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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9. 2020

'잘 가 엄마'라 했던 너의 목소리    

두 밤만 자고 가고 싶다던 너의 목소리가...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 늑대 아이 - 





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나는 일요일 오전, 와인 한 병을 챙겨 들고 친정으로 향했다. 

지난주 큰 딸의 집에서 거의 쫓겨나듯 빨리 귀가해야 했던 상황에 적잖은 서운함을 뒤늦은 톡 하나로 - 다시는 안 간다는 - 비치셨지만. 결국 큰 딸의 급 퇴사 이후의 온전한 상태(?)와 쌍둥이 손주들이 보고 싶으셨던 모양인지 며칠 전 아이들의 옷을 샀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오셨다. 빨간색과 회색, 색깔만 다른 디자인이 같은 누가 봐도 쌍둥이 형제들의 옷들... 그리곤 집에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들의 사랑을 모를 리 없는 나는 얼굴을 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건 그저 평온한 우리들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생각했기에. 



사실 일주일 내내 급 퇴사 후 밀려오는 '우울감' 이 자꾸 덮치는 중이라

애써 씩씩하게 버텨내 보려고 안 하던 짓들을 해보기 시작한 일주일이었다. 일단 유튜브로 출퇴근을 해 보는 루틴함을 만드는 지경에 처하질 않나, 새벽에 잠이 안 오면 어디에도 올리지 못할 (하지 않는) 카드 뉴스라든지 포스터라든지 웹페이지 디자인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꼼지락꼼지락 손으로 하고 있질 않나... 그 때문이었을까. 유독 이번 주가 고비 같았던, 둘째 둥이의 거침없는 장난의 연속은 나로 하여금 온몸의 진이 빠질 정도였다. 내면의 괴물성은 자주 눈을 뜨는 일주일이기도 했고. 급기야 화를 참지 못했던 나는 아이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순간을 자주 만들어 냈고, 아이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었다. 



속이 상해서 울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난 왜 속상하게 만들었을까... 바보 같다. 정말... 



친정 엄마 품에 안긴 둘째 아이의 표정은 안온했다. 

편안했던 걸까... 큰 안전 위험이 예상될 법한 장난은 없었기에 화를 내는 주 이유의 대부분은 다름 아닌 '안전'이었다는 걸 아이는 알까... 알 턱이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안도했고, 쉴 수 있었다. 친정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이번 생에 큰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덕분에 연속적인 책 읽기가 가능했고, 그 덕분에 낮잠을 잘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 울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울컥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귀가를 하려 짐을 챙기고 옷을 입히려는 순간

둘째의 말 덕분에 나는 애써 잠재웠던 울컥함을 차 안에서 그대로 드러내버리고 말았다. 



- 나 안 갈래. 여기 있을래

-.... 엄마가 화 많이 내서 그래? 엄마가 아까 약속했잖아. 다음 주부터는 더 노력할게. 할머니 힘들어서 안 돼.. 우리 같이 가자. 응?

- 싫어. 

-... 왜 가기가 싫을까.. 아가... 

- 그냥. 두 밤만 자고 갈게. 

- 정말 안 가? 

- 나 여기 더 있을래. 여기가 좋아. 편해. 

-..... 여기가.. 더 편해?

- 응. 잘 가 엄마. 



협상 결렬. 

아이스크림으로 달래 보아도, 무릎 꿇고 눈을 쳐다 보고 사죄하듯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해 보아도, 아이는 시종일과 친정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편한 곳은 여기라고. 친정엄마의 공간이라고. 엄마의 공간이 아니라 할머니의 공간임을 일깨워준 아이의 촌철살인적 문장은 나로 하여금 조용하던 내면에 균열이 가듯 갑자기 아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그럼..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정음아... 다시 말하지만 엄마가 이번 주 정말 많이 미안해.. 잘못했어... 엄마가 너무 부족해. 미안하다... 아가

- 잘 가 엄마. 

- 어서 가라. 됐어. 애 한 명 보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처음부터 아들에 그것도 둘씩이나. 네가 무슨 기계냐. 애들 치닥꺼리 하며 회사까지. 그 정도면 오래 다녔다. 된거야 그럼. 너무 속상해 마라. 이제 집에서 슬슬 쉬면서 살아. 이것아. 이렇게 한 명 두고 갈 수 있을 때 그냥 너도 가서 쉬어. 

- 미안해 엄마... 회사 다닌 거는.. 후회 안 해요...다니면서 좋았어...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둥근달을 본 것 같다. 달이 찼다는 건 다시 또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겠다만.. 




차에는 결국 한 사람의 빈자리가 생겨버렸다. 

귀갓길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둘째 생각에 눈물이 슬렁슬렁 맺히기 시작했다.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그 죄스러움은 여전히도 지독히 나를 붙잡는다. 예쁜 선물이 축복처럼 태어난 것에 감사함만 생각해도 모자란 생인 것을, 이상하게 우울하고 개인적 상황으로 하여금 불안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토해낸 모자란 어른이 바로 '나'인 것 같아서. 아니 내가 맞아서... 



아이가 잊을 수 있는 기억들을 부모는 잊을 수 없으리라. 

쌍둥이를 기르고 살피는 삶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절절히 체감하는 중이다. '엄마'의 책무가 더해갈수록, 마음의 무거움과 죄책감이 쌓여갈수록. 벅차게 큰 슬픔이 나를 짓누르는 건, 담담한 아이들의 사랑 때문 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부족한 인간을 아무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사랑하고 마는 그 투명하고 순수한 사랑 덕분에. 결국 마음 아프게 울리고 말았어도 다시 '엄마'를 찾고 마는 아이들이라는 걸 알기에... 사랑을 주기에도 모자란 생이라는 것 또한. 




밤과 낮은 계속 되어도, '우리들의' 밤과 낮은 계속되지 않은 삶일 텐데... 그럴수록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인데...



애써 읽고 쓰는 삶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해야 나에 대한 어떤 현재적 위치와 불완전함... 나는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악착같이 쓰려는 이유는, 그래서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사랑을 계속해서 지켜내려는 어떤 의지적 발악일지도 모를 일이고. 



쓰면서 생각하기에...

너의 목소리, 너의 두 눈, 너의 그 떨리는 마음의 고백들, 우리들의 현존, 우리가 함께 했던 이 그리울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편하다던 그곳에서 오늘 밤은 편안하게 잘 자기를. 그리고 불편했을 이번 주 이 곳의 공간에서의 나를 말끔히 지워내고,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서로 꼭 끌어 앉을 수 있기를. 해줄 있을 때, 뭐든 주기를. 사랑을 주기를. 그렇게 사랑하기를..... 반드시. 끝까지. 



키보드 위 손등에 눈물을 그새 떨어뜨려내야 

숨 죽어 눈물을 삼켜내야 

오늘은 비로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밤이다... 



    

안 보이니 보고 싶어 지더라... 그러니 더 사랑할 수밖에. 볼 수 있을 때. 그게 우리의 전부일 테니.. 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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