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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02. 2020

마감 일기

내 나이 이미 쉰여섯. 아마 4,5년 안에 세 번째 마감이 올 것이다. 큰일 났다. 마감이 코앞이다.

그건 또 얼마나 슬프고 고독하고 짜릿한 마감일 것인가.

아직 오지도 않은 그 마감이 나는 벌써 몸서리치게 그립다. 


- 마감 일기 - 



마감이 있는 생은 결국 행복한 게 아닌가. 라고...

나는 새벽의 이 얇고도 유쾌한 여러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마감 관련 생활 에세이를 덮고 생각했다. 마감이 있는 삶이란, 결국 쓰거나 읽거나 혹은 뭔가의 '일' 을 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도 '일' 이 되면 마냥 좋아할 순 없다지만 그럼에도 보편적으로 글이나 책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에게 늘상 밥 먹듯 있는 '마감' 이라는 것은, 그 세계에 편입하려는 누군가의 눈에는 결국 행복한 고통(?) 이 아닐까 싶다. 혼자서 마감을 지어 놓고 아무도 읽거나 찾아주지 않는 글을 식탁 위에서 쓰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말이다. 



마감 일기, 김민철, 이숙명, 권여선, 권남희, 강이슬, 임진아, 이영미, 김세희, 놀 2020.11.20.




책 자체는 일단 참 유쾌하고 즐겁다. 나름의 비장한 각오도 담겨 있다. 

게다가 평소 좋아했던 작가들의 '마감' 을 대하는 자세를 엿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생각해보면 '마감' 이라는 과업은 행복이라고도 내내 생각되었던 나는...일을 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결국 일을 하는 이들에겐 언제나 '납기' 라는 게 필요한 법. 재직 당시 제조업에서 근무했기에 프로젝트의 '납기' 라는 게 있었고 양산 전 개발 단계의 매 스테이지의 과제들은 언제나 데드라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마감. 납기준수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일' 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철학 마저도 반영한다. (너무 나갔나-) 그렇기에 '세상 모오든 일에는 끝이 있다' 지만 그 끝을 잘 마무리 하려는 마감인간들은.....자신의 일 앞에서 즐겁고도 고된 그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는 것일 테다. 



나는 곧 마흔이었고, 마흔은 일곱 살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이 하라고 시키면 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나이였다. 불혹의 다름 이름인 '부록' 처럼. 본문의 삶을 못 가진 나 같은 인간은 기꺼이 부록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 기이하게도 한 건의 소설 청탁이 들어왔다. 아니, 그걸 정확히 청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들어왔다는 말도 부정확하다. 청탁 비슷한 무엇을 내가 낚아챘다는 말이 맞겠다. (중략) 


그러니가 정확히 말하면 나는 7년 만에 다시 소설을 쓰게 된 게 아니라 7년만에 드디어 마감이 있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이었다.   - 권여선,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 


작가라는 직업은 마감 시간에 맞춰, 주어진 상황에서 힘을 다해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완성하는 일이라는 걸 체험했다. 이 시기를 돌아보고 원고를 고쳐 쓸 계획을 세우는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 김세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마감을 사랑하고 싶은 나는, 여전히 마감이 그립다. 

누군가 내게 마감을 권했으면 좋겠고 독촉까지 받으면 감사할 노릇이다. 그런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마감을 그리워하기 이전에, 스스로 마감을 정해놓고 산다. 읽는 책들의 마감일을, 서평을 쓰는 마감일을, 혼자 쓰는 글들의 정기적 마감일을, 그리고 일상 속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과 지내며, 그들을 향한 매일의 미션을 수행하는 육아라는 끊김 없는 마감을....



좋아하는 일...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마감'.. 

나는 그래서 오늘 그 좋아하는 일을 유지한다.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것이 스스로에게 살아있는 느낌을 부여해 준다면. 기꺼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있으면 이젠 절망 보다 안도가 앞선다. 그 시간을 사랑하기에... 



#누가 원고 청탁 좀 해 주시어 마감 독촉 받고 싶네요.. 납기 준수 완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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