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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5. 2020

전업주부는 못할 것 같았다.  

퇴사 D-3

공 들이고 정성 들이다 보면, 마음속 장면들이 현실로 펼쳐질 것만 같아서

어쩌면 유일하게 한결같았던 건 이런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 오늘의 이름이 나였으면 좋겠어 -







비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가정보육이 강하게 권고되는 상황, 퇴사 마지막 주까지 제대로 출근하고 싶었으나 생각해보니 주객전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젠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아이들까지 힘겹게 등원시키며 나가야 되나 싶은 생각에... 나는 일찌감치 '그럼에도 출근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아이들과 집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첫째의 깁스는 어제 친정부모님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다행히 풀어진 상태, 아직 잠든 침대 위의 쌍둥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첫째와 눈이 마주했고 아이는 나를 보고 웃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아침을 먹이자마자 둘째의 성화에 놀이를 개시했다.

물감 놀이...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일' 은 벌어졌다. 난 그리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던 나는 목소리의 데시벨을 울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아이답게 놀았을 뿐인데. 아이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이 있다면 인내가 부족한 '어른'의 몫인 것을, 나는 여전히 그 '어른'으로 가기엔 한참이지 싶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둘째와의 '전쟁' 이 시작되었다.

물감놀이는 서막이었던가. 요 근래 둘째와 '훈육 전투'를 일삼곤 한다. 뭘 해도 청개구리 마냥 반대이며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바로 징징댐의 끝판왕을 제대로 보여주는 둘째 둥이의 우는 목소리 덕에 몇 년 전의 환청과 속 쓰림이 다시 올라올 것만 같았다. 계속되는 찢어질듯하게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 첫째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둘째의 행동에 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말았다. 아이 옆에 있던 인형을 그대로 아이가 앉아있는 소파 바로 옆으로 일부러 던져 버렸다. 일그러진 얼굴을 아이는 보았을 거다. 더 세차게 울던 둘째와, 내 옆에서 '엄마 하지 마' 라면서 나를 말리려 하던 첫째의 목소리...



둘은 다르지만 서로를 위하는 걸 보면, 아이들은 어른을 가르친다. 너희들의 존재로 인해 나는 자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무력함에 주저앉고 말았고,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도무지 나로서는 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전업주부'를. 신생아 육아 시절에도 이런 나를 넌지시 예상했기에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얼른 복직을 하려 했던 나였건만. 이제는 퇴사 이후의 반 전업주부의 삶이 가당키나 할까 싶었다. (어린이집이라는 기관에 맡기기에 온전한 풀데이 가정양육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



어른이 아이에게 행할 수 있는 치졸한 폭력이 바로 '협박과 강제'라는 것을

나는 그 비열함을 알면서도 왜 둘째에게 어떤 행동들을 강제하려 했고 인형을 던지고 말았을까, '안전' 이라는 기준으로 지키려 하나 도저히 지켜지지 않은 아이의 비협조적인 행위들 앞에서...도대체 훈육의 시작과 끝 앞에서 지울 수 없는 죄의식과 죄책감은 언제쯤 없어질까. 비교적 순하고 아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어른스러움을 장착한 첫째와의 극명한 대비는, 나로 하여금 어떻게 이 둘을 적절히 잘 교육하고 기를 수 있을까를, 둘째의 훈육이 더해지는 요즘, 반성하듯 부끄럽지만 알게 되고 만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기쁨과 슬픔을.

정확히 말하자면 '주양육자'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양육으로 인한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길다. 돌봄으로 인한 보람과 행복은 때로는 밝고 즐거운 형태로 겉으로 보일 수 있으나, 반대로 그들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생기고 마는 양육자 개인의 고통과 좌절은 철저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힌다. 그래야 살아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서 나는 절절히 깨닫고, 아울러 말미엔 어리석은 생각 하나가 섬광처럼 스친다. 전업주부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엑시트 플랜이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품안의 자식이라는 걸 또 깨닫고 나면... 이 시간이 그리워질텐데.....



긴 설득과 포옹, 그 후의 아이스크림으로 대략의 화해 전선을 둘째와 펼친 이후

다시금 시작된 일상의 패턴이 시작된다. 미리 준비해둔 찐 고구마와 식혜, 간식을 먹이고 다시 TV 속 육아 메이트들에 의지한 채 (언제나 감사한 '신비 아파트'와 '리틀 투니' 명탐정 피트... 나는 이제 애니메이션 육아 콘텐츠의 박사가 되어 가는 중이다)  그렇게 오후를 보낸다. 그 와중에 틈틈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노트북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쌍둥이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나를 다스리려 애쓴다.



이른 저녁 겸 오므라이스, 그리고 씻기고 놀리고 다시 출출해질 즈음의 마지막 간식 타임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거실 정리를 할 때 즈음, 아이들의 졸림 현상을 포착한다. 그대로 안방으로 직행, 패밀리 침대에 아이들을 뉘이고 그렇게 애써 재우고 나면 비로소 하루 일과 끝. 그제야 육아 퇴근의 의식처럼 나는 반신욕을 마치고 얼굴에 마스크팩 하나를 붙인 채 읽다만 책을 펼친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 '나' 때문이겠다.

오전에 괴물이 되어버린 나는, 엄마 타이틀을 반납하고만 싶어 진다. 아이에게 세찬 화를 잠시 또 내버리고 만 나라서. 오늘의 쌍둥이들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반복되는 이 죄스러운 과정이 스스로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만, 아마 쉬이 없어지지도 않을 패턴임이 예상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당분간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숨구멍이고 쉴 틈이 있던 '워킹맘'에서 이제는 잠시 '워킹'을 뗀 '맘' 이 되어버리고 마는 나는 상상한다.  손이 많이 가는 지금도 이러한데 교육과정이 들어가면 도대체 어떤 것들이 밀려올까 싶어서...



시간은 흐르고 또 밤과 낮이 반복되니... 그냥 이대로 가볼까 싶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여전히 마음에선 이 변명 같은 문장이 일렁인다.

아들 둥이를 아무나 키우냐고... 한 명은 일도 아니고 터울 있는 두 명도 그저 웃음이 나오는 나는, 결국 두 명의 여자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뉴질랜드에서 아들 넷을 키우는 친구와 나의 친정엄마를. 그녀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내가 작아 보이고 징징거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 나머지 겸손함과 반성을 하게 되니까... 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용기와 힘이 생겨서.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제야 하루가 끝나감을 발견한다.

거실로 나와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둔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그제야 단어와 문장을 서툴게 모아서 한 움큼 백지에 쏟아내는 나의 시간이 시작된다. 글쓰기라는 이 의식이 시작되면 동시에 하루의 끝을 향해가는 시간 부모가 된 이후에 생긴 리추얼 한 패턴...



퇴사 D-3일, 전업주부는 못할 것 같은 오늘의 나는 한 치 앞을 꿰뚫지 못하는 인생 앞에서

현재의 흐름을 그대로 껴안은 채 다만 한결같은 어떤 마음 하나만은 제대로 기억해내자 싶었다. 일을 하는 이유도 잘 살고 싶은 이유도, 결국 지키고 싶은 나의 사람들



내 곁의 사랑들 때문이라고...






엄마는 글을 쓸테니 네가 부디 그림을 그려줘... 내 새로운 소원이 이렇게 탄생되었다.  (feat. 예술 하시는 둘째 둥이)



짜장 오므라이스 대신 그냥 허접한 오므라이스로도 봐줘서..정말 고맙다...사랑한다.



도와주겠다고 하면 늘 마음이 쫄린다... 안 도와줘도 괜찮단다. 사랑..한다...ㅠㅠ 부족해서 미안하다........




#선물같은 귀한 보물인 너희들이 때로 너무 일찍 나를 찾아온거 같아서, 부족한 나는 늘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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