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un 17. 2020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아까운 생을 맺어야 했던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이런 '의사' 님이 대부분이시기를

책을 한 페이지씩 읽어 내려갈 때 마다, 나는 감동이었고 감사했고 그래서 어떤 의료계의 '희망' 을 발견했다. 몇 번의 수술을 경험하고, 가족들로 인해 병수발을 들기도 했던 나는 사실 의료 '시스템' 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그 업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태도' 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불친절한 한 사람의 작은 언행이 얼마나 나비효과가 되어 환자 및 환자의 가족들까지 두루두루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래서였을까. 문학적 감수성마저 지니신, 수필을 참 정갈하게 잘 쓰시는 '작가' 이시기도 한 

이 내과 의사님의 에세이에서 삶의 단면을 지켜보고 아울러 경건하고 숙연해 지는 업의 현장을 고스란히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어 지켜보는 내내.....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환자 이전에 사람을 볼 줄 아는 이런 분이 계시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양성우, 허밍버드, 2020.05.25.



한 개인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때는 

다름 아닌 그 혹은 그녀 스스로의 자기 반성적 '성찰' , 그리고 겸손한 인물들에게서 흔히 큰 매력을 느끼는 편이었다. 헌데 이 작가님이 그런 분이시구나 싶었기 때문에 책이 더더욱 '감동' 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개인적으론 글을 쓰는 분들 중 자기 시간을 쪼개어 지속해서 글을 쓰는 이들을 존경하는 편인데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그저 '글' 자체에 매진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이들) 그런 면에서도 이 의사님은 종사하는 현업 틈틈히 이런 글을 쓰셨던 것이 넌지시 보였기에..더할 나위 없이 칭찬 및 이 책을 꼭 주변에 두루두루 권하고 싶을 뿐이다.. 





내 머리 위 어딘가에 사람이 죽어 있다. 의사가 되기 전에는 꽤나 섬뜩한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한 달에도 여러 번 병동 당직을 서면 거의 매일 사망 선고를 하게 된다. 내과 전공의 2년 차였으니 벌써 이렇게 이 년을 산 것이다. 나도 사람의 죽음에 무뎌질 거라는 상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내 환자가 죽으면 매번 가슴 깊이 송곳날이 파고들 줄 알았다. 모든 의료 행위에 불같은 열정이 타오를 줄 알았다.  p.84



내 기억 속에 기절한 엄마가 또 하나 있다. 쌍둥이 미숙아를 낳은 한 엄마였다. 아기들이 소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하나씩 자리했고, 엄마도 상태가 좋지 않아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었다. 엄마는 입원해 있는 동안 아기들을 보러 오고 싶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가장 많이 본 보호자는 친정 엄마, 즉 아기들의 할머니였다. 그녀는 손주들도 보러 왔다가 면회가 끝나면 다시 딸이 있는 병실로 올라가고는 했다. p.96




아울러 내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 속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무언가들이 텍스트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병원' 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십대엔 친정 엄마의 수술로 인해 몇 주였지만, 병원을 들락날락 거리고 그곳에서 출퇴근을 했었기에....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울었던 순간들이라든지, 유산을 거쳐 쌍둥이 출산 전후 가임기를 거쳐 아이를 낳은, '엄마' 로서 병원을 찾아야 했던,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살아갈 것 같은...나만의 병원과 관련된 기억들이라든지....... 



그래서 책을 읽다가 몇 번의 눈물을 훔쳐야 했다. 자꾸만 기억이 되살려지곤 했기에.

한편으로 기억을 살아나게 만드는 건, 작가님의 묘사력과 표현력이 생생하게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림 반 '갬성' 문장 반인 그저 그런 에세이가 차고 넘치는 출판 시장 안에서, 정말로 괜찮은 수필을 이렇게 만났다는 사실에 그저 독자로서 큰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 어렵게 사실을 전했다. 예후가 나쁜 진행성 위암입니다.

그녀 곁에는 다섯 살 남짓의 딸이 같이 있었다. 그녀는 내말을 들으며 어린 딸의 조그만 손을 꼭 잡았다. 

이로 입술을 깨물고 잠자코 내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하며 눈물을 참았다



모든 보호자가 그렇듯 흐르는 시간의 고문은, 결국에는 이 강한 남자도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했다. 아픔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딸이 살았을 때도 죽었을 때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는 한결같이 굳건한 아버지로 남고 싶어 했다. 불곰 같은 이 남자가 마지막 순간, 내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든, 내 딸을 러시아로 보내 주시오.' 


딸은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풍경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풍경이 비록 공항의 활주로일지라도. 그는 사랑하는 딸을 낫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딸은 좌절하던 그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그는 마지막 과제물을 받고 불타올랐다. 아버지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임무였다. p.248




의료계 종사자들은 알지 못하는 환자를 둘러싼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분의 '다음 책' 을 넌지시 기다려 보게 되었다. 

쓰는 시간 이외엔 환자 한 명을 더 바라보실 분이시기를 감히 기대하며 응원하면서도. 어쩐지 '작가' 로서의 시간 또한 계속 지키시며 사셨으면 싶은 마음이 든 건, 좋은 문장과 깊은 경륜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성찰이 두루두루 문장 안에서 느껴져 진실된 글을 쓰실 수 있는 '작가' 를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독자적 기대와 응원 때문일테다.. 





사인본에 담긴 문장도 겸손하고 투명한 작가님을 닮으신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돕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