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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26. 2020

버티는 수밖에 최선이 없다면. 자, 다시 한번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등원을 하던 오전 10시의 길이었다. 

각 20kg에 육박하는 쌍둥이를 태운 웨건의 무게가 벅차오르던 찰나, 시종일관 안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에게 급기야 한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잠깐의 호통에 절대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란 것도 알기에, 아침부터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묵묵히 인내 게이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던 순간. 그때였을거다. 길가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는. 



죽어있었다. 

참새인지 콩새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았지만 죽어있는 새라는 게 분명히 인지 되는 형상이었다. 작지 않았고 날개가 보였고 반쯤 감긴 눈을 보았기에. 가던 속도를 조금 줄이고 스쳐 가며 다시 확인했다. 설마 했는데 역시였다. 누군가 죽은 새를 미쳐 버리지(?) 못하고 길 옆에 치워둔 것 같아 보였다. 아이들은 다행히도 보지 못한 채 연신 웨건 안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고, 나는 그 새가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등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까지도. 



아이들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다시 그 새가 있던 자리로 가 보았다.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자꾸 신경이 쓰였던 걸까. 죽어있는 새를 보고 이상하게 눈물이 날 뻔했다. 문득 그 새가 내 모습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걸까. 그냥 그랬다. 죽은 새의 죽기 전까지의 모습을 상상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최선을 다해 살다가 영문 모를 사고에 치였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적 공격에 의해 힘없이 쓰러져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걸까. 이유는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테지만, 가여움과 동시에 어떤 슬픔이 다시 밀려오려 했다. 눈을 다 감지 못한 채 죽은 새의 억울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내 안의 어떤 억울함도 동시에 밀려왔기에. 



자유롭게, 잘 날아다니다가 갔을까... 그랬다면 좋을 것 같다. 




굿모닝으로 시작하지 못했던 마음, 아니 실수들 때문이리라. 

아이들 아침 끼니를 챙기다가 실수로 손을 베었고, 둘째의 세찬 떼씀에 또 한 차례 이른 오전부터 들끓는 분노를 애써 차분히 잠재운 채 집안일을 하다가 오른쪽 무릎을 식탁 모서리에 크게 찍혀버리고 말았다. 하루 종일 찌릿한 통증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 걸 보니 좀 세게 부딪친 것 같다. 여기저기 멍 투성이는 기본, 그저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정도인데, 남들 다 키우는데, 나만 이렇게 요란스레 키우는 걸까 싶어서 내가 한없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분노와 억울함이 자꾸만 나를 덮치려 했기에. 



점심시간, 살뜰한 안부를 건네는 친구 덕분에, 나는 벗에게 기대어 구원받으려는 듯 

한편에 밀어버리고 말았던 그간의 진심을 토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 하루 종일 뭔가 정말이지 그 '새' 같이 너덜너덜해질 것 같았기에. 길가에 죽어있던 새를 보며 '나'를 투사해버리고 말기 시작한,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한 내가 너무 무섭기도 했기에. 한편으로는 악착같이 지켜내는 어떤 일상들의 고군분투함을 누군가에게라도 증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 아이들의 존재가 여전히 쉽지 않아... 정말... 고통스러워. 가끔은. 

- 당연하지. 나도 그랬어. 근데 회사 다니며 고민하던 거, 지금은 안 하고 있는 거 알아? 또 다른 고통일 뿐이야. 

- 혼자 살았어야 했어. 육아는... 정말 내 체질 아니다. 게다가 아들 쌍둥이... 끝이 안 보여. 끝이....한 놈 케어하면 바로 한 놈 다가오고, 반복 또 반복....

-....

- 제일 고통스러운 건.... 부정하는 거야. 애들 존재를 가끔 부정하다가 이렇게 괴물 같은 나를 부정하게 되는 거... 아이들이 살려면 부모의 반은 죽은듯 살아야 살아지잖아. 그런 거잖아. 나만 그런 건가. 나만 이렇게 미칠 것 같이 화나고 괴로운 건가. 삭히는 만큼 부작용이 쌓여. 애들이..... 가끔 너무... 정말 보기가 싫어....... 미쳤나 봐. 정말.

- 회사 가서 돈 버는 건 쉽고? 세상에 쉬운 게 어딨어. 없는 거 알잖아. 

- 어렵지. 다 어렵지.. 알아. 아는데 이것도 분명히 알아. 거지 같았어도 왜 회사에 붙어있으려고 했는지. 그곳이 다른 사람들에게 exit 하고 싶은 공간이었어도 나한텐 숨구멍이었어. 숨 쉴 틈...

- 버티는 수밖에 없어. 시간 지나면 또 없어져. 그 감정. 

- 아는데도 이 모양이야... 난 정말 바보다. 

- 자책하면 더 바보 돼. 그러지 마. 애들한테 화내지 말고. 습관 돼. 

- 이미 습관 된 거 같아서 무서워... 




하원을 위해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길을 걷던 중, 그 새가 또 생각이 났다. 

가보니 없었다. 누가 치운 걸까. 치우지 않았으면 공원 한편에 잘 묻어주려 했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아니 미안했다. 진작 그래 줄 걸. 그러지 못해 줘서.... 너무 미안했다. 아니 사실은, 여전히 이렇게 몹쓸 마음가짐으로 화를 자주 내기 시작한 요즘의 못난 나를 '엄마'로 둔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하원길에 그 미안함은 아이스크림으로 대체된 채 아이들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며 상냥하려 애쓰는 나로 둔갑하게 만들었다.  




가끔 원숭이 사진을 보며 위로(?) 를 얻는다. 동물보단 나아야되지 않겠나 싶은 못난 어른의 반성과 함께 




아이들의 존재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아주 강한 특훈처럼. 

하원 이후 시작되는 2차전에, 시종일관 나를 찾는 그들의 구애에 상냥함과 괴물 본성 사이를 오고 간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울음소리와 장난치는 소리들이 모두 소음으로 들리다가도  때로는 이 귀여운 훼방꾼들의 미소와 웃음소리에 덩달아 피식 웃기도 한다. 그렇게 늦은 저녁 녹초가 되는 틈틈이 '좋아하는 나의 시간' 들을 애쓰듯 지키는 나는, 오후의 대화를 떠올리며 스스로 어느새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버티는 수밖에 최선이 없다면... 자, 다시 한번. 

지나가면 그리울 시간이니까. 그리워서 절절히 아픈 추억으로 남게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만큼 사랑해야 하는, 나에게 너희 둘은 그런 '사랑' 일테니까...



차가운 빗방울을 견뎌야 꽃이 피듯이...







미안하다 이런 나라서...사랑...한다...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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