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아내려 한다는 것은
이야기가 던지는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변화할 만큼 용감한가?
이야기의 플롯이, 그리고 인생이 우리에게 묻는다.
- 이야기의 탄생
결핍.
결핍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어이없이도. 지독하며 이기적일 수 있는 인간의 악취미 중 하나는 아마 타인, 상대의 '결함'이나 '단점'에서 반대로 자신의 '비교적 괜찮음'을 느끼고 그에 대한 어떤 강렬한 희열을 느낀다는 점일지 모른다. 이게 나만의 생각이라면 나는 어쩌면 독하고 비루하고 천한 인간일지 모른다. 또한 그런 나의 본성을 인정하고 또 그래서 겸손해지고 그래서 조용해지기도 한다.... 한데 갑자기 웬 '결핍'? 결핍의 전후엔 '이야기' 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왜'라는 생각. '왜'에서 탄생되는 어떤 서사. 인간에겐 끝날 줄 모르는 욕심이 있기 마련인데, 반면에 인간의 애욕, 그 욕심의 근본적 원천의 끝에는 '부족함'이라는 감정과 언제나 맞닿아 있다는걸... 욕심이 없지 않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할 즈음엔 언제나 결핍감을 느끼는 나는, 은연중에 살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의 서평은 산으로...... 가기 시작하기로 한다)
이야기의 탄생, 윌 스토, 흐름출판, 2020.05.15.
강렬하게 끌리고 재미있는 '이야기' 가 담겨 있는 문학이나 책, 영화나 드라마에 있는 공통점.
바로 '내가 느꼈을, 혹은 느끼고 싶었던 욕망' 이 담겨 있는 사람 이야기였다. 사실 끌리는 이야기의 주축은 바로 그런 '한때 내가 꿈꿨던 인간' 혹은 '나와 닮은 인간' 혹은 '궁금해지는 인간'을 둘러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가 있을 터. 이는 사실 허구이든 실화든 현실 속 인생과 닮아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탄생'에 대한 일련의 어떤 원칙(?) 과 같은 것들을 친절하면서 재미있게 소개한 이 이야기 또한 '뇌' 와 '인간'의 감정을 잘 풀어내 주고 있기에, 한편으로 이야기책을 접하다가 이야기를 '쓰고' 싶어지는 인간으로 만드는 이 이상한 책을.... 최소한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모두 권하고 싶기만 하다.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가 얼마나 틀렸는지 우리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의 신경 모형에서 취약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그 부분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인데,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감정적이고 방어적일 때는 대게 우리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부분을 넘겨주는 때이다. 이 지점에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가장 왜곡되고 예민해진다. 이런 결함을 마주하고 고쳐나가는 일은 평생의 싸움이 된다. 이야기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이기는 것이 영웅이 되는 길이다. p.265
뇌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계한다. 뜻밖의 변화가 위험을 불러오고 우리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인데, 한편 그런 변화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뜻밖의 변화라는 우주의 갈라진 틈새로 미래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변화는 희망이자 약속이고 더 나은 내일로 가는 굴곡진 여정이다. 삶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와 맞닥뜨릴 때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좋은 변화일까 나쁜 변화일까? 예상 밖의 변화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 호기심이야말로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독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p.31
내가 끌리곤 했던 이야기에는 대부분 나와 닮은 인물들이 어딘가에 있었다.
나는 어쩌면 내가 아닌 그 '인물'에 '투사'를 즐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읽고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찌질이에서 영웅 혹은 여신이 되어 가는 '극적' 이야기를 찾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나의 삶이 그렇지 않기에. 혹은 나의 삶이 그렇기에,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하에, 한편으로는 나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이야기 에서만큼은 인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금이라도 '닮아' 가려 애쓰는 욕망이 숨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아뿔싸. 이런 '나' 와 같은 독자들을 잘 겨냥한 작가들이라면 만세일 테다. 아마 그들이 그려내는 끌리는 이야기로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심은 분명할 테니까.
결함은, 특히 우리가 인간 세계에 관해서 그리고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범하는 실수는 단지 우리가 이런저런 일들에 관해 생각하고 간단히 공감하거나 무시하기로 선택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결함은 우리의 환각 모형에 스며들고 지각의 일부와 현실에 대한 경험을 이루므로 우리 자신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p.89
우리는 모두 허구의 인물이다. 우리의 마음이 만든 불완전하고 편향되고 고집스러운 창작의 산물이다. 뇌는 우리가 외부 세계를 통제한다고 느끼도록, 진실이 아닌 것을 믿도록 유도한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믿음은 우리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화해 주는 믿음이다. 뇌는 우리에게 유혹적인 거짓말을 속삭임으로써 삶이라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결단력 있고 용감한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영웅 만들기 장치에 가깝다. p.125
이야기보다 더 희극이거나 비극이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어쩌면 '인생' 일지 모른다.
사실 이야기는 인생을 담고 있고 나로서는 그 인생과 닮아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쓰고 싶었던 글들의 대부분은 '에세이' 혹은 '팩트가 어느 정도 담긴 허구' 였었다. 부끄럽지만 한편으로 인정하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분노와 욕망 덩어리라는 '나'는 현실에서 거침없이 표현할 수 없으나 글의 세계에서만큼은 문장이나 단어로 배배 꼬아서 표하곤 했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이야기가 내게 주는, 아니 이야기가 담긴 '글' 이 내게 주는 위안은 거기서부터 출발하곤 했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다. 인간으로 구성된 환경을 통제하려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 행동은 중요하고 복잡하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작가들은 이런 기제와 호기심을 활용하는데, 작가들의 이야기는 한 인물의 행동 뒤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이유를 깊이 파고드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p.55
작가는 인물의 거의 모든 행위에서, 가령 생각이 나 대화, 사회적 행동, 기억, 욕구, 슬픔에서 그 인물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다. p.101
부끄럽지만, '안나 카레니나' 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동경' 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에,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과 그 배경과 사건들 하나하나 모두 '내 것' 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다행(?) 히도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것들은 '해소'라든지 '해방' 과 같은 기쁨? 을 맛보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영영 내 것이 아닌 이야기인 통에 괜한 좌절과 슬픔이 역설적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그렇든 아니든 인생의 '극적 질문' 은 책에서 말하는 대로 실제 인생에서는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와 인생의 공통점이자 차이랄까..... '골치가 아프' 면서도 '자기 파괴적' 이기도 하나, 끝내 답이 나오고 어떤 결말이 나오는 이야기와 달리 인생은 그렇게만 흘러가는 것도 아닌 '미궁'의 상태로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인생이 그렇게 골치 아픈 싸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수수께끼 같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으면서 스스로도 충격받는다. p.147
우리는 우리 자신을 통제한다고 믿지만 주변 세계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된다. 차이가 있다면 이야기와 달리 인생에서는 우리가 누구인가에 관한 극적 질문이 끝내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p.167
이야기는 '현실'의 '우리'들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믿고 글을 쓰는 편이다.
그렇기에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아니 사랑한다. '인간 실격' 이 최근에 누군가에게 따끔한 충고와 우리들의 그림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부부의 세계' 가 그렇고 '공항 가는 길' 이, '아는 와이프' 와 '고백 부부' 가 내게 주었던 위안적(?) 고백 어린 결함 많은 캐릭터들 사이에서의 긴장감과 몰입도, 그 안에서의 정서와 공감적 대사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플롯은 어디를 향해 써지고 있는 것일지, 잠시 되묻는다.
이 서사가 부디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의, 평온하고 고요한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