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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21. 2020

스쳐간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경험은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





그가 곁에 있을 땐 고역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돌보았을 때보다 집에서 하루종일 온전히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여전히 더욱 버거운 나로서는. 청소와 설거지, 빨래나 식사 준비, 기타 소소한 집의 대소사와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과 같은 '집안일'의 영역은 어렵지 않다. '끝' 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희망' 이 자리하고 있으니. 반대로 절망을 느끼는 순간은 늘 그러했던 것 같다. 통제 불가한 울음소리가 들릴 때. 언젠가 분명 끝이 나긴 할 테지만 그 '끝'의 '예상' 이 도무지 되지 않을 때. 새로운 형태의 반복만이 남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그리하여 스스로 짐승보다 못한 폭군의 언어가 입 밖으로 뻗어 나오고 말 때.




역설적이나 사랑과 희망과 삶의 이유가 되어 버린 대상은

동시에 절망과 고통을 선사하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걸 가족으로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느끼곤 한다. 그것이 설령 누군가의 비틀어진 감정이어도 그 곁의 누군가는 감싸주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때론 바라봐주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 속에서 알 수 있었을까. 가을이 되어서야 조금씩 외출을 감행하는 우리 명이 모인 공원에서. 돗자리를 피고 준비했던 점심 도시락을 먹고 하늘 구경을 하던 도중 나도 모르게 감탄했던 하늘을 바라봤을 때 그와 잠깐 주고받았던 대화들이 이상하게 내내 먼 훗날에도 기억될 것 같았던 건 왜였을까 싶었다.



- 눈물 날 것 같네...

- 왜?

- 너무 예뻐서. 하늘도, 아이들도, 바람, 나무, 구름, 가을... 전부 다.

- 그러게. 날씨 좋네.

- 여보...

- 왜?

- 나. 지금. 행복하다... 살 것 같아...

-.... 우린 잘 살고 있다. 걱정 마시라.

- 행복하다.... 지금..




행복도 소중하지만 불행이 제거된 행복은 온전한 행복이 아니다.

어둠 없이 어떻게 빛을 깨닫겠는가. 불행이 있어야 행복도 존재한다.

깨끗함과 더러움, 행복과 불행, 평화와 갈등 그 영원한 긴장감만이 삶에 탄력을 줄 것이며 탄력이 유지될 때 개인의 삶뿐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로 이어질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이 모두가 바라는 미래 아닐까


p. 173,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中 불행해질 권리





바람과 밤이 완벽해지는 시간, 불행이 잠들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 하늘을 바라봤을 뿐인데.

깔깔 거리며 잠자리채를 가지고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세 사람을 바라보다 책을 읽다 다시 바라보다가, 고작 그런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함께 밥을 먹고 장난을 치고 눈이 마주했을 때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고, 웃고 떠들고... 고작 그런 일상을 즐겼을 뿐인데. 그 '고작'의 시간 속에서 살아 있음의 감사함과 표현하지 못할 짧고 강렬한 행복을 느끼고 만 나는.



왜 울었을까.

스쳐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함께 하는 시간은 멈추지 못하고 그렇게 흘러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꽉 막힌 감정이 탁 트이는 그 순간, 동시에 잡지 못한 채 속절없이 흐르지만 내내 기억하고 싶을 만큼의 뜨거운 기쁨...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얄궂고 긴 불행을, 참고 견뎌낸 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치 이 세계의 원리를 주관하는 '아브락사스'를 잠시 동안 만난 것 같은 기분...




바다를 보러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지 못해도 이미 가 있는 것 같다는 것,  그것이면 된다는 걸... 당신은 알까...




그리하여 나는 생각했다.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살다가 빠져나오지 못할 긴 불행과 슬픔에 다시금 맞닥뜨리게 될지라도. 나는 끝내 나를 울리고 말았던 인생의 장면들을 붙잡고 말 것이라고. 그것은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니라, 좋았던 예전의 기억들을 동아줄 삼아, 살다가... 언젠가 다시금 진흙탕 속에 빠진다 할 지라도, 나는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다시 안절부절못하는 나와 마주하게 되어도.

멀어지고 스쳐갔던 기억은 영원히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살아 있을 것이기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그래서 더 기억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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