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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31. 2017

#9. 지혜의 숲

나도 마찬가집니다. 설레서 두려워지는 거. 

 유키와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으나 그와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닌 걸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말없이 음악을 틀어 놓은 채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잠깐 세우죠. 딱히 갈 데가 정말 없네. 
네..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요? 
못 가요 가고 싶어도 
아.. 그렇죠 못 가죠. 가고 싶어도. 
제가 신데렐라라... 훗 
응?


 심각해야 하는 상황도 때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12시 전에는 꼭 집에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손톱과 발톱이 자라날지도 몰라요 아주 길게 그리고 뾰족하게. 할퀴면 금방 피나요  
하하. 진짜 엉뚱한 구석이 있네 헤라씨 
아니요 진짜 진담인데... 훗 
그래 진담 합시다. 뭔들 못 믿겠어 
아... 믿어.... 요? 
.....
고맙습니다. 믿어 주셔서.. 
미안하네 내가 괜한 소리 해서 집에 들어가야 할 사람 붙잡고 지금 뭐 하는 건지....
네..
시간이 아쉽네요 
네. 시간이 아쉽네요. 
그러게.
그러게.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기쁘다. 사람 같아지는 순간이다. 



 내가 진짜 사람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고양이가 아닌 사람. 진짜 밤에도 사람처럼.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정 차장님은 좋아하는 게 뭐예요?
글쎄..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그러게. 딱히 생각이 안 나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하하. 노인네 같은 소리죠 
아녜요 저도 가끔 모르겠는걸요 
헤라씨, 뭐 좋아해요?
음... 그냥 막 얘기하자면 
그린티라떼 
아... 네 훗... 네. 저 그린티 라떼 좋아해요. 근데 자주 안 마셔요 사실 더 좋아하는 게 있거든요 
뭐?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 그리고 고구마 말랭이.
고구마 말랭이? 하하 뭐지 그 취미는. 우리 진우가 좋아하는 건데 그거 
아... 그렇군요 아. 진우... 되게 귀여웠는데 
귀엽지.. 헤라씨만큼 
아.. 음. 아무튼 전 그거랑 책. 글. 고양이... 고양이 좋아해요 
아 그래요? 우리 아내도 고양이 꽤 좋아하는데...
차장님은요?
난.. 글쎄.. 아 최근에 우리 집에 아주 우연히 고양이 한 마리가 왔다 갔는데 진짜 무슨 거짓말처럼 왔다 갔어
아... 고양이 가요? (그거 나예요. 나였어요... 그래도 믿을 거예요? 믿을 수 있어요?) 
네. 근데 그 고양이 어딘가 좀 특별했어 


 그가 좀 더 나를 향해 방향을 틀며 이야기를 한다. 오른쪽 손은 어느새 아주 편안한 자세로 차 시트 뒤쪽으로 기댄 채, 그리고 왼쪽 손은 핸들을 만지작 거리면서. 그가 나를 쳐다보고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옆으로 흘깃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가 미소 짓고 있다. 그래, 처음에 봤던 그 표정이다. 다행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어떤 게요? 
그냥 뭐랄까. 나를 좀 아는 듯했다고나 할까. 잠깐 잠들었는데 나를 막 핥아 주더라고요 
아.... 아는 듯했다고요?
그냥 그런 느낌.. 기시감인가 모르겠네 
네... 그 고양이가 좋았나 보네요. 곁에 있는 사람 
아.. 그랬나. 그러게 누가 나 그렇게 좋아해 준 적 진우 빼고 오랜만이네. 
아..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계시잖아요 집에 또 한 분 
아.... 하하 그런가 우리 아내... 나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편일지도 모르겠는데?
에이 농담도.. 
농담 아녜요 



 그가 어딘지 모르게 갑자기 무표정을 했다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이상하게 정말 꼬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훌쩍 지나 있었으니,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는 걸까. 오늘따라 더 그럴 것만 같은 밤이다. 


헤라씨는 우리 아내랑 참 많이 틀린 것 같아. 내가 되게 나쁜 남자죠 흔한 그런 드라마에나 나오는 캐릭터네.. 
캐릭터 설정값 잘 하셨는데요. 그럼 저는 그 캐릭터가 키우는 고양이 하겠습니다.
하하 이 와중에 재밌어 정말 엉뚱해요 헤라씨. 
웃으시라고요. 저..사실 이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닌걸요 
아.. 그런가? 하긴... 회사에서 일할 땐 꽤 차분한 편인 거 알아요. 그래도 할 말은 하는 편에 속하지 않나?
음... 안 하지는 않는 편인데 모르겠어요 인간 회사 생활이라는 게 
인간 회사? 
아 아닙니다. 
하하 하여튼 재밌어. 
네...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욕심은 안 생기나?
네?
나랑 어디 가고 싶은 욕심 
... 욕심부리면 안 되는 걸 알아요 
아... 나보다 어른이군요 아 미안합니다. 아 내가 정말 왜 이러지. 말이 막 헛 나오네 
네...
어디 가고 싶은 덴 없어요? 정말?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있어요. 왜 없겠어요 저라고. 저도 반은 사람인 걸요)  
아... 음. 미국 가기 전에. 들어가기 전에 갑시다. 
밤엔 안 됩니다.
하하. 알겠어요. 그렇게 진지하게 말 안 해도 압니다. 어디 있긴 있나 보네?
네.... 정말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있긴 해요... 
어딘데?
...... 지혜의 숲 
지혜의 숲?
네...
거기 어디예요? 
있어요 그런 곳... 온 사방 벽이 나무색으로 둘러싸인, 가면 마음 편해지는 곳. 
아... 해외인가? 
훗. 아니니 걱정 마세요. 거긴 국내예요. 예전에 글 쓰는 친구랑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좋았거든요 
아...
아... 괜히 말했다 말하니깐 가고 싶어 지지 않습니까. 
갑시다. 
....
가면 되지. 
어떻게...
거기 회사에서 먼가? 
한... 차 타고 1시간 거리 일려나. 
갑시다. 내일. 정시 퇴근해요. 바로 갑시다. 
아... 거짓말.. 하시는 거죠? 
아니.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아.. 지금.. 하셔도... 
지금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헤라 씨가 가고 싶단 거기서 하고 싶네 
고백이라도 하시.... 아.. 죄송합니다. 말이..
말은 헛 나올 때가 많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아.... 헷
우리 다르면서도 닮은 거 알아요? 
아... 


 살다 보면 우연 그 이상의 운명과도 같은 일을 만나게 된다. 

 해가 뜨고 지고 다시 또 지고 뜨고를 몇 해 동안 했던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양이 사람으로 사는 게 너무 지긋해서 죽으려고 했었다. 그때 엄마는 내게 말해줬었다. 


헤라야 명심해. 고양이 여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응? 
너 한번 본 적 있지 할머니 피.. 
아... 그 찐득한 녹색 물 같은...?
응 그래. 할머니가 작지만 차에 치였을 때, 속수무책이었어. 수혈할 방법이 없었단다. 그래도 다행이었지. 
엄마 피 나눠 줬었어?
응 그래 직계가족이나 자기랑 맞는 피랑만 수혈을 할 수 있어. 
아... 그데 자기랑 맞는다는 건 어떻게 알아?
고양이 여자가 그걸 알 수 있어. 그냥 느낌으로. 저 사람이라고. 할머니에겐 엄마뿐이었어 
그렇구나..
헤라에겐 엄마도 할머니도 아니야. 그래서 엄마는 그게 무서울 뿐이란다
아...
절대 다치거나, 그리고 특히 차 조심 사람 조심해야 해 알겠지? 인간 동물 세상은 정말 잔인하단다. 
알겠어요 엄마. 
우리 헤라. 미안하다. 
아니야.. 엄마가 미안할 거 없어.  


 그의 차 안에서의 꽤 오랜 기간 동안 음악을 듣고 서로의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생각이 난 엄마의 이야기에 문득 그의 차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조차,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조차, 사실 내가 고양이 여자여서 절대 다치면 안 되고 또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지도 못하는 신묘한 반동 물 반 사람인 채 살아야 한다는 걸 그는 아마 죽었다 깨나도 모를 거다. 


 모르는 편이 낫고, 몰랐으면 좋겠고 몰라도 상관없으니깐. 이제는 뭐라 해도 다 상관이 없어졌다. 그저 그와 함께 있는 아주 작은 짧은 시간이면 그걸로 됐다 싶은 마음이었다. 이미 내겐, 같이 있는 시간과 아닌 시간을 나눠지기 시작했으니깐. 


집에 들어가요. 내일 봅시다. 따뜻하게 입고 나와요 내일 춥대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늘 음악 잘 들었어요 근데..
응?
내일 정말 가시려고요..... 거기?
지혜의 숲. 어딘지 모르겠지만 인간 네비가 있으니깐 그냥 믿고 가는 겁니다. 
아....
미국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일 거 같아서 



 그의 마지막이라는 말에 갑자기 정말 꼬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느새 심장이 멈춰 있는 듯한 녹색 피가 흘러내려올 것만 같은 그런 아픔이 밀려온다. 


네..... 가야겠네요 꼭 
그럽시다. 갑시다. 거기 
내일 봬요 
내일 봐요 




퇴근 한 시간을 앞두고 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지야 나... 
어? 지금 한창 근무시간 아냐? 아... 곧 퇴근인가? 
응. 곧 퇴근이야.
오 고헤라. 역시. 오늘은 뭐 입고 갔냐 
그게 궁금해? 풉 하여튼 현지는....
야, 내가 너 비주얼에 홀딱 반한 흔치 않은 케이스잖냐. 
뭐야 그 싱거운 농담은
농담반 진담반 하여튼, 오늘 겁나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갔나 싶어서 
엄마 같아..
고등학생 때부터 내가 고헤라 엄마였잖아. 별명 잊었어?
잊지 않았지 헤라맘투 
풉... 하여튼 담탱이 아재 개그 하고는 완전 깨. 
그랬지...
아참 하여튼. 왜 전화했어 
오늘 청바지 입었어. 네이비색 와이셔츠랑, 검은색 카디건 입고 코트 껴 입고 왔어. 
왜 전화했냐고. 잘했어 잘했어. 
나... 오늘 그 사람이랑 거기가 
엥? 무슨 말.... 야! 너 설마 
응.. 마지막 이랬어 
뭐?
미국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이래 근데 현지야 
야 너 미쳤어?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야. 이거 뭐 이제 막 나가네? 그 새끼 돌았나?
아니 내가 돈 거 같아 
헤라야... 하아 너 어쩔래 정말. 서울랜드도 갔었다며. 근데 별일 없었어 진짜?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어?
숨기는 거 있어. 말 해도 너 믿지 않을 테니깐.... 
헤라야... 나 농담 아냐 너 걱정돼서 그래. 어디까지 가려고 그래. 너네 그래 좋아 썸 한번 탄 거 인정해 너네 둘 열라 바보 같은 거 알지 지금? 서로 재는 것도 아니고 뭐야. 그렇다고 진도 뺴려고 만나는 일회용도 아니고 뭐냐 진짜...
일회용이 아니지. 차라리 일회용이면 좋을까 
미쳤어 야 고헤라..너 진짜 그 정도야? 왜 그래 
모르겠어. 내가 처음이라 그런가 봐 
너 좋다고 달려든 무지막지한 스펙의 새끼들도 다 거절했잖아
이런 느낌이 없었어. 이런 끌림이 없었어
쳐다보지 못할 나무라 끌리는 거야? 애가 진짜 안 되겠네 
그건 잘 모르겠어. 너희 사람들이 정해 놓은 거잖아. 결혼하면 사랑하면 안 된다는 건. 우리 세계에선 안 그래
야 무슨 또 이상한 헛소리 나불대고 있어 헤라야! 
아무튼 현지야.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나랑 가자고 했어. 근데 그 마지막이 처음이기도 해. 
.... 하아 정말 
그냥 네게 알리고 싶었어. 내가 좋아하는 친구한테 지금 고헤라가 사랑에 빠졌다고. 근데 
근데?
처음이자 진짜 마지막이라는 그 장소가 내가 좋아하는 곳인데, 이상하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 
헤라야....
퇴근하고 잠깐 갔다가 집에 갈 거야. 그뿐인데. 우리 둘은 겨우 그뿐인데. 슬프고 속상해 
...... 
미안해 현지야 나 너무 속상해. 이런 내가 너무 좋지만 속상해 
헤라야...
아. 미안 울어서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었어 
그래 헤라야. 사실 내가 말은 열라 거칠게 했지만, 알아... 네 마음
알아...?
솔직히 모르지만,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헤라야. 넌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제일 예뻐 그 마음
마음..?
솔직한 게 참 좋았어. 여전히 순수한 네가 좋았어. 그래서 친구 하는 거야 여태껏. 너 같은 친구 없으니깐.
아... 현지야 흐.. 흑...
울지 마. 그리고 잘 다녀와. 이왕이면 그냥 즐겨라 고헤라. 처음이자 마지막? 개뿔. 사람일 모르는 거다 
아... 사람.. 일..(고양이 일도 모르는 거였으면 좋겠다) 
잘 다녀와 그리고 다녀와서 전화해 아니 힘들면 중간에라도 전화해 꼭 알겠지?
고마워 현지야 
다녀와 고헤라. 잘 다녀와. 


 현지와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세수를 연거푸 해도 시뻘게진 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점점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그가 전화를 한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본 채 그렇게 화장실에서 나와서 복도를 걸어가서 사무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시간은 6시가 다 되어 간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찍 퇴근하기 시작한다. 역시 금요일의 밤은 사람 동물들이 좋아하는 요일인 걸까. 내게는 금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월요일이든 그냥 요일에 불과한 데. 아니, 이제 그 요일 중에 그를 멀리 서든 가까이서든 마주한 요일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할 뿐인데. 


띠리링 

전화가 울린다. 그 사람이다. 


처음이다. 전화가 걸려온 것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모든 게 다 처음일 뿐이다. 



헤라씨 지금 지하 3층 주차장으로 올래요? 차 타고 같이 나갑시다
아... 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누가 보면 오해할 수...
괜찮아요 지금 사람들 거의 다 퇴근했을 거 같으니깐. 눈치껏 내려와요 기다릴게요 
네 


심장이 요동을 친다. 

 손과 발끝을 바라보니 여전히 사람의 손과 발이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손톱과 발톱이 길쭉하게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잠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거울을 쳐다봤다. 커다란 눈과 약간 홍조가 띤 두 뺨, 진한 다홍색 립글로스가 유난히 눈에 띈다. 그리고 새빨개진 눈은 어느새 좀 가라앉은 듯. 다만 약간의 창백한 피부가 더 도드라진다. 화장실에서 걸어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어디선가 크랙션이 울린다. 그 사람의 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납.. 습니다 
하하 네 그래요. 오늘 정신없이 바빠서 미팅이 왜 이렇게 많은지.. 자리에 앉아 있을 세도 없었어요
네 바쁘시죠. 
그렇죠. 헤라 씨는? 오늘 잘 지냈어요? 
네 아 뭐 저는 늘..
자. 그럼 갈까요?
진짜... 저희 진짜 가는 건가요?
그럼 진짜 가는 거지 가짜 가는 것도 있나?
아..
지혜의 숲이라 했죠? 길 알아요? 네비 찍으니 한 곳 나오더라고 
아..... 네비가 있었죠. 
여기 맞아요?
네....
하... 신기해 정말 
네?
이 근처 진우랑 둘이 와 본 적 있어요 나도 얼핏 겉으로만 보고 이런 곳이 있구나 했네. 가보고 싶었는데
아... 진짜요?
그럼 진짜죠. 하여튼 영광인데요. 그때 스쳐 지나갔을 때 다시 꼭 와봐야지 한 곳을 이런 미인이랑 오게 될 줄이야
아...
사람 일 그래서 정말 몰라요 그렇죠?
네... 사람...
자 출발합니다. 1시간이면 될 거 같은데 차가 좀 막힐지 몰라요 
괜찮아요 저는
갑시다. 


 고속도로의 정체는 있었으나 약간의 밀림만 있었을 뿐, 어느새 해는 저물면서 석양을 바라보며 그렇게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이상하게 우리 둘은 그때와는 달리 음악을 들으며 약간의 평범한 대화만 주고받았을 뿐, 큰 말을 하지 않았다. 긴장해서였을까. 나처럼 그도. 그랬을 거라는 착각에 휩싸인다. 침묵은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봇물처럼 터질 거라고. 어느새 깨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 앞섰다. 


다 왔네요 여기였던 거 같은데 
네.... 아..... 진짜 왔다. 
잠깐, 차 좀 대고. 됐다. 이제 내려요 
네. 
아 잠깐, 이거 담요 
아... 
추울지도 몰라서. 
안에는 안 추워요 
바깥에 걸을 때 쓰라고요 
아... 네 고맙습니다. 원래 그렇게 자상하세요 
... 헤라 씨에게만 오늘 특별히 자상하기로 했어요 
아... 

우리 둘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도착했다. 지혜의 숲이다. 


헤라 씨 진짜 책 좋아하나 봐?
아니요 저 보단 제 친구가 더 좋아해요 글도 되게 잘 써요.. 작가거든요. 그래서 와봤었어요 이곳. 파주.  
아 정말?
네.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그런 비밀의 친구 있어요 
하하 궁금해지네 그 말 들으니깐 비밀의 친구라. 
네... 
들어갈까요? 
네. 저.. 근데 차장님
응?
저.... 지금 떨려요 
....?
그냥 여기 다시 와 보게 될 줄도 몰랐는데, 그걸 차장님과 오게 될 줄도 몰랐어요 아니 사실은
말해요 
사실은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지혜의 숲.
정말 다시 와보고 싶었는데, 그게 차장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기하고 근사하기만 한데 그런데...
그런데?
슬퍼요 아주 많이 슬퍼요. 
아.... 음.
설레는 제가 두려워져요.. 
나도 마찬가집니다. 설레서 두려워지는 거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먼저 걷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아주 잠깐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특유의 한쪽 입가만 올라가는 미소를 바라봤다. 


그가 손을 좀 더 세차게 잡았다. 머릿속엔 이미 모든 게 흑백처리되어 있을 뿐. 오로지 우리 둘 앞의 지혜의 숲으로 들어가는 길과,  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개의 것만이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꿈에서 본 지혜의 숲으로 정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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