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pr 02. 2020

528,000원, 첫 실업수당을 받았다.  

1,584만 원의 연봉 앞에서...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 아침의 피아노 - 






528,000, 첫 실업급여 수당을 받았다. 

2019년 1월 이후 달라진 실업수당의 상한액은 66,000원이란다. 이 상한액의 3월 실업 인정일인 8일치의 계산된 돈이 통장에 찍힌 것을 보았을 때, 느낌이 좀 묘했다. 240일까지 받을 수 있다 하니 계산하면 나는이제 약 1,584만원의 정부로부터 수당을 받는 실직 수당 연봉자(?)가 된 셈이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무감정에서도 싹트는 어떤 종잡지 못하는 이 감정 상태를 국어사전에서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를 찾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그저 머릿속으로 온갖 문장들만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날이 정말 오긴 오는구나 싶다고.

오래 살고, 아니 오래 다니고(?) 볼 일이라고도. 한편으로는 같은 시기에 퇴사한 어떤 선배 동료의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었다. '회사가 등 떠밀어서 먼저 나가라고 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 실업 급여도 받을 수 있고.' 자진 퇴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건넬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위로를 건네고 싶었는지 진심도 안다. 너무 낙심하지 말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위안의 소리였다는 걸... 그렇지만 그 위로의 말을 들으며 동시에 내면 깊숙한 심연에서부터 차올라 급기야 문장으로 만들어지고 마는 어떤 목소리를 참아내야 했다. 다만 그와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그러게요... 복이 많은 사람이네요 저는...'라고 맞장구치며. 사실은 그게 또 아니기도 했지만. 



@호텔 델루나, 육아를 병행하며 회사를 다니면서 언제나 이런 순간들이 많았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그는 모를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의 단절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출산 이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월급 때문에만 회사를 나가며 일을 하려는 사람이 일정 부분 아니었음을. 그에게 애써 변명(?) 삼아 애달픈 마음을 토해낼 수 없었다. 육아에만 허덕이며 창살 없는 감옥 같은 부분적 좌절감을 그가 알 턱이 없었을 테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자괴감 또한 마찬가지이고. 게다가 나로서는 일의 감각, 그걸 급작스레 실기하게 된 '등 떠밀어 준' 시간이라 그걸 참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다 못해 써먹을 수 있는 영어나 일본어와 같은 외국어, 각종 다룰 수 있는 문서 활용 능력, 기타 정보 서치, 기획력, 관리력 등등. 그리 대단치 않은 능력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에겐 일터에서 그런 일들을 하는 '환경' 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중요했었다.. 



'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되어 '활동' 하는 것에 꽤 자부심을 느꼈던 나였을지 모른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어느 정도 조직이라는 굴레 안에서의 '잘 다듬어진 노예'로 살아가는 것들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으니 내 회사가 아니고서야 남의 회사 밑에서 월급 잘 받으면서도 성향 상 가끔 터무니없이 이상한 것들이 탑다운 식으로 내려지고 말면 굴종하지 않는 반발하는 노예가 자꾸만 되려 했기에 내면의 자아와는 충돌하기 일쑤였고 하물며 '윗 어르신들' 에게도 쉽지 않은 '여직원' 평을 받기 쉬웠다. 결국 내몰릴 상황이 '기회'가 되고 말았으니. 상황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결국 나는 스스로의 어떤 미안한 인정을 하고 마는 나를 발견하고 성찰하고 반성해본다. 



정면승부를 하고 나면 무서울 게 없어진다. 반대로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내성은 '혼자의 시간' 에서 길러진다. 이젠 잘 안다...




'나'라는 사람의 잘남, 그것의 진짜와 가짜 사이에 대해서. 

나름 네임드의 복지 좋았던 멀쩡한 회사를 나와 실업급여 수당을 받게 된 '실직자'의 입장에서 가볍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진지하게 나의 '경쟁력'과 '무기'를 생각해보는 한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받게 된 이 실업급여 수당을 가지고 내가 했던 건 다름 아닌 '투자'였다. 예스 24에 담아둔 책을 샀다. 이러닝 수강을 시작했고 그리고 실제로 '투자'를 하기도 했다. 실험 삼아서....  '고위험군 투자자' 성향에 무슨 운이 좋았던 건지 새빨간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자마자 미련 없이 (정정, 그 후에 오름세에 조금 미련을 가지기도 한 쪼렙이다) 매도한 후 아이들의 몇 년치 아이스크림을 벌었음에, 가계부 월 정산을 하면서 잠시 웃었다. 물론 그 마음도 오래 가진 못했고 다시 앞으로의 생활과 시간들을 어떻게 '잘 살 것이냐'에 다시 진지해졌지만. 그럼에도 잠시 기분이 좋아졌던 건 아마 이런 우스운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 '저평가된 우량주'라고, 내재가치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혼자의 생각. 

실업급여가 '재취업을 장려' 하기 위한 고용 수당이라는 것을 고용보험 사이트와 고용보험센터를 찾아가 일련의 과정들을 치러가면서 이제야 그 '공식적 정의'를 알게 되었다. 이건 위로금이 아니라 재도약의 시간을 위한 '지지금'이라는 느낌이었기에. 그러니 나는 '저평가된 우량주' 로서 잠재된 내재 가치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라고. 그런 생각이 마음에 싹트니 그제야 나는 어떤 진정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혼자의 시간은 중요하다. 고독을 제대로 활용하면 그것이 스스로에게는 커다란 선물이 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 요즘이다. 



흰 도화지에 꽃을 그릴 수 있는 것은, 그걸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나는 진짜 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위기는 준비하는 혹은 준비된 누군가에게 '면역력'을 불러일으켜 더 큰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전과 다른 세계에 살 것이다.”라고 했던, 지난달 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했던 것이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팬데믹 시대에서. 혼란 속에서도 성장기회를 잡는 빅 테크 기업이 있는가 반면 그렇지 못하고 도미노식 디폴트에 줄도산하기 쉬운 좀비 기업이 있는 시대다... 그야말로 새로운 기준, 뉴 노멀의 시대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환경에 대처하는 '정신력' 일지도 모른다. 



실업급여 수당을 받는 실직자이자 경단녀로 변한, 이 시간을 지렛대 삼아 더 큰 '퀀텀 점프'를 하려는

나의 정신력은 일종의 막강한 면역 바이러스가 되어 줄 것이라고... 그 정신력의 최고 위는 다름 아닌 '사랑' 일 것이라고도. 그러니 너무 좌절하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할 틈은 없다. 하루에 주어진 가사와 양육 노동, 기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움직이는 시간 만으로도 일상이 숨가피 흘러간다는 걸 이미 체감하고 있기에. 



팬데믹의 공포에 흔들릴 필요도 이유도 없다. 흔들림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 테니까. 

흔들림이란... 지키려는 사랑의 상실, 그로 인한 진정한 공백, 부재로 인한 것이니까. 그렇다면 아직 내게는 '사랑' 이 곁에 있고 나는 그것들을 나의 사랑들을 지키려 하니. 결국 '읽고 쓰며 사랑하며 사는 오늘'이라는 올해 새로 개편한 나의 블로그 타이틀에 걸맞은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봄의 석양은 다른 계절보다 더..고마운 것도 같다. 너희들과의 등하원길도 가볍다. 봄이라 그런지 싶다...



가계부 속에 복기된 528,000원에, 다른 어떤 감정들은 잠시 숨겨두고 깊은 감사를 담아 본다. 

이제 도사리고 있던 감정 하나를 꺼내듯, 이 글 하나를 겨우 마치고 나면 읽다 만 책을 읽고 미처 쓰다 만 '작가의 서랍' 속 서평들과 각종 글감을 정리하다 보면 금세 하원 시간이 돌아오리라. 이렇듯 회사를 떠나 새롭게 맞이한 일상에 이제 제법 적응이 되려 한다. 그래도 밀려오는 우울감에 지지 않으려 스스로 토닥이듯 눈을 지그시 감고 어떤 생각들을 글로 토해내는 와중에. 오늘은 문득 맞은편, 책장 권의 제목이 떠올라 꺼내 보았다.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고마움이 다시 생기려는 찰나, 봄에는 조금 더 글꽃을 피워내야지 싶었다.. 


나를 지켜주는 이야기들.... 그리고 이 공간.....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글 꽃'으로 만개할, 당신을 기다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