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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30. 2017

36.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놓치고 깨달았어.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겠냐고.

‘안녕’이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진 친구가 있다.

 외투를 입고 옷깃을 부여잡기 시작하는 계절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우리 둘은 정말 한창의 나이였다. 대학 OT에서 처음 만나서, 분기에 한 번 정도 보는, 어쩌다가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매점에서 1400원짜리 하이트 맥주 한 캔을 가지고 도서관 앞 벤치에서 같이 마신 게 고작인 친구였다. 나는 철저한 뼛속까지 지극한 제인 오스틴 빠 영문과였고, 그 친구는 C 언어와 프로그래밍에 SF 영화를 좋아한 (한 것 같은) 공대생이었다. 그는 조용히 군대에 갔고 내 기억과 마음속에서 그 친구는 이미 흐릿해져 갔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평행선처럼.

 아마 우리 둘은 그랬을 거다. 그가 군대에 있었을 시기에,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며 이별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에게 군대가 처음 이어서 힘들고 고단했을 듯, 내게도 사랑은 처음이어서 서툴렀고 애썼고 아팠다.


우리 둘은 그 시간을 각자의 형태로 쉽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스물셋, 2년 후 우리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여전히 도서관 앞이었다. 먼저 내게 말을 걸어준 건 여전히 그 친구 쪽이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먼저 이름을 불러준 친구. 내가 선뜻 부르기 이전에 나를 알아봐 준 쪽. 그래서 고마울 수밖에 없는 사람.


“오랜만 이야. 잘 지냈어?”


 몇 년 만에 만난 그가 내게 말을 걸어 주었을 때 이상하게 반가웠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앞 벤치에서 유독 마주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만의 아지트 같은 장소에서 누군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그것도 반갑거나 그리운 대상의 누군가 라면 더더욱 말이다.



 여전히 도서관 앞에서 캔맥주와 새우깡을 먹으며 내가 읽은 오늘의 책을 물어봐 주는 반가운 친구. 그런 만남이 예전과는 달리 잦아질수록 그가 내게 주는 선물들의 횟수도, 만남의 시간도 꽤 길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우연이라고 생각한 마주함에는, 사실 필연으로 만들고 싶은 다분한 노력이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그에게 난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싫지는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던 나는, 친구를 잃고 싶진 않아서, 본래 성격과는 달리 뜨뜻미지근한 관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서툴렀다. 사람을 대하는 게.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대하는 것이
10년 전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사랑은 그런 걸까


 

 짧지만 굵게. 그가 내게 다가오는 시간은 그랬다.

 내가 했던 아팠던 첫사랑을, 그가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주와 객이 달라졌을 뿐. 내 아팠던 사랑에서 나는 ""였지만, 그의 아팠던 사랑에서 나는 "객"으로 존재한다는 걸 아는 순간, 나 역시 아팠음을 그럼으로써 나의 그 첫사랑도 꽤 아팠음을, 그 친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생일날 작은 이벤트를 열며 고백을 해 줬다.

 실은 작지 않았다. 형편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을 내게 해 주었다.


 명동의 촛불 1978. 10년도 더 되었으니 당시 10만 원 남짓의 코스 요리를 시켜 준 그 공대생은 나를 울릴 작정인 듯싶었다. 그가 내민 선물은 다름 아닌 장문의 손 편지였으니깐.


 손 편지를 좋아한다는 것과, 소박한 음식을 즐기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그저 책을 읽고, 단팥빵에 흰우유면 충분한, 단 한 번도 비싼 음식을 먹으려고도 한 적이 없는 지극히 바보 같은 여대생이 바로 나라는 걸. 그는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걸까. 내가 평생 아마도 그런 어리석은 여자라는 것을..


손 편지에 집착하는 나라는 걸 너는 몰랐겠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한 글자 한 문장....다 고마웠어. 그래서 더 미안했어...


 누군가가 나의 성격과 나의 일상과 나의 취향을 알아준다는 건 참으로 커다란 고마움이다.

그 커다란 고마움에 느낌표 와장창과 눈물이라는 마침표의 클라이맥스를 찍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말이었다.


“충분히 이런 곳에서, 이런 대접받을 자격 있는 여자야.
도서관에서 몰래 먹는 캔맥주 한 캔에 다분히 기뻐하는 너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처음으로 내게 ‘자격’을 이야기해 주며 고백해 준 그 친구와의 겨울, 11월이 들어있는 생일이 다가오는 달이면 가끔 여전히 생각난다. 콧잔등이 시리고 날 선 차가운 새벽 공기가 아침을 뒤덮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오면 말이다.


감정은 참 용수철 같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억누르면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발력을 갖는다. 좋아할 수 있다고,  사랑도 생길 거라고.  난 이 친구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나 스스로 주문을 걸어보았다.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내 손을 잡아 보고 싶다는 그 친구의 따뜻하고도 땀으로 차 있는 뜨거운 손을 잡았을 때. 이미 게임의 결과는 정해진 듯해서 슬펐다. 내겐 가장 소중한 감정, 떨림과 끌림이 없었음에. 결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시기의 나는, 이미 처음 한 번의 사랑에 상처받았고, 그 상처가 아직도 아파서 잠시 마음을 닫아두고 있었던 빌어먹을 타이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쉽게 예상하지 못하겠다.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아는 지금은 감히 사랑 앞에서 예상 따위도 하지 않을 테니깐.


 자연스럽게 그를 놓아줬다. 아니 사실 나는 정말 좋은 남자를 놓쳐버렸다.

 그도 주는 사랑에 지쳤었을 테다. 어쩌면 주기만 해도 좋을, 완벽히 뜨거운 사랑을 하기엔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이라는 것에 단단한 근육을 갖고 있지 못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자연스럽게 나를 놓아주었다.


나도 그를 놓쳤고, 그도 나를 놓쳤었다.  


 그래도 지금은 알 것 같다.

 나의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 나는 내 삶이 쪼그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와의 짧디 짧은, 이별의 인사 한 마디도 없는, 흔한 연인의 그럴싸한 사랑의 서사 조차 하나 없는, 시작도 없으니 끝도 없었던 이런 헤어짐은 말이다. 오히려 10년이 지난 지금의, 생일이 곧 다가올 겨울에 가끔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랑이었다고. 그건 즉 기쁨을 주는 사람과의 헤어짐이었다고.


퇴근길이 이제 정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달의 계절이라는 게 사뭇 실감 되는 요즘이다. 차가운, 그러나 빛나는..11월


 시간은 흘러 나도 그도 여전히 각자의 사랑을 하고 있겠다.

 아빠가 되었다고 들었다. 딸 한 명의 근사한 아빠. 여전히 다 주고 있을, 마음 따뜻한 아빠일 테다. 그리고 나도.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그가 먹 게 아메리카노라면, 나도 못 먹는 아메리카노를 함께 마시며, 오히려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됐다. 그런 여자이고, 어느새 쌍둥이의 엄마도 됐다.


 좀 더 다정하게 해 줄 걸 그랬다. 내가 쪼그라져 있을 때, 내게 그럴 자격 있는 여자라는,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그 10년 전의 누군가의 따뜻하고 강력한 필살 기적 한마디는, 여전히 바닥으로 고꾸라 친 자신감을 일으켜 세우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여전히 끼치고 있다. 말은 그래서 큰 힘이 있고 확언엔 더 큰 기적이 있는 법일 테다.


  이제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으니, 미처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해서,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게 얼마나 아픈 지를 알 것도 같다. 아니 알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래서 알고 난 이후 나는 있는 힘껏 사랑하기로 결심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사랑을 주는 것에 이제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받아야 할 땐 있는 힘껏 다 받아내 줄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나 주는 상대가 뚜렷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하다)


 줄 수 있을 때 그저 마음껏 주는 쪽을 택해보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엔 그래 보고 싶다. 용감하고 무식하게도. 왜?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자격 있는 여자라고 말해 준 그 친구 덕분에 나는 그럴 자격 있는 여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으니깐.


 아직 여전히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자격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 스스로 이제야 겨우 알아차리고 있으니 말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또 가끔 생각이 날 것 같다. 그 곱고 고마운 한마디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여전히 이렇게 고마움을 기억하는 여자가 바로 나인데 말이지. 그런 나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요 라고 선뜻, 여전히 말이 없이 조용하기만 한 나의 그에게 말하고 싶어 지는 차가운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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