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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2. 2020

집에서도 행복할 것을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기는 걸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





참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사라든지 양육이라는 것에 대해서.

퇴사 후 집에서 온전히 '식구' 들을 살피는 시간 속에 부끄럽지만 나는 어떤 무력한 열패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사라져 가지만 대신 누군가는 살아나는 삶의 역설적인 것들, 인생은 이런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걸까 생각하다가 어느새 담담히 인정하고 마는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다. 




누군가의 고단함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의 질이 좋게 변한다면.

'나'라는 주체의 수고로 인해 '너'라는 객체의 다정한 미소와 온화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세하게나마 느끼는 순간순간들 덕분에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잘하지 못하거나 익숙해지지 않는 걸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적성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노련함의 기술이 생기고 일정 부분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어느새 일상의 부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시들어가는 꽃이라도, 제 몫을 다 한 꽃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새벽 5시 15분, 알림음이 울리자마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씻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양파와 애호박, 당근과 새송이 버섯, 그리고 달걀을 꺼내어 식탁 위에 둔다. 김치냉장고로부터는 썰어 놓은 묵은지를, 냉동실에서는 소분해서 얼려 놓은 돼지고기를 꺼내고 난 이후 머리끈을 질끈 묶는다. 그리고 사사삭. 그 날의 배우자 도시락통을 식구 1인에게 양도한 이후 아이들의 아침 반찬을 락앤락 통에 담는다. 뿌듯한 정복감, 알 수 없는 어떤 쾌감, 그것은 나로 하여금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 어느새 적성인가 싶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그 무렵, 잠에서 덜 깬 듯 반쯤 감긴 눈으로 인형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안방에서 거실로 걸어 나오는 아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루의 시작이다.




역병 같은 '코로나'로 인해 가정보육이 지속되며

10분마다 번씩 나를 깨우는 5세 남아들의 목소리. 그들의 요구사항에 순순한 태도로 시중을 들며 나는 무언가 스스로 '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궈내지 못했었다. 이건 해도 해도 인정받기는커녕 너무나도 당연해서 티도 나지 않는 '노동'에 지고 마는 노동자라는 기분 때문이었을까... 아마 재택근무를 하며 돌봄과 가사까지 유지해야 하는 워킹 부모들은 더 한 고충을 느끼실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정 수준의 업무들을 쳐내야 하는 직장인의 고단함에 비할 순 없겠지만 대신 그들은 시급을 받거나 월급을 받는다. 반면 나로서는 투여하는 노동 대비 최저시급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자처해서 시작한 글쓰기 노동자로서의 삶에 '가사'라든지 '메인 양육'과 같은 종료 시점이 언제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프로젝트가 붙어 버리는 순간, 이 게임은 그야말로 치트키 하나 없이 끝나지 않은 스테이지를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천하무적 슈퍼마리오가 되어야 버틸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달려가다가 가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분노와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이대로 져 버리고 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석양이 보인다. 하루라는 스테이지를 클리어 했다는 묘한 성취함은 우울함을 이기려 노력 한다.



삶이라는 게임에서 최소한 지지 않는 자는, 긴 행복보다 짧은 행복을 자주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불행을 덮어줄 수 있는 짧고도 강렬한 순간들을 많이 축적해 나가는 것. 일상에서도, 그리고 '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갇혔다'라는 감정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집에서도 행복할 것'이라는 의지를 가진 자의 어떤 노력들이다. 그리고 나는 배우자의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한 이번 주부터 -내가 좋아서 시작한, 그리고 조금은 필요에 의하기도 했던 -어떤 노력들을 '더' 하기 시작했다. 감정에, 일상에, 이 시간들이 나를 갉아먹도록 놔두지 않으려고. 그렇게 삶에 지지 않으려는 한 인간은 가슴이 그리 뛰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은 채 때로는 무력함에 빠지려 하더라도 결국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내려는 무언의 의지는 그녀의 행동을 수반하고 그 움직임들로 인해 '너' 뿐 아니라 '나' 도 다시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마치 '순간'의 힘을 믿는 것처럼..



잊을 수 없도록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지켜보고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맛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아침의 미명 속에서도 우리가 달리는 이유다. 그게 바로 때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지지 않는다는 말 中, 뛰지 않는 가슴들, 모두 유죄, p. 299, 김연수 -



요즘 나는 바란다. 살아있어야 보이는 것들을 더 사랑하기를... 하늘, 바람, 석양, 그리고 당신과 너희들...



가사든 양육이든 뭐든지 간에 좋은 '마음 상태'로 유지시킬 방법을 찾는 요즘

가뜩이나 청소 성애자인 나는 부쩍 물건 정리와 청소를 자주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화가 나려 할 땐 침묵하는 습관을 조금씩 들이고 있다 보니 말수는 더 적어졌지만 대신 목소리로 내뱉는 문장들은 꽤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법한 단어 활용력으로 무장하다 보니, 후회로 점철될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여전히 눈물은 많지만... 아이들에게는 화가 나 있는, 언제나 피곤해 보이는 엄마가 아닌 웃기고 다정한, 요리 솜씨가 날로 늘어가는 살림 쟁이 엄마가 되어 가는 중.. (이라는 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을 '완벽’이 아닌 무사 '완료' 하기를.

식탁 위에 펼쳐져 있는 읽다만 책의 표지와 동시에 거실에서 블록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시야 안에 들어온다. 이윽고 배고픔의 신호를 보내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집에서도 행복할 것을 다짐한 나는, 이렇게 변해버린 이 삶에서 아직 지지 않았다고. 좋은 순간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잘 먹고
잘 놀고
더 잘 놀고....;  (이게 너희들의 본심이라는 걸 안다)


잘 쉬는 너희들이 집에서 더 행복하면 그걸로 됐지 싶기도...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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