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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6. 2017

34. 책, 펼치면 열리는 것들

그것은 읽지 않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인생 레어템 

막 글 주의, 자체 실드 치고 갑니다. 


손에 걸리기만 해라, 다 흡수해 줄 테다  

 20대의 나는 보통 한 달 평균 7권에서 10권 정도의 책을 읽어냈던 것 같다. 1년 평균 100권 수준, 거의 해치워 나간다는 느낌으로 완주 해 낸 시기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자니, 30대 중반에 다다른 지금의 내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어마 무시한 속도와 양 임에는 분명하다. 


 어떻게 그 '어마무시'가 가능했는지는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아봐서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만 그렇게 해낼 수 있었던 커다란 이유의 중심엔 '소설, 문학'이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대학 다니는 동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는 다름 아닌 도서관 서가의 800번대로 시작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사랑을 나누진 못했.....헙!) 


 생각해 보면 전공 탓에 필요에 의해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그렇게나 재미있을 수 없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폭풍의 언덕, 그리고 대학 논문의 주인공이었던 애증(?)의 에드거 앨런 포우의 대다수의 작품들 일체까지 (하아 정말 오지게 읽었다...) 


검은고양이가 생각난다. 야옹.......! 


 그렇게 800번대 숫자 딱지를 겉표지에 딱 붙이고 도서관 책장에 세로로 각 맞춰서 일렬로 세워져 있는 문학작품이나 외국 에세이들은, 나의 열 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겨주시며 어루만지고 매만져주기를 바라고 기다리며 내게 이 말을 하는 듯도 했다. (하아 이 무슨 변태 적 기질.... 사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 라며)


읽어줘, 들어와 와. 네가 사는 그곳과는 또 다른 이 세계관으로 


 그래서였을까. 타이틀이나 표지가 다분히 맘에 들어 손에 걸리면 닥치는 대로 읽어댔고 더군다나 소설을 읽다가 쓰는 사람이 된 시기부터는, 패기작렬의 뜨거운 기운이 정수리 위에서 모락모락 김이라도 뿜어댈 기세로 달려들었었다. 생각해보면 읽는 주체에서 쓰는 주체로 변하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책에 대한 애증과 갈증도 있었을 테고. 


나를 빨리게 만드는, 대단한 녀석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이 현실인건지 아니면 책 속의 세계야말로 내가 모르는 진짜 현실인건지, 도통 구분이 안 되는 순간 말이다. 특히 이런 느낌은 대게 소설책, 그것도 꽤 깊이 있고 신박하며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녀석이라도 도서관 서가에 딱 하니 자리 잡은 채 나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엔 더더욱 말이다. 그 책을 읽는 나의 상태가 필요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반강제적인 타의에 의해서든 아리송한 그 세계에 점점 유혹당한다. 그리고 결국 빠져든다. 


읽는 그 시간의 나는, 결국 전지적 작가 시점의 3인칭 주인공이 되고 만다.
 또 다른 세계관에 빨려 드는 순간이다. 


빨려 들어가는건지 내가 빨아들이는 건지, 아무튼 '불살라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의지가 샘솟을 때 마법도 펼쳐진다며 하아...



펼치니 진짜 열리긴 하더라. 상상의 또 다른 세계관이 

 읽다 보면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마치 타임리프 공간이동(?) 하는 듯한 책 속으로 빨리는 느낌이 간혹 들 때가 있다. 그건 아마 책이 나이고 내가 책이 되는 경이로운 몰입의 경지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때면 나는 때때로 아예 현실로 나오고 싶지 않고 그 매력 포스 저는 책 속의 캐릭터가 되어 그 안에서 숨어 살고 싶어 진단 생각을 가끔 하게 되기도 한다. 왜?

사실 어떤 순간에는 책이라는 것이 내 삶의 도피 공간이자
또 다른 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을 공간이었으니깐. 


 그랬다. 내게 책이라는 건 도망치기 딱 좋은 도피처이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현실이 있는 제3의 공간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즐기고 사랑하고 좋아한다. 물론 책을 읽는 시간과 양은 20대의 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애석하게도 줄었지만 말이다. 읽는 나의 삶이 존재하는 세계가, 만약 결핍과 상처 덩어리에 싫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것과는 반대로 현실의 피폐함을 허용되지 않아도 좋을 책이라는 공간은, 그야말로 마음껏 상상하고 기웃거리고 또 행동하는 게 가능한 공간이 된다. 


판타지가 현실이 되지 못하라는 법이........ 없지만서도 그래도 뭐 AI 가 나오는 시대이니 되지 않을 법도 없다며 (뭐래죠) 


 여행서나 외국 에세이를 읽다 보면 못 가보던 공간을 마음껏 들락날락할 수 있다. 피하고픈 징글징글한 현실이 주어지기라도 할 때면, 역으로 더한 막장 포스 마구 찍어대는 므흣한 기운의 적나라한 캐릭터들이 마구 넘쳐나는 소설 속 세계에서 나의 환경이 그리 안 좋은 것도 아님을 위안 삼기도 한다.  (그레이의 50가지 비밀은 화이트에 불과하다. 마르키 드 사드의 소돔 120일이 내가 겪은 최고의.............! 하아 밝혀버렸...다 리셋각!!) 


 패기 넘치게 굴곡진 삶을 헤쳐 나가는 책 속의 그와 그녀를 보며 위안과 용기마저 얻게 되는 셈이다. 또한 그립고 원하고 간절한 어떤 장면들이 아직은 내 것이 아닐 때, 다만 책에서 먼저 간접체험을 하며 마음속 상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만드는 그야말로 우주적 기운이 오지게 샘솟는 마법의 도구가 돼 주기도 한다. 책을 펼쳤을 때 대체로 난 그랬던 것 같다. 


아무도 내 상상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다. 
책을 펼쳤을 때 이미 상상의 재료는 모두 갖춰진 상태다.
이제 가지고 오기만 하면 된다. 내가 사는 이 세상 속으로 말이다. 



책이야말로 진정 신박한 펼침의 마법임을 다들 알고 있을까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사실 공감도 된다. 종이책만 있었던 세상이 어느새 전자책도 있게 되는, 내가 읽는 주체인데 AI가 읽어주는 시대가 된 요즘이니 말이다. 미디어와 시각적 콘텐츠물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활자로 인쇄된 서책이 어느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예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기운이 남아있다면, 다분히 그저 열심히 읽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좋은 책을 말이다. 더군다나 다시 쓰기도 결심한 터라, 뭔 들 못 읽겠냐는 허세도 한몫하겠다. 


 좋은 책을 우연이든 필연이든 마주해서 그 책을 읽고 삶이 달라짐을 겪은 이들은 찾아보면 주위에 여럿 있다. 세상의 세고 센 소위 잘 나간다는 인간들의 곁에 있는 궁극의 시크릿 레어템이 바로 '책'이니깐 말이다. 그만큼 책이라는 건 진정 사람의 삶에서 신박한 내면의 변화와 삶의 마법을 일으키게 만들어 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편이다. 


 이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 우주의 모래알만 한 존재에 불과한 '헤븐'만 해도 말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내면의 나의 억눌렸던 지난 목소리가 글이라는 형태로 읽고 또 쓰게 되며 마음껏 세상을 향해 분출해 냈을 때, 나누고 싶은 나의 이야기들이 쌓이고 또 쌓이게 되는 순간. 


누군가에겐 쉬울 모든 것들이, 내겐 다 어렵기만 했을 때, 두손 모아 간절히 바랐었다. 그 때도 책은 곁에 있었던 듯 싶다..
내가 꿈꿨던 새로운 먼 세계가, 가까운 이 현실로 다가올 줄이야. 


 읽기로 결심한 나는 사실 상처가 깊은 또 다른 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그 속으로 들어감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은 정말 작든 크든 이렇게 변화된 나를 만들어 주더라. 정말 그랬다. 책이 도피처였는데 어느새 힐링처가 되었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들리고 물어보고 싶은 것들과 알아가는 데 제약을 주지 않더라.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난, 내가 만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를 차별하지도 혼내지도 않는 참 좋은 책들 말이다. 


책은 내가 필요한 순간에 아무 조건 없이 나의 비밀스러운 마음을 
무조건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연인이 된다.
펼쳤을 때 일어나는 마법의 순간이다.


 기댈 수 있고 믿을 수도 있는 친구 같은 책을 '나의 당신들'도 곧 만났으면 좋겠다. 그 때 내가 곁에 함께 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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