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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7. 2017

#1. 빨간 입술의 고양이

여태껏 그런 "사람 남자"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넘어오는 시간은 단 5초. 그리고 항상 한 마디면 충분했다.


(다가오지 마) 야옹
“어쭈 요것 봐라. 애교 부리네. 오구오구”


 소름이 돋는다. 나는 그저 오지 말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듣는 건 그저 “그르렁”  혹은 “야옹” 무의미한 의성어에 불과하다.


 왜? 나는 고양이 여자니깐. 빌어먹을. 이렇게 태어난 걸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알아듣고 자아와 의지가 생겼을 무렵에 알게 된 나를 둘러싼 우리 집 여자들의 비밀은 헛소리 같은 진실이었으니깐.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새겨들어야 해. 헤라야. 엄마는 비록 이렇게 멀쩡하지만 엄마의 엄마, 그니깐 네 외할머니는 12시만 되면 모습이 바뀌어 버려. 너도 한번 봤지? 제법 큰 몸집의 갈색 고양이.”
“응. 근데 엄마, 내가 본 거 고양이야 할머니가 아니야”
“맞아. 근데 그게 할머니야. “
“미쳤어 엄마? 지금 무슨 소리야…?”
“안 미쳤어. 근데 이제부턴 믿어야 해. 믿기지 않겠지만 믿어야 하는 건 그냥 믿는 거야. 아마 여태껏 12시 전에 곤히 잠든 너라서 몰랐을 테지만, 가끔 보드라운 털이 만져진다고 꿈에서 그런다고 했었잖아. 헤라야 그건 바로 네 털이야. 희고 가느다란 보드라운 털. 네 온몸을 감싸고 있는 그건 바로 고양이로 변한 네 모습이야”
“……말도 안돼. 나 이렇게 멀쩡한데? 아니야. 나 고양이 아니야”


 엄마의 말을 처음엔 믿지 않았었다. 난 사람이니깐.

 아니 그렇다고 줄곧 생각했으니. 책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반인반수도 아니고 두 눈과 팔, 다리가 멀쩡히 있는데 고양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나는 고양이였다. 믿기 어려운 사실을 받아들인 건 의외로 간단했다. 보면 알 수 있었다. 12시가 되었을 때 내 눈에 비친 건 고양이 맞았다.


 가늘고 얇은 은빛 색이 살짝 도는 하얀 털로 온 몸을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하얀 새끼 고양이가 내 눈앞에 있다. 양쪽 두 귀만 신기하게도 옅은 갈색 빛을 띤, 어딘지 모를 신기한 느낌의 동물. 마치 사람 같은 느낌의 커다란 두 눈동자와 작고 여린 선홍색 입술을 지닌 채, 어딘지 모르게 누굴 찾고 있는 듯한 눈빛의 고양이가 바로 나였다.


  꽤 눈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양이가 된 나와 마주한 눈은 그보다 한 2배 정도는 더 커 보였다. 동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갈색과 진녹색이 어우러진 커다란 눈동자는, 어두운 밤의 방 안에 홀로 깜빡이고 있었다.


“하.. 이게 나였어”


 막상 보고 났던 어린 시절, 내 성격은 그때부터 거침없고 담대하게 변해갔다. 물론 처음엔 무서웠다. 

 진실이란 의식하지 않으면 무섭지 않지만, 의식하고 나는 순간 진실 너머의 무엇을 알게 되면 무서워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나는 점점 커가면서 고양이의 세계에 익숙해졌다.

 잠을 좀 더 늦게 자면서 동네 고양이들의 새로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리라는 다분히 모험심 강하고 호기심 충만한,  억울한 오기마저 생겨 버렸으니깐.


 다행히도 성장의 시간은 의외로 순탄했다. 밤만 조심하면 됐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엔 꽤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 왜 맨날 그렇게 일찍 가? 야자 하면 보통 11시는 넘어서 가는데 헤라는 맨날 8시면 가”
“아빠가 엄해. 우리 집이 그래. 통금시간이 있어서 그렇게 늦게까지 못 남아. 빼박인걸. 미안”
“계집애, 재수 없게 맨날 예쁜 척 지 혼자 다 하고 튕겨. 알겠어”


 재수 없는 친구로 변해간 건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친구를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은 자기 방어적인 자세.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경계해야 한 성격 탓에 날 재수 없다고 여긴 친구들 몇 명에게 몇 달간 은연중에 괴롭힘을 당하긴 했으나, 괜찮았다.


 밤이 되면 고양이가 되어 그 친구 집 대문 앞에 우리 동네 고양이 친구들을 데리고 가 한바탕 소동을 부리며 나름의 복수를 해 주었으니깐.


“이 재수 없는 고양이... 누구 닮은 거 같아가지고! 눈을 다 뽑아 버리기 전에 꺼져버려”


 하마터면 맞아 죽을 위기도 있긴 했지만 다행히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죽지 않았으니 또 살 수 있다. 다행이다. 아직 죽을 수 없다. 내 운명의 사람 아니 고양이 아니 사람도 못 만난 채 죽을 순 없다.


역시 사람들은 잔인한 동물이다.
말도 행동도 모두 잔인하기 짝이 없다.
선하고 예쁘장한 얼굴을 한 그 친구는
고양이인 나와 단 둘이 남겨진 순간 무섭게 변했다.

사람은 그런 동물이라는 걸 고양이인 나는 그때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은 바로 사람이라고.


 그래서 나는 람 여자를 믿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하나 같이 짐승이니깐. 고양이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짐승 클래스와는 그 잔인함의 깊이는 달랐다.


 26살이 되었고, 나는 어른의 몸으로 자랐다. 고양이와 사람 반반씩 모두 어른이 되어 가는 도중이었다.

 2대에 걸친 우리 집의 고양이 여자에 대한 세상의 딱 하나 주어진 선물은 바로 타고난 미모와 목소리였다.


“헤라야 나 진짜 너 없이 미칠 거 같아”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
“마음이 예뻐. 아니 사실은 네 빨간 입술이 참 예뻐. 키스하고 싶어 져”
“하…. 너나 나나 다 예쁜 건 아니고? (그래 나 빨간 입술의 고양이다 됐냐 이 새끼야)


 점심때 먹은 샌드위치를 다 토해낼 거 같았다.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는 나였다. 밤에 본 그의 다른 여자들은 진한 화장과 야한 레이스 속옷이 보일 것 같은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심야 영화관 뒤에서 서로 진하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했으니깐. 우리 동네 영화관에 거주하고 있는 괭이 클럽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인 순간이었다.


 단순히 예쁘거나 청순하거나 섹시한 그런 2차원 적인 저급한 외적인 미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뭐든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드는 끌림의 매력이, 그나마 우리 고양이 여자들이 지닌 운명적 선물이었다.


사람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신이 내려주신 우스운 무기라고 할까.


 그 덕에 회사도 다른 대학 친구들과는 달리 쉽게 입사한 느낌도 든다. 사람들의 세상은 참 웃겼다. 내 눈에는 그랬다. 분명 나보다 뛰어난 능력, 학력, 성실함으로 무장한 내 베프 현지는 매번 떨어졌다.


“저주받을 내 몸뚱이 어쩌면 좋냐. 다이어트를 뭐 얼마나 해야 해. 성형해도 이건 노답이야”
“미안… 현지야. 그냥 미안해져. 나만 붙어서...”
“헤라 넌 좋겠다. 여자인 내가 봐도 넌 정말 레알 여신이야. 아 배 아파. “
“……..(넌 밤에 돌아다닐 수 있잖아. 휴.. 내 몸뚱이는 그럴 수 없단 말이야. 난 네가 더 배 아파)
“남자 친구 불러서 클럽이나 가야겠어. 너 오늘도 안 갈 거지? 너랑 같이 가면 장난 아닐 텐데”
“응… 나 그런데 안 좋아해 (가 아니라 사실.... 고양이 몸으론 몇 번 가보았는데 시끄럽고 재미없더라.)



 고양이의 몸으로 가본 인간들의 놀이 장소는 가관이었다.

 가슴이 쾅쾅 울리는 음악과 비트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술 취한 인간들의 모습이란. 우스우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였다. 놀 사람과 놀 곳이 그렇게도 없나 싶었다. 몇 번 경험하고 나선,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 괭이 클럽의 친구들과 숨겨둔 고구마 말랭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공원을 사색하며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


 이름만 들으면 꽤 알아주는 대기업의 해외영업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역시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입사 동기 100명 중 유일한 5명의 여자 직원이었고, 더군다나 나는 신이 내려준 고양이 여자의 무기를 가진 어딘지 모를 비밀스럽고 신비한 매력의 신입이었으니, 사람 남녀들의 시선과 질투를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입사원 고헤 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하나 같이 얼굴 작고 키 크고 늘씬해. 헤라 씨는 좋겠어. 벌써부터 시선고정이야”


 가는 곳마다 그런 칭찬 혹은 비꼼 밖엔 없었다. 

 역시 인간들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다. 괭이 클럽 친구들은 보이는 것 대신 서로가 원하는 걸 나누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랐다. 늘씬하고 젊은 20대 후반의 아직 탱탱하고 생기 넘치는 물기 어린 여자에 대한 관심은 그저 보이는 비주얼에 혹하여 칭찬 일색이고 조금이라도 친해지려 한다.


 호기심일지 모르겠다. 나에 대한 호기심.
그게 싫지는 않았으나 잦은 호기심의 접근은 되려 불편했다.


 사람 남녀에게는 도통 관심 없이 그저 공원을 걷고 밤거리를 잠시 걸어 다니며 별을 보는 걸 좋아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현지야.  사랑하면 설레고 두근거리고 보고 싶고 미쳐 버린다고 하던데 진짜 그래?”
“헤라야 하…. 너 좋다고 따라다닌 새끼들 기억하지? 죄다 안달이었어. 너 가져보려고. 근데 네가 다 노 했잖아. 현명한 년”
“헤.. 사실 그게…. 좀 무서우니깐.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순식간이고.”
“여자인 나도 종종 너한테 시선이 가는데 남자들은 오죽하겠냐고. 하아 난 오늘도 다이어트야.”
“응…..”


 최소한 나를 좋아한 인간 남자들의 접근법에 의하면  신기하게 그 마음이 어떤 건지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을 순식간에 풀리는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그 첫날이 어쩌면, 내 사람 반 고양이 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운명 같은 사건이었을지 모르겠다.


 야근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팀 선배님들의 보고서를 위해 온라인 시장 정보를 서치 하는 그야말로 막일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10시가 다가감을 몰랐고 부랴부랴 짐을 싸고 복도를 나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헤라 씨. 이제 퇴근해요? “
“네? 저요? (하 또 누가 바래다준답시고 치근덕 대나…. 빨리 가야 하는데)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내 온몸의 털은 모두 하나같이 쭈삣 스는 소름 끼침을 느꼈다. 본능적인 끌림 시작이었던 걸까.


그는 나와 가까이 있었다.

 180 센티미터가 좀 안 되는 듯한 키의 약간 마른 듯한 체구의 남자였다. 한 70kg 정도 돼 보이려나. 멋들이지 않은 것 같지만 깔끔하게 왁스로 정돈된 댄디한 헤어 스타일, 스트라이프 셔츠에 검은색 니트를 받쳐 입고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내가 본 그의 첫 모습이었다. 옅고 부드러운 목소리 톤을 가진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내 갈색 털의 두 귀가 쫑긋해지게끔 만들었다.


“아…. 누구세요?”
“하하. 헤라 씨 엉뚱하다는 건 익히 들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거 아니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기억을 잘 못해서…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고 그제야 그를 알아보았다. 조용한 듯 저 멀리 앉아 있는 그는 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어서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목소리를 선명하게 듣는 것도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는 인기 많은 사람 남자에 속한 부류라고 그저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괜찮아요. 옆 팀에 있어요. 파티션 하나 사이로.
자주 지나가면서 난 봤는데, 서로 소개는 한 적이 그러고 보니 없긴 하네. 반가워서 인사했어요. 미안합니다”


 사람 남자치곤 부드러운 목소리의, 말이 적지 않은 듯했지만 그게 싫지 않은 사람 남자는 처음이었다.


“많이 늦었는데 신입에게 일이 많나 보네. “
“네…. (설마 데려다 주려는 건?)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요”
“네…? 아 네! (데려다준다는 말을 안 한다. 신기한 사람 남자다)
“데려다준다는 말 기다렸어요? 하하”
“아….(이 남자 뭐지?)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데려다준다는 말 믿음 안돼요. 다들 늑대니깐 하하하”
“그러는 정민 과장님은 늑대 아니세요? “
(헉,  내가 사람 남자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다니. 웬만하면 말을 섞지 않으려고 단답식 대화를 주고받는 나였었는데….)
“아… 난…. 글쎄요 다 지나간 늑대라고 해 두죠. 아무튼 조심해서 들어가요. 헤라 씨 예뻐서 아마 특히 더 조심해야 할 거야. 잘 가요”


아….

다른 사람 남자들의 ‘예쁘다’는 말은 별로 감흥 없는 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의 ‘예쁘다’는 목소리는 왜 그렇게 섹시하게 들리는지.


 그건 10시가 꽤 지난 그 밤의 긴장감 탓이라고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귀갓길에 12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내 하얀 털들이 곧 나올 것만 그런 쿵쾅거림은 생전 느낀 적이 없었다.


 그가 훌륭한 몸을 가졌고, 목소리가 멋졌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 남자들의 대화법과는 어딘지 달랐다고 내 멋대로 해석해 버렸다.


 궁금해졌다. 이 사람. 어떤 사람일지.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사건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또 마주 했으니깐.


그의 눈에 밤에 난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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