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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4. 2017

#4.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

감당하지 말아요

할머니가 그랬었다.

 기쁨보단 때론 눈물에서 더 많은 걸 배우며 사는 게, 알 수 없는 사람 동물의 세상이라고 말이다. 고양이인 우리들보다 훨씬 나약하면서도, 그들은 강한 얼굴을 한 채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보다 생이 더 길다고도 했다.


 고양이인 우리가 그들의 낮 시간을 사는 동안에, 그걸 체험하며 밤의 시간에 그들의 잠자리 곁을 지키게라도 된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은 그저 지친 손가락을 핥아 주는 것 밖엔 없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언젠가 내가 사랑에 빠지면 그래 주라고 말이다. 난 몰랐었다. 그때 할머니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사케잔 위에 올려 둔 그의 오른손을 쳐다봤다.

 엄지 손가락은 둥그랬고 짧았지만, 나머지 네 손가락은 길고 하얗기만 했다. 움직이는 손 마디마디에 어딘지 모를 슬픔이 배어 있다고 느껴진 건 나뿐이었을까. 잠깐의 정적 이후 나는 다시 입술을 뗀다.


“저도 고백할 게 있습니다”
“무서운데요. 긴장되네… 하하”
“아….”


 사람 동물이 왜 술을 먹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유통기한이 세 달도 지난 썩어 빠진 우유갑에서 흘러 내려오는 찐득한 우윳물보다도 역한 그 쓴 물을 그럼에도 들이켜는 이유는 바로 이런 묘미에서 일까.


진담을 농담으로 만드는 아이러니한 다행스러움 때문에 그들은 술을 마신다.  


“저 사실”
“?”
“팀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좀 더 일을 배워보고 싶은데 프로젝트를 바꾸고 싶지 않다고..”
“아… 그  말이었어요? 들었어요...”
“네? 아. 벌써 들으셨어요?”
“난 또 뭐라고… 괜히 기대했는걸. 하하”
“아....”
“태양이한테…아 미안. 나 팀장에게 이미 들었습니다. 영어도 곧 잘 하고, 융통성도 갖춘 헤라 씨라고. 받아주라고요. 프로젝트 매니저인 나 도서는 그런 인재, 대 환영이죠. 다만 쉽진 않을 겁니다. 우리 회사가 사활을 걸고 몇 년간 준비한 프로젝트라, 세컨드 론칭을 위한 공식 수주를 따내는 데엔,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지치지 않겠어요?”
“…대단해 보이십니다..”
“?”
“일을 잘 하신다고 들었고, 사실 몇 달 안 되지만 배우면서 느꼈어요. 일에 몰두하는 사람 모습...
그런데 일도 챙기고 그 와중에 아이도 참 잘 챙기셔서… 그냥 대단해 보이십니다."
“아… 무슨 말인지.... 뭐 봤어요?”


 그의 동공이 갑자기 커짐을 나의 예민한 본능적 감각과 어마어마한 시력을 지닌 고양이인 내가 모를 리 만무하다.


“별 거 아니고 사진을 봤어요. 가족사진. 사모님이 되게 미인이셨고, 예쁜 아가가 있었는데.. 아들 인지 딸인지 구별이 잘 안 가더라고요. 머리가 꽤 길었는데.."
“아들이에요…. 내 하나뿐인 아들”
“이름이 뭐예요?”
“진우… 정진우이에요”
“와… 이름 예뻐요”
“헤라 씨 이름도 예뻐요. 고. 헤. 라... 아 미안 하하. 이름이 예쁘다고 하니깐...”
“아… 고맙습니다. 진우도 예뻐요.”
“헤라 씨도 결혼하고 아이 낳아보면 알 겁니다. 안 예쁜 게 없어요. 자식이란 그런 셈이죠”
“힘들진 않으세요? 아…죄송합니다”
“하하. 힘들어 보였나 내가?”
“그게 아니라 매일 야근하시고 주말에도 가끔 콘퍼런스 회의하시는 걸로 들었는데, 아이에게도 자상하실 것 같아서, 그런 시간들이 힘든 것 같기도 하고…아 죄송합니다. 제가 뭐라는 거죠”
“헤라 씨, 결혼할 사람 있어요?”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전 처음 가족이 아닌 사람인 남에게 들은 건 처음이다. 낯선 단어다. 고양이 세계에서는 따로 결혼이라는 건 행해지지 않는다. 그냥 좋고 기쁘면 함께 있고 기쁘지 않으면 함께 있지 않을 뿐. 이 마음이 입으로 흘러갈 줄이야.


“남자 사람동… 아 남자 친구 없어요. 함께 있고 싶은 기쁜 사람이 아직 없어요”
“아.. 그 말 멋있는데? 함께 있다면 기쁜 사람이라….”
“사모님은 기쁜 분이셨을 테니깐 결혼이라는 걸 하셨고 그래서 예쁜 진우도 생기 셨을 테니.. 저로선 부러워요. 세 분이 단란해 보였어요”
“가족사진이에요”
“아…?”
“하하. 사진은 원래 단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케를 들이켜고 난 후 느릿하게 혼자 따르는 그의 술잔을 바라보며 나는 뭔가 실수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크. 맛있네 이거. “
“원래 아쯔깡이 더 맛있는 법이긴 한데….”
“아 일본어 한다 했죠 헤라 씨?”
“아 네 조금….”
“일본 살다 왔어요?”
“네 몇 년… (괭이 친구 중에 유키라고 있어요. 일본에서 온 걸요. 그래서 알 수밖에 없죠. 고양이들은 언어 국경 성별 초월인걸요)"
“몇 년?”
“1년밖에 안 돼요”
“근데 회사에 소문났던데. 일본인이라고 하하”
“아닙니다… 아무튼 이거 따뜻하게 데워 먹음 더 맛있을 텐데...”
“그래 볼까? 여기 주문이요. 아쯔깡 도쿠리 2잔. 헤라 씨 괜찮죠? “
“아 뭐 네…”
“배, 고파요? 안주 뭐 더 시킬까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많이 안 먹는군요. 몸매 유지의 비결인가? 말라 보이는데.. 헤라 씨. 다이어트해요?”
“아뇨… 원래 먹어도 잘 안 찌는 집안 여자들이라 (고양이 여자가 다 이래요) “
“누가 들음 재수 없는 체질인데? 하하”
“민 차장님도 마르셨어요”
“아… 말라서… 싫어요?”
“아니요...”
“좋아요 그럼?”
“네.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하하 미안. 장난이에요. 다행이네. 나쁘진 않아서. 우리 아내도 말랐고 나도 좀 마른 체형이라 우진이도 체질이 마를 듯싶네. 근데 요샌 나잇살 먹었는지 배가 나오고 있어요 아. 부럽다 헤라 씨의 그 젊음이”
“부러우세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은 한탄인 셈이죠”
“연애 오래 하셨어요?”
“3개월…. 정도 했나…”
“네?”
“하하. 너무 짧나?”
“엄청…. 좋아하셨나 봅니다. 3개월 만나고 결혼하실 정도면”
“그랬나… 뭐 그런 걸로 치죠. 모르겠어요 지금은 7년 차인데, 서로 투닥거리는 친구 같고… 그래야 되는데.. 뭐.... 헤라 씨는 모를 겁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보면 또 달라지게 됩니다. 여기 도쿠리 한잔 추가해 주세요. 너무 나만 마시네? 억울해지는데”
“아…네”


 사케가 쓰지만, 남자 사람 동물의 이상하리 만치 낯선 여자에게도 낯설지 않게 대하는 그 말투가 이상하게 쓰게 느껴진다. 나의 고양이 꼬리가 간지러워서 찡그린다기 보단, 저 나불거리는 입술이 부디 더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이다.


목소리는 자꾸 들을수록 부재 시 그리워지는 법이니깐.



“크 좀 쓰다요”
“하하. 일본인 같네. 귀엽네요 헤라 씨”
“네? 아… 헤헷”
“어? 헤라 씨 그거 알아요 오늘 처음 웃은 거 같네?”
“제가… 요?”
“그렇다요”
“풉….”
“거봐. 웃으니 예쁘잖아요. 원래 미인이 웃으면 더 예쁜 법이라니깐. 웃고 다녀요 헤라 씨. 사는 거 뭐 있어. 웃으면서 사는 거죠. 나이 들면 웃을 일이 적어집니다. “
“왜요… 예쁜 사모님과 우진이가 있지 않으십니까”
“하하. 못 당하겠네. 우진이가 맘에 들었나 봐요?”
“아니.. 그냥 너무 귀여워서….(원래 고양이도 새끼 고양이가 예쁜 법이니깐요)
“우진이는 고양이를 좋아해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슬퍼진다. 고양이 주제인 내가 저주스럽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아내랑 아이가 좋아해요. 아이들은 원래 뭐 살아 있는 동물은 다 좋아하는 편인데, 아내가 유독 고양이를 좋아해요. 지금은 일을 해서 기르진 못하고… 근데 좋아한다고는 했었던 것 같네. “
“차장님은요?”
“난 잘 모르겠어요. 뭐 반반이네. 아참 헤라 씬 고양이 좋아해요?”
“전…. 사랑… 해요. 고양이”
“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고양이를 꽤 잘 아는 편이라, 고양이랑 같이 살고 있고 뭐 아무튼 고양이 좋아해요...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하게 더 많이…”
“특이하네 헤라 씨. 역시 특이해. 남 달라요. 뭔가 다른 세상 사람 같아”
“아…(오래 못 사는 고양이 여자니깐 다른 세상 사람은 아니고 고양이 맞네) ”
“외모도 그렇고 사실 첫인상에 헤라 씨에게 호감 안 갈 사람 없죠. 남녀 누구든.
근데 대화를 나눠볼수록, 그리고 그 눈. 이상하게 너무 크고 갈색이어서 자꾸 쳐다보게 되는군요.
아 내가 술을 좀 먹었나. 미안합니다. 근데 사실이에요….”
“아… 그런가요. 네 저희 엄마랑 할머니가 눈이 크세요… 외탁했나 봐요. 2대에 걸쳐서….”
“헤라 씨 인기 많아요. 그거 알아요?”
“저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하하. 누가 좋아하는 사람 물어봤나? 그냥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고…”


사람을 끄는 힘은 내가 아니라 사케에 있었다고 말하려다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아무튼 오늘 헤라 씨의 고백은 나랑 또 일을 하고 싶다는 거죠?”
“뱅 앤 올룹슨에 대한 제 보답입니다.  헤헷… 저도 좀 취했나 봐요. 막 누구 앞에서 웃어본 적이 없어서요. 매일 긴장하니깐….”
“긴장을 해요?”


취기가 머무르면 몸보단 입술에서 먼저 자극이 찾아온다.
혀는 멀쩡하나 코가 간질 해서 이상하게 발음이 새는 건 사람 동물뿐 아니라
고양이도 그렇다는 걸 아는 순간이다.

그러니 사람은 더 이상 고양이에게 술을 먹여선 안 된다.
바람직하지 않은 건 되도록 빨리 멈춰야 덜 지속된다.

그걸 사람 동물은 알 턱이 없다.



“헤…네. 긴장하죠. 매일이 전쟁인데요. 변하는 건 순식간인데 통증이 와요. 아파요 그래서”
“하하. 헤라 씨 뭔 말하는 건지. 취했어요?”
“아. 아닙니다. 성장통이라고요. 출근해서 긴장하고 퇴근하면 사람 동물은 변하니깐…. 그래서 긴장이 있다가도 확 풀리다가 다시 긴장하는 시간이 얼마나 고달픈데요”
“하하.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네?”
“내가 아까까지 긴장했는데 말이죠. 헤라 씨 웃는 모습 보니 긴장이 풀어지다가도…”
“풀어지다가도?”
“지금 헤라 씨 보고 있으니 다시 긴장해야 될 것 같네”
“아….”


 사케잔을 입술에 갖다 대려다 잠시 멈춘 그는 어느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의 검지 손가락은 살짝 뭘 생각하는 듯 턱에 갖다 대며 동시에 그의 왼쪽 손은 단단할 것 같은 그의 허리를 감쌌다. 눈은 어느새 내 눈동자와 맞물려있고, 입술은 다시 조용히 뭐라 말하기를 반복한다. 귀를 의심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


“헤라 씨가 좋군요. 내가. 지금”


 현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퉁 하고 들려왔다.

 '유부남에게 수작 부리는 쌍년'이 되는 순간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였을까.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뻔한 질척한 삼류소설이라 했었다.


“취하신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전….”
“취했지만, 지금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헤라 씨에게 고백했을 거예요”
“네… 죄송해요”
“뭐가 미안하지.”
“그냥 죄송합니다. 그래야 된다 고친 구가 그랬어요”
“아….”
“수작 부리는 쌍년이 된다고 했어요. 차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아내와 진우가 예쁘다고”
“헤라 씨…..”
“제가 아무리 애쓴 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저 저는 그래서 일만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일도 같이 못할 것 같이 만드시는 것 아닙니까. 도쿠리 한잔 더 주세요”
“……..”


 턱을 괸 얇은 그 검지 손가락은 어느새 반대편 허리를 감싼 채 물끄러미 그는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따가웠고 뜨거웠다. 그의 시선을 피하고만 싶었다. 애꿎은 말들만 자꾸 흘러나옴을 멈출 수 없는 내 시선은 어느새 그의 턱 밑으로 가 있었다. 눈을 보고 싶었으나 볼 수가 없다. 고구마 말랭이를 훔친 도둑고양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사람 세상을 알수록 사람이 잔인하고 무서운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근데 그 사람 동물이 또 이상하게 좋을 수도 있구나 또한 알 게 된단 말입니다.
전 그게 무서워요. 자꾸 빠져드는 게 싫어요…”
“싫어요….? 내가 빠져들 만한 존재라는 건가?”
“아…..”
“헤라 씨 순수하네. 순진한 건가?”
“차장님은 못... 됬고요”
“못 된 건 헤라 씨죠”
“네….?”
“나보다 누가 그렇게나 어리라고 했나. 좀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
“요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요 내가 웃을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헤라 씨 보게 되면 자꾸 웃게 돼요. 재밌고 신기해서. 뭐 예쁘기도 하고… 헤라 씨 내게 요즘 그런 사람이 되어가네. 큰일 났네…”
“아….. 무슨 일 있으세요?”
“네. 무슨 일 있습니다. “
“아…….”


 말을 차마 이어갈 수 없는 건 그의 시선이 자꾸 내 눈과 입술에 고정되어 있는 듯한 나만의 착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풀리는 다리와 아이러니 하나 긴장되는 어깨 덕에 이상하게 피로가 쌓여서 그대로 엎드려 자고 싶단 생각만이 앞선다. 눈이 풀린다.


“저…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데려다 줄게요 일어나죠”
“아… 아닙니다”
“가요. 나도 어차피 데리 운전 불러야 하니깐. 기다려요 차 가지고 나올 테니깐. 여기 계산이요”


 기다리는 동안 우유맛 서주 아이스크림을 샀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그 옛날 아이스크림을 그도 좋아할 리 만무했으나, 딱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걸 그에게도 주고 싶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랬고, 내 사랑도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 여자들의 숙명인 걸까. 빌어먹을 숙명.


“아이스크림… 좋아하세요?”
“아…. 서주 맛 아이스크림? 이거 어떻게 알지? 옛날 사람들만 아는 건데?”
“헤헤…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건데, 혹시 좋아하실 까 싶어서….”
“좋아합니다. 많이”
“사케, 사 주셨으니 이건 제보 답입니다…”
“아… 잘 먹을게요.”
“전…. 술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 먹는 걸 좋아합니다.”
“기억할게요. 아이스크림”
“기억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마실 일도 같이 먹을 일도 없을지도 모른단 거 아니깐요”
“아….. 사실 헤라 씨 내가…”
“아 대리운전 저분 아니세요?”
“네… 가죠… 후. 많이 마셨네 진짜. 갑시다”


모든 사람 동물의 사랑이 달콤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는 걸 덕분에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 동물의 사랑 이야기는 반대로 이별의 이야기다. 고양이들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뒷좌석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와의 짧지만 긴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려고 노력한 나와, 나를 따라나선 그와의 마음은 어디서부터가 같고 어디서부터가 틀렸던 걸까.


 그림자의 길이가 비슷한 만큼 마음의 연결도 비슷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고양이인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착각은 상상이고 그 상상은 자유인데,
그게 또 때론 현실이 되고 마는 건 역시 찰나다.

문제는 그 찰나가 기쁘다는 데 있다.
기쁘면 움직인다. 그게 고양이인 내 습성이다.



“헤라 씨. 나도 잠깐 내립니다. 걷고 싶네요”
“아…..”
“헤라 씨 혹시 감당할 수 있겠어요?”
“네…?”
“딱 5분.”
“지금 무슨 말씀하….”
“미안. 감당하지 말아요”


 그의 입술이 내 이마를 찍고 콧잔등에 잠시 머물다가 아랫입술에 포개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주저앉을 뻔했다. 허리를 감싼 그의 오른쪽 손이 더 강한 세기로 나를 끌어당겨 안기 시작했다.


감싼 허리채의 손에 힘이 들어갔을 때,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도.


 미리 이별에 압도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좀 더 이별에 편안하고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워서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는 두려워서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걸 고양이 여자를 처음 겪는 그도, 그리고 사람 동물 남자를 처음 겪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바지 뒷 주머니에서 몇 번의 진동벨이 울렸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딱 한 생각 밖엔 없었다.


그녀의 고양이가 되어봐야겠어... 무슨 일이 있을 거야. 알고 싶어. 가봐야겠어.


 그가 비행기를 타기 전에, 그녀와 우진이를 만나러 가봐야겠다. 그의 집안일이라는 게, 그의 그녀가, 그리고 그의 아이가, 그에게 어떤 존재일지를 알아야 내가 단념할 수 있을 거란 바보 같은 생각만이 나를 감싸는 초승달의 밤이다.


새벽 1시, 난 유키를 찾아갔다. 고양이 남자인 유키를 찾아간 건 무려 1년 만이었다.


도와줘. 유키. 네 도움이 필요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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