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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04. 2020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자신이 모르는 낯선 삶의 방식은 무조건 이상하고 더럽다고 낙인찍고,

섹스 외의 일상은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폴리아모리는 문란한 일탈로 보일 뿐이다.

무지와 게으른 인식은 이토록 간편하게 폭력으로 연결된다.


-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책을 덮고 많은 문장을 적다가 이윽고 삭제를 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 를 꺼내어 기록으로나마 짧게, 두서 없이 시원하게... (어쩌면 고백 아닌 고백) 그렇게 남겨보고도 싶었다. 누군가에겐 '미친년 이상한 생각' 취급 당할 것을 각오하고. 왜 였을까. 이렇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드러내려는 에너지로 인해 하루 종일 중구난방 단어만이 둥실둥실 머릿속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홍승은, 낮은산, 2020.07.13.



'모노가미'에 '여성' 이라는 물리적 몸으로 태어난 나는 내가 '그런 줄' 알았다.

물론 여태껏 그런 줄 알고, 그렇게 산다. 은밀한 욕망이나 어떤 일탈된 생각은 철저히 차단시킨채. 사회에서는 이런 나를 두고 정상이라 할테다.  '건강한 정상 가족' 의 구성원으로, 일대일 이성 관계를 거쳤으니까. 그러나 어떤 면에서 사실은 '비정상' 인 생각을 가지고 산다. '사랑' 이나 '마음' 에 있어서 독점적 배타관계에 언제나 의문을 갖고 '왜' 라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결혼이라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관계를 일종의 '독점' 하거나 '소유' 해도 좋다는 암묵적 프레임으로 보이는 '기혼제'도 마찬가지... 아마 이런 궁극적인 갈증(?) 이나 의문이나 약간의 분노(?) 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 등등등. 이런 시선들에 날카롭고 예민한 촉을 언제나 두고 마는 나는 그 해를 기억하고 만다. 새로운 세계(?) 에 눈을 뜨게 된 그 이십 대의 시절을.



23살, 그 시절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마음 속에서. 아주 강하게.

내면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어떤 '것들' 로 인해 급기야 나는 늘 그랬듯 '책' 을 찾았고 그러다가 '그 세계' 를 알았다.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논모노가미' 에 대해서. '캐쥬얼 섹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오픈매리지' 의 관계들 까지도. 외국의 사례와 논문을 뒤져본 적도 있었다. 제 풀에 지쳐서 '그만' 했었지만..



언제부턴가 내게 요구되는 성역할과 서로를 속박하는 연애의 관습이 불편했다. 결혼이 종착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기본 전제도 일찌감치 비혼을 꿈꿨던 나와는 맞지 않았다. 소유하고 구속하는 사랑의 방식은 반복적으로 상처를 남겼고, 그 과정에서 데이트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나에게 연애는 달콤하고 위험한 독 사과였다.


흔히 폴리아모리는 '다자연애' 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나에게 폴리아모리는 '비독점' 과 '합의' 를 위한 노력과 같은 말로 다가왔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설사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소통하고, 소유만이 사랑의 방식이 아님을 인정하는 관계. 나는 예비 가족이 되기 위한 스텝이 아닌 고유한 스텝을 밟고 싶어다. '폴리아모리'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나만의 사랑을 살아가고 싶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p.36, 37




말은 다양성을 추구하고 인정한다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수의 아름다움으로, 소수의 아름다움을 능멸하거나 멸시하는가. 



한 때 나는 '당시의 내 생각'이 완벽히 차단되고 묵살되어야 '정상' 적으로 살아지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서로 끌리는 마음과 매력을 주고 받았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암묵적으로 택했지만(?) 공식적 선택에서 배제된 한 사람에게 여전히 마음과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그들과는 결국 오래지 않아 결별했다.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았다... 논모노가미였던 한 사람은 철저히 모노가미인 두 사람과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걸 느꼈으니까. 내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달랐고 겹치지 못하다는 걸 철저히 인정했기에. 



사랑의 세계 안에서, 어떤 사람의 사랑은 상대와의 '관계맺음'이 섹스를 제외한 그 이상의 것일 수 있다. 

영적일 수 있고, 대화만으로도 희열과 기쁨과 안도와 안전과 그로 인한 어떤 '사랑' 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누군가는 그 관계가 단순히 '성적' 섹스의 주고 받아야 마땅하고 '내 연인' 이니 남의 연인이 되어선 안된다 라는 식의 '정상' 을 언제나 주창한다. 그러니 '다자간의 자유 연애'는 이 세계에서 여전히 소수자이고 비난 받아야 하고 멸시당하고 조롱과 희롱당하며 돌을 맞아야 하는 철저한 아웃팅의 대상이나 다름 없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연애를 하는 연인이라면 무조건 '섹스' 가 우선순위일 것이라는 원시적 생각. 

그로 인해 한 사람을 독점하고 감시하고 통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대일의 배타적 관계가 과연 건강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주체를 단순히 남자 혹은 여자라는 철저한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한 인간을 정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책 한권으로 누군가들의 '사례' 가 버젓이 나오고 나서도, 아마 이 작가님과 그들의 연인들이 숱하게 여전히 받고 있을 타인들의 편협한 시선과 질책, 도덕성 운운하는 누군가들의 서슬 퍼런 잣대에, 누군가의 '사랑' 은 돌을 맞아야 '정상' 이라 판단될 지 모르겠다... 판단되지 않을 자유는, 철저히 구속되고 생략된 채. 



투명할 수 있는 건, 어둠 속에서도 자꾸만 빛을 내뿜으려고 하는 '노력' 때문일 지 모른다. 



가족은, 사랑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화두다...

'이상한 정상 가족' 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지는 각종 가족들을 둘러싼 사건과 사고들...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 일대일의 이성 관계만이 '이성적이고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관계' 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이성적이고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이성 관계 속에서 데이트 폭력을 주고 받고 기혼 이후에 이혼을 하며 혹은 불륜을 저지르는 걸까. 불륜이 애초에 '죄' 가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상대로 하여금 불투명한 거짓말이 전제가 되기 떄문 아닐까...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왜 '노동' 으로 보려 하지 않을까... 일종의 '노동' 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은 채, 한 쪽으로 치우치는 '사랑, 돌봄, 마음의 주고 받음' 이 여전히 왜 당연시되는가. 왜 그것이 '정상' 으로 보이는 것일까...




한 사람의 부재로 흔들리는 공동체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위태로운 공동체에 기대어 미래를 희망하기엔 우리는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는 존재다. 사회는 마땅히 제공해야 할 복지의 의무를 가족, 특히 가족 내 여성에게 부과함으로써 가족 (혈연) 은 둘도 없는 유일한 안식처라는 인식이 굳어지는 데 일조했다. 무임금 혹은 저임금 돌봄노동으로, 돌봄의 대물림으로, 아픔이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돌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가족을 넘어선 돌봄의 확대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p.220




작가님의 초기 작부터 지금까지. 한 여성의, '자전적 소설로 읽혀지길 바란다'는

이 책을 아주 느리게 읽으면서 생각은 튀고 또 튀어 나가 '감추어 진 나' 와 대면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여전한 어떤 사회와 타인들이 정의한 정상적인 기준들을 볼 때의 묘하게 이상한 불편함, 정상 같지 않은 것들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것들, 반면에 비정상이고 비주류이며 소수이니 묵살되거나 무시해도 좋다는, 타인의 오래된 서사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단편적이고도 편협한 시선...



타인의 서사와 맥락은 생략된 채 누군가를 해석하거나 판단하려는 정상이라는 무례함에

여전히 다정한 해명(?) 을 담담히, 용기 있게 고백하는 이 분과, 이 분을 둘러싼 연인들의 태도와 생각은 나로 하여금 그저 그들이 기특해 보였다....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사랑, 그 관계의 건전성(?)과 지속가능한 유지력을 위해 얼마나 일상 생활 속에서 '주류' 들에 대항하여 '비주류' 로서 분투하고 있을지...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기에. 연약하지만 굳은 살 마냥 단단해지는 그들의 성장과 'N개의 사랑' 을, 나는 이해하고 또한 한껏 어떤 뜨거운 응원을 해주고만 싶었다.. 



N 개의 사람처럼  N 개의 사랑이..존재한다면. 



우습지만, 배우자에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마음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렸다.

당신에게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이, 섹스하고 싶은 사람이, 정말 가족 마냥 걱정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꼭 알려 주기를 바란다고... 감추지 말기를.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투명' 할 수 있는 신뢰까지 가기를 소원한다고도. 그랬더니 그이는 그저 웃고 만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그리곤 반문했다. 그 말은 반대로 내가 그럴 수도 있다는 말 아니냐고. 나도 역시 웃고 말았다. 뒤의 따라오는 문장들은 그의 정신 건강을 위해 방백처리를 한 채. 또한 언젠가 정말 말 그대로 '여보, 나 애인 좀 만나고 올께' 라는 그이의 문장이 들리는 날의 나는, 과연 해맑게 '잘 다녀와' 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라는..어디까지가 '사랑' 이고 어디까지 '신뢰' 할 수 있는 관계가 인간 관계 안에서 성립할 수 있을까 라는, 답 없는 생각만 간직한채. 



사랑은 결국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여져야' 성립 하는 것의 영역일 지 모르지만

인정 유무를 떠나, 개인 스스로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과 움직임.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은 엄청난 용기이고 희귀하고 귀한 가치라고...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세 사람의 사랑이 평온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인터뷰가 참 인상적이었던, 

좋아하는 이 에세이 작가님은, 여전히 내 눈엔 '예쁜 작가님' 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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