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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02. 2020

가만히 부르는 이름

애초에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은 

첫 순간에 이미  사랑하는 역할과 사랑받는 역할로 정해져 버리는 것일까. 


- 가만히 부르는 이름 - 





대책 없이 사랑한다며 다가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아니, 나는 최소한 그런 사람을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어쩌자고 나는 이 책을 새벽에 읽고 말았는지. 읽는 내내 괜히 원망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추석날 저녁, 다 된 빨래를 접어서 옷장에 넣어 두고, 잠든 그와 아이들을 살피며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꺼낸 나 자신을...  '한솔' 이란 청년의 문장들 속에서,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그게 뭐라고 무방비 상태에서 당해버렸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두근거림을 느끼고 마는 것인지. 그것이 설령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동반한다 할 지라도. 정말이지 어쩌자고... 



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한겨레, 2020.10.12.



얕고 경박한 마음일지 모르나 '수진' 이 부러워서 읽는 내내 마음이 쿡쿡 저렸다. 

찔리듯 시리고 아픈 현재의 사랑인 '혁범' 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녀의 서글픔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정말이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투명하게 아낌없이 - 더군다나 정말 대책 없이 훅 하고 다가오는 - 다 주려 하는 '한솔' 이란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더군다나 8살 연하에 섹스마저 그토록 살갑고 다정하나 완벽히 사랑해줄 수 있는 인간상이라니 나 원 참...) 아마 그런 것들은 삶에서 '기적' 이 아닐까 싶었기에. '나'를 아낌없이 좋아해 주는 '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설령 마음을 다 주지 못하는 어설픈 상황에 처할지언정.,, 




크리스마스만 바라보는 아이처럼 어제 같은 날을 기다렸나 봐요 

오늘부터 어떻게 사랑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너무 좋은데, 그 너무너무 좋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사랑해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수진 님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곁에 없으면 하루 종일 당신을 그리워만 하게 돼요. 

당신은 심장에 너무 해로운 사람이에요. 


제가 얼마나 참을 수 있을 거 같으세요. 

너무나 보고 싶어서 이렇게 늘 몸살 걸린 것처럼 앓고 있는데. 

이렇게 틈만 나면 폰만 쳐다보고 있고, 연락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우울해하고 있는데. 


여전히 사랑해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접어...


가만히 부르는 말들 中. 한솔의 말들... 



세상에 이런 말을 편지로, 말로 전할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고백의 연서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아빠로서의'  혁범을 생각하며 '마음이 쓰라리면서도 어쩐지 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했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 사랑을 하면 당연히 동반하는 마음이라 생각했기에. 전 처와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옅은 질투를 품으면서도 결국  '혁범을 닮았을 그 작은 소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는 수진의  사랑 또한 진심이기에. 비록 그 사랑이 마냥 아름다운 감정을 동반하지 못할지라도. 



외로울 때는 외롭다고, 서러울 때는 서럽다고, 괴로울 때는 괴롭다고 왜 매번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또 어떻게 상대만을 탓할 수 있을까. 

속으로 그 말들을 삼켜버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세 인물, 아니 최소한 올 겨울에 두 사람이 내내 기억될 것 같았고 

덩달아 책을 덮고 여전한 버릇처럼 괜히 입술 끝의 살점을 검지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나는 추석이 지나가려는 새벽녘 보름달을 쳐다보며 괜한 소원 하나를 더해버렸다. 마음속에서 '한솔'의 그 뜨거운 문장들을 다시 말할 수 있게 되는 나의 시간이 앞으로 있을 수가 있을지,  아니 사실은 그 반대를 강력히 원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수진'처럼 듣게 되기를 바라고 말았던, 나 혼자만 알아야 하는 그 가당찮은 소원을, 달이 듣지 않았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꼭 들었기를 바라던 이상한 마음을 품은 채로, 괜히 입술 밑을 앞니로 쿡 깨물어 보는 밤,이었다는 건 나만 아는 시간일테다.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다 이상해지니까.



#다시 태어나야 겨우 가능할 것 같은, 이 사랑 이야기 앞에서 괜한 절망감은 왜인가 싶고.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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