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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28. 2020

주홍글씨, 그것이 인간 본성이라면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랐다. 

자신은 남보다 더 많은 게 허락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순전히 그 욕망의 힘이었을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 





직장을 다니던 시절,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에겐 주홍글씨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결혼 전엔 유부녀 꼬시는 꽃뱀, 상간녀, 속도위반 임신설, 남자 상사만 좋아하는 홍일점 여자애 정도였을까. 결혼 후엔 상대적으로 직급이 위인 그이로 인해 붙어 버린 '형수님'이라는 일종의 비아냥 겸 조롱이 반 섞인 듯한 불편한 문장은 기본, 남편 힘 빌려할 말 따박따박하는 재수 없는 여자, 일 안 하고 칼퇴하는 여직원, 애 혼자 키우는 것처럼 구는 웃긴 년, 지 남편 잘 만난 복도 모르고 까부는 미친년, 향수나 뿌리고 다니는 도둑년... 매일 출근길 하루의 시작이 순탄치 않아서 남몰래 울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혹독한 습관을 들이려 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공포의 이겨냄 덕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혼자 이겨내려 책을 독파했던 시절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 한없이 나약해졌을 때는 저격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극악무도한 최대의 실수는 바로 그 저격 대상을 나와 동급인 부류의 인간이 아닌 나보다 더 약한 자 혹은 내가 함부로 해도, 까대어도, 짓밟아도 '나' 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소위 '만만한' 사람. 우리가 흔히 싸움을 거는, 공격을 하고 그로 인해 저격 대상이 되는 부류는 주로 스스로 폭력을 휘둘러도 그 피해자가 가해자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약자... 주로 약자다. 



나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끔은 무서웠고, 사실 여전히 무섭다.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쉽지 않은 '나' 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음이 약해진다거나 불편하거나 소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거나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엔 약자를 찾는다. 내가 함부로 대해도, 상처를 입힐 때로 입혀도 괜찮을 대상들..... 나도 찾고 말았다. 한 때, 그리고 여전히 종종. 배우자와 아이들은 손쉽게 노출되는 대상이며 친정 식구들도 마찬가지. 시댁 식구들은.... 사실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억울했어도(?) 세차게 덤비질 못하는 '상위 권력층'에 속했다. 왜였을까. 대한민국의 빌어먹을 기혼 제도와 유교문화 상 '시' 자 사람들과는 이상하게.... 피하면 피했지 덤볐다가 오히려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나에게 온다는 것을, 뼈아저리게 경험해봤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나는.가끔 정말 멀리 숨어버리고 싶어진다... 공인이 아닌 나도 이런데 젊은 죽음을 택했던 그녀 둘은..얼마나 아팠을까.



경력단절 이후 우울감을 해소하려는 알량한 시도로 유튜브를 매일 업로드했었다. 

그러나 그 또한 하면서 느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아니 사실 사랑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좋은 시선으로 봐주시는 것에 감지덕지였다. 인플루언서조차 되지 못하는 그저 일개 평범한 일상 생활인의 잡담조차도 '싫어요'를 누르거나 협박 메일을 보내오거나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뒤지면 나오는 게 넷 드링킹 문화인가) 했기 때문에 나는 순식간에 어떤 공포에 사로 잡혔었다. 사실 책을 출간한 이들은 반 공인(?) 일 수 있다는 사실이기에 이처럼 개인의 지질한 에세이식 일상 사담을 글로 표현하는 일 조차, 요즘은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다. 또 무슨 봉변을 당할까, 또 무슨 공격적인 댓글이 달릴까 싶어서...



각 기업의 사내 익명 게시판이라 불리는 소위 '블라인드'의 그 익명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우리는 눈 앞에 당장 보이지 않기에 얼마나 타인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얕잡아보고 공격하는가. 오늘만 해도 소위 어떤 블로그의 댓글은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나는 심장이 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배우면 아는 지식인데 오타가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처음엔 감사했다. 그저 감사함만 지녔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짧은 댓글에 수많은 감정을 쏟아내버리고 말았다. 예전의 트라우마들이 새록새록 독버섯처럼 번지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배우면' 아는 단어 조차 제대로 국어 문법 하나 지키지 못하는 당신이 무슨 작가 자격이 있는지, 책 좀 냈다고 돈 좀 있다고 유세 떨지 말라는 식의 조롱 어린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던 거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내가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반자인 내가 내는 목소리였을지도 모를 일이고. 모르겠다.. 그저 아침 등원 이후 그 댓글을 보고 마음이 또 저려서 한참을 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가장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가면을 쓴다. 겸손하고, 자신감 있고, 성실한 모습을 가장한다. 옳은 말만 하고, 미소를 짓고, 상대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척하며 내면의 불안과 시기심을 감추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 겉모습을 실제라고 착각한다면 상대의 진짜 감정은 알 길이 없다. 종종 우리가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저항이나 적개심에 깜짝 놀라고 남의 조종에 놀아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인간 본성의 법칙 - 




고요한 호수에 물방울 하나로 인해 호수가 흔들린다는 걸, 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모르는것인가..... 그게 인간본성인가...




나는 여전히 가면을 쓴다. 

절망적이지 않고 썩 괜찮고 건강하게 사는 여성의 가면을. 그러나 언제든지 혼자 남겨진 순간 내가 일상 속에서 쓴 가면 사이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어둠이 찾아오고 만다. 반면에 나 또한 저격 대상을 찾는다. 무의식적으로. 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전혀 엉뚱한 누군가를....  진짜 감정과 무의식적 욕망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사랑의 대상임과 동시에 역설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누군가를, 물리적인 자유를 옥죄게 만드는 누군가들을.. 그것이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아이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또 이상하게 북받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본능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나의 최후는 결국 '눈물' 이던가... 싶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 한다. 하물며 그 인간이 원하는 것은 반대로 언제나 남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한다 이것이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고. 이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형이나 동생이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면 나에게 돌아올 관심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어린아이들에게 흔히 관찰될 수 있는 장면들...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댁 내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쟁취하는 어린아이의 본성, 인간 본성의 시작... 인간 본성의 법칙 와 인생의 12가지 법칙이라는 두꺼운 벽돌 책을 조금씩 다시 꺼내 읽는 요즘이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더욱 선명해지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나를 부정하고 억압하는 무언가를 섬칫 발견한 것 같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설교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잔인한 본성이라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인간, 관계를 따질 때 언제나 자신을 우위에 두고 계산적인 인간, 선의보다 언제나 저의를 염두하고 사람을 대하는 인간.... 그런 인간의 불편한 본성들에서 나 또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나의 최선은 그저 침묵하고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인간상을 간접 경험하는 것, 그리고 글로 표현하는 정도... 뿐이다. 그 조차도 사실 내 안의 파괴적인 욕구, 나를 파괴하며 반면에 타인을 조금이라도 뭉개 놓고 싶은 그 비뚤어진 내면의 측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어렵고 또 몹시도 불편한 시간이다. 눈물은 주르륵 흐르고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속수무책으로 우울감에 빠져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악취 나는 곳을 정면 돌파해서, 그 본성을 본성 그대로 계속 악순환 돌듯 묻어 두지 않으려는 이 뼈아픈 애씀의 이유는.. 




파도나 물결 치는 것이 무섭다고 도망치면 그게 바다일까 싶다. 결국 바다는 그 자리에 있기에... 그래서 바다가 좋다..나는..




겁내고 도망치는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것이, 그리고 사회 속에서 겉으로 웃으며 만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많이 무섭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주욱 사실 어떤 주홍글씨가 자꾸만 잠들어 있을 즈음에 나를 찾아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편으로 더더욱  사교적(?)이 되고 싶기도 한 이유 중에는 남을 쉽게 재단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관계로 인해 상처 받는 것을 여전히도 참지 못하게 되었기에. 그런 경험들은 나를 고양시켜주기는 커녕 망치기만 하기 쉽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 다만.



주홍글씨에도 아랑곳 없이, 오늘 나를 웃게 만들어 주는 좋은 기억과 추억을 동력으로 삼아... 

그저 오늘 하루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 느낀 괜한 감정으로 인해 인간 본성을 거스르기 쉽지 않았던 '나'를 자책하고 괜히 우울해지다가도 오설록차를 마시는 그 순간, 나는 생각을 멈추고 그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뗐다. 해가 지면 다시 뜨는 것이고, 영원히 내릴 같은 비도 언젠가 그친다는 것을 믿은 채로.... 



본성을 거스르지 못했던 오늘, 오전의 최후는, 자책과 반성, 그로 인한 눈물이었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기억으로 인한 눈물이기를..바랐다. 



하늘, 그 위의 천국...Blessings are coming..Believe that. Heaven....



#이겨내다보면....괜찮아진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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