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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6. 2020

나의 혼돈은 너의 얼굴 덕분에

잠드는 중이다...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 늑대 아이 - 





요 근래 뭐가 그리 불안하고 불편했던 건지

마음과 정신 상태는 그야말로 해독제를 찾지 못한 '혼돈' 그 자체였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오래' 있는 시간이 사뭇 어색하고 또 어설픈 '엄마' 라 그랬던 건지. 아니면 도통 받쳐주지 못하는 체력적 고갈 탓이었는지, 4인 가족의 빨랫감과 청소는 왜 매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인지, 이건 청소라든지 깔끔함이라든지에 대한 개인적 강박에 의해 내가 조성한 환경설정 탓인지, 성인 2인의 탄생 물이라 해도, 결국 이 사회에서 1인은 바깥 경제 활동에 메인 몸이니 나머지 1인인, 즉 '비경제활동인구' 이자 '무보수 가사노동'의 메인 양육자 역할을 해내야 마땅한 나를 옥죄는 캐치프레이즈(?) 같은 것인지. 아무튼 지간에 나는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으로 퇴근 없는 출근을 하기 시작한 지 세 달째 되는 이 시기부터 급격히 분노를 자주 터뜨리곤 했었다. 



아이들은 여러모로 성인 어른들로 인해 '피해자'가 되기 쉬운 대상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죄가 없다는 생각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혼을 해도 피해자는 아이들이 되며, 결혼을 해도 그 결혼생활로 인해 종종 보이게 되는 부부싸움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며, 그런 아이들로 인해 싸운다 한들, 결국 심적으로 압박을 받고 상처를 받는 것 또한 아이들이라는 점. 나의 사악한 본성은 이런 것들을 알면서도. 결국 여리고 어리고 약한 나의 아이들에게 때때로 화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둘째가 언제나 나의 잠재워둔 어떤 본성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이는 애정을 호소한 것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면서도, 화가 나는 그때는 모른다. 그 여린 대상이 나로 하여금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에 울어대고 보채고 계속적인 요구를 해댄다는 것을.... 내가 그만큼 누군가로 하여금 '의지의 대상'이고 '필요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 하나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고 분노에 등 떠밀린채 그대로 못난 감정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뾰족한 문장의 독설을 퍼부으며 화를 내는 얼굴을 누가 좋아할까. 하물며 가족이라 할지언정....... 아이는 상처 받았을까.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호통을 세차게 치고 난 그 순간 이후에는.... 



아무리 '꽃' 이어도 가시 밖힌 뾰족함에 아프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 



아이가 제일 부러운 점 하나는 '리셋'에 대한 속도다. 

언제 꾸지람을 들었냐는 식으로 다시 거침없이 순수하게 놀이터에서 놀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다시 해맑게 웃고 '엄마'를 찾는다. 무섭게 화를 냈던 엄마가 그래도 좋은 것일까..... 무섭지는 않았던 걸까. 밉지도 않았을까... 아마 나이가 더 찰수록 미운 감정은 더해지리라. 반대로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에... 그 어린 본성의 가장 위대한 장점이자 강점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순수함'.... 절대 어른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그 욕망기 하나 없는 순정의 무엇. 



아이는 신나게 놀았다. 특히 에너지가 발랄하게 차고 넘치는 둘째는 더 신나게 놀았던 걸까. 

오후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목욕을 하고 소파에 눕기가 무섭게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보통은 잠시라도 깨워서 무언가를 먹이려 했던 나였겠지만 오늘은 그대로 아이를 내버려 두고 싶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음식이 아니라 잠이었을 테니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왜 나는 여태껏 아이가 원하는 그 단순한 것들을 내 식대로 해석하고 강요하듯 행동하게 만들었던 것인지. 어른이라는 '권력자'가 아이에게 가장 저지르기 쉬운 나쁜 짓은 바로 '자기 멋대로 해석' 하고 생각하고 그것이 마치 상대로 하여금 그럴 거라고 '자신이 보고 믿는 식' 대로 보고 믿는다는 것..... 어쩌면 이게 인간 본성일지도 모를 일이다만. 



그래서 사악한 본성이 더 강해지는 '어른' 이기 이전의 '아이' 들은 어른의 어른이라고 했던걸까.... 너희들은 나의 어른이다..



잠든 둘째의 미소를 쳐다보고 있다가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그러다가.... 요 몇 주, 계속해서 마음의 독소처럼 느껴지던 온갖 부조리함, 시기심과 열패감, 우울함과 슬픔과 같은 것들이 아주 조금씩, 느릿느릿하게 작아지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세속적인 것들로 인해 움츠려 들려했던 어떤 기분들이, 씻겨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 같은... 때로 아이들의 존재가 여전히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이 연령대의 메인 양육자로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서 괜한 자책감과 자괴감에 바닥에 들러붙기 쉬운 나임에도, 반대로 이 아이들이 내 삶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아무리 돈이 많이 있다 한들 삶의 '본질'에 대해서, 우선순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채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아이의 얼굴은, 나의 혼돈의 해독제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뭐에 씌듯 결심을 하나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실행. 페이스북을 잠시 닫았고 쓰던 이력서를 그냥 날려버렸다. 원고기획서도 휴지통에 넣어 버렸다. 그리고 연락처를 '또' 조금씩 지워냈다. 이렇듯 무언가 '더' 정리하려던, 혹은 일종의 그동안의 세상과의 격한(?) 차단 일지 모르나 그것이 정답이든 오답이든지 간에 나는 내 곁의 관계인 '가족' 에게 에너지를 쏟아붓기로 결심했던 걸지도 모른다. (반대로 언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만) 원래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엄마'로 살아가는 나에게 일정 부분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된 걸 지도 모를 일이다. 돈을 버는 일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돈을 버는 진정한 '이유'를 정말 진짜로 알아버리게 된 것 같은 아주 커다란 아이러니... 역설적인 느낌은 무엇인가. 



- 여보... 나 그냥 애들만 키울래. 다른 생각.... 이제 안 하고 살 거야. 

-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아도 괜찮아. 지금은... 조금 쉬면서 생각하는 시기를 가지고. 

- 아니. 내가 꿈이 너무 지나쳤어. 그리고 그건 꿈이 아니라 욕심이었어. 그냥 다 버릴래. 욕심. 

- 기운 내시라. 엄마야. 

- 응... 엄마니까... 엄마.  



엄마인 것도 어쩌면 복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아무나 못하는......그래. 아무나 못한다..




엄마로서 나란 인간은 지나치게 야망이 크거나 부도덕했기에 그동안 힘들다고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야욕' 이 나로 하여금 좋지 않은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알 것 같기도 했다. 이것이 체념이든 수용이든 인정이든 아니든 뭐든지 간에. 여전히 내가 모르는 면이 있을지언정. 현재를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되돌아보자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름 아닌 이 아이의 잠든 얼굴을 지키는 것. 그것 이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에 속한다는 것. 그 부차적인 것들은 한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최선이었지만, 그건 1인이었을 때, 혹은 2인 가족이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조차. 이젠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지.... 이상하게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내면에서 활활 타고 있던, 타인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이기적 무리가 가득찬 사회와 집단, 개인을 향한 

분노와 분개, 적대적인 비난이나 독설 조차도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던 찰나.... 나는 혼돈의 해독제를 찾은 것만 같았다. 아주 가까이 있던 소중하고 여린 존재.... 물론 가끔 나에게 '독' 같은 힘든 감정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그 고통조차도 나로 하여금 성숙이라는 변화를 주는 삶의 계기와 과정이 되어 주는 인생 최대의 선물이자 의미....



오늘이라는 시간이 지려하는 시간, 제 몫을 해냈다는 충만함을 더 느끼도록...한다. 그것이 요즘 가장 큰 바람이리라.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있는 현재에,

생명을 살피는 편안한 공간에 우리가 함께 지낸다는 그 사실만 기억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커다란 생의 감사함을 느끼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오늘, 이 얼굴을 보며 내내 생각했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바랐지. 더..강해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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