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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4. 2017

38. 너에게 닿는 거리  

11년, 여전히 너에게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생각한다. 그 음악 때문에.

 매번 들을 때 마다 한결같이 나를 울리는 노래가 몇 개 있다. 

살아가다 보면 그런 인생 노래 한 두 개씩은 품고 사는 게 당신과 나인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 차 안에서 노래 하나가 들려 나왔다. 오후 5시, 라디오에서 담담히 흘러 나온 그 노래는, 여전히 그냥 들을 수 없게 만드는 노래였다. 11년이 지났음에도 어쩜 그리 한결 같이 나를 울리는지. 가끔 신기할 따름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지나가려는 쌀쌀한 계절의 석양 지는 가을 하늘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진 건, 아마 그 노래 때문에 생각난 나의 옛 친구, 그녀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예쁜 걸 보게되면 여전히 가끔 눈물이 나. 왜 그런 지는 모르겠어. 아직 순수하다는 증거인걸까.. 아님 약해서인걸까.


‘희재’ 

수경이가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그녀의 SNS 속 배경음악이었다. 11년 전 이 맘때. 난 친구를 잃었다. 


“수경이가 죽었어..”


거짓말 같았다.

 저녁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가 전해 들은 그 소식에 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저 만나러 가야 한다는, 직접 봐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을 뿐. 


 동아리 선배의 차를 타고 친구들 몇 명과 급하게 인천에서 광주로 떠났다. 그 오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 안의 우리들은 몇 마디 주고 받지 못했다. 아니 말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을 거다. 다들 나처럼 믿을 수 없었으니까. 믿지 않았으니까. 직접 보기 전까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도 믿지 않았고 사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 없어…”


 차를 타고 가면서 온갖 생각이 가득했다. 사실 수경이는 내겐 그렇게 친한 친구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친구였다. 친하지 않지만 기억할 수 밖에 없는 특별했던 여자 친구 말이다. 


 그녀는 내 첫사랑의 여자친구였고 우린 서로 알고 지내야 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나는 사실 그녀를 '친구'로 대하지 못했다. 수경이를 나는 참 많이 마음으로 미워하고 질투했었으니깐. 대놓고 내색 하진 않았지만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나는 내가 작아짐을 매번 느꼈다. 유쾌하고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친구가 많았던 수경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여자친구 같았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가 가장 아프게 좋아했던 첫 사랑의 그녀였다. 그랬기에 더더욱. 그녀를 보면 난 마음이 아팠다. 


그와 함께 있는 그녀와 마주치는 게 참 힘든 그 때의 나였다. 


“수경아 오늘 예쁘다…..”
“고마워.”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내게는 유독 단답형으로 짧은 대답을 건넸을 뿐인 수경이는, 아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나도 좋아했다는 걸. 


 그렇게 나는 참 아픈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에 아팠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섣불리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둘을 지켜 보다가 유학을 떠났다. 친구들을 통해 간간히 그녀와 그의 소식을 접해 들었고 나중엔 헤어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랬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질투했었다. 한때의 그가 좋아했던,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모두 경험했을 그녀를 상상했기 때문이었을 지 모르겠다. 참으로 바보 같고 어리석은, 그러나 사랑 앞에선 이도저도 잴 수 없는 사람이라 가능한 상상 말이다. 


유학을 다녀온 후의 일이었다. 수경이의 비보를 들은 건. 

 도착한 장례식장은 정말 초라했다. 가족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놀랐지만더 충격이었던 건 내가 미처 몰랐던 수경이의 어두운 이야기들이었다. 내게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그녀였는데, 그렇게 아프게 살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알지못했다. 


 무지가 때론 큰 죄악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도와 주진 못할 망정, 숨겨진 내면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고작 질투나 하고 있는 사랑에 눈이 먼 속물 중에 속물이었으니까. 그렇게 바보 같은 나였다. 


 영정 사진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 웃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시원한 성격의 수경이는 여전히 내가 질투 했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단다. 장례식장 특유의 향초 냄새와 다 식어빠진 맛 없는 육개장을 앞에 놔두고나는 그때도 믿을 수가 없었다.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울증을 겪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일찌감치 이혼을 하셨고,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다고 했다. 남동생이 있었지만 평범한 학창시절은 보내지 않았다던 철 없는 남동생,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집안의 생활고. 밝지 않았던 가정사. 그게 수경이가 그간 겪어야 했던 현실의 모습이었다. 


 나의 첫사랑인, 그와 헤어지고 난 이후 수경이는 많이 힘들어 했다고 들었다. 그를 많이 의지했을 것이다.내 첫사랑의 그 남자는 자상하고 밝고 늠름했고 모든 게 완벽한 것 같은 남자였으니까. 충분히 의지할 만한, 멋지고 근사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그는 볼 수 없었다. 그는 끝내오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느낀 상실감과 그가 느낀 슬픔의 깊이는 달랐던 걸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서 있을 힘이 수경이에겐 남아 있지 않았던 걸까. 우울증으로 병원에 잠시 입원해 있었고, 그녀의 엄마가 잠시 병실을 벗어났을 때, 그녀는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어떤 마음이었을 지...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됬어. 그 이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으니깐..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 사실 난 매일 그녀의 SNS에 들어가 보곤 했다. 그와 찍은 사진이나 데이트를 한 흔적의메시지를 접하게 될 때면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들어가 본 이유는, 그만큼 사랑 했었던 걸까. 모르겠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조금이라도 연결되고 싶어서. 


그가 좋아하는 그녀를 닮으면, 날 좀 더 바라봐 줄까 라는 바보 같은 마음의 나 였으니깐. 



사람이 말이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이 없어지고 슬퍼도 그 슬픔을 겪은 그 상황에선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다는 걸, 그녀가 떠나간 뒤 알게 되었다. 새벽녘, 집으로 귀가해서 나는 바로 방 안에서 PC를 키고 그녀의 SNS에 들어갔다. 


배경음악이 흘러 나왔다. '희재'였다. 


 그 홈페이지의 반복 재생되고 있던 음악을 듣자마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질투 했었던 그 예쁘고 부러웠었던 여자친구가 이젠 더 이상 질투할 수도, 부러워할 수도 없이 돼 버린 순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던 그 순간의 나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정말로 울면 내가 그댈 보내준 것 같아서”


 눈물이 났고, 한동안 멈추지 않았고, 그녀를 그렇게 보냈다. 질투심도 시기심도, 미워함도 없이 그녀를 보내줘야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렇게 다시 한순간 아팠다가도 다시 살아가야 하니깐.
잔인한 현실이지만 그게 사실 이니깐. 



 어쩌면 그녀 덕분일 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있었던 이유. 

 대학 시절을 그렇게 치열하게 보냈다. 낮엔 공부하고 책 읽고, 밤엔 야학교 봉사활동을 하고,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를 세탕씩 뛰며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유학을 가고 장학금을 받아냈다. 물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또 꿋꿋하게 여전히 사랑을 하려 애썼던 나의 이유들 말이다...


 모두 다 그녀가 내게 남겨 주고 간 ‘죽음’ 이 주는 무언의 메시지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의 기억도 차츰 추억으로 변한다. 

 기억하던 사람의 고갯짓과 웃음소리와 걸음걸이와 손길은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어 엄청난 상실감이 밀려올지라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그렇게 사라지기도 하는 걸까. 그러다가도 어떤 연결고리 때문에 추억으로 종종 찾아오게 되고 말이다. 누군가에겐 음식, 옷, 책, 편지, 누군가에겐 노래....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희재’라는 음악을 우연히 듣는 날이면, 떠난 그녀가 생각난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여전히 마음이 두근거리고 아파서..
생각이 나도, 연락을 할 수가 없다. 멀어져도 너무 멀어졌으니깐. 
닿아질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한편으론 이기적이지만 고마울 수 밖는 그녀라는 걸. 

 그녀의 죽음 덕분에, 나는 좀 더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어졌다. 무슨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 한때 뭣도 모른 채 그녀를 질투 했었던 내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이젠 그녀 몫까지 더 살아 내야 다는 마음이 정말 강했으니깐. 그때부터 였을 지 모르겠다. 정말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됬을 때... 


볼 수 없는 그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대신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그렇게라도 대신할 수 있는 것만 같아서...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말이다. 

 있는 힘껏 해줄 수 있을 때 그냥 뭐든 해 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재지도 말고, 마음이 다한다면 되도록 사랑하며 살았음 좋겠다. 그들이 그녀들이, 당신이 그리고 내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은 흑백사진이 됬지만 말야. 그때 손을 잡아줄 걸 그랬어....그랬다면 널 덜 질투하고 더 좋아했을 텐데..미안해..미안해...


 너의 '희재'를 아주 오랜만에 듣게 된 오늘은, 더욱 더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을, 더 사랑하고만 싶어진다. 그래서,  울면서도 오늘은 더 활짝 웃어본다.



고마워 수경아. 그리고 미안해....널 질투했고 미워했었어. 부러웠었거든. 참 많이...그만큼이었어.
내 속물같은 사랑의 깊이가 그땐 그정도였어.

그러나 10년도 더 된 지금은 알 것도 같아.
네가 내게 해준 '너도 부러워' 라는 그 말의 의미를......

나...네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고 싶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여전히 흘러가 보고 있어. 
난...잘 살고 있는 걸까. 오늘처럼 '희재'가 들리고 널 떠올리면, 그때의 내가 생각나.

그 순수함이. 지금도 아직 남아있는 걸까. 그래서 여전히 내가 아픈가봐
아파도, 여전히 잘 지내볼거야. 네 몫까지. 꿋꿋하게. 지켜봐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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