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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20. 2020

누구는 죽고, 죽인 자들은 살고.

은희 

기억하지 않는다고 죄가 사라진 것은 아냐. 기억나지 않는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죄책감이란 게 없군. 기억도, 과거도, 죄의식도 아무것도 없이. 


- 은희 -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팩트 소설이라 볼 수 있을.....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작가님도, 이 이야기를 이 시점에서 다시 꺼내며 우리에게 '인간' 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드러나지 않은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본성' 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은희, 박유리, 한겨레출판, 2020.05.28.




일단...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떨려서 한 챕터가 끝나갈 때마다 숨을 죽여야 했다.

 읽은 날엔 숨을 골라야 했고.... 다음을 읽기가 두려웠다...'해리'나 '도가니' 를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은희' 도.....매 마찬가지였다..문학의 위대함은 어쩌면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은폐된 추악함을 파헤쳐 반성과 성찰을 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무기...



그러니까 굉장히 당황스러울 텐데. 여기가 원래 걸인 수용시설이었는데 지금은 재개발돼서 아파트촌이 됐어. 원장이 이 땅을 팔아치웠거든. 저번에 편지 보낸 대로 걸인을, 뭐 걸인 아닌 사람들까지 그냥 막 데려가서 수용했어. 그게 국가정책이었거든. 거지들 쓸어 담아서 건강하고 명랑한 사회 만들자, 뭐 그런. 어쨌든 숫자는 채워야 하니까, 당신 어머니가 걸인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거기서 513명이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도 조작된 게 많고 뭐 그러니까 의문사라고 할 수가 있는데 아무것도 진상규명이 된 게 없어. 그나마 당신 어머니 사건은 원장이 구속될 때.... 



엄마가 맞아 죽은 밤은 어떤 날이었을까. 엄마를 때려 죽인 김무열이란 자의 끝은 어떠했을까. 불과 28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파트 단지 대신 죽음의 시설이 버젓이 운영됐다는 게 준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p.28, 33



누군가의 색깔은, 누군가의 잿빛기억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극과 극으로 갈린다...




형제 복지원은 보통의 인간을 '걸인' 이나 '고아' 로 '만들어' 버려서 불법 감금을 시킨 인권유린 사건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고,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고아가 되는 극악무도한 죽음의 공간... 그것이 '형제의집' 이었다 했다. 어린아이이고 여성이고 노인이고 청년이고 할 것 없이 불법감금된 이들을 강제노역시키고 성추행과 폭력은 기본이며 각종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학대를 가한 대한민국 역사에 추잡하게 남는 대표적인 인권유린사건..... 그곳엔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인간은 없고 그저 살아 있는 동물로 취급하는, 금수 만도 못한 쓰레기 인간과 돈 만이 남아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12년간 형제의집에서 513명이 죽었지만 대가를 치러야 할 죄들은 뒷길로 달아났다. 이제 검찰청사에 무기력하게 서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전날 지검장 관사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출근하려는 지검장에게 방인곤 원장의 공소장을 변경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다른 죄들은 놓아두더라도 이미 수사를 시작해 횡령 혐의에 대해서라도 제대로 대가를 치르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수사를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났을 때 방원장이 국고지원금 11억 원을 횡령한 사실을 파악했다. 정부와 부산시 보조금 39억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돈이었다.  p.144





각목으로 매타작을 당하는 것은 기본이며 연령과 성을 무시한 채 동성이든 이성이든 각종 성적인 폭행도 이루말할 수 없이 이뤄졌다는 그곳이 더 참혹한 이유는 실제 그 죽음의 공간이 운영된 시간이 약 12년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513명.... 소설은  말한다. 그곳에서 513명이 죽었지만 결국 법은 아주 깃털같은 징역형만을 남겼노라고.. 




도망치다 잡혀 온 다른 수용자들은 온몸을 지렁이처럼 배배 꼬며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바닥을 기며 무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이 도망간 자들이 맞는 보통의 최후였다. 무열은 살려만 달라는 말을 들을 때만큼은 그들의 신이 된 것 같았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세상에서, 살려달라는 말을 들을 때만큼은 무언가가 된 것 같아서 그들이 생을 구걸할 때까지 각목을 휘둘렀다. 



형제의집에 붙잡혀 온 일고여덟 살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게 살려달라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내복 차림으로 심부름을 하다가, 공원에서 낮잠을 자다가, 어스름에 집을 나섰다가 납치되어 부모를 잃었다. 고아를 잡아들이다 숫자가 모자라자 고아를 만들어서라도 수용소를 채웠다. 형제의집 원장은 사람 숫자로 정부 지원금을 타냈고, 정부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홍보했으며, 언론은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죽었다. 가족에게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은 사탕 대신 매타작을 당하고는 울음을 그쳤다. 두 손을 비비며 무릎을 꿇었다. 배가 고파지는 것처럼, 울음이 터지는 것처럼 살려달라는 말은 본능이었다. p.156,158 



눈물이 끊이지 않았던 건..다름 아닌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상상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형제복지원은 사라졌을지 모르나, 제 2 제 3의 형제의집은 분명 여전히 현존하는 건 아닐까 싶다. 

마음속에 이상하게도 안타깝게 그런 잔상이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건, 여전히 비슷한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이 사회에 도사려 수면 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마주했을 때 최선과 최악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소설을 정말 힘겹게 읽어 내려가다....차마 어머니 '은희' 의 족적을 파헤쳐나가는 입양아 '준' 의 심정을 생각하고 마노라니..끝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채 그렇게 무력하게 문장을 읽고 또 읽어갈 수 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은희들이 앞으로는 없기를, 무력한 나는 내내 바라고 또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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