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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6. 2017

#5. 어두운 낮, 밝은 밤

헤치지 않을 테니깐 

 유키를 알게 된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였 다. 

 고양이 여자가 있으니 남자가 있다는 것이 그리 새삼 놀랄 일도 아니었겠지만, 할머니도 엄마도 고양이 남자를 본 적은 없다 하셨다. 단지 전해 내려오는 말로만 들었을 뿐. 고양이 여자보다 훨씬 희소한 영역의 고양이 남자들은, 신이 내린 축복이자 잘못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뿐이었다. 궁금했었다. 그 잘못 만들어졌다는 실체가. 


 그날도 공원을 걷고 있다가 고구마 말랭이를 지나치지 못한 나였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옆 자작나무 밑에 떨어진 크고 탐스러운 고구마 조각을 보자 사뿐히 달려들었었다. 홱. 낚아챈 희고 얇은 손가락의 주인공은 바로 유키였다. 너무 커다래서 떨어질 것만 같은 보름달이 뜨는 밤 때문이었을까. 학교 시계탑이 새벽 1시를 가르치는 종을 울려댔다.


 그리고 보름달빛이 비침과 동시에 어느새 내 앞의 가냘픈 손가락의 남자아이는 작은 체구의 검은 아기 고양이가 되어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주변의 새까만 밤에 숨어 있는 듯한 검은 새끼 고양이였다. 


너.... 뭐야? 
그러는 넌
난... 너 같은 고양이
..... 너 먹어. 그리고 다신 여기 오지 마. 


 루마니아 엄마의 피와 일본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유키는 고양이 여자였던 엄마 때문에 고양이 남자로 살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뱀파이어 기질 같은 혼혈 고양이였던 유키는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고 가냘픈 외모와 어딘지 모를 악동스러운 기질, 그리고 동시에 자기방어가 철저한 혼자만의 세상을 살고 있는 검은 고양이 남자였다. 


"찰싹"
"......."
"저리 꺼져. 난 너 같은 아이 낳은 적 없어. 악. 저리 가 이 악마 새끼야"
"엄마..... 나예요. 나 엄마 아들이에요"
"아니야. 나 네 엄마 아니야"
"그만해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셈이야!"


 유키는 자신을 부정하는 루마니아 태생의 아름다운 엄마에게 세차게 맞을 때마다 글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유키의 글은 다른 또래 아이들과는 달랐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예지력과 끌어당기는 문장력. 유키가 가진 생존을 위한 유일하게 주어진 무기였다. 


"유키는 역시 아빠 닮아서 글을 참 잘 쓰는구나. 유명 작가님의 아드님이시니. 나중에 소설가로 크게 될 거 같은걸. 선생님이 지금 사인받아 놔야겠네 호호"
"....."
"엄마도 참 좋아하시겠다. 이번에도 상 받은 거 아시면"
"없어요 엄마. 죽었어요..."
"?... 그렇지만 지난번에 같이 오셨었잖니"
"내 엄마 아니에요."


 중학교 때 알게 된 유키는, 내가 아는 모든 학창 시절 내내 글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은 전부 휩쓸었다. 그 덕분에 타고난 천재 소리로 매스컴을 타기도 했으며 그런 유키는 주변에 인기가 많았고 친구도 많았다. 그러나 유키의 사생활과 비밀을 공존하는 유일한 친구는 나 밖에 없었다. 


헤라야 너 그거 알아? 
뭐?
고양이 여자는 밤 12에 변하잖아
응. 근데?
난... 아니야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밤 12시에 나 봤었잖아. 바로 도망가 놓고는. 칫 
그거 나 아니었어. 
?
나 새벽 1시에 변해. 여자들과 달라
..... 정말?
고양이 남자는 그렇더라고. 여자들보다 1시간 늦게 변해. 


 아이들은 쉽게 믿기 마련이다. 

 그건 사람 동물이나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나 같은 진리 다른 형태의 진실로 존재한다. 어른이 하는 말, 특히 엄마 아빠 형제자매가 하는 말은 뭐든 믿으려 한다. 농담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유키는 맞으면서도 엄마의 반 미친 상태에서의 농담을 진담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고양이도 사람도 아니야. 넌 괴물이야. 저리 꺼져. 죽어버려 


 고양이 여자였다던 유키의 엄마는. 자신이 고양이 여자라는 것을 부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가 고양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유키는 엄마에게 맞으며 자랐다. 밤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고양이로 변신하기 전 1시간은, 유키가 어두컴컴한 안방에 갇혀 세차게 엄마에게 매질을 당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참을 만했어? 유키.... 
그래서 나왔잖아. 사람 세상에선 돈이란 게 최고더라고. 말이 되냐 이 나이에 그걸 깨달은 게
고양이들은 머리가 좋대잖아... 우리 고양이잖아. 
특별한 사람이긴 하지
아팠지. 우리 집에 오지 그랬어. 엄마한테 얘기해 놨었어
고마워. 근데 괜찮아. 새엄마는 안 때려. 몇 년간 숨기면 돼. 독립할 거야.  


 어른들이 큰 착각은, 아이들은 무지하고 생각 없으니 무섭게 통제하려 들면 겁을 먹게 된다는 것에 있다. 

그건 그러나 틀린 생각이다. 최소한 고양이 남자인 유키에게는. 맞으면 맞을수록 겁먹지 않게 된 유키였다. 이골이 났다고 했다. 


유키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참 잘 나가는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 아이돌 작가로 무난히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낮이었다. 


에이 부럽다. 넌 잘생기고 돈도 잘 벌고 나이도 어리고 능력도 있고. 게다가 신비주의잖아. 콘셉트 오져 아주
풉. 난 헤라 네가 부러운데? 아주 부러워서 지린다. 
에이 내가 뭐가 부러워. 헤헤
엄마가 있잖아.
.... 아 미안.. 그런가.. 
그래 봤자 고양이 남자야. 알지. 이 고양이 여자야 
너 좋다는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됐어? 
알게 뭐야. 근데 좀 이상해
뭐가? 
그 애 남자 친구가 있었거든. 근데 요즘따라 그 남자애가 내가 다니는 방송국 근처에서 자주 보여 
정말? 따라온 거야? 무섭다 보복이라도 하는 거야? 
그래서 요샌 새벽 1시 되면 일부러 공원에 안 가고 있어. 집에서 잠복 중이야. 


그 어두운 낮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와 유키는 계속 만날 수 있었을까 

 새벽 1시, 공원에 나온 유키는 한쪽 눈엔 못이 박혀 겨우 떼어낸 듯한 상처 자국과 철철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왼쪽 다리는 불에 지진 자국이 선명했다. 털은 거의 뽑혀 나가서 거의 반 벌거숭이의 모습이었다. 정말 그야말로 고양이가 아닌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움직이는 동물이었다. 


... 누구야 너
...... 헤라야 나야
어쩌다....
그 새끼야. 지 여자 친구가 나 좋다고 달려든 건 생각 안 하고. 애꿎은 나만 당했어. 여럿 몰고 오더라고. 
역시 사람새끼들은 하나같이 짐승보다 못한 쓰레기야. 믿지 마. 사람이라는 동물.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야. 웃는 얼굴의 낮이, 무서운 얼굴의 밤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야.


유키가 점점 내게 다가왔다. 


.... 저리 가 
헤라야?
나... 무서워...
.....
괴물... 같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 모습은 
너도 우리 엄마처럼.... 결국 날 떠나는구나. 
.....
기다리겠지만, 그렇지만 지금부터 나도 널 보지 않을 거다. 
....... 아... 미안해 유키야 난 그게 아니라...
네가 필요하면 그때 찾아와. 도와달란 말을 해. 내가 필요하단 말. 그 한마디면 된다.
단 아주 시간이 지나서... 해. 고헤 라. 그전에 널 찾아가지도, 찾지도 않을 거다. 다만 지켜볼 거야. 멀리서.


 그 이후 나는 유키를 만날 수 없었다. 

 말은 정말 무섭다. 한번 내뱉고 나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나의 그 오만하고 무서워서 감출 줄 몰랐던 어린 말과 그 마음은 유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뒤늦게 후회했지만 그럼에도 소용없었다. 몇 번을 공원으로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네가 보고 싶다고 미안했다고 고양이가 돼서 든 여자 사람이 돼서 든 찾아갔지만 유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밤

 정민을 향한 내 마음이 절실해서 울며 도와달라 했던 그 밤도, 유키와 처음 만났던 14살의 보름달이 환하게 뜨던 밝은 밤이었다. 


도와줘 유키, 네 도움이 필요해 
.....
거기 있어? 제발... 이젠 제발 좀 나타나 줘
.... 이제 온 거야? 그깟 그 새끼 때문에? 
... 알고 있었어? 
내가 말했었지. 지켜볼 거라고 멀리서. 
....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네가 원하는 게 뭐야. 
그의 집에 가보고 싶어. 벨을 눌러줘. 12시에. 그때 넌 사람이잖아. 그럴 수 있잖아. 날 잠깐 안고 있어줘. 
미쳤구나 너 
벨만 눌러주면 돼. 그리고 가. 고양이 좋아한댔어... 날 들여보내 줄 거야. 왠지 그럴 거 같아
아주 작정을 했구나 야 고헤 라. 너 왜 이렇게 변했어 
응 변했어. 나 변하는 거 같아. 처음이야 이런 마음 이런 느낌... 궁금해 알고도 싶어. 알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도대체 누구냐 널 이렇게 만든 그 새끼 
나도 몰라. 누군지 모르겠어. 그냥 이름. 직업. 성격. 목소리. 그게 전부야. 내가 아는 게 그게 전부야...
...... 자신 있어? 
뭘?
헤칠지도 몰라. 너 기억 안 나? 나도 당했어 사람들한테. 사람 동물한테. 
....... 그러지 않을 거야.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 새끼든, 그 새끼 와이프든 중요한 건 그들은 사람이야. 
.... 응
감당해 낼 자신 있어?
.... 감당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아
뭔 소리냐 뭘 감당하지 마
아니야... 아무튼 나 좀 도와줘 


계획은 예상대로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밤 12시, 그가 사는 1201호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번엔 예감이 틀렸다. 벨을 누르기 전 어디서 인기척이 들렸다. 정민이었다. 


'야 고헤 라 어쩔 거야 지금 저 새끼야? 뭐야 아저씨잖아.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갖고는... 겨우 저 딴...'
'야옹... 그르렁 (쉿, 다가오잖아) 
"어 고양이네? "


 막 야근을 하고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검은색 체크무늬 셔츠와 여전한 청바지의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수려하나 다소 지쳐 보이는 눈의 그가 나와 유키에게 다가왔다. 


"아, 저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아.. 아닙니다. 그게"
"혹시.... 김설 씨 아니세요? "
"아.. 저를 아시는지?"
"제 아내가 팬입니다. 소설도 드라마도. 설 작가님 작품은 모조리 읽어서 알고 있었어요."
"아.... 얼굴은 어떻게"
"아내가 보여줬거든요 신문기사에서"
"아... 네"
"근데... 이런 유명하신 분이 이 늦은 밤 저희 집엔 어쩐 일로..."
"아... 그게... 아. 제 팬 중 한 분이 고양이를 좋아하신 단 소리를 듣고요. 마침 제가 기르던 고양이를 3일 정도 맡겨야 하는데 고민했다가 무작정 이곳으로 왔군요 하하...
야옹.....(유키는 노련했다. 역시 나보단 어른이다) 
"아, 저희 아내랑 만나신 적이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소속사! 소속사에서 알게 됐습니다. 팬 분 중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단 걸.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현실 같지 않은 장면은 때론 현실이 된다. 

 드디어 그를 만났다. 고양이의 모습인 내가 지금 그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유키도 믿을 수 없었지만 정민, 그는 믿을 수밖에 없는 눈 앞의 현실이었다. 


"고양이가 예쁘네요. 작은 새끼 고양이네... 털이 이렇게 하얗다니.."
"네. 아 참고로 낮엔 집에 아무도 없으실 테니 제게 맡기셔도 됩니다. 제가 주로 밤에 글 작업을 해서요 "
"아.. 다행이네요. 아내가 3교대 호텔리어인데, 마침 이번 주말부터 낮 근무예요. 밤엔 이 고양이 끌어안고 자겠는데요 하하...."
"야옹...(호텔리어였구나... 예쁘겠다. 키도 크겠지. 역시 잘난 사람 곁엔 잘난 여자가 있구나) 
"아 혹시 아이는..."
"네 아들 한 명 있습니다. 그 녀석도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죠"
"네. 아무튼 낮엔 그냥 요 앞 놀이터에 놓아주세요. 이 고양이 꽤 영특해서 저희 집을 찾아오거든요"
"아, 이 근처 사세요?"
"그건 아니지만 아 네 뭐.. 아무튼 아내분 출근하실 때 놀이터에 놔주세요. 아 근데... 실례지만 새벽에 가능하신지?"
"와 저 소름. 아내가 새벽 낮 근무 타임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요. 
"야옹야옹....! (하... 이건 신이 주신 절호의 찬스야 이거 봐 시간도 딱이야 그렇지 유키야 그렇지 그렇지) 
"네... 아 이 고양이 시끄럽네 (야 고헤 라 조용히 해 지금 타이밍이고 나발이고 그게 문제냐 너 들킬까 봐 휴...) 
"야.. 옹...(미안... 그렇지만) 
"하하 고양이랑 대화하는 거 같으신데요?"
"하하. 제가 워낙 동물과 대화하며 글 소재를 찾는달까요. 아무튼 아내분께 제 사인 작품 전부 선물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
"아... 아내가 좋아하겠네요. 고맙습니다. 아 들어가서 차라도...."
"시간이 늦었죠. 비정상적으로"
"아... 네 하긴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네요"
"네. 제가 그 비정상적인 새벽 1시에 글을 써야 해서 이제 그만 가야 합니다"
"작가님이시라 말씀 참 잘 하시네요.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고양이.......(조심해 고헤 라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야옹야옹야옹야옹 (응응 응응..... 고마워 미안해) 
"이 고양이 참 귀여운데요. 제가 원래 고양이 별로인데 이 고양이 참 맘에 드네요 이상하네요"
"하하.. 너무 귀여워하지 마십시오. 사나운 녀석입니다."
"네 하하. 사나운 게 매력 있죠. 제가 아는 누구도 예쁘장한데 철벽녀에 사납기까지 하더라고요"
"네? (야.. 야옹?) 
"아 아닙니다. 아무튼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네... 새벽에 아내분 출근하실 때 놀이터에 풀어 주시는 것만 약속 지켜 주십시오. 3일 후, 일요일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
"네. 그럼"

 유키가 가기 전 나를 돌아봤다. 

 어딘지 모를 아주 불안한 자신의 아이를 떼어 놓고 멀리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엄마의 표정 같은 눈망울로. 뚫어지게 고양이인 나를 계속 쳐다봤다. 내가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자정이 지난 12시 30분, 그의 집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동물 남자아이의 장난감들이 거실에 즐비해 있었고 설거지는 하지 못한 채 찌든 때가 낀 냄비 한 가득의 설거지통 속의 그릇들이 그와 나를 맞이했다. 옷방이라고 추정되는 곳에는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침대인지는, 그위의 옷 더미들이 잔뜩 들어앉았어서 올라가 보지 않고서는 침대인 줄 몰랐다. 


 그러나 거실의 한편만큼은 신기하게 잘 닦여져 있었다. 벽의 중간에 장식물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이 있었는데 거기엔 그의 아내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마치 여배우 느낌의 고상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가볍고도 무서운 느낌의 웃는 미소의 여자 사진이었다. 

사진을 빤히 보고 있던 나를, 그가 감싸 안으며 말했다.
어서 와, 헤치지 않을게. 
이렇게 안고 있으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사랑받으려면 사랑해야 한다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는 평범한 사람 여자를 상상했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 말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그런 사람이라고. 나 같은 손이 깔끔하고 잘 들어주고 또 잘 말할 줄도 아는 그런 괜찮고 아름다운, 어여쁜 사람 여자여야 한다고. 


"야옹..(그녀는 어디 계세요?) 
"너 참 귀엽구나. 이렇게 작고 하얗다니.
 그의 하얀 손가락이 머리 정수리를 시작으로 뺨을 타고 목을 간지럽히기까지.
 나는 그저 그 희고 강한 손가락의 손놀림에 맞춰 그에게 내 몸 전부를 맡겨냈다.


 고양이로 사는 어두운 밤이, 밝은 밤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살다 보면 수 없이 많은 자잘한 기쁨이 기억 속에 묻히기 쉽다. 언젠가 기억 속에 곧 묻힐 거다. 이 장면도. 그럼에도 지금 이 생생하게 전해오는 그의 체온, 온기, 숨결, 그리고 나를 만질 때 나지막이 바라보는 그 눈짓 전부 다 기억하고 싶다. 그러니 결국 유일하게 지금 내가 고양이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건 그저 이 시간 동안 그의 모든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딱 달라붙어 있는 것 밖엔 할 수도,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야옹...(기억할 거야 이 시간 전부 모두) 
"너 어디서 왔니. 귀엽네.... 아 옷 갈아입으러 가야 하는데 휴... 오늘따라 지친다. 잠깐 이렇게 있을까"
"야옹...(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네가 와 줘서 다행이다. 조용한 이곳에"
"....? "
"애석하게도 널 보면 좋아할 아내가... 없네."
".... 야옹? (뭐지 이 사람?) 
".... 귀여워 너 정말.  오늘은 내가 고양이 마니아 아내 역할 해 줄게."
"야.... 옹 (?) 
"이리와. 헤치지 않을 테니깐" 


시원하지 않고 숨기는 듯한 대답은 숨기고 싶은 상처라는 반증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정면 승부를 해야 할 때 그래서 피하곤 한다. 그게 사람 동물이다. 


 그가 나를 안고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을 때 나는 할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고양이가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예의를 발휘해 내고자 했다. 그래 예의라고. 고양이가 사람 동물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그런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내가 그의 손가락을 핥아 주었을 때, 그는 나의 뺨에 키스를 했다. 


 그리곤 다시 나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내 갈색 귀에 닿는다. 귓불이 빨개지는 걸 느끼는 건 애석하게도 고양이인 나뿐이다. 어느새 빗소리가 나더니 바깥엔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았던 눈물이 어느새 내 눈에 고였으나 그는 알지 못했다. 고양이도 울 줄 아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역시... 없어선 안 되겠지.. "  
"야옹....(뭐가요?)
"이 나이에 무슨... 휴.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 (무슨 일인가요) 
"돌아올 수 있을까 근데... 난 이제 지친다. 그만 놓아주고 싶어 져"
"야옹 (무슨 일 있어요?)
"하 왜 갑자기 생각이 또 나는 거야 이 와중에... 내가 이젠 미쳤구나" 
"야옹...(무슨 생각인가요) 
"비슷한 부드러움일까... 뭐 하고 있을까 지금쯤 그 여자... 애" 
"야... 옹 (아.... 그 아이 혹시 나는 되면 안 되는 거겠죠?) 
"널 많이 닮은 것 같다"



꿈에서 만난 그는 사람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렷하고 선명하게. 그가 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다시 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이어졌다. 좋다. 여전히. 이 나지막한 목소리도. 그리고 그의 폴로 향수가 살짝 배어있는 손목의 향기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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