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나 쓰는 이유는, 덕분에 바다 사진을 자꾸 찾아봤다는 핑계일지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오디세이'를 갖고 있으며,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내 오디세이는 특이하고 신기한 모험담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 남극이 부른다 -
'일'을 하는 현장이 사면이 막힌 오피스 건물이 아닌 바다라면 어떨까.
그것도 망망대해... 게다가 본토가 아닌 저 멀리, 상상조차 잘되지 않는 아득한 먼 곳, 태평양이라는 곳, 대 서양, 심지어 남극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들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따라가는 '운명' 적 업이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어쩌면 이 저자에게 '바다' 란 운명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읽는 내내 좀 힘들게 읽은 게 사실이지만 - 과학, 지질, 어떤 면에서는 한 편의 논문을 읽는 느낌마저 들었으니 - 읽은 이후 몇 자의 글을 쓰다가 임시저장 버튼을 누르고 한동안 바다 사진을 찾다가 나도 모르게 다른 책을 읽어 버리고 말았으니. 여하튼 나로 하여금 '동경'과 '그리움'을 불러일으켰었던 의외의 책...
남극이 부른다, 박숭현, 동아시아, 2020.07.31.
책을 읽기 전에 언제나 글쓴이를 생각하면서 읽는다.
문장은 결국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 믿고 있으니까.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들끓어 오르는 마음이 쓰인 진짜 문장들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이 책 또한. 바다와 일, 자신의 연구,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은 한 사람의 에세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나는 - 심지어는 문학조차도 일정 부분 그러하다고 믿는다 - 이 저자분의 모험기와 흡사한 내용들을 즐겁게 읽으면서도 마냥 부러워했다.
속도 없이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험한 연구의 길이고 탐험의 길이며 혼자가 아닌 다수와의 해양 탐사 작업을 요하는 거친 일이라는 것을 잘 모르면서도... 너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거나 투명 망토를 입은 채로 나도 같이 따라가고만 싶었던 상상을 해 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바다는, 바다의 석양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의 대자연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꿈' 이기에.
그의 '오디세이' 이자 신기한 이 '모험담'을 넘어 어떤 면에서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건.
사실 나는 '일'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일에 대한 향수 또한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책을 읽었던 당시 나는 권고사직으로 일을 그만둔, 13년 차의 일꾼이었기 때문이었기에..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팀워크였다. 여섯 명의 호흡이 잘 맞아야 일이 순조로운 법이다. 처음에는 허둥댔지만 익숙해지면서 장비 세팅에 드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탐사가 끝날 즈음 팀원들의 손발이 거의 완벽하게 맞았다. 그때의 끈끈했던 팀워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망망대해의 푸르름과 검은 망간단괴 그리고 팀원들과의 끈끈하고 효율적인 팀워크, 바다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p.23
역시 어떤 끌림 들 이 있어야 지속성이 유지되는 걸지 모른다. 내적 동기이든 선명한 목표 의식이든.
자발적으로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계속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인생에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저자분에게 '과학' 이란, 해양 탐사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저자분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감히 여쭤볼 순 없지만 간접적으로 책을 통해 그렇게 유추해볼 뿐이다. '당신은 왜 바다가 좋았나요'라고. 더불어 현실적으로 취업을, 밥벌이를, 걱정하지는 않았는지, 그 두려움을 다 이겨내고도 '연구' 하려는 그 마음에 불을 지핀 숨겨진 이야기가 혹시 있었을지- 라는 호기심 마저도.
대학에 입학해서 자연보다는 인간과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의 탓도 컸다. 사실 고등학생 때의 문제의식은 너무 공허하기도 했다. 결국 현실의 삶을 사는 인간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이제 단편적 과학 지식의 탐구보다는 철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동양학에 더 끌렸다. (중략)
과학자의 길보다는 언론인이나 사상가의 길이 나에게 더 맞는 것 같아 보였지만, 과학의 길로 조금 더 걸어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광물학 전공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긴 했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다와의 만남을 통해 지구라는 행성이 작동하는 전체 모습을 미흡하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것이 첫 탐사 전에 들렸던 먼 북소리의 정체였을지도 모르겠다. 탈레스와 소피스트적 단계를 거쳤으니 이제는 자연과 인간을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p.50
겉으로 보기엔 딱딱하고 드라이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속을 파헤치고 찾아드는 '시원함' 들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 되었던 건 아마도 중간중간 바다 사진을 보는 기쁨 덕분일 테다. 바다'바라기'가 되어 버린 나로서는.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아이들을 낳고 난 이후, 매일 지는 석양과 바다가 막연히 그리워지기 시작한,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를. 그러나 그저 한 권의 책으로 '보는' 나와 실제 그곳에 나가 '겪는' 자의 심정은 극과 극을 달리리라...
강력한 눈 폭풍이 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몰아치기란 예보가 나온 것이었다. 눈 폭풍이 불기 전 야간작업을 해서라도 일을 마무리하고 떠나면 좋겠지만 아무리 다급하다 한들 무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중략)
쉴 새 없이 몰아치던 눈 폭풍은 이틀이 지난 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잠해졌다. 쌓여 있는 눈만이 격렬했던 눈 폭풍의 증거로 남았다.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아라온호는 세종 기지를 떠났다. 세종 기지에서의 일정을 줄이지 못했으니 이동 항해를 줄여 탐사 일정을 더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p. 120-1
좀 더 탐험기스럽게 에필로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독자로서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책...
그러나 충분히 나는 어떤 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색이 문장 곳곳에 묻어난 이 책에 그리운 동경을 품어내 보았으며-
호마트항에 입항하자 한 달 동안 정들었던 탐사 대원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먹서먹하다가도 오랜 기간 배에서 같이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정이 들고 작별할 때는 아쉬운 감정이 짙게 드는 법이다. 배에서 만난 친절한 호주 동료의 안내로 태즈메이니아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 친구는 여기저기 무심히 서 있는 검트리가 호주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검트리는 바로 유칼립투스였고,
그 꽃말은 추억이었다. p.273
더불어 지금 내 공간에서의 일이 누군가의 그것에 비하면 모래 알갱이조차 되지 않는 부피의 것일지언정.
생각해보면 '사람' 이하는 '일'과 '꿈'이라는 것은 각자의 길에서 비교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엮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만나는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어쩌면 무더워서 고돼서 자꾸만 어지러워서 머리가 핑핑 돌았던 올여름...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이 책을 읽으며 괜히 바다 사진들을 볼 때마다 눈에 물을 가득 머금었던 나는 이 저자분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 게 '기적' 일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당장 떠날 수 있다는 건, 내게 기적과 같은 것처럼...
석양, 바다 그리고.. Last canival 이 잘 어울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