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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26. 2020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빠지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순진한 착각 중 하나는, 사랑이 지니는 물성 중 '끌림' 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밀어냄' 은 없을 것 같았고 끌리는 그 '감정' 상태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 고 믿었다. 기존에 '알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들은 시간을 지내고, 견디고, 또 말없이 흐르면서 다시 재해석되곤 한다. '사람' 이라든지 '사랑' 도 마찬가지. 끌림은 짧고 환상적이며 밀어냄은 잦고 일상이라는 걸, 유자녀 기혼녀가 된 이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침대 위에서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끌리기 바빴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 마냥, 각각 밀어냄의 타이밍엔 시차가 있겠지만. 서로의 몸을 탐색하는 것에 꽤 격정적인 에너지를 쏟기에 우리에겐 일상에 균열에 틈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깨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해지기 시작했던 시절. 쌍둥이 출산 이후 그 일상의 묵직한 괴로움은 더욱 거센 밀도로 다가왔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눈에 띄지 않는 '밀어냄'을 우리는 서로 주고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끔 그이에게 건네는 농담 중 하나는 1시간을 연속적으로 잘 수 없었던, 그 지옥 같기만 했던 육아라는 사투 속에서 살아 견디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기에. 그래서 당신을 밀어내고 나와 아이들이 살려했던 그 시간들로 인해, 내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라고. 그러니 당신은 응당 이해해야 하노라고. 나는 가끔 내게 다가오는 그에게 살벌한 농담을 던지곤 한다. 슬며시 밀어내며... 



이불은 알지만 사람은 모르는 것들



그를 뜨겁게 끌어안을 수 없게 되어버린 '현재'가 사실 퍽 슬프고 미안하고 괴로울 때가 있다. 

새벽 출근길, 그를 배웅하다 가끔 볼을 만져주고 싶은 충동도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건. 어색해서일까, 아니면 그도 별 말없이 내게 건네는 문장이 이젠 동료로서의 애정이 담긴, 그렇지만 사무적이고 건조한 문장이 묘하게 거슬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를 만지는 것에 이제는 인색한 '진짜 가족' 이 되어 버린 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단지 알 수 있을 법한 해석은 이런 정도다. 



이 묘한 '밀어냄' 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무지에 의한 것도 아닌

그저 동고동락 이후에 찾아오는 가족으로서의 경험과 시간에 의해서 재배열되는 사랑의 어떤 종류들이라는 것. 그러나 애석하게도 가끔 그 '가족'에서 탈피하여 '혼자이고 싶은 욕망' 이 강해지기도 한다는 것, 그렇지만 끝내 개인이 느끼는 그 번뇌를 물리치고, 그 개인들의 선택으로 인해 '부모'가 된 이후 '가족'이라는 공동체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할수록 견고하게 뭉쳐지는 또 다른 종류의 어떤 마음들, 그로 인해 서로를 보살피고 지키기 위한 뜨거운 분투는 결국 서로의 몸을 넘은 또 다른 사랑의 종류라는 것.... 그리하여 다가오는 육체의 어떤 밀어냄들이 사랑의 '종료'의 신호는 아닐 것이라는 것마저도.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4, 전혜린 - 




혼자 벗고 자는 게 더 편할(?) 때가 생겨 버린 나는 그저 애석하고 미안할 뿐이다. 



아이를 가진 기혼남녀가 된 이후, 서로의 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이미 끌림보다 밀어냄의 물성이 강해졌다는 걸 느끼지만 한편으로 나는 믿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랑이 부지불식간에 종료된 건 아닐 것이라고. 다만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고 서로를 연민하는 마음은 더 강해질 뿐이라는 것을. 유자녀 기혼남녀의 인생이라는 것이, 처해진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고 부딪히며 살며 특히 그들에게는 '책임'을 요하는 여러 가지의 것들로 인해 그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무서운 용기와 정신력을 요하기에. 그러하니 '밀어냄' 은 어떤 서글픈 부작용(?) 같은 것일 뿐이라고.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에너지보다 더 소중한 우선순위가 생겨버렸음을 서로 아는 것이라고. 새벽 출근길, '동료' 로서의 사무적인 문장을 주고받으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 잘 다녀와. 

- 둥이들과 고생하시라. 힘든 거 아니까. 

- 밖에서도 힘든 거 아니까... 어서 가시라.




이제는 사라진 뜨거움이지만, 대신 그 자리엔 다른 종류의 정직하고 성실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걸, 

그도 나도 알고 있기를 바라는 새벽... 을 지나 어느새 하루의 반, 그러다 한 해의 반은 흐른다.

'부부'와 '부모' 사이의 경계 어디쯤에서.




그래도 당신과 내 마음은 이런 풍경을 향한다는 걸.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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