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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7. 2017

#6. 울기 좋은 밤

울어 줄래요. 나를 위해서, 나를 보면서  

고양이나 사람 동물이나 별 반 다르지 않은 하나의 뚜렷한 공생 점이 있다.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설령 그 마음이 어긋나고 삐뚫어서 원하는 걸 원치 않다고 말해야 하는 매 순간에 부딪치더라도. 인간들도 꼬리를 감추며 사는 걸까. 마음이 가는 방향의 꼬리는 이미 가리키는 데가 있는데 말이다. 마음 깊숙한 욕망의 화산 저기 어딘가. 그러나 그들은 다르게 간다. 결국엔 한참 떨어진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말이다. 참 이상한 동물이다. 솔직할 수가 없는 동물이다. 표정도 행동도 몸짓도 전부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서 엄마는 내게 사람 동물을 가까이하지 말라 했었다.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마음을 가졌단다. 헤라야. 그러니 빠져서도 가까이 가서도 안돼 
엄마는 아빠랑 결혼했잖아. 가까운 사이잖아. 빠진 거 아냐? 
... 사랑과 결혼은 달라. 
뭐가 달라 
너무 사랑하면 결혼이란 걸 할 수가 없게 된단다. 
어려워 엄마 좀 쉽게 말해봐 
나중에 헤라가 사랑에 빠지면 알게 될 거야. 
치.... 그런 게 어딨어. 
... 헤라야.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은, 널 흔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억해줄래 
....
그게 바로 사랑이거든. 우리 헤라도 언젠가 사랑에 빠지겠지 
모르겠어. 난 아직 그게 뭔지 몰라. 그냥.... 하루 사는 것도 무거워요.... 낮은 힘들어 사람 생활은
미안하다 엄마가.. 
엄마가 뭐가 미안해 
그냥 미안해 


 그땐 인생도 세상도 잘 알지 못하는 나였으니깐. 지금도 잘 모르겠으니깐. 가뜩이나 완전한 털갈이가 가능한 고양이도 아니라니. 반 사람 반 고양이 신세로 사는 빌어먹을 하루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사랑 따위는 애초에 내 마음에 있지도 않았고, 그럴 사람도 생길 리 만무하지만. 


그런 내가 지금,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이건 현실이니깐.  


 뚫어지게 쳐다보게 만드는 이상한 남자다. 

 가까이서 잠든 그를 보고 있는 내 꼬리가 자꾸 살랑거리기만 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이야. 이게 정말 현실인 걸까. 


오른 손목 밑에 작은 상처 자국이 있구나.. 귓불에 점이 유난히 새까맣게 도드라져 보이네
이 사람, 목젖이 저렇게 도드랗게 튀어나와 있네. 목소리완 무슨 연관이 있을까.,


 우리들이 가지지 못한 신체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는 동물은 정말 신기하다. 그들은 우리들의 크고 작은 심드렁한 표정에 그들만의 언어로 '냥집사'라도 된 으스댐으로 깔깔대며 우리를 쳐다봤었다. 별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는 내게 다르다. 아니 이미 다른 범주의 사람이 되어 가는 걸 고양이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이마에서부터 시작해서 엄지발가락 끝까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관찰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동물이라니. 새삼 내가 이렇게 관찰력이 뛰어난 고양이였나 싶다. 원래 우리들이 민첩한 관찰력을 지녔기에 쥐만 잡는 게 아니라 모든 작은 곤충들을 섭렵하는 재주가 있긴 하나. 그럼에도 말이다. 그는 정말 다른 걸까.


음....
야옹
아 잠들어 버렸네.... 몇 시지. 새벽 1시 지나가네. 이 사람 여전히 늦군 

핸드폰을 열려다 이내 갑자기 생각에 잠긴다. 그가 나를 쳐다본다. 무심한 표정이란 아무 미소 없는 저런 건가


아 미안 네가 있었구나. 음... 널 뭐라 불러야 되지
야옹..(헤라예요 내 이름 고헤 라) 
나비...? 
그르렁 (아 뭐야 갑자기 끈다. 풉 근데 웃겨요. 어. 웃네 이 사람) 
훗... 내가 생각해도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아 나 웃기지 고양아 
야옹...(아뇨 안 웃겨요) 


그때다.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연이어 목소리가 들린다.


어서 문 열어줘. 왜 이렇게 안 열어지는 거야 


드디어 만났다. 그녀다. 

 현관 앞에 여배우와 같은 느낌의 사진 속의 그녀가 실물로 다가왔다. 

어깨에 닿지 않은 새까만 검은색의 웨이브가 진 단발머리. 통통한 볼과는 달리 얇은 팔과 다리를 가진 여자..


 키는 160cm 정도 되려나. 호텔리어라고 해서 크다는 편견이었는데, 그녀는 작은 체구다. 목소리의 앙칼짐과는 대조되는 겉모습이다. 역시 사람은 알 수 없는 동물이다.   


자기 왜 이렇게 늦어.. 오늘 또 술 마셨어? 
회식이라고 말했잖아. 이번에 시니어급 매니저로 승진될 거야 
얘기했어 
진우는 잘 갔대?
어... 아이 캠프 가는데 엄마가 전화 정돈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또 엄마 아빠 따져? 덜 바쁜 사람이 하면 되잖아. 
내가 덜 바빠 보여? 
나보다 바빠 보이진 않아. 
.... 그래. 당신보단 바쁘지 않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수현이 너보다 안 바쁘겠어
왜 또 시비야. 재수 없게 
진우 앞에선 그런 말 자제해 달라고 얘기했잖아
지금 없잖아 애. 
진우 없어도 
아 몰라.... 어? 고양이?? 


 그녀가 날 보자마자 잽싸게 앉는다. 손톱의 연분홍색 네일이 차분해 보이나 그녀의 조심스럽지 않은 안음에 어딘지 네일 색깔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역시 난 관찰력이 뛰어난 고양이였어. 


야옹...(안녕하세요) 
어머 얘 너무 예쁘다. 어디서 난 거야?
당신 좋아하는 그 소설 작가가 주고 갔어
... 장난해 지금 나랑? 진짜야? 
어. 진짜야. 오늘부터 3일만 맡겨달래. 소속 내 가사에서 주소 알았다더라. 그 정도였어 그 활동?
내가 얼마나 고양이 좋아하는데. 자기만 아니었음 진우랑 같이 키웠어. 
진우를.. 키우기는 하고 있니 수현아 
..... 또 그 소리야? 그만 좀 해. 이리와 너 이름이 뭐니. 어머 만져야겠다 좀 귀여워 어쩜 좋니 


 재기 발랄하고 명랑해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예의 없는 꾀꼬리 같다. 가볍고 화려하나 어딘지 모르게 천박한 그런 목소리다. 


그건 그렇고.... 생각해 봤어?
뭘?
나 스튜디오 오픈하는 거. 
또 그 소리야? 
왜~
엄마랑 잘 할 자신 있어. 주말에만 여는 건데. 쿠킹 스튜디오. 그거 하면 이 지역 엄마들 다 휩쓸 수 있어 
수현아. 너 돈 모아둔 거 있어? 
내가 잘 벌고 당신도 잘 버는데 뭐가 문제야? 
내 말은 그래서 그 스튜디오 매매하고 임대할 비용은 생각하고 그 얘기를 하냐는 말이야. 
아 복잡해 월급 들어오잖아. 통장에. 
카드값으로 다 나가잖아. 더군다나 월급 관리하려 해도 너 그런 거 잘 모른다고 발뺌만 하잖아
관심 없으니깐 그렇지. 남편이 잘 버는데 내가 좀 쓰면 안 돼?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래서 해 줄 거야 말 거야. 
휴... 수현아 나 일하기도 사실 벅차. 바쁘기도 하고. 알지. 곧 미국 주재원도 간다고...
누가 모른대. 
나는 곧 미국 가는데 당신 안가? 생각이 있으면 스튜디오 소리를 하는 게 말이 되진 않잖아 


 항상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의 그가, 이렇게 다소 격앙된 낮은 톤의 목소리는 낯설다. 다른 사람 같다. 

그때... 그녀가 그를 껴안기 시작한다. 


에이. 왜 또 그러셔. 그러지 말고 우리....
그만하자 
알겠어. 오빠. 그만할게. 그니깐..


 그녀가 그를 더 세차게 끌어안는다. 나는 그의 발목 옆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그 둘의 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벗어나고 싶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서도 난 뭘 확인하고 싶어서 여기에 유키까지 끌어들여 오자고 한 걸까. 고양이인 내 심장이 왜 이렇게 갑자기 쿵하는 걸까.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다.  


수현아...
나 좀 지친다.
뭐가 
그냥.... 이런 패턴이. 좀 지치는 거 같아 
.... 무슨 말이야?
진우도 좀 생각하였으면 좋겠어. 집안도 좀 보고. 최소한 말이지. 
맞벌이가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냐? 
문제의식조차 없잖아. 너무 제멋대로야 당신. 


 그녀가 갑자기 그에게서 떨어진다. 또 순식간이다. 재빠르게 나를 안았다가 재빨리 또 내려놓는 그 습성은 고양이인 나뿐 아니라 사람 동물에게도 같은 일관성을 가진 그녀다. 갑자기 변해버린다. 예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서운 여자 사람 동물이다. 


뭐가 지치는데 
그만하자. 
뭐가 지치냐고...! 
이 시간에 들어와서 집안이 난장판인 건 그래 이해해. 내가 치우면 돼 항상 내가 치워왔으니깐. 
늦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어. 내가 언제 이해 안 했니.. 수현아 넌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는 있어? 
나도 일하는 여자야 왜 몰라 
아니 모른다 너. 아는 여자면 스튜디오 얘기 먼저 안 꺼내. 그리고... 씀씀이도 사실 지쳐 
뭐가 또 아씨 정말 왜 이래 
말투도... 제발 좀 부탁하는데 그런 말투 너랑 안 어울려. 밖에서 랑 너무 틀린 게 난 그런 게 지쳐 
.....
호텔에서 본 너랑 집에서의 너랑 너무 다르잖아. 그리고 네 씀씀이 버거워.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어 
돈 때문이야 결국? 
그 얘기가 아니잖아. 최소한이라는 게 있잖아. 허구한 날 외식에. 진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니?
왜 몰라 알지 
뭔데
다 잘 먹어 우리 진우. 밥이랑 근데 그 미운 세네 살이 원래 밥을 잘 안 먹어. 자기도 알잖아 
노력 안 하잖아 수현이 너.. 그리고 진우 제일 좋아하는 게 치킨이다 하.... 
...
하도 많이 먹어서. 알고는 있어? 
...... 그럴 수도 있지. 나 일하잖아 
일하는 여자 전부가 너 같지는 않아. 
....
비교는 안 해. 다만 우리 아들이 치킨을 좋아한다는 게 그냥 슬프다.. 그만하자 나 피곤하다
안 할 거야? 
수현아.... 생각이 있음... 제발 
아 됐어. 애정이 없어. 당신
사랑도 없고 분위기도 없고 여자를 너무 몰라. 남편이 잘 벌어서 그리고 나도 버는 여자니깐..!
그거 좀 쓰면서 살겠다는 건데 그게 뭐가 나빠.
돈? 모으면 되지. 모으면 되잖아. 근데 나 그런 거 관심 없고 잘 모르기도 해. 그래서 자기한테 하라 했잖아.
근데 자기도 안 하잖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턱이 없지만. 아무튼 나한테만 너무 몰아붙이지 마
나도 힘들다고! 
그래... 알겠어. 씻어


 그녀가 샤워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와이셔츠를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시작한 지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그녀가 속옷 차림으로만 바깥으로 나왔다. 물기 어린 섹시함이 도드라진다. 그녀와는 잘 어울리지만 그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느껴진 건 그냥 관찰력의 미스였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곁으로 좀 더 다가가 봤다. 


아 너 이름 이제 뭘로 지어줄까. 음... 생각 좀 해볼게. 오늘 말고 내일 


 그의 허리를 뒤에서 안으려고 하는 그녀를 그가 조용히 뿌리쳤다. 내심 안심이 되는 건 왜 일까. 정말 난 여기 괜히 왔다 싶다. 내가 너무 어린 걸까. 그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그도 남자고 어른이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는 아빠라는 사실을 내가 왜 그동안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고양이와 사람은 그래서 다른 걸까. 왜 나는 이렇게 단순한 걸까. 내가 미워지는 순간, 눈물이 갑자기 핑 도는데 그가 나를 안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나 일 좀 마무리하고 잘게. 얘는 내가 데리고 잘게 편히 자. 


 그가 나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벽걸이 TV가 한쪽에 들어가 있고 옅은 원목색 책상과 의자, 그리고 간간히 차 있는 책장을 뒤로한 채 노트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을 나는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도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노트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야옹...(무슨 생각해요?) 
하.... 정말 피곤하다. 근데 잠도 안 오네 오늘따라 또.. 
야옹...(뭐가 문제였던 거예요. 고양이인 나는 이해가 잘 안 돼요.) 
휴.... 내일은 진우랑 뭐 하며 놀지.. 서울랜드나 또 가야겠다.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그렇게 나를 쓰다듬은 채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잠에 들었다. 잠든 그의 곁을 지키며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눈에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래된 두 사람의 사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유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그런 앳된 느낌의 두 남녀가 있다. 


 사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참아 보려고 했으나 이내 마음이 출렁거리며 망상 속에 빠진다. 어느새 현실을 알아차린 나는 내 곁의 정민이 이미 내 하루의 습관이 되어 버림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내 하루의 습관처럼 일거수 일 투 속 모든 사사로운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제 겨우 그의 목소리, 몸짓과 손짓, 사소하게 흘러가는 말투 하나하나. 어디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몇 번 만나보지도 않은 이 사람에게 왜 이런 마음을 느끼게 된 걸까. 


잠든 그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일한 건 그저 바라보는 거다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고헤 라. 나는 참 울기 좋은 밤의 고양이다. 그래 봤자 나는 그녀가 될 수 없는 그의 곁의 고양이다.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반쪽의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고양이 여자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뿐이니깐. 


야옹....(울어줄래요 나를 위해서. 나를 보면서)  


동이 트고 새벽이 다가오려고 할 무렵, 서재의 방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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