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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04. 2020

생각의 말들

결국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 생각의 말들 -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 생각이 말이 되고 결국 행동이 되니 함부로 생각해서도 말을 해서도 행동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면서도 자주 얄궂고 못된 '생각'을 하고 마는 나를 뒤늦게 원망하고 자책하고 만다.  '생각의 말들'을 틈틈이 읽는 순간에도, 그리고 이 기록을 남기는 오후 7시가 되어 가려는 일요일 저녁에도. 시시콜콜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요구 사항을 당차게 건네는 아이들을 상대하며. 결국 나는 힘 빠지는, 좋지 않은 감정의 끝에서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압도당한, 엄마로서 하지 않아야 하는 불순한 생각을 아주 잠시 동안, 그러나 격렬히 하고 말았기에. 그러면 안 되지 싶으면서도 언제나 그런 순간에 지고 마는 나를 탓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 볼 뿐이다... 생각과 감정이 잠잠해질 때까지. 




생각의 말들, 장석훈, 유유, 2020.07.14.



'생각의 말들' 은 총 열 개의 우리에게 익숙한, 혹은 낯설지만 옛 시간에 남을 만한 '말'과 '생각'에 대한 '말'을 했던 인물들의 생각의 모음집과 같은 책이다. 헬렌 켈러에서 신영복에 이르기까지. 책 자체만 보면 '유유'답게 얇고, 그래서 부담 없이 슥슥 읽어 내려갈 법 하지만, 읽다 보면 역시나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구절들이 상당수여서 자꾸 멈칫 멈칫하게 된다. 생각 없이 읽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이 결국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랄까... 




작고 얕은, 깊이 없이 무례한 함부로 하고 마는 생각은 결국 누군가를 상처 입힌다. 

그야말로 '말이 칼이 되는' 순간 그 이전에는 분명 '생각' 이 존재했을 터. 생각을 하는 주체인  '나'의 생각은 '나'의 것이지만,  '너'에 대한 '생각' 이 요동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멋대로 생각이 가지를 쳐 나가고 마니. 그래서 애초에 생각을 아예 잘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생각 없이 살 수 없는 고등동물로 태어나버린 건지...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 또한 '생각'이지 않는가 (무슨 말인지-) 그러하니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애초에 글렀지만 이유야 어쨌든 그 생각을 이왕 하고 살 것이라면 되도록 인도적인 생각을 하며 살면 참 좋겠지 싶다... 




생각에 있어서도 우리는 참으로 작은 것 같다. 생각이 없거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 드문데, 생각이 작은 것은 흔해 보인다. 그리고 생각이 없거나 생각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폐해보다 생각이 얕고 잘아서 생기는 폐해가 더 크지 싶다. 그런데 왜 우리의 생각은 작을까?


p.33, 실로 얼마나 왜소한 생각이 한 사람의 온 삶을 채우는지, from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러니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방종을 경계하고자 행동의 자유에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하는데, 생각의 자유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에번스에 따르면, 생각의 자유에 부과되는 책임이란 다름 아닌 의심이다. 행동의 자유는 그 결과로 사후 책임을 지듯, 생각의 자유는 의심으로 사전 책임을 져야 한다. 


p.127, 생각의 자유가 없다면 언론과 행동의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의심의 자리가 없다면 생각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from 버건 에번스 



마냥 달가울 수 없는 게 결국 인간의 판단, 생각, 결정들 아닐까. 



때론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스스로 지쳐 버리고 마는 나는

퇴사 후 생각을 되도록 단순히 하면서 직관적인(?) 오늘을 사는 삶을 살아보려 노력 중이다만. 솔직히 쉽지 않아서 여전히 버벅댄다. '부모' 로서의 생각과 '자식' 으로서의 생각, '누나' 로서의 생각과 '나' 로서의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역할 수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말기에. 설령 그 생각의 끝에서 불온한 어떤 생각과 마주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 버리거나 심장이 떨려 오는 감정에 휩싸이는 나일지언정. 




어떤 면에서 생각과 시는 같다. 불순한 생각이 없듯 불순한 시도 없다. 그저 생각 자체와 시 자체가 불순하다면 불순하고 위험하다면 위험하다. 겉으로는 거역하지 않고 굽이치고 돌아가고 맴도는 것 같지만 은밀히 스며들어 기어이 제 길을 가고야 마는 것이 생각과 시의 메타포가 아닐까. 직설은 의식에서 대부분 걸러지지만 메타포는 무의식까지 거뜬히 스며들어 끝내 제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p.165, 위험한 생각이란 없다. 생각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from 한나 아렌트 




묘한 위로가 느껴지는 건 왜였을까. 

생각을 해서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차라리 생각 없이 사는 편이 낫다고들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어떤 응원을 전해주는 '생각의 말들'을 여럿 접했기에. 오늘도 어떤 생각들 '때문'과 '덕분'에 나는 여러 감정과 마주했고, 그리하여 고됐고, 쓸쓸했다가도 편안했고 또 기쁘기도 했다. 



찰나의 기쁨은 결국 삶을 긍정하는 '생각' 덕분이니.... 

그래서 오늘도 긍정해본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는 '나'를. 이 삶을... 



요즘 난, 자식을 다 키우고 난 이후의 삶을 종종 '생각' 한다. '무엇을' '어떻게' 라는 화두와 함께....



#작가님의, 생각에 대한 사색 내공도 좋았던 정직하고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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