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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05. 2020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친절한 안부, 작은 대화, 적절한 호응, 다정한 응원, 이걸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운이 좋아 이런 걸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었다. 덕분에 흔들리는 내내 버틸 수 있었다.

누구에게 누구라도 그러면 좋겠다.  이제 내가 기필코 이루고 싶은 단 하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마음에 확 와닿는 에세이는 솔직히 손에 꼽는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어떤 이야기는 뻔한 줄 알면서도 공감과 위로로 와닿고, 어떤 이야기는 너무 무겁게 가르치려는 듯 진지해서 혹은 가벼워서 남는 게 없이 약간 아쉽다는 느낌.... 그러나,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와 같이 - 본격 식물 에세이스러운 - 문장 하나하나 느리게 읽으며 기분이 좋아지고 포근해지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묘하게 탁해진 시간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읽고 난 이후의 깊은 여운을, 오늘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만드는 에세이는 사실 흔치 않다. 말하자면 독자로서 이런 책을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일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순간은 늘 삶을 기쁘게 채워주는 듯싶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을 언제나 가질 때면..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이재영, 흐름출판, 2020.07.23.



앞으로 몇 년 후에 찾아올 좋은 마흔,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계속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다. 나이 드는 노년의 삶을 생각한다.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틈새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생활을 유지하며 소박하게나마 관찰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 풍경들과 스스로의 감정들을 글로 적는 시간을 쌓아가면서도. 언제나 머리 한편에는 이렇게 읽고 쓰는 모든 이유들의 근본적 이유는 다름 아닌 '좋게 늙어가고 싶다'라는 바람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 나이기에, 이 작가님이 이상하게 '롤 모델'처럼 느껴졌던 건 왜였을까. 흔들리면서도, 연약한 줄 알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다정한 시선들을 식물들과 각종 들풀들로부터 찾고, 생활 속에서의 여유와 행복을 찾는 사람. 힘든 면보다 그 속에서 희망과 밝음을 찾으려 하는 듯한 느낌... 이 작가님은 분명 '바르고 좋은' 여성이고 엄마이자 작가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마냥 '좋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일지 모른다. 



목차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클로버의 잎이 행복에서 행운으로 변하는 건 짓밟혀서라고 한다. 원래 세 장의 잎이 나야 정상인데 잎이 밟혀 생장점이 손상되어 기형적으로 잎이 하나 더 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시골 산책길에서는 찾기 힘들고 상대적으로 사람 많은 도시에서 행운의 네 잎을 발견하기 더 쉽다. 클로버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 조금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깨닫기 힘든 곳에 행운이 나타나고 행운을 찾기 어려운 곳에 행복이 가득하다는 것이.   

p.32, 클로버, 행복과 행운은 한 끗 차이 



아무것도 아닐 것에서 쓸모를 발견하는 아이의 마음이, 그것을 주워 든 아이의 손이 엄마처럼 나이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마도 부모의 욕심이려나?  

p.79, 낙엽, 내 눈에는 쓸모없어 보였는데 



흔들리지만 꿋꿋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개인적인 생각이 나, 이 분이 특히 '양육'을 하시는 분이셔서 그런지 묘하게 공감되는 문장들이 있었다. 

딱히 보살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일상 속에서의 '비워냄'이라든지 가벼울 듯싶으면서도 일상과 생활을 살피고 돌아보는 일에 대해 스스로 맑고 투명하게, 차분하게 잘... 흐르는 듯싶어서. '엄마'라는 역할에 조금 더 '열중' 하는 요즘의 나로서는 이 분의 각종 들풀이나 식물을 콘셉트로 하는 원고 한 꼭지 한 꼭지들이 깊숙이 와닿아버렸다. 



본격 식물 에세이? 라기엔 너무 가벼운 표현이지만, 난 이 책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사진도 문장도 모두 다




성공한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고 여백 없이 빵빵하게 명예까지 얻는 삶이 아니라 결핍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삶. 그래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니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나 한 가지쯤 남보다 못한 무엇, 남이 가지지 못한 무엇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이 언제 어느 때 아름답게 빛날지 모르는 일이다. 


p.139, 단풍, 결핍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다정하고 아름답게, 우아하지만 청량감 있게 

욕심이 좀 과한가 싶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은 요즘이다. 앞으로의 마흔, 그리고 쉰, 그 이후의 노년의 삶은 어떨까. 내내 상상해보았다. 책방에서 이웃들을 맞이하고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따뜻한 얼그레이 티 한 잔과 직접 구운 쿠키를 대접하며 싱긋 웃고 있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기분 좋게 설레는 그 장면을, 나는 힘들 때면 종종 떠올리며 나를 살피곤 한다... 흔들리는 영혼이어도 마음에 어떤 꽃들이 피워지면, 그 영혼은 생기를 되찾고 다시 살아나니까. 그게 바로 '인생' 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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