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pr 05. 2020

가엾지 않도록, 내버려 두진 않겠다고

엄마...

가슴 밑 명치께가 요사이 늘 그렇듯이 체증 비슷한 거북함으로 보깨기 시작했다. 

나는 엎드린 채 그 밑에 베개를 괴고 지그시 눌렀다.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 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덩달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 나목, 박완서 - 





돌봄과 살림도 일종의 '일터'의 노동처럼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던 걸까. 

소위 '미쳐 버리기 일보직전'의 순간들이 잦은 요즘이다. 보수를 받는 일터에서의 유급 노동보다도, 무보수 일터인 댁내에서 무급 노동들이 더 심도 깊은(?) 인내심과 에너지를 요하다 보니 어느새 '나'라는 인격체는 온 데 간데 없어진 지 오래. 뭘 할라 치면 언제나 찡찡대다 이내 사고(?)를 쳐 버리는 둘째 덕분에 정말이지 요즘은 분노 게이지를 막고 막고 또 막아봐도 소용없는 다람쥐 쳇바퀴의 연속이다. 



그런 나에게, 때마침의 전화는 9회 말 2 아웃의 구원투수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고기 먹으러 오라던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어찌나 고맙던지. 한편으로는 가면 또 4인 식구 챙기느라 바쁠 그녀가 그려져서, 분명 신세만 지다 올 것이 뻔한, 셋톱의 '이전 방송 다시 보기'가 연상돼서 잠시 망설였었다. 그래도 가고 싶었던 건, '친정' 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나의 비빌 구석이라서... 



집이란.... 돌아가서 심신을 편히 뉘일 공간의 집이란... 얼마나 고맙던가...



평소 같음 고기 몇 점 먹고도 배가 불러 그만 먹었을 나였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과식'을 해 버렸다. 

지글지글 불판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의 노릇하게 바싹 익힌 고기 한 점을 입속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데 고기가 유난히 당기는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내 쌓아진 피곤함을 '음식'으로 보충하려는 듯한 '꾸역꾸역'의 행위들이랄까. 아니면 고기를 먹으며 식탁에서의 부모님과의 대화가, 이상하게 그리웠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 집에서 애만 키우는 생활 어때. 뭐 너야 애만 보진 않을 거 같다만. 

- 그냥... 그래요. 

- 회사 다니는 거랑 애 보는 거랑 뭐가 더 편해?

- 회사 다니는 게 더 편해... 엄마도 알잖아. 애 보는 게... 아들 둘. 언제나 어려웠잖아. 내 성질머리는..

- 머리는 그게 또 뭐야. 다 상해가지곤. 좀 쉬어. 애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그 시간은 또 아까워서... 뭘 하게 되네 자꾸. 

- 네가 어디 쉽게 변하겠니. 많이 먹어라. 먹고 힘 내. 쌍둥이 엄마. 그래도 엄마 집에 있으니 애들한텐 좋은 거다. 

- 그럴까... 그러게... 이렇게 화내는 엄마라도 집에 내가 있는 게 좋다면야....



그녀의 걱정을 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없고 자주 가는 '샵'이라고 하는 미용실과도 거리가 먼 '딸'이라서. 반대로 자꾸만 쉼 없이 뭐든 일을 '하려는' 움직이는 딸을 목격할(?) 수록 안쓰러워한다는 것을. 그녀 말에 따르자면 '편히 살 수도' 있을 법한 딸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의 걱정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그녀는 모를 것이다. 한 잔의 얼그레이 티와 책 한 권, 그리고 맥주와 혼자의 시간.. 최대치의 기쁨을 주는 소비이자 나를 구원하는 일상의 것들을 품에 앉고, 나는 나를 있는 힘껏 사라지지 않게 붙잡고 산다는 것을. 



안에서도 행복할듯한 화분도, 때로 창밖에서 밖을 바라본다...




이제 막 '쌍둥이 엄마' 로서 댁 내 살림에 '충실' 한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 딸의 모습이

부쩍 맥 빠진 목소리에 의외로 말수가 적어진 내 모습이 가엾게 보였는지 이윽고 나의 다음 계획(?) 들을 계속해서 묻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땅한 대책, 혹은 적당한 정답 같은 대답을...



- 일 다시 하고 싶어?

- 이대로 단절되고 싶진 않은데 모르겠어... 집에 눌러 있으면 계속 그렇게 될 것도 같고. 퇴사하고도 뭐가 이리 바쁘지. 집안일은 끝도 없어. 빨래는 왜 또 매일 그렇게 쌓이는지. 애들 치다꺼리가 날이 갈수록 쌓이는데 일단 요샌 훈육이 너무 힘드네. 둘째는... 정말 심각해. 

- 애한테 그러지 마라. 활발하고 장난치는 게 정상인 거야. 아직 손 많이 갈 때고. 

- 아이는 정상인데 그 아이의 정상 덕분에 나는 비정상이 되어가서.. 좀 지쳐요..

- 어쩌냐... 힘들어서. 많이 먹어라. 힘든 것도 한 때야. 



이런 대화를 오고 가면서도 둘째는 먹고 있던 과자를 부스러서 할머니 머리 위에 탈탈 털어 버렸기에

이윽고 고함이 나와버린 나와는 달리 아이를 보면서 웃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를 보고 금세 분노는 슬픔이 되어 눈물이 고여버리고 말았다. 그때서부터 1절에서 4절까지 줄줄이, 엄마를 향한 고백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 힘든 건 나 때문인 거야 사실 엄마. 상황을 못 견뎌하는 나라서. 애들 보다가,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내가 없어질 거 같은데, 아니 이미 벌써 반은 없어진 것 같은데, 그나마 책 읽고 글 쓰고 뭐라도 하는 시간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엄마 말대로 쉼은 여전히 없어.. 근데 이거 팔자 같아 엄마. 엄마도 일하면서 연년생 남매 키우면서 힘들었을 거잖아. 그거 생각하면.... 내가 할 말이 없는데. 


근데 엄마. 정말 가끔 돌아버릴 것 같아. 내가 가엾어서 가끔은 속상해. 내가 날 사랑하지 않아야 반대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 되게 모순인데, 그런 생각이 요즘은 참 많이 들어... 애들 키우려면 부모는 일정 부분 죽어야 하잖아. 하고 싶은 거 되도록 안 하고 살아야 반대로 누군가는 살아지잖아. 자식이 그런 존재잖아. 엄마도 그랬다면서. 그러니까 나랑 동생이랑 잘 됬다면서.. 이게 뭐야. 왜 엄마들은 다 이래야 해. 왜... 



나의 우문에 엄마는 유쾌한 현답으로 맞장구를 쳤다. 


- 세상에 '엄마'가 된 여자들이, 다 너나 나 같진 않지. 자식보다 하고 싶은 멋대로 사는 사람도 많고...

-.......

- 선택하기 나름인데, 나는 내가 했던 선택에 후회가 없다. 힘들었지만... 너네 잘 컸고 그걸로 됐어.

- 엄마.....

-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데 내 딸 가엾게 내버려 두겠냐. 김치 가져가. 너 주려고 해 놨어. 

- 엄마..... 도대체 엄마들은... 왜 그렇게 못 챙겨서 안달일까. 

- 내 팔자지.

- 난.. 엄마 따라가려면 멀었어. 난... 이렇게 못 해요... 

넌 딸 없잖아. 나는 딸이 있고.




엄마. 난 가여운 사람이 아닌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여전히 잘 잊습니다....




기어코 나는 다시금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친정 엄마의 김치 세 통과 아이들 입히라고 사놨다던 네이비색 핑크퐁 맨투맨티 두 장... 그녀가 현실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에 나는 너무나도 어리석고 어린 마음을 보이고 말았던 터라. 부끄러움과 미안함,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이런 마음 상태가 계속된다면 아마 내면의 고통스러움과 좌절은 이내 나를 계속해서 울릴 것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나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이렇게 몇 번씩 속으로 다짐하고 기억하려 하자 차차 마음이 가라앉으려고도 하고 있었다. 절절한 아픔과 여성으로서의 쓰림은 여전했지만.... 스스로 가엾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때때로 지탱해주는 것처럼, 스스로 자꾸 가엾게만 생각하지 말자고. 조금 더 그냥 흘러가 보자고. 



힘이 들면, 이를 악 물면 그만일 것이라고...

힘이 들 땐, 엄마의 식탁을, 김치를 떠올리면 된다고. 

울러 내가 그녀의 딸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떠올리자고.... 나는 다짐하며, 월요일을 맞이하려 했다. 




해는 다시 뜨고 일상은 반복되고, 그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조금 더 기억해야 한다..... 때로 지긋지긋해도...




#엄마...... 

작가의 이전글 '상처 받지 않는 영혼' 함께 읽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