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 되지 못한, 자기 고백이 되고 만, 망한 서평...
제가 바라는 것은 그뿐입니다.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는 것. 제게는 가장 소중한 관계니까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자주 눈 맞추고 자주 목소리를 들어주고 자주 안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그림책을 읽습니다.
- 육아가 힘들 때 그림책에게 배웁니다 -
어째서 나는 육아서를 접할 때면 눈물이 차오르는 것인가.
각 상황적 어려움과 엄마라는 돌봄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이자 저자의 위로와도 같은 '그림책 처방'을 읽으면서. 나는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잠시 눈물이 차오르려 하는 걸 간신히 막아낸다.
알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는 근원적 이유를. 그것이 '나'로부터 나온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들켜지고 말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짐승 같은 본능이 잠재한 공격적 악마가 잠들어 있는 추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반대로 한없이 다 내어주고도 모자라는 게 아닌지 이 사랑에 대한 의심을 반복하면서도 그 사랑을 끊지 못하는, 지극히 사랑하다 죽어버릴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부부는 남이 될 수 있지만 자식은 남이 될 수 없다는 걸.... 나는 아들 쌍둥이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뼛속 깊이 저리다는 문장의 느낌도.... 알게 되었다.
육아가 힘들 때 그림책에게 배웁니다, 김주현, 글담, 2020.09.15.
힘들었고 여전히 힘든 게 사실이다.
'힘들다'라는 형용사에는 '힘이 쓰이는 면이 있다'라든지 '어렵거나 곤란하다' , 혹은 '마음이 쓰이거나 수고가 되는 면이 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내 앞의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 혹은 나의 수고가 되는 면이 발생해서 힘이 쓰이는 면이 있다는 것, 만약 그 상대가 '남'이라면 피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육아가 힘든 건 바로 그 차이가 가장 커다랄지도 모른다.
남이 아닌 '내 식구' 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이 정면 승부해야 하는 사람. 객체적으로는 내가 아닌 남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절대 남이 될 수 없는 인간, 자녀... 특히 어린 자녀를 돌보고 기르며 육성한다는 것은 힘들다... 매우. 몹시. 그것을 세상은 얼마나 이해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으며, 이해를 바라거나 구하지 않는 편이 이제는 오히려 편하다. 자신이 겪어내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노키즈존이니 맘충이니 운운하며 여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이고 주류일법한 세상의 그늘진 면을 알아버렸기에.
초산에 쌍둥이... 아무것도 몰랐다. 머리로만 알았던 지식들은 다 무쓸모 한 것들이었다.
경험으로 익혀야 했다. 몸으로 부딪히고 정신으로 사투하고 인내해야 견딜 수 있었다. 내게 육아는... 그런 것이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살리고 키운다는 것은 마냥 기쁘지 않았다. 순서가 틀렸다. 남들에겐 기쁨이고 축하가 먼저였지만, 내겐 절망과 고통과 인내가 먼저였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쌍둥이라 좋겠어요' 라던 그 말에 담긴 기쁨을 나는 몇 년이 지난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니까... 말해 뭐 하랴... 200페이지 수준의 단행본 한 권으로 충분히 엮을 수 있을 법한 육아 시절이 감히 있었다고.. 또한 그 시간을 여전히 견디는 중이다. '전업' 주부이자 양육자가 되어 버린 지금 이 시간은 더욱 견디는 중이며 역설적이게도 아이들로 인해 고통을 느끼고 그들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결국 두 아들과의 시간을 통해 나는 용기를 얻는다...
어쩔 줄 모를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면, 불안함으로 두근거릴 때면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봅니다. 고요하고 맑고 까만 눈동자를요.
'엄마 두려워 말아요'
마치 아이는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삶의 순간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저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가 오면, 저는 아이의 눈동자를 가만가만 들여다봅니다. 내가 지켜야 하는 세상, 나를 지켜 주는 세상, 그 확실하고 반짝이는 세상을요. p.36
무능함을 느낄 때. 내 실수에 화가 나서 절망에 빠져 버리고 말 때.
정말이지 매일 연습을 해도 변화는 쉽지가 않다. 분노하지 않겠노라고. 설령 화를 낸 다 하더라도 목소리의 톤을 낮추고 잠시 동안 침묵을 일삼으며 내면의 불협화음과 시시각각 사투를 벌이면서 그렇게 조용히 아이의 눈'만' 바라봐 주겠노라고... 그래도 경험이 약이 되는지 여러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며 나는 나를, 그리고 아이의 시간을, 우리의 시간을 위로한다. 다 재우고 난 뒤, 눈물과 함께 오늘의 실수와 삐걱거리던 마음을 달래고 또 반성하며. 읽든가 쓰든가 둘 중 하나를 행하며 나는 그렇게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같이 잠들어 버리는 날도 다수이지만.
'아름다운 실수'에서 잘못 그린 선과 점을 바탕으로 더 멋진 결과 물을 이끌어 냈듯, 저의 실수에서 어제보다 오늘 더 멋지고 반짝이는 육아의 시간들을 그려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잘하려 하기보다 실수까지 즐기는 마음으로요.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즐기려는 마음으로, 오늘도 처음 겪는 엄마의 시간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때때로 이렇게 서툴러도 되는 건가 싶지만, 그 가운데서도 조금씩 반짝이며 크는 아이를 볼 때, 조금 더 성장한 듯한 저를 볼 때 더욱 감격하지 않을까요 p.43
화내는 엄마, 아이의 골치가 아픈 원인 제공자입니다. 그림책 '오늘도 화났어!'의 아이도 골치가 아픕니다. 그림책 표지의 눈 지그시 감고 입술 삐죽거리고 있는 아이의 표정부터 골치 아픕니다. 모두가 자기에게 화가 나 있으니까요. (중략)
머리를 괴고 진심으로 '아 골치 아파'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저는 마음속 깊이 이 어린 인생도 골치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그 골치를 아프게 하는 원인 제공자가 주로 엄마인 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강자인 저는 내 멋대로 감정을 쏟아 버림으로써 감정의 폭군이 될 수도 있으며 나보다 약한 아이를 겁먹게 하고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곱씹습니다. p.66
같은 위치에 같은 생업을 꾸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언제나 솔깃하게 만든다.
치기 어린 미혼이었을 때... 나는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것들과 무례하게 생각하고 말았던 나의 어린 자화상을 떠올리면 괜한 자격지심에 마음이 달아오른다. 그 시절의 생각들이 얼마나 모자하고 한없이 나약한 이기심으로 가득했었는지를. 아이를 기르면서 누군가를 살려내고 있는 사랑을 전부 다 내어 주고도 어찌할 바 모르는 '엄마'가 된 이후. 사실 여전히 육아서는 읽지 않지만 아이들과 그림책을 간간이 읽어주다 보면 괜히 그림책이 뭐라고 빠져드는 문장들이 있다.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명확한 삶의 진리들.... 인생은 그런 원리들로 돌아가는 것 같은 따뜻하고 투명한 문장들... 그래서 그림책은 '약' 같은 존재일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엄마'라는 그녀들에게만큼은.
아이는 좋을 때도 혼날 때도 심심할 때도 신이 날 때도 엄마 품을 찾아와 안깁니다. 아이가 품에 안겨 있을 때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을 때 느껴지는 온기를 참 좋아합니다. (중략)
다정함도 연습이고 습관이라 했으니 저 역시 아이의 하루에 다정한 관심을 가지는 연습을 해봅니다. 아이가 지치고 힘들 때 따뜻한 냄새에 기대어 다시 힘을 얻기를. 그 따뜻함이 커가면서 부딪힐 시리고 차가운 세상의 온도를 견디는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p. 111 , 116
살뜰한 위로가 될 법한 '그림책 처방' 이 잘 담겨있는 책
덩달아 몰랐던 그림책을 알게 되니, 별책부록처럼 고마움이 따라오는 책. 그러나... 솔직히 여전히 '육아'라는 그 시간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오는 순간이 있지만, 그래서 견뎌내야 하는 것.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짧고도 빠르게 읽어내리면서, 길고 긴 생각에 휩싸인다... 오늘도...우리 함께 무사하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