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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3. 2020

한 가지를 파고든 예술가의 깊은 시간

그리며 살았다 

해방과 자유.... 공부하는 길가에서 나는 비움의 공간을 보았다. 

솔직히 나는 그것을 얻고자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이름하여 은총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기쁜 일이고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 그리며 살았다 -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결국 현재의 '미디어' 들을 가만 쳐다보고 있자면 

결국 '돈'과 '경제' '산업' 이야기가 늘 '메인'이고 '주류'인 세상이었다. 과거형이 아니라 그것은 아마 현재형,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미래형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부인하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를. 

다만 유튜브나 미디어 매체의 글들만 보아도 '돈'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가 조금 더 '각광'을 받거나 (브랜딩/마케팅/커뮤니케이션. 결국 이런 것들도 모두 사람과 사람 간 '사업'의 본질과 엮여 있으리라)  '예쁘다'라는 소비 심리가 내면에서 자극되면 그 미디어는 결국 소비된다.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 속에서도 나름의 '반항' 적인 사유와 시선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 



철학자와 예술가, 자신의 세계 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고매하고 우아하다는 진정한 느낌은 결국 전자가 아니라 후자들에게서 더 빛이 난다. 아이러니하지만 후자들이 물질적인 '풍요'는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 후자들이야말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갔을 때의 어떤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느끼리라고. 이 책을 읽고서 아주 많은 생각들이 스치듯 다가오고 만다...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최종태, 김영사, 2020.01.08.




그림을 그리며 줄곧 예술을 자신의 삶 안으로 이끌어온 분의 에세이다.

굉장히 깊은.... 너무 깊어서 때로 그냥 위인의 어떤 좋은 말씀으로만 비칠 법한. 좋은 문장은 '생각' 하지 않으면 그냥 좋은 문장으로 끝나고 만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느낀 것, 내 눈에 보이는 것이 확실하게 있어야 그렇게 그린다"라고 하는 이 분의 철학을 계속 곱씹다 보면 이토록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명확한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그림은 두 가지의 물듦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지난날의 거장들을 업고 위신을 얻으려는 심사에서 벗어나지 못함이고, 또 하나는 나도 모르게 명성에 연연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두 가지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두 가지 나를 묶는 사슬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든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p.22, 포박당한 인간 




그림... 배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않았던 것들이 문득 생각났다.



아름다운 사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 질문과 만났고, 결국 스스로 어떤 답을 어설프게 내리려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골고루 지키려 애쓰며 사는 사람... 그래서 결국 그 아름다운 사람은 상처와 슬픔과 고통에 휩싸이게 될 것이 뻔함에도 자꾸만 그 '사랑'을 지키려 사는 사람... 내게 아름다운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으로 늙고 싶어만 진다. 생각해보면 작가님이 말씀하신 '자유' 도 인정하지만 사실 집단 사회 속에서 개개 인성의 '자유'를 완전하게 지키며 사는 사람이 어디 흔할까 싶어서, 또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자유로운 삶이 인간에게 허락되는 삶일까 싶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이 자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자유를 얻으면 아름다움에도 그만큼 더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데 내 나이 팔십을 넘겼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얼마일지 너무도 짧다. 예전에 한 스승이 있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백 리 길에 구십 리를 왔는데 남은 십 리가 걸어온 구십 리보다 더 멀다. 이제부터다. 그러셨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그랬다. 오늘은 될 듯싶다. 그런데 오늘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하루는 '될 듯싶다'로 시작해서 또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끝났다. 


p.25, 41




내공이 아주 깊고 청명한 삶을 살아오신 은사님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그래서 왠지 현재의 내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서 조금 더 소박한 행복을 찾아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귀결을 만들어 주는 책... 감사하게도 주변에 이런 '책' 이 여전히 출간되고 또 읽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참 어려운 시절을 용케도 살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세상은 험하고 목숨은 질기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슬픔도 고통도 있고 즐거움과 기쁨도 있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20세기의 그림에서는 인간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마지막에 당도한 곳이 '인생'입니다. 미에서 인생으로의 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미만 있고 미마저 흔들리는, 그리하여 인생과 그 의미를 상실한 시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혼돈의 시대입니다. 목마름이 있습니다. 사랑의 갈증, 진리에의 목마름입니다. 


p.166, 219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오늘도 고민하는 나로서는 

'그리며 살았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시는 이 분 앞에서 감히 중얼거려볼 뿐이었다. 나는 읽고 쓰고 말하며 살았다....라고 당당히 웃으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고통받거나 상처 받았을지언정, 그것들은 모두 '사랑'의 처음과 끝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는 것까지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늘어가기를.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하는데 남은 시간이 턱없이 짧다. 세월이란 항상 사사로운 정이 없었다. 위로 더 올라가야 된다. 더 깊은 데로 나아가야 된다. 샘물이 솟아나는 곳을 만나야 한다. 예술의 길과 종교의 길은 서로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둘을 갈라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갖가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기가 거기이다. 세상이라고 하는 공통의 분모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는 종점이 없는 성싶다. 인생은 너무 짧고 예술의 길은 끝이 없다. 


p.258




앞으로의 시간, 잔잔한 흐름 속에 또 어떤 폭풍 같은 파도가 다가올지언정

유유히 흐름에 내맡긴 채 받아들이며 사는 '나'를 바라보기도 했던, 홍차 한 잔과 깊은 사색이 아주 잘 어울리는 '그리며 살았다'를 읽고 잠깐 주저 하고 있던 것들을 향해 조금 더 나아가는 나를 상상해봤다. 



수채화와 드라이플라워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올해는 그간 못해봤던 것들을 향한 경험을 쌓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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