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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3. 2020

마흔의 인문학 살롱

지름길은 없다. 하지만 마흔 이후 배움을 평생의 습관으로 이어오는 동안, 

나는 고전을 비롯해 다양한 배움의 경로를 통해 동서고금의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고 

마침내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공부가 좋다. 



- 마흔의 인문학 살롱 - 





친정 엄마는 몇 년후면 곧 예순을 맞이하신다. 

그런 그녀는 요 근래 책을 들기 시작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그녀는 내게 책을 추천해달라 하셨다. 나는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책을 고르자니 막상 막연했지만 장르 구분은 어느 정도 될 수 있었다. 그 나이에 경영이나 경제, 자기계발서나 가벼운 에세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일 수 있지만) 반면 조금 더 노년의 삶을 깊이 있고 남은 생의 마음과 삶을 정화시키며 온화하게 흐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문과 교양. 건강과 의학과 같은 실용서들을 추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덮은 이후 '이 책도 건네 드려야지' 싶었다. 마흔앓이 중인 30대 후반이라 할 수 있을 나는, 자꾸만 노후라든지 노인의 삶, 우리 부부의 좋은 죽음을 바라기 때문일까...



마흔의 인문학 살롱, 우재, 카시오페아, 2020.08.17.



책은 크게 신화, 미술, 와인이라는 3개의 주제로 흔히 '파고드는' 공부를 하는 저자의 이야기와 해당 지식이 잘 섞여져 있었다. 사실 와인이 조금 뜬금없는 주제 아닌가 싶었지만, 저자의 꿈이었다던 '그림' 에 대한 열망을 어른이 되어 다시 떠올리고, 그 꿈을 마흔 무렵에 다시 꺼내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며 시작한 미술사 공부가 결국 역사나 신화, 철학이나 미학 등 다양한 분야로 이끌게 되었다 하니 어쩌면 그 연결들이 그녀로 하여금 서양 문명사가 담겨 있을 '음주 문명' 과 같은 와인까지도 두루두루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여튼 덕분에 생전 관심사에서 많이 빗겨 있었던 와인에 대한 간접 경험까지 하게 되니, 나로서는 감사할 수밖에. 





마흔 이후의 공부는 어떤 틀에 나를 맞춘 딱딱하고 무거운 공부가 아니라, 내 마음의 길이 향하는 곳을 따르는 유연하고 즐거운 공부여야만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안고 오랫동안 깊고 넓게 지식의 세계를 유영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미술과 신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쓰인 고전들도 공부하게 되었다. p.22



수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공부' 라는 걸 제대로 하는 이들은 그것에서 스스로 '질문' 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분은 그러셨을 지 모르겠다. '나만의 질문' 을 만들어 나가셨다던 그녀는 플라톤이든 신화든, 조지프 캠벨이든 샤갈이든, 신화와 미술을 넘나들며 지식 섭취(?) 이후 '생각' 끝에 어떤 깨달음들에 다다라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 정말 보여주기식 독서가 아닌, 스스로 파고 들며 궁리하고 고뇌하며 고독함도 견디면서 읽는 독서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더 이상 공부할 도구나 기회가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와 '나만의 질문' 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젋은 시절부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나를 찾기 위해 거쳐온 과정은 신화 속 영웅들이 통과하는 모험 못지않게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었기에 무수한 시행착오들을 겪었다. p.37 


미켈란젤로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로댕은 세상을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로댕은 지금까지 걸출한 조각가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훌륭한 멘토가 있다는 사실은 나의 삶과 영혼을 성숙시켜 나가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줌을 이 두 예술가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p.58 



공부하고 생각하고 성찰하는 사람들만이 적을 수 있는 문장이 있겠지 싶었다.



와인은 애호가가 되기는 커녕 

누가 선물로 줘야 그제서야 입에 겨우 댈 정도로 내겐  '주류'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하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되는 '와인' 에 대한 이야기는 무식한 내게 희미한 관심과 호기심을 건네주었다.  약으로 처방되었다던 와인이라 하니 이제는 맥주보다 와인을 마셔야 하나 싶고. 



실제로 고대부터 와인은 약으로 처방되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에게 약으로 와인을 자주 처방했다고 전해진다. 호주의 유명한 와인 회사인 펜폴즈를 세운 크리스토퍼 펜폴드도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을 간 의사였다. 약으로서 와인의 효능을 믿었던 펜폴드는 환자에게 처방해줄 와인을 만들기 위해 소규모로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주조했다. 그렇게 와인이 인기를 끌면서 1844년 와인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p.208 




16,800원이라는 가격이 조금 미안할 정도로

미술과 신화, 와인에 대한 고루고루한 지식과 누군가의 격과 품위 있는 생각을 읽는다는 건 이토록 미안한 가성비가 있을까 싶다. 흔히 양서가 주는 기쁨과 감사함은 돈을 주고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게다가 이제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나 겉으로 행복한 척, 속으로는 텅 빈 공허함과 곪아가는 괴로움을 붙들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나는 그래서 이렇듯 현재는 '마흔 앓이' 를 하고 있지 않나 싶다.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읽고, 글을 쓰고 또 쓰는 이유도

어쩌면 나 또한 그런 방식으로라도 '나' 를 진흙탕 같은 삶으로부터 건져 내어, 나를 살리고 구원시키고, 다시금 스스로 질문을 하고, 오늘의 현존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 지키며 자신 또한 지켜내고 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결국 말미에 '죽음' 으로 치닫는다. 어쩌면 나는 잘 죽고 싶어서 여전히 이렇게 좋은 마흔과 좋은 노후를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다. 



자유롭고 단단한 개인으로 성장하면서 아울러 주변의 사람들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는 그릇의 나로 늙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오늘도 한 권을 읽고 글을 쓴다. 지금 처럼.. 



읽거나 쓰고 공부하는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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