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강적을 만나 맞서야 할 때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 옆에 굳건히 함께 서 줄 영원한 내 편.
이 험난한 세상과 맞서 우린 전우애로 살아간다.
- 고백 부부 -
법률상 혼인관계의 신분을 '부부' 라 칭한다면
무자식 상팔자에 들지 않은 (혹은 못한) 유자녀 기혼남녀 중 '부부'로 엮인 인연들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동료'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동료의 사전적 의미가 같은 직장이나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다면, 결국 '집' 은 일종의 '노동 현장' 이 될 수 있고 (아무렴!) 그 노동 현장 속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어른 구성원으로 생각이 되도록 합치하는 파트너가 되면 보다 삶이 두루두루 편한 것이 바로 '부부'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요지는, 결국 그이와 나는 소위 불꽃 튀고 케미 작렬하는 남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아마도 쌍둥이 가임기부터 시작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은 막연한 예상만 남을 뿐이다. 가임과 출산, 그리고 양육과 가족들의 보살핌 (댁내외 전부를 통틀어)을 실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동료' 로서의 관계 유지를 잘하기만 해도 '결혼'이라는 장에서 본전은 그래도 제법 남는 게임이 아닌가 싶었다. 침대 위의 개인들은 어느새 없어지고 대신 가족이라는 단체전을 위해 동료로서 대동 단결하는 게 더 편해진 우리들이라니.
일상의 미션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해낼 책무와 몫들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4인 가족의 성인 남녀
그들은 '개인'을 벗어나 '집단'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그리하여 함께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인 동료가 되는 게 너무나도 지극히 정상(?)이고 자연스럽다만... 어째 우리는, 아니 나는 가끔 결혼 이후의 사랑 혹은 관계 속에서 씁쓸함을 느끼고 마는 걸까. 모노 가미로서의 기혼 제도가 인간 본성을 '억압' 시키고 있다는 부질없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언제나 쓸데없는 대화의 시작은 그이보다 내 쪽에서 먼저 이렇게 시작하곤 한다.
- 애 있는 부부들은 결국 동료야 동료. 같이 일하는 사람
- 갑자기 왜 또 ㅋ
- 아니 그냥... 아이들 사진 보다가, 그렇잖아. 달랑 노동자 두 명인 우리 집 주식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노동 구성원
- 그렇지.
- 그니까. 직장에서 상또라이를 만나도 가족이 아니니 버틸 수 있는데, 그 동료가 가족이어봐. what the fuck인 거지. 그래서.. 생각해보니 나는 동료를 꽤 잘 만났다고 생각해. 자기는 좋은 아빠는 맞는 거 같거든. 나보다 아이들 대하는 거 보면... 그냥 그래.
- 이제 알았군
- 그래서 사랑하면 사실 부부 하면 안 돼. 동료가 되니까. 일 하는 사람.
- 헐
- 그래서 '오후 세 시의 연인' 이 탄생되는 거고 '부부의 세계'가 완성되는 거라니까.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잣대 위에서 저울질하고 또 당하기도 쉬운 인간 본성이란. 젠장
- 생각이 멀리 가셨다. 어서 돌아오시라.
부부라는 동료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신의'가 아닐까 싶었다.
서로를 믿는 마음... 믿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감정을 살피고 서로가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으려 각자의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의 교집합에서 합치점이 맺어지면, 보다 순탄한 동료애적인 부부간의 사랑은 관계 유지와 지속성에 두루두루 도움이 될 테다.
나는 그를 얼마나 믿는지 혹은 그는 나를 얼마나 믿는지
사실 그건 '얼마나'로 잴 수 있는 깊이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나, 가끔 나는 그이가 나를 얼마나 믿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묻진 않는다. 서로 한 개의 시공간에서 (비록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쌓아가는 각자의 이 시간들에 큰 균열과 차이가 없다면... 그로서 안온하게 흘러가는 것에 충분한 감사를 느낄 뿐이다. 아이들의 무탈함만 해도 더할 나위 없는 감사라는 걸, 이제는 아는 '부모'로 살게 되었으니까...
동료로서의 그가 사실은 내심 더 편안한 것은
우리들의 젊음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반증 같아서 조금은 아쉽지만... 한 때의 사랑을 나눴던 이들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동료로서, 한편으로 이젠 서로가 가진 것을 다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이들로 인한 고통과 슬픔과 기쁨과 희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로서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에겐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관계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