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Oct 11. 2020

판도라의 상자

그리고 신의 (信義).... 

우리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 모두에게는 미처 열어 보이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는 법이다. 


- 내 옆에 있는 사람 中,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 




기혼남녀에게는 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배우자의 핸드폰을 열어보는 것. 그것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후에 따라오는 재앙이 예상되니 흔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정도 인정은 하나 속세의 유한한 삶을 지내다 가는 인간의 속물적 본성을 생각해보자면 일정 부분 그렇게 금기시되는 것들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거세하듯 애써 묵살시키며 사는 것은 도리어 인간 본연의 성질(?)에 반하여 더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가끔은 애석하지만. 어쨌든.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과 배우자의 핸드폰을 열고 기어코 어떤 문장들을 보는 마음은 서로 닮았다. 은밀한 속내와 눈을 질끈 감아 보아도 쉬이 지워지지 않아서 다시금 생각하게 마는 돌출적 욕망을 느끼게 되고 말 테니까. 



일요일 새벽 4시, 잠에서 깨어 잠깐 얼그레이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이의 핸드폰에서 진동으로 맞춰진 알람이 거슬려서 끄려고 했던 마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난데없이 나는 그이의 핸드폰을 열어보고 만 걸까. 정말이지 순식간의 궁금함과 호기심 어린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열어 보았다. 바탕화면의 아이들의 사진까지는 순탄(?) 했다. 어떤 '정보들'을 알기 전까지는. 



어떤 것들은 가린다 해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내겐 단답형인 카카오톡 메시지가 가족관계 증명서에 등재되지 않은 타인들에겐 나름 다정해 '보이는' 이유들에 대해서. 더불어 시부님의 자동차보험 갱신 및 가입에 대해 왜 침묵했는지에 대해서. 전자야 어디까지나 그의 '사생활'을 존중(?) 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래 봤자 가족이 아닌 '남'이라면 가족을 뛰어넘지 못하는 '거리감' 이 있을 것이니 몇 번이든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치지만, 후자는 약간의 애석함과 궁금함을 자극시키고 말았다. 가계 재정만큼은 여태껏 투명하게 관리하고 월 정산을 꼼꼼히 챙겨 브리핑하는 터라, 부부간 정직한 자산관리가 꾸준히 되고 있다고 자부심 있게 '믿고 '있었던 나라서. 시부모님도 '부모님'으로 생각하고 사는 나를 여전히 탐탁잖게 못 믿는 것 같아서. 



- 다녀올게, 오늘은 1차 산책 냇가!   

-... 애들 주말에 잘 봐줘서 고맙네. 

- 쉬고 계시라. 주말은 나한테 맡겨. 

- 고마워...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은 모든 걸 잠재워 주기도 하는 걸까. 

옹졸하고 비겁한 상상과 함께 어떤 속상함과 아쉬움의 감정을 건너면서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오전이 되어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과 주말 산책을 떠나려는 그를 보며 나는 '우리'의 '시간'을 떠올렸다. 우는 시간이 웃는 시간보다 많았던 신혼과 육아 초기를 지나, 서로에 대한 동지애와 연민과 걱정하는 마음으로 변해가는 중인, 요즘의 제법 순조롭고 순한 우리의 시간들에 대해서. 




시간은 거짓을 솎아냅니다. 시간은 거짓의 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순간과 순간을 모아 생의 근육이 되게 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그 근육의 힘으로 버텨온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에게 잘해줄 일밖에는 없는 듯합니다. 시간이 친구입니다. 


- , 내 옆에 있는 사람 中,  아무도 모르는 사이 거의 모든 일들이, 이병률  - 



불온한 마음은 적당한 순함과 거리 덕분에 씻겨나가고 또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서는. 




유자녀 기혼부부의 관계는 신의(信義)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신의가 있는 부부의 시간은 두 사람을 겨냥하기 위함이 아닌, 두 사람이 어떻게 남은 생을 '잘' 살아가는지를 지켜주기 위한 보호로서의 시간으로 흐르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내 옆에 있는, 지금 현존하는 이 사람을 보호해야 할 일정 부분의 의무이자 책무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마법 같은 시간과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알아버린 것들이, 알지 못하는 (않는) 것이 되어 버리는 신기한 시간... 



핸드폰의 잠금 패턴이나 자산 내역 같은 것 앞에서는 되도록 투명하려는 내가  

그가 볼 때는 바보인 건지 정직한 건지 순수한 건지는 답답한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나는 믿는다. 가족관계 증명서에 등재된 우리들의 신의는 아직 건강하다고. 비록 불온한 호기심으로 핸드폰을 열어 보고 잠시 동안 옹졸하게 움츠려 들어 속상함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당신의 문장과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난도 힐책도 아닌 그저 궁금함에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나의 침묵에 그가 존중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나 또한 묻지 않고 우리의 순함을 유지하려 한다. 어쩌면 부부의 시간이라는 것은 이렇게 때로 침묵하며 쌓여갈수록, 견고한 신의란 더 두터워지는 걸까 싶었다. 역설이 아닐 수 없지만. 원래 인생은 모순 투성이니까. 



빛은 어둠 속에서, 생명은 죽음 속에서 

그리고 언어는 침묵 속에서.... 더 그 존재가 선명해지는 것들이라면. 

'우리'가 '우리' 로서 존재하는 지금의 시간은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어서 더 빛날 수 있는 거겠지.. 



계절을 숱하게 함께 겪는 시간은 큰 힘이 있지...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고 싶은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