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by 헤븐

애초에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은

첫 순간에 이미 사랑하는 역할과 사랑받는 역할로 정해져 버리는 것일까.


- 가만히 부르는 이름 -





대책 없이 사랑한다며 다가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아니, 나는 최소한 그런 사람을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어쩌자고 나는 이 책을 새벽에 읽고 말았는지. 읽는 내내 괜히 원망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추석날 저녁, 다 된 빨래를 접어서 옷장에 넣어 두고, 잠든 그와 아이들을 살피며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꺼낸 나 자신을... '한솔' 이란 청년의 문장들 속에서,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그게 뭐라고 무방비 상태에서 당해버렸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두근거림을 느끼고 마는 것인지. 그것이 설령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동반한다 할 지라도. 정말이지 어쩌자고...



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한겨레, 2020.10.12.



얕고 경박한 마음일지 모르나 '수진' 이 부러워서 읽는 내내 마음이 쿡쿡 저렸다.

찔리듯 시리고 아픈 현재의 사랑인 '혁범' 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녀의 서글픔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정말이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투명하게 아낌없이 - 더군다나 정말 대책 없이 훅 하고 다가오는 - 다 주려 하는 '한솔' 이란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더군다나 8살 연하에 섹스마저 그토록 살갑고 다정하나 완벽히 사랑해줄 수 있는 인간상이라니 나 원 참...) 아마 그런 것들은 삶에서 '기적' 이 아닐까 싶었기에. '나'를 아낌없이 좋아해 주는 '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설령 마음을 다 주지 못하는 어설픈 상황에 처할지언정.,,




크리스마스만 바라보는 아이처럼 어제 같은 날을 기다렸나 봐요

오늘부터 어떻게 사랑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너무 좋은데, 그 너무너무 좋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사랑해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수진 님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곁에 없으면 하루 종일 당신을 그리워만 하게 돼요.

당신은 심장에 너무 해로운 사람이에요.


제가 얼마나 참을 수 있을 거 같으세요.

너무나 보고 싶어서 이렇게 늘 몸살 걸린 것처럼 앓고 있는데.

이렇게 틈만 나면 폰만 쳐다보고 있고, 연락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우울해하고 있는데.


여전히 사랑해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접어...


가만히 부르는 말들 中. 한솔의 말들...



KakaoTalk_20201002_085935564.jpg 세상에 이런 말을 편지로, 말로 전할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KakaoTalk_20201002_085935564_01.jpg 고백의 연서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아빠로서의' 혁범을 생각하며 '마음이 쓰라리면서도 어쩐지 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했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 사랑을 하면 당연히 동반하는 마음이라 생각했기에. 전 처와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옅은 질투를 품으면서도 결국 '혁범을 닮았을 그 작은 소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는 수진의 사랑 또한 진심이기에. 비록 그 사랑이 마냥 아름다운 감정을 동반하지 못할지라도.



외로울 때는 외롭다고, 서러울 때는 서럽다고, 괴로울 때는 괴롭다고 왜 매번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또 어떻게 상대만을 탓할 수 있을까.

속으로 그 말들을 삼켜버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세 인물, 아니 최소한 올 겨울에 두 사람이 내내 기억될 것 같았고

덩달아 책을 덮고 여전한 버릇처럼 괜히 입술 끝의 살점을 검지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나는 추석이 지나가려는 새벽녘 보름달을 쳐다보며 괜한 소원 하나를 더해버렸다. 마음속에서 '한솔'의 그 뜨거운 문장들을 다시 말할 수 있게 되는 나의 시간이 앞으로 있을 수가 있을지, 아니 사실은 그 반대를 강력히 원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수진'처럼 듣게 되기를 바라고 말았던, 나 혼자만 알아야 하는 그 가당찮은 소원을, 달이 듣지 않았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꼭 들었기를 바라던 이상한 마음을 품은 채로, 괜히 입술 밑을 앞니로 쿡 깨물어 보는 밤,이었다는 건 나만 아는 시간일테다.



photo-1479267658415-ff274a213280.jpg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다 이상해지니까.



#다시 태어나야 겨우 가능할 것 같은, 이 사랑 이야기 앞에서 괜한 절망감은 왜인가 싶고.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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