듯이 밀려든다.   


엄마의 노고를 알 턱이 없었다. 난 엄마의 표정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었으니깐...미안하다 많이

 

 오늘 쌍둥이들은, 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반찬들을 모조리 거부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숙이 차오르는 깊은 빡침과 더불어 요상한 분노가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아내야 했으니깐. 당시 친정엄마도 그러셨을 거다. 차려놓은 밥상에 데면데면 시큰둥했던 딸내미가 정말 미웠을 텐데.   


 그럼에도 큰 내색 잘 하지 않고 매일 아침 밥상을 차려 주셨으니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새삼 그녀의 근성과 식구들을 향한 위대한 사랑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더군다나 그녀도 일하는 여성이었기에, 오늘 아기들에게 불쑥 화를 낸 내가 정말 부끄러워 진다.     


훈민아, 도대체 왜 밥을 안 먹는 거야. 물은 이제 그만 물배만 차니까 잘 못 먹게 되잖아  
정음아, 감자조림 이거, 메추리알 얌얌 아이 맛이다 응? 왜 뱉아내어…! 또 뱉는다!    



나의 목소리는 어느새 앙칼진 마녀로 변신해 있었다.   

 급기야 아기들이 이유식기를 엎어버리는 순간 드디어 빡침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했다.   


도대체 언제나 되야 편해 지는 거야. 내 팔자에 무슨 쌍둥이냐고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것도 뻣대는 아들 쌍둥이라니 하아….
너희 둘이 동시에 이러면 엄마 정말 어쩌라고! 나중에 다 청구해 버릴꺼야!

(하아 난 정말 유치하다....)   


 첫째는 동그란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다가 붕붕카를 타고 태연스럽게 (그런 척 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둘째. 내게 달려오다가 거실 바닥에 넘어져서 자지러지게 울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아달라고 통사정을 하기 시작한다.


 주방은 온통 밥풀과 엎어진 이유식기로 인해 반찬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미 바닥은 기름기와 물기로 가득해 얼룩덜룩된 지 오래다. 아수라장이나 다를 바 없는 현실에 나는 결국 지고 만다.    


혼자 도망가고 싶을 감정이 밀려올 때엔 참 슬프다. 결국 그러지 못할 걸 알아서 그런가보다

 

한숨이 흘러 나온다. 그러다가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쌍둥이 아빠인 그는 육아에 꽤 적극적인 편이다. 일단 적극적으로 놀아주고 나의 요구 사항에 큰 불만 없이 잘 참아내 주고 있다. 그는 꽤 좋은 아빠다. 최소한 나처럼 화를 내진 않으니깐. (다만 좀 게으를 뿐....)

 내가 크게 인정하는 부분중에 하나이고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고마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쌍둥이인 탓에 1인 1전담 마크가 대부분인데, 아이 한명을 돌보고 있자니 어느새 이단 분리되는 아기들을 온전히 혼자 보는 게 수월치는 않은 게 현실이다. 오늘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폭파한 내 마음을 토로해 버렸다.


연휴에 이게 뭐야 도대체. 여보 나 쉬지도 못한 거 알지.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힘들어.
얘네 둘은 도대체 언제 크는 거야.
둘이 동시에 어지르고 똥 싸대고 울고 그러면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어..알잖아 자기도...
너무 그러지 마. 다른 사람이 화내면 그 사람들은 자기를 싫어하잖아.
그런데 정음이는 안 그래. 엄마가 화내도 오잖아.
 그만큼 그냥 엄마 자체가 좋은 거야.  


 말문이 순간 막혔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아이들에게 나는 그냥 존재 자체로 좋은 사람인 것이라면, 오늘 나는, 아니 화내는 매 순간의 나는 아직도 한참이고, 참 어리석다는 걸 다시 깨닫곤 후회한다. 아기에겐 그저 기대고 싶은 엄마인 나인데 말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그냥 곁에 있는 것 자체로도 힘이 되는 사람. 부모는 그런 사람이여야 하지 않을까

 

 부모라는 역할이 얼마나 큰 희생과 노력 없이는 감내할 수 없는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고 있는 나는, 때때로 터져 나오는 심신피로와 뒤틀린 감정 때문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순간을 종종 맞이한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좋아하는 건 기필코 해내고 마는 근성 탓에 때론 아이들은 뒷전인 채 일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이 새삼 몹쓸 여자로 비춰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아가들에게 화를 내고 마는 내 모습과 동시에 아기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순간, 뒤늦은 후회와 마음 시림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잠든 아가들을 보며 어느새 눈물만 흘려 보내고 만다.     


 때때론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나도 몰랐던 감정의 표출로
마음 조절에 실패하여 행동은 결국 터져 나온다 
그래서 사람은 뒤늦게 후회해야 하는 동물인가보다.


 특히 육아를 하는 나는, 뒤늦은 후회가 잦아서 마음이 아프다 

 엄마 혹은 아빠가 되면서부터 새로운 나라는 사람의 모습들이 불쑥불쑥 재발견 되곤 할 텐데, 그 모습이 부디 좋은 느낌이 아니라 당혹스럽고 후회되는 행동을 한 이후에는, 그 후폭풍이 꽤 진하게 남는다.   


 미안한 마음, 뒤늦은 후회,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감정의 발산. 그로 인해 아이들이 느꼈을 마음이 어땠을지. 쌍둥이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알 수가 없다만 비단 유쾌한 마음은 아니었으리라.


 아이들에게 나라는 엄마는, 내가 알았던, 잘 웃고 유쾌하고 사랑한다는 소리를 자주 해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마녀로 변신했을 때, 무섭고 당혹스럽고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를 것이다. 아마도 최소한 오늘 점심때에 느꼈을 둘째의 마음은 그러했을 것이라 그저 상상해 본다.   


밥을 거부해서 화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쉬지 못하고 읽지 못하고 그저 숨죽이며 쓰는 단 몇 시간 정도만 그것도 겨우겨우 시간 쪼개어 지내는 이번 긴 연휴를 생각하자니 사실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과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내 안에 잠들어 있다가 잠시 눈을 떴었다.


제약과 한계에 부딪혔을 때 찾아오는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그럴땐 차라리 침묵이 최고인데...
그 침묵조차 가만히 나를 놔두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그 희미한 감정을 가진 채 오늘의 육아를 여전히 지속하다가 급기야 사건은 터지고 그 사건 덕분에 아이에게 아주 잠깐이었으나 세차고 앙칼지게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러 버린 나였다. 


 여전히 마음을 다스리는 게 부족하고, 아마 이 부족함은 최소한 아이가 내 나이가 되어서 그들도 부모의 입장이 된다면 아주 조금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지금 엄마가 되어 친정 엄마의 마음을 문득문득 이해하고 마음 아파 하는 것 처럼…. 그때 엄마가 왜 내게 화를 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은 것처럼, 나의 쌍둥이들도 언젠가 오늘의 내가 기억난다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기를 바보 같이 바라는 유독 미안한 오늘 밤이다.     


그럼에도 내일도 이렇게 마주하며 이야기해 줄 거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해 아가야. 엄마가 여전히 많이 부족해.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감히 말한다.
이것도 모두 지나가면 그리울 한 때일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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