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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21. 2020

우리의 삶이 '현존' 하기를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행복은 행복일 뿐 별게 아니다. 행복은 오고 또 간다. 

슬픔도 그저 슬픔일 뿐 별게 아니다. 그 역시 오고 간다. 

언제나 유쾌한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갈망도 버리고 불쾌한 것을 경험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함께 버릴 수 있다면, 누구든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의사소통, 감사하는 마음, 친절과 자비,  균형, 수용, 평정, 전념, 그리고 현존...

이런 키워드에 관심을 쏟고 마음을 담아 '책'을 찾든가 '글'로 간접적인 '나'를 표현하는 일은 사실 슬픔과 고통과 좌절이 동시에 극도로 달했었던 서른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본격적으로 '명상'을 '실천' 해 보려 했었고 대략 알고 있었던 '그 세계'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깊어져 이제는 주로 영성, 철학, 명상 분야의 책을 언제나 끼고 사는 편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나는 '변화'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외부의 자극과 고통, 원치 않은 상황에 놓여 있는 '나' 로서 사는 그 삶에 변화를 줘야 비로소 좀 더 나은 오늘이 될 것만 같았으니까. 유산을 하고 좋은 부부 관계가 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래서 읽고 쓰는 행위, 온통 잡념과 사념이 가득 머릿속에 과부하처럼 나를 붙잡고 늘어질 때 '몰입' 할 수 있었던 것은 '일'.... 물론 그 덕분에 야근에 휴근까지 불사하는 워커홀릭으로 잠시 동안이나마 살아보기도 했지만, 그 모든 일련의 경험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덕분에 이러저러 어찌어찌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앤디 퍼디컴, 스노 폭스 북스, 2020.03.05.



세상은 더욱 빨리 진화하고 변화한다 한다. 그 변화가 때로 '나'에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대처'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만 보아도, 이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일련의 과정 중에 어쩌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 챙김' 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어떤 커다란, 예상치 못한, 달갑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을 때, 어쩌면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는 걸. 이 책을 두 번 재독 하고 이제야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마저도, 나는 나를 둘러싼 '오늘' 그리고 방금 전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생각을, 태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당찬 다짐일지도 모르겠지만.  




명상을 하려고 앉았는데 머릿속이 계속 어수선한 경우, 마음에 대해 취해야 할 방식이다. 천천히 부드럽게, 마음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내어주거라. 야생마가 자연스럽게 쉴 수 있는 곳으로 행복하고 당당하고 느긋하게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끔 만들 거라. 어쩌면 처음에는 때때로 발버둥 치며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러면 그저 밧줄을 조금 풀어주었다가 다시 천천히 부드럽게 앞의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명상한다면 너의 마음은 아주 행복해질 것이다. p.82



스승의 가르침은 명상에 접근하는 방식과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명상 중에 떠오르는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승의 말씀이 옳았음이 드러났다 유쾌한 느낌을 함께 나누려는 태도를 유지하면 그 느낌이 더 오래가는 것 같았고, 명상도 더욱 즐거워졌다.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기적인 명상에서 조금 벗어난 느낌이었다. p.88




꽃은 혼자 피지 않고 주변의 다른 꽃들과 그렇게 같이 피어날 때 더 아름답다...



'나다움'을 찾기 위해 명상의 공간을 찾아 수행자로 떠난 작가와 스승의 대화를 지켜보며 

비로소 나도 작가의 족적을 쫓아가는 것 마냥 어떤 깨달음을 넌지시 느낄 수 있었다. 가령 마음과 감정과 생각을 애써 하지 않으려는 식의 '저항'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것의 슬픔이나 행복 유무를 '판단' 하지 않고 그 자체를 '알아차리려고' 한다는 것. 그 '순간'에 '현재' '있는' 것. 그토록 바라던 '현존'이라는 말의 진실된 일상 속 '행동' 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유쾌한 것은 유지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불쾌한 것은 어떻게든 모두 없애 버리려고 한다. 잡다한 생각을 없애려는 것인지 힘든 생각을 없애려는 것인지 육신의 고통을 없애려는 것인지 그 성격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모두 똑같은 저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항이 있는 한 그것을 받아들일 여지는 없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평화로운 마음을 얻을 방도도 없는 법이다. 



행복은 행복일 뿐 별게 아니다. 행복은 오고 또 간다. 슬픔도 그저 슬픔일 뿐 별게 아니다. 그 역시 오고 간다. 언제나 유쾌한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갈망도 버리고 불쾌한 것을 경험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함께 버릴 수 있다면 누구든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p.84-5



알아차림은 자주 실천하면 할수록 더욱 쉬워지고 정제된다. 마음 챙김으로 매 순간을 알아차리면 당신은 상대방과 함께 둘만의 공간에 머무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중략) 



마음 챙김을 적용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똑같은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체적인 활동에 치중하는지, 정신적인 활동에 치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에서 의자에 앉아 있든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든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은 똑같은 것이다. 직업의 유형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외 없이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따라서 알아차림을 훈련할 시간은 누구에게든 똑같이 주어진다. 신체 감각을 알아차리든, 감정이나 생각을 알아차리든, 그 생각의 내용을 알아차리든, 그 모두가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릴 시간은 언제나 있다는 뜻이다. p.191-6



물방울은 떨어짐 그 이후는 다시 고요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 잠깐만 흔들릴 뿐



아이와의 시간이 때로 달갑지 않은 게 여전히 사실이다. 

'내 시간' 이 아니라는 비겁한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고 사실 그 '우리' 중 내가 아닌 이들의 돌봄으로 인한 시간이 거의 대부분 '타인'을 위함으로 쏠린다는 어떤 억울함과 피할 수 없는 고립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다. 이 감정의 근원에 대해서. 또한 이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들도. 한때는 이 감정과 온갖 그로 인해 밀려오는 잡념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불과 몇 주,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구를 붙잡아 두고 울고불고 늘어진 '나' 였었다. 권고 사퇴, 우울감, 퇴짜 맞은 원고, 끊긴 월급...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을 두 번 정독하며 조금씩 일상 속에서 어떤 루틴함을 약간 비틀어보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대화를 할 땐 그 짧은 시간에도 어떤 생각 없이 그저 '대화'에 몰입하는 것. 아이들의 밥을 만들어 주면서 음식을 하는 그 순간 자체의 행동들만 느끼고 생각하는 것. 글을 쓰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는 그 순간조차도 내 손이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다는 사실. 아직 읽지 못한 단톡방의 카톡들 메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순간 온전히 나의 몸과 마음의 흐름을 '알아챈다'라는 것들에 대해..... 신기하게도 예전에 비해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이다. 아주 조금은... 그래 조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변하는 중이라고... 




슬픔과 기쁨은 한 세트에 속해서 둘 중 한 가지만 가질 수는 없다. 동전의 양면과 같지. 

명상은 즐거움이 주는 행복감을 찾는 것과 관계가 없다. 그런 행복감을 원한다면 파티에 가야지. 내가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그 어떤 감정이 일어나든 언제나 편안할 수 있는 능력이다. p.94



무엇이 당신의 주의를 사로잡든 그것에 몰두하는 순간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서 멀어지며 삶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때로 삶을 기억하고 계획하고 분석하느라 바쁜 나머지 삶을 경험하는 것, 즉 삶이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을 잊는 듯하다. p.233



아이들을 재우고 부쩍 혼자 거실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편이 많아졌다. 그러고 나면 그냥 마음이 좀 편해져서 그런가 싶다.



현명하게 산다는 건 뭘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앞의 상대를 '사랑' 하려는 마음. 그 이타심을 전제로 나의 심신을 '현재'에 머물게 함으로써 나중에 후회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할 때 그 감정을 자각함으로써 되도록 충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합리적으로 대응하려는 태도...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태도는, 그런 현명한 '현존' 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책임과 선택을 강요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그이나 나, 그 이전의 나의 부모님들,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초과근무 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명상에 가장 잘 접근하는 법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장 잘 수행하고, 그것을 일상 모든 행동들과 장면들 곳곳에서 통합하는 과정까지. 우리에게 친절하며 편안하게 때로는 유쾌한 대화를 통해 '알아챔'을 알려 주려 하는 작가의 세심한 배려가 담긴 이 책의 내용을, 아마도 오늘 밤, 여느 때처럼 늦은 퇴근을 하고 들어오는 그에게 나는 두서없이 말할 것 같다. 



여보. 우리들이 함께 공존하는 이 시간을 위해 당신이 밖에 있고 내가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실제로 우리가 '여기에 같이 있음'을 위해, 비록 외부로부터의 상처와 고통이 있다 할지언정, 

우리의 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우리 조금 더 '현재'를 살려 노력하자고.... 

그것이야말로, 당신과 나, 우리가 실제로 곁에 있어 주는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하는 최선의 선물일 테다.  



당신과 나는, 아이들과 우리는 곁에 함께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 자주. 더 깊게.




#지금여기오늘을살것_아이들과_그리고_당신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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