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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8. 2017

#2. 그의 목소리

고백할 게 있어요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흔히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낮에 경험하는 사람 세상의 환경에 노출된 나도 그런 느낌을 종종 받으며 살았으니깐. 그렇지만 밤의 시간에 고양이로 사는 내 세상은 어딘가 다른 느낌이다. 마음에서 그리면 그건 곧 생각대로 되는 편이었다. 물론 낯선 곳을 걷다가 어느 인자한 캣맘이나 캣 시스터를 만나 서고 양이 밥이 거저 주어지는 승률 100%의 완승까진 아니지만 서도. 


 생각이 선명해서 그걸 계속 갈구하고 움직이는 우리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는, 생각대로 되는 편은 꽤 많았다. 사람 동물보다 삶이 단순하니깐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돈에 대한 욕심은 없으니깐. 생에 대한 욕심만 있을 뿐. 


 내가 기쁘면 움직인다. 기쁘지 아니하면 움직이지 않고 잠시 멈추며 멀리서 바라본다. 

 그것이 내게로 다가올 때까지. 그러다 보니 뜻밖의 행운도 거저 주어지기도 한다. 가령 공원을 걷다가 발견한 커다란 새것의 고구마 말랭이라도 본듯한 어떤 것이다. 


그와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기쁜 상태다.


“어라… 꼬리가… 움직이네.”


 나도 모르게 내 꼬리가 살랑거림을 알아차렸다. 적잖이 당황한 기쁜 순간과 마주하는 나를 보게 된다. 


 꼬리를 감싸고 잠을 자던 나는 새벽 5시가 되면 다시 인간이 된다. 낮의 사람 세계에서의 삶은 참 고달프다. 고구마 말랭이를 사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다. 내가 만들든, 남의 밑에서 만들든, 돈을 벌어야 했다. 다행히도 취업은 순탄했고, 나는 이제 말끔히 옷을 차려 입고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 겉보기엔 어른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약간 타이트한 네이비색 H라인 스커트와 검은색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기로 마음먹는다. 매일의 옷을 고르는 건 참 기분 좋은 행위다. 옷 이라곤 필요 없는 밤의 고양이인 내가 사람의 욕망을 가지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첫 번째 의지니깐. 


버스에서 내려서 회사까지 걸어가는 약 10분여간 나는 그에 대한 상상을 시작했다. 


“회사에 몇 시에 출근할까… 가만 보자 무슨 일을 하는 부서였더라. 내 옆... 프로젝트매니징팀? 
“헤라?”
“아….”


그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 마주함이다. 여전히 떨린다. 내 숨겨진 꼬리가 자꾸 튀어나올 것만 같다. 12시도 안된 그것도 대낮에! 


“안녕하세요 차장님” 
“어? 헤라 씨 이제 나 기억하네요. 좋은 아침”


 모닝커피를 들고 있는 그는 여전히 청바지가 참 잘 어울린다. 오늘은 연하늘빛 체크무늬 셔츠였다. 


“청바지… 좋아하시나 봐요.”
“하하. 나이에 안 맞죠? 젊은 헤라 씨에 비할까 싶네요”
“아니에요 진짜 잘 어울려요. 거기에 꼬리…아!. “
“네? 꼬리?”
“아니 꼬리가 아니라 꼴….”
“꼴?”
“제 꼴이 좀 우습죠..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헤라 씨 의외로 재밌네요. 아름다운 분이 귀엽고 유머러스까지 하니깐 인기 많겠네요”
“남자 친구 없어요…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하아. 나 왜 이러지. 고양이 미치겠네) 
“아…. 아쉽네요 안타깝네…”
“네?”
“내가 한 10살만 어렸어도 고백했을 텐데 하하. 헤라 씨 유명하잖아요 사내에서”
“제가요?”
“신입들 들어오면 소문 다 나요. 특히 예쁘거나 잘생기면 더더욱. 웃기죠? 첫인상이란 게 그래. 어쩔 수 없어요. 보이는 걸 우선 믿어 버리니깐…”
“차장님도 보이는 걸 그대로 믿는 편이신가요? 
“…?”
“아.. 아닙니다.


 그는 내가 고양이 여자라고 하면 얼마나 믿어줄 사람 남자일까. 

 그도 보통의 사람일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입을 다물기로 한다. 다물 것이다. 그래야 하니깐. 


 우리는 그렇게 걷다가 회사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같은 층이었다. 그러나 꽤 떨어진 거리의 한 파티션 사이로 걸어가려는 그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정말 주관적이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깐. 
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갈색 털의 두 귀가 쫑긋 세워지는 짜릿한 느낌이다.


“내 이름은 정민입니다. “
“네. 성함, 어제 사원증 봤어요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너무 긴장 마요. 요즘 그 부서 과 차장들, 괜히 신입들 긴장 태워서 꼰대질 하더라고. 우리 회사 그렇지 만도 않은데… 난 그쪽 류 선배는 아니니깐 그냥 편하게 대해요. 
“아…. 네 고맙습니다” 
“뭐 보통 영어 이름 사용하니깐 ‘민’이라고 불러도 좋고. 프로젝트 매니저예요. 알죠? 아마 헤라 씨가 소속된 그 팀 제품 중에 이번 달 론칭될 AI 스피커. 지금 내 담당 프로젝트예요. 아마 그 팀 팀장인 태양이가 잘 알 텐데..? 아. 팀장이 나랑 동갑 이예요. 능력 있죠? 하하… 난 차장인데… 아무튼. 팀장이 못살게 굴면 말해요”
“말하면… 주실 거예요? (하 나 오늘 왜 이러지 고양이 제대로 미쳤네) 
“하하 헤라 씨 의외의 면도 있네? 흠….. 아무튼 오늘부터 친해진 거 같아서 기분 좋은데요. 그럼 굿데이’
“아…네” 


 아침부터 내 꼬리가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출근길이다. 아니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사람과의 대화를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종일관 생각나는 건 아니었지만, 문득 생각이 난다. 


사람들의 사랑이란, 마음을 이렇게 들쭉날쭉 제멋대로 만드는 걸까.


 일을 하다가 화장실을 가고, 또 구내식당에 밥을 먹으러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일상의 주위 곳곳을 둘러보게 된다. 그 무렵이었을 거다. 주위를 둘러보는 버릇을 갖기 시작했던 때. 그가 있을까 싶어서 두리번거리는 바보 같은 내 모습.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호기심이 사랑의 시작이었다고. 


“현지야, 바빠?”
“어쩐 일이셔 슈퍼루키 여신 신입사원 고 헤라 씨. 나 지금 자소서 중. 완전 자소서 포비아야. 미칠 거 같아. 아 근데 무슨 일 있어?”
“나… 이거 뭐지?”
“앞뒤 빼고 대뜸 뭐야. 누가 또 들이대? 어떤 놈이야” 
“내가…. “
“응?”
“내가 마음이 이상해. 일이 손에 안 잡혀 자꾸 딴생각하게 돼.”
“무슨 소리야”
“사람을 만났어.. 이상한 사람. 내 마음이 자꾸 가게 만드는 남자 사람은 처음이야”
“하여튼 고헤 라. 너 고등학생 때부터 가끔 사람 사람 하는데 너도 사람이잖아. 제발 그 말투 좀 이제 사회생활하면 그만 고쳐야 하는 거 아냐? 열라 웃겨. “
“아 응… 내가 그랬나”
“아무튼 남자가 있단 말이지 네 마음이 자꾸 가게 만든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이거 …”
“너 무슨 생각해 지금?”
“아….. “
“맞네. 너 지금 썸 타는 거야”
“엥? 썸?”
“그 남자가 너 좋대?”
“너무 앞서 나갔어. 이제도 번 만났을 뿐이야. 그것도 아주 짧게 우연히. “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이 바보야. 뭐 하는 위인인데?”
“프로젝트 매니 저래. 나이는 나보다 10살 많은 듯했어. 정확히는 몰라”
“엥? 그럼 36 아재야? 야 고헤라. 정신 차려라. 결혼한 유부 아냐?”
“유부….? (유부초밥인가? 우리 괭이 클럽 친구들…. 되게 좋아하는데 유부…) 
“유부남 말이야 이 바보야 프로필 스펙 제대로 다시 알아와서 언니에게 보고해 나 바빠 일단 끊는다. 아참 헤라야 너 조심해! 이제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어. 정신 똑바로 차려.”
“응..” 


통화를 끊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누군가 나를 부른다. 태양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헤라씨. 잠깐 얘기 좀 할까?”
“아.. 네”
“이제 슬슬 기초적인 회사 시스템은 익혔으니 일을 배워 봐야지? 다음 달에 론칭할 AI 스피커 있죠? 그 프로젝트 미팅에 참석해서 전체 프로젝트 돌아가고 제품 익혀 두세요. 마케팅하는 사람이 제품 양산 전후로 프로세스 익히고 사양 모르면 쓰나. 거기 프로젝트 매니저가 내 친구 기도하고, 이야기해 뒀으니 아마 당분간 그쪽 미팅에 참석해서 다 익혀 두도록. 그리고 매주 보고서 써요”
“아… 프로젝트 매니저라면”
“정민 차장이라고 있어. 외국어에 스펙에 스킬에 성격까지. 퍼펙트한 선배니깐 배워둘 거 많을 겁니다. 정 차장, 결혼하자마자 아이 가져서 아마 지금 두 살인데, 정신없이 바쁠 거야. 가정적이라 일하랴 육아하랴. 아 미안 내가 쓸데없는 얘기 했네요. 아무튼 정 차장이 잘 도와줄 거야. 얘기해 뒀으니 오늘 퇴근 전에 서로 인사라도 해 두고. 내일 셋이서 모닝커피 합시다”
“아……네”


 사람 세상에서 결혼이라 함은 사랑의 표식 같은 거였다. 

 고양이 여자 집안의 엄마가 그랬다. 보통 남자인 아빠를 만났고, 무난한 가정사를 지냈다. 장모님이 고양이라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모른다. 밤 12시가 지나서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 다만 여행을 가기 싫어하는 장모님을 석연찮게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이 때론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숨기고 싶은 진실은 절대 들키면 안 되니깐. 



 내 마음은 갑자기 황량해졌다.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어쩌다 발견한 고구마 말랭이도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고 겪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그도 겪고 있을 거란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애초부터 없다는 전제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렇지만 처음 느껴본 이런 감정이 불편했음에도 싫지 않았고 또 지나갈 걸 알았기에 견딜 수도 있었다. 


“괜찮아. 그냥 잠깐 지나간 마음인데 뭐. 그 아재랑 너랑 뭔 일 있었던 것도 아니고 넘 신경 쓰지 마. 왜 그래 도도한 고헤라 답지 않게”
“응. 우리 둘은 딱 두 번 만났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근데 그게 슬퍼. 현지야”
“뭘 기대해. 고헤라씨. 너 좋다는 사람 쌓였어. 쌓인 게 남자고 사람이다. 너 답지 않아”


고헤라다움을 잊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으니깐. 첫 번째 복도에서, 그리고 두 번째 출근길에서. 그리고 다음 세 번째 모닝커피 타임에서. 결정적으로 셋이서 마시는 모닝커피 시간에 나는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그저 ‘네’라는 대답을 해야 했다. 


 다른 신입사원들이 으레 껏 ‘네’라고 하는 그런 아무 깊이와 의미 없는 객관적인 대답, 사람 세상의 일터에서 늘 주고받는 그런 무미건조하고 드라이한 대화들 말이다. 


 마음인 가라앉을 세는 없었다. 미팅에 같이 참석하면서 그의 눈부신 면은 자꾸 파고만 들었다. 꼬리가 더 간지러워지기 전에 그만둬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어라 일만 했고, 일부러 피했다. 가급적 메일로, 전화와 대면은 자제하려 했다.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도 멀어진다는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자 했으니깐.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환경들이 자꾸 내게 다가왔다. 그날도 그랬다. 


“헤라씨. 요즘 무슨 일 있어요? 프로젝트 이해가 어렵죠? 일 같이 하고 나선 말수도 줄었네요”
“아닙니다 차장님. 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누가 일 안 하고 있대요? 오늘 프로젝트 회식 있어요. 알죠”
“네… 근데 저 선약이.. 있어서”
".... 거짓말”
"네?
“거짓말 같은데. 아닌가? 그럼 프로젝트 주관자 말 이번엔 들어요. 오는 겁니다 꼭. 다들 기다려요”
“아.. 다들.. 네”


'다들'이 아닌, '그'가 나를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는 건 어리석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바랐다. 그가 나를 기다려 주기를. 


 동료로서라도, 후배로서라도. 그냥 그에게 조금이라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깐. 그때였다. 


“내가 기다려요. 헤라 씨랑 얘기하고 싶으니깐." 


 현지가 내게 항상 해준 말이 있었다. 세상은 속고 속이는 관계들로 가득하다고.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살아남는 게 바로 세상이라고. 현지가 온전한 낮과 밤을 지내는 사람 세상은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그러나 그런 나의 세계관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속아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한 사람이 점점 선명해진다. 

 그가 하는 달콤한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에서든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만큼 큰 의미와 가치 있는 게 있을까. 다들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정민이 고헤라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말을 난 믿었다. 속고 또 믿었다. 


 1차는 삼겹살에 소주였다. 이 쓴 물을 사람들은 참으로 잘도 마시고 또 좋아도 해 보였다. 물론 안다. 사람이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어느새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진실도. 술에 약한 편이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쓴 그 물이 하나도 쓰지 않게 느껴졌다. 


“하… 맛있네요 오늘따라. 인간들은 이런 물을 좋아하는구나”
“네? 하하 헤라씨 가끔 말투가 되게 동물적인 거 알아요?”
“(헛 들켰네. 그래 나 고양이야 고양이라고….) 하하 그래요? 차장님 말투도 그래요..”
“네?”
“아닙니다. 아 너무 많이 마신 거 같습니다. 언제… 가나요?”
“아. 시간이 벌써… 10시 다 돼가네. 자 그럼 막잔 하고 일어납시다. 꽤 오래 있었네요."



 아쉽지만 10시, 집에 가면 약 11시. 씻고 나면 12시. 고양이로 변하는 나의 밤 시간. 오늘은 공원이나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맨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다들 서서히 가기 시작하고 나도 마지막으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헤라씨 잠깐만”
“네?”
“아니. 음 교육 잘 받아주고 또 론칭까지 많이 도와줬으니 간단히 커피 마시면서 얘기할까요 술도 깰 겸”
“아… 시간이”
“바래다 줄게요. 아 불편하면 가도 좋고”
“…..”
“불편하지 않음 갑시다. 얘기할 시간... 이제 별로 없을지도 모르니깐요.”
“아.. 어디 가세요?”
“저기 스타벅스 있네. 잠깐 커피 할까요?”
"네…”


 가슴이 그렇게 쿵쾅거린 적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고헤라가 고헤라가 아닌 느낌, 내가 사람인지 고양이인지 지금 내 꼬리가 튀어나왔는지 아닌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태. 그저 온몸의 감각과 생각은 그를 향해 있었다. 


우리 둘은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린티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보았다. 

그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던진 한마디에 나는 넋을 놓고 말았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겉만 보곤 모른다. 그러니 섯불리 판단해서도 안된다. 사람이란 그렇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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