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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3. 2017

#11. 조금만 더 가까이

보고 싶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 좋았다.

 고양이의 털갈이를 한 이후에 곱게 쓸려진 그 털을 매만져주는 사람 동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유키나 듀이의 말을 들어보면 최소한 루마니아 고양이든 미국 고양이든, 국경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나를 얼마나 부드럽게 터치해 주느냐가 중요하다. 손가락과 손바닥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가려운 곳을 긁어줄 때 혹은 아주 자연스럽게 매만져 주는 느낌, 그 느낌이 중요할 뿐이다.


 도대체 이 사람 동물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는 이젠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 공간에서, 내가 듣고 보고 느끼게 될 그의 모든 움직임들만이 고양이의 직감과 감각을 예민하게 고조시킬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새어 나오는 진짜 그의 이야기들만이 내 귀에 마음에 입술에 내내 남게 될 거라는 사실도.


시간이 빠르네요
그러게요 벌써 어느새 시간이...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이 마치 고양이수염을 단 채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걸 눈치챈 걸까.  이윽고 나는 다시 말을 다시 꺼냈다. 언제까지고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으니깐.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사실 하루도 없었어요
아.... 그 정도였어요?
살아있는 제 존재감이 싫었을 때... 왜 이러고 사나 싶었을 때 친구랑 함께 왔거든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왔던 곳이군요.
네... 뭐 상황도 그랬지만, 일단 그런 복잡한 마음을 다 잊게 만들잖아요 이 곳.
그러게. 나도 처음 와 보고 참 멋져서 복잡한 생각이 좀 줄어들었네.
너무 멋져서 저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왜요. 잘 어울리는데... 책을 읽고 있는 헤라씨랑.


'잘 어울려요'라는 그 말을 들은 것만 으로도,
나는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다시 고양이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바라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근데 오자마자 느꼈어요. 살다 보니 참 근사한 곳도 와 보게 되는구나. 그러니 살아볼까 라고...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또 이렇게 누구를 만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헤라씨가 이렇게 깊은 면이 있을 줄은 몰랐네..
...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
궁금했어요. 사실 언젠가부터 묻고 싶었어요. 그러나 물을 수 없죠. 제겐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아니깐요.
난, 좀.... 복잡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어요. 꽤 됐네...
........ 아
진우와는 헤어질 수가 없지만 그녀와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
아, 오해 말아요 걱정 말아요 헤라씨 때문이 아니라. 아 그니깐 하 말이 꼬이네. 내 말은..
.... 네

.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마음은 이미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상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사람 동물의 마음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사람의 모습이었고, 그렇게 사람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12시 전의 나는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부드러운 얼굴로, 조용한 목소리로 애써 울음을 참았다는 것을 말하면서 말이다.


아내에게 다른 사람이 있어요.
....?
꽤 오래된 사이란 걸 알게 된 건 최근이죠. 아주 최근. 헤라씨를 만나기 이전..
아.....
그거 때문에 헤어지려고 결심한 건 아니에요. 그냥 결혼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내를 이해하기엔 내가 부족합니다... 그냥 생활이 그렇게 썩 행복한 편은 아니었죠. 대부분 맞춰주는 편이고... 아내도 억울했겠죠. 워낙 서로 바빴고 대화도 그다지 있는 편이 아니었으니. 나는 장기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이 많았고 다녀오면 집은 항상 엉망진창에... 네 육아가 바빠서 일을 좋아하는 아내니깐 이해를 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해...라는 게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는 법이죠 뭐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은 계속 생기죠. 아 미안 이런 얘기 왜 하고 있는지 지금...
괜찮습니다 전..
아무튼, 마음의 결심을 하고 아직 말은 하지 않았어요. 마음먹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아이가 있으면 그렇게 돼요. 아이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나도 사람이라..
마음을 먹는데 오랜 시간... 그렇죠 걸리죠

 

 

 그가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도 잠깐잠깐 나를 쳐다보았다. 나란히 앉아는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얼굴을 바라보고 싶어 지는, 그렇지만 우린 그 누구도 먼저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로 하지 않았다.



부부동반 동창모임에 갔었어요. 다들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더군요. 3인 가족의 전형적인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와 잘 버는 남편, 잘 나가는 호텔리어에 예쁘고 서글서글한 성격을 가진, 돈도 잘 버는 아내를 둔 남자. 부럽대요. 나더러..
부럽겠죠... 저도 부러웠는걸요. 부러움의 기준이 좀 다르긴 하지만...(당신 곁의 모든 게 부러워요)
아내가 옆에서 맞장구를 치더군요. 웃으면서 말이죠. 근데 그때 이상하게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더군요.
아.....
집밥보다는 외식, 소박함보다는 화려함, 내면보다는 외면.... 그렇게 정 반대라는 게 더 선명해져만 갔죠. 그러다가 다른 사람과 만난다는 것도 알게 됐을 쯤엔..
...... 끈을 놓게 되었나요.. 아 죄송 그러니깐 전....
맞아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끈이 탁 하고 끊어져 버리는 느낌이었죠.
아....
미안. 미안합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이런 칙칙한 아저씨 얘기 따위. 어울리지 않네.
.... 어울리지 않는 건 없어요
....
다 때가 있을 뿐이고, 상황이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를 변하게도 만드니깐요. 단지 그거뿐이라고..
아..
나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그냥 그랬을 뿐이라고. 시간이 상황이 차장님께 지금 그럴 뿐이라고..
어른스럽군요 헤라씨 내가 더... 애 같아지네 지금은...
아니에요 저도... 저는 더 애입니다. 어른이 아니에요 어른이 뭔지도 모르겠고요
. 확신을 하고 나니 오히려 일은 바빠져서 그저 쳇바퀴 돌아가듯 참 바쁜 나날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나 자신이 쪽팔리더라고요. 아내를 원망하기보단 그냥 나 자신이 쪽팔렸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의 옆에서 조금 떨어져 앉은 채 말없이 손가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헤라 씨를 만났어요. 저녁에 야근하다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처음 말 걸어 주셨던 거죠
그랬지. 말을 하고 싶었으니깐. 누구한테라도..
제가 아니더라도 그러셨겠네요. 왜 하필 제가 거기 있어서..
... 그건 모르겠어요.  근데....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것도 아주 다행이란 생각
아... 저는


 나는 순간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내 허벅지를 꽉 쥐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러자 가라앉았다. 아픔도 이렇게 잠시일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더 이상 어떤 마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리는 다녀와서 하겠지만, 그전에 우리 부부도 떨어져서 생각할 기간이 필요해서. 아무튼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이상하게 무서운 예감이 내 꼬리를 타고 가슴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미국 출국을 앞당길 까 합니다. 좀 일찍 서둘러야 될 것 같아요. 아니 서두르고 있어요 지금.
아......


 나는 지금 잘못 들은 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은 막연히 했으나 이렇게 빨리 그를 못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 흐를 것만 같았다. 하나 말은 이상하게 마음과는 달리 흘러나가고 있었다.


아.. 시간이.. 시간이 벌써.. 이제 갈까요
헤라 씨
가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여기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앉아있던 그가 불쑥 내 손을 잡아끌어 다시 앉혔다.

 순간 힘의 당김에 중심을 잃고 잠깐 바닥에 쓰러질 뻔 한 나를 그가 일으켜 세워 주었다. 우리는 두 눈을 마주했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나를 그는 넌지시 바라보다가, 두 뺨과 볼에 타고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얼굴은 이미 그의 커다란 손바닥으로 받쳐진 채, 눈물방울들은 그의 검지 손가락으로 뺨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우는 이유를 알 고 싶어요
....... 모르겠어요 왜 흐르는지
난 알 것 같은데.
저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알 것 같았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모르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끝을 아는 시작도 있는 법이죠.
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울고 있는 나를 일으켜 준 뒤, 그의 오른쪽 손바닥이 내 입술 위로 넌지시 덮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등 위에 입을 맞추었다. 짓궂은 장난을 치고 난 이후의 미안함을 달래기 위한 유키가 내 꼬리를 잡아 끄는 것 같은, 그러나 느낌은 다른 그런 상냥한 몸짓이었다.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걸 압니다..
..... 비난... 사람 동물들 세상은 그런 거죠
... 왜 하필 지금 나타나서
하필 지금 마주해서
곤란한 상황을
서로 만들고 있네요..
만들고 싶게 만드는 거야. 왜 하필...
좀 더 빨리 아니 차라리 훨씬 더 늦게 만났더라면..
.... 헤라.. 고헤 라. 그 이름.. 기억할 거 같다.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새 10시를 알리는 지혜의 숲 중앙의 시계탑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저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켜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목소리들만이 공간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제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좋아... 하는 것 같아요. 저..
나도.. 생각  날 것 같습니다.


 그가 더 가까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발걸음을 뒤로 한걸음 물러서도 봤지만 그는 단호했다. 점점 더 가까이, 그렇게 얼굴과 얼굴은 손가락 하나 정도가 겨우 자리할 정도의 가까움이었다.


가까워지는 게.. 무서워요
나도.. 이런 내가 무섭습니다.
..... 잘 다녀오..



조금만 더 가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이미 들켰던 걸까.
어느새 입술과 입술이 맞닿아지고 있었다.
눈물이 맞닿아진 탓에 입술은 촉촉했다.


괜찮아요... 걱정 마요 그렇게. 안 잡아먹어
그게 아니라... 입술이... 짜..
풉.. 헤라 씨 이 상황에 이런 말 좀 미안한데, 귀여운 거 알아요?
아...
귀여워 너란 여자.. 그래서 우울하고 무섭다. 내가 또 변할까 봐
.... 변하는 게 싫은가요
싫다기 보단... 글쎄. 변하면 안 되고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늦었...죠
......
늦은 거 같아요 10시... 일어나요.
... 갈 거예요?
가지 않으면 어쩌려고요. 갈 수밖에 없잖아요. 같이 있고 싶어도 전 그러지 못해요
아....
정말 못해요...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려는 듯 그는 다시 한번 내 입술을 어느새 찾아냈다. 그리고 세차게 안아주었다. 그의 오른손과 왼손은 내 어깨와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아 더 이상 도망치고 싶어도, 아니 가까이 있고 싶어도 아무 움직임도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세게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


 짧지만 영원 같았던 단 한 번의 키스, 그리고 거침없이 나를 끌어 잡아내 준 그의 포옹을 뒤로한 채 우리는 지지향에서 나와서 주차장까지 말없이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나와서 차를 타 집으로 가는 1시간 내내 그저 차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가사도 들리지 않은 채 단지 몽환적인 영화 BGM과 같은, 우주의 울림과 별빛의 흐름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음들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멜로디였다.


잘 가요 헤라 씨.
안녕히 가세요.
... 3년... 다녀오면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아..... 3년.. 긴... 시간이네요  
그때 다시 볼 수 있을까요
... 모르겠어요
... 그래요 잘... 가요. 가기 전에 음... 아니 아닙니다. 잘 들어가요
... 네. 오늘 고맙습니다 지혜의 숲..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기억... 해 주시고  
....... 저..
..... 보고 싶을 겁니다. 다시 보게 될 때까지.


보고 싶어요. 다시.. 언젠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제와 같은 똑같은 밤은 이제 똑같아지지 않아 버렸음을 우리 둘은 얼마나 비슷하게 느꼈을까. 차마 말할 수 없기에 내가 그 보고 싶다는 말을 내뱉고 나서 얼마나 무서웠는지도 그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조용히 정말로 조용히 그 말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보고 싶다고, 다시 언젠가.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바라봐도 좋으니, 아니 고양이 여자인 나를 다시 한번 더 바라봐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지언정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말이다. 그냥 딱 이 정도의 거리에서. 너무 먼 거리가 아닌 딱 이 정도의 관계와 이 정도의 마주하는 거리라면 좋을 텐데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다가감의 거리. 3년이라는 긴 시간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그곳을 생각하며 나는 말없이 보고 싶다는 말을 마음으로 되뇔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잠든 아내를 바라봤다. 조용히 나는 출국 수속 서류들과 각종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서재 방으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켰으나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향기와, 입술의 느낌이 남아 있는 탓일까.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어 진다. 12시가 지난 이 시간에도.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핸드폰을 내내 바라보기만 해도 그녀에겐 연락이 오지 않을 텐데. 나는 어느새 그렇게 오지 않을 연락을 밤새 기다리기 시작했다.


과연 잘 해 낼 수 있을까.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지, 아니 그 3년간 얼마나 비슷한 일상을 또 살아낼지.

그것보다 그저 나는 지금 그녀가 여전히 보고 싶다.
연락은 하지 못한 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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