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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27. 2020

100세를 살아본 누군가의 진한 메시지

백세일기 

사랑이 있는 고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다. 


- 백세일기 - 



올해로 100세를 맞이하는 노철학자님의 이야기를 가만 읽고 있자니 

부끄러운 '나'의 단면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 또한 (당돌하게 '그'라는 표현을 빌리는 것이 조금 죄송스럽지만) 서른 중반에 이르러 이런 철학적 깨달음을 일찌감치 통달하셨다고도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니 조금은 안심스럽기도. 언제부터인가는 사실 내 연령대 이하 작가의 책을 잘 손에 집어 들지 않게 된다. 



꼰대인가, 그런 것 같다... 짧은 경험으로 인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혹은 깊고 진실된 경험 없이 완벽히 '감성'이나 얕고 짧은 경험으로 마치 다 아는, 다 공감해 준다는 식의 메시지에 치중한 (그림 반 글 반) 책은, 여러모로 글이 이상하게 공감되지 못하더라. 가벼워서..... 나의 현실과 비교하자니 내가 뭐라고 그들의 문장이 한없이 가소롭고 가볍게 보여서... 그러니 나는 꼰대가 맞는 것 같다. 그리하여 김형석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고 큰 반성을 다시금 할 수밖에 없었다... 



백세일기, 김형석, 김영사, 2020.04.13.




내 나이 100세.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겨울이 지나가면 아침과 저녁에 또 산책을 하게 될 것이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20대 후반에 탈북해 서울에 올 때는 어떤 희망의 약속이 있었다. 100세의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p.29



내가 잘 아는 친지 중에 100세가 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장수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무욕의 인생관을 갖춘 사람들이다. 무소유는 그 작은 부분의 하나일 뿐이다. p.32



자연 앞에서 우리는 작아진다. 그냥 작은 존재다.



나이 듦에 대해서, 노후에 대해서 어느 순간부터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말미에 드는 생각은 결국 '일'이다. 죽을 때까지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 분도, 어쩌면 이렇게 괜찮은, 아니 너무나도 복에 겨운 '노후'를 지내고 계시는 그 원동력은 어쩌면 '노동'으로 인한 기쁨, 주고받을 수 있는 넉넉함, 물질적인 풍요, 마음적인 베풂, 그 모든 것들이 갖춰 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인간이 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생일대의 화두는 그래서 일... 그리고 사랑이 아닐까 싶고... 



한편으로 일정 부분 '돈' 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에 그저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감이 어쩌면 최우선이었을까 하는 반성을, 책을 읽으면서 하고 마니 새삼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이런 반성과 자각을 할 수 있음은, 그럼에도 '괜찮은 어른,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한 과정을 자진해서 겪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간직해보기도 하며...




말을 잊어버리는 데도 순서가 있다. 고유명사, 보통명사, 형용사, 부사, 동사 순으로 기억이 안 난다.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먼저 잊어버린다. 형용사를 잊기 때문에 문장 표현이 줄어든다. 동사는 끄까지 잊어버리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뒤따른다. (중략)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았나' 하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함께 웃기는 했으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왜 그런지 친구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되겠지만. p.37



100세 이후 여생에 필요한 생활비는 남겨두었다.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주어지는 일을 계속해야겠다. 열심히 벌어서 내 힘으로 살다가 남는 재산이 생기면 필요한 곳에 주고 가려한다. 재산은 소유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값있게 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참다운 의미의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많이 주는 사람이다. 남은 세월 열심히 일하겠다. 수입이 생기면 나를 위해서는 적게 갖고 이웃을 위해서는 많이 주는 생활을 이어가기로 하자. p.65 






100세를 살아보신, 숱한 역사의 굴곡진 그늘과 빛을 모두 다 직간접 해본 '어른'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뜨거운 교훈을 되새기게 해 주셨기에... 한편으로 진정한 삶, 참다운 인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욱 진하게 고찰해 보게 만든다. 그 어떤 잘 나빠진 그럴듯한 자기 계발서보다도.... 진한 누군가의 '에세이'는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진짜 책을 만난 기분을 전한다. 그래서 뭐든 삶을 넘는 건 아무것도 없지 싶다. 돈도, 명예도... 진정한 사랑이 깃든 삶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절대로... 




집에 와서 아내에게 고마워 용돈 챙겨줘서라고 중얼거린다. 얼마 안 되는 액수의 종신보험. 아내가 계속 그 배당금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고 아내 대신 내가 수혜자가 되었다. 해마다 5월 말이 되면 내가 100만 원씩 받으러 간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지금은 가족과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기일을 기억해 줄 것이다. p.123


지금의 나이가 되어 깨닫는 바가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 그대로이다. 하지만 더불어 산 것은 행복을 남겼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니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베푼 사랑은 남아서 역사의 공간을 채워준다.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의 뜻을 나누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인생의 행복한 의무이다. p.177




가족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외로 책을 읽으며 그들을 떠올리니 어떤 태도로 남은 삶을 달려 나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에게 인격적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인간이기를, 이기적 욕심에 빠지지 않는 '선'을 제대로 지켜 내기를...... 그런 '나'를, 조금 더 성숙해진 나를 바라 마지않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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