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슴 밑 명치께가 요사이 늘 그렇듯이 체증 비슷한 거북함으로 보깨기 시작했다.
나는 엎드린 채 그 밑에 베개를 괴고 지그시 눌렀다.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 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덩달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 나목, 박완서 -
돌봄과 살림도 일종의 '일터'의 노동처럼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던 걸까.
소위 '미쳐 버리기 일보직전'의 순간들이 잦은 요즘이다. 보수를 받는 일터에서의 유급 노동보다도, 무보수 일터인 댁내에서 무급 노동들이 더 심도 깊은(?) 인내심과 에너지를 요하다 보니 어느새 '나'라는 인격체는 온 데 간데 없어진 지 오래. 뭘 할라 치면 언제나 찡찡대다 이내 사고(?)를 쳐 버리는 둘째 덕분에 정말이지 요즘은 분노 게이지를 막고 막고 또 막아봐도 소용없는 다람쥐 쳇바퀴의 연속이다.
그런 나에게, 때마침의 전화는 9회 말 2 아웃의 구원투수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고기 먹으러 오라던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어찌나 고맙던지. 한편으로는 가면 또 4인 식구 챙기느라 바쁠 그녀가 그려져서, 분명 신세만 지다 올 것이 뻔한, 셋톱의 '이전 방송 다시 보기'가 연상돼서 잠시 망설였었다. 그래도 가고 싶었던 건, '친정' 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나의 비빌 구석이라서...
평소 같음 고기 몇 점 먹고도 배가 불러 그만 먹었을 나였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과식'을 해 버렸다.
지글지글 불판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의 노릇하게 바싹 익힌 고기 한 점을 입속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데 고기가 유난히 당기는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내 쌓아진 피곤함을 '음식'으로 보충하려는 듯한 '꾸역꾸역'의 행위들이랄까. 아니면 고기를 먹으며 식탁에서의 부모님과의 대화가, 이상하게 그리웠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 집에서 애만 키우는 생활 어때. 뭐 너야 애만 보진 않을 거 같다만.
- 그냥... 그래요.
- 회사 다니는 거랑 애 보는 거랑 뭐가 더 편해?
- 회사 다니는 게 더 편해... 엄마도 알잖아. 애 보는 게... 아들 둘. 언제나 어려웠잖아. 내 성질머리는..
- 머리는 그게 또 뭐야. 다 상해가지곤. 좀 쉬어. 애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그 시간은 또 아까워서... 뭘 하게 되네 자꾸.
- 네가 어디 쉽게 변하겠니. 많이 먹어라. 먹고 힘 내. 쌍둥이 엄마. 그래도 엄마 집에 있으니 애들한텐 좋은 거다.
- 그럴까... 그러게... 이렇게 화내는 엄마라도 집에 내가 있는 게 좋다면야....
그녀의 걱정을 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없고 자주 가는 '샵'이라고 하는 미용실과도 거리가 먼 '딸'이라서. 반대로 자꾸만 쉼 없이 뭐든 일을 '하려는' 움직이는 딸을 목격할(?) 수록 안쓰러워한다는 것을. 그녀 말에 따르자면 '편히 살 수도' 있을 법한 딸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의 걱정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그녀는 모를 것이다. 한 잔의 얼그레이 티와 책 한 권, 그리고 맥주와 혼자의 시간.. 최대치의 기쁨을 주는 소비이자 나를 구원하는 일상의 것들을 품에 앉고, 나는 나를 있는 힘껏 사라지지 않게 붙잡고 산다는 것을.
이제 막 '쌍둥이 엄마' 로서 댁 내 살림에 '충실' 한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 딸의 모습이
부쩍 맥 빠진 목소리에 의외로 말수가 적어진 내 모습이 가엾게 보였는지 이윽고 나의 다음 계획(?) 들을 계속해서 묻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땅한 대책, 혹은 적당한 정답 같은 대답을...
- 일 다시 하고 싶어?
- 이대로 단절되고 싶진 않은데 모르겠어... 집에 눌러 있으면 계속 그렇게 될 것도 같고. 퇴사하고도 난 왜 뭐가 이리 바쁘지. 집안일은 끝도 없어. 빨래는 왜 또 매일 그렇게 쌓이는지. 애들 치다꺼리가 날이 갈수록 쌓이는데 일단 요샌 훈육이 너무 힘드네. 둘째는... 정말 심각해.
- 애한테 그러지 마라. 활발하고 장난치는 게 정상인 거야. 아직 손 많이 갈 때고.
- 아이는 정상인데 그 아이의 정상 덕분에 나는 비정상이 되어가서.. 좀 지쳐요..
- 어쩌냐... 힘들어서. 많이 먹어라. 힘든 것도 한 때야.
이런 대화를 오고 가면서도 둘째는 먹고 있던 과자를 부스러서 할머니 머리 위에 탈탈 털어 버렸기에
이윽고 고함이 나와버린 나와는 달리 아이를 보면서 웃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를 보고 금세 분노는 슬픔이 되어 눈물이 고여버리고 말았다. 그때서부터 1절에서 4절까지 줄줄이, 엄마를 향한 고백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 힘든 건 나 때문인 거야 사실 엄마. 상황을 못 견뎌하는 나라서. 애들 보다가,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내가 없어질 거 같은데, 아니 이미 벌써 반은 없어진 것 같은데, 그나마 책 읽고 글 쓰고 뭐라도 하는 시간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엄마 말대로 쉼은 여전히 없어.. 근데 이거 팔자 같아 엄마. 엄마도 일하면서 연년생 남매 키우면서 힘들었을 거잖아. 그거 생각하면.... 내가 할 말이 없는데.
근데 엄마. 정말 가끔 돌아버릴 것 같아. 내가 가엾어서 가끔은 속상해. 내가 날 사랑하지 않아야 반대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 되게 모순인데, 그런 생각이 요즘은 참 많이 들어... 애들 키우려면 부모는 일정 부분 죽어야 하잖아. 하고 싶은 거 되도록 안 하고 살아야 반대로 누군가는 살아지잖아. 자식이 그런 존재잖아. 엄마도 그랬다면서. 그러니까 나랑 동생이랑 잘 됬다면서.. 이게 뭐야. 왜 엄마들은 다 이래야 해. 왜...
나의 우문에 엄마는 유쾌한 현답으로 맞장구를 쳤다.
- 세상에 '엄마'가 된 여자들이, 다 너나 나 같진 않지. 자식보다 하고 싶은 멋대로 사는 사람도 많고...
-.......
- 선택하기 나름인데, 나는 내가 했던 선택에 후회가 없다. 힘들었지만... 너네 잘 컸고 그걸로 됐어.
- 엄마.....
-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데 내 딸 가엾게 내버려 두겠냐. 김치 가져가. 너 주려고 해 놨어.
- 엄마..... 도대체 엄마들은... 왜 그렇게 못 챙겨서 안달일까.
- 내 팔자지.
- 난.. 엄마 따라가려면 멀었어. 난... 이렇게 못 해요...
- 넌 딸 없잖아. 나는 딸이 있고.
기어코 나는 다시금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친정 엄마의 김치 세 통과 아이들 입히라고 사놨다던 네이비색 핑크퐁 맨투맨티 두 장... 그녀가 현실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에 나는 너무나도 어리석고 어린 마음을 보이고 말았던 터라. 부끄러움과 미안함,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이런 마음 상태가 계속된다면 아마 내면의 고통스러움과 좌절은 이내 나를 계속해서 울릴 것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나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이렇게 몇 번씩 속으로 다짐하고 기억하려 하자 차차 마음이 가라앉으려고도 하고 있었다. 절절한 아픔과 여성으로서의 쓰림은 여전했지만.... 스스로 가엾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때때로 지탱해주는 것처럼, 스스로 자꾸 가엾게만 생각하지 말자고. 조금 더 그냥 흘러가 보자고.
힘이 들면, 이를 악 물면 그만일 것이라고...
힘이 들 땐, 엄마의 식탁을, 김치를 떠올리면 된다고.
아울러 내가 그녀의 딸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떠올리자고.... 나는 다짐하며, 월요일을 맞이하려 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