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r 13. 2021

팀장의 마음

리베카 솔닛이 말했던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더욱 닿았던 요즘이었다.

과거엔 B2B 생태계의 제품매니저. 사업개발과 영업 관리자였다. 팀'원'이었고 미혼이었고 또 아이가 없어 다소 자유롭고 독종이었던 기혼녀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당면한 현재의 '나'는 재배치되어 있었다. B2C 생태계의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신사업이라는 프로젝트의 PM이자 소수의 크루와 함께 하는 팀'장'으로. 미취학 아동을 둔 기혼녀 워킹맘이라는 세팅값과 함께. 



생각해보면 이 모든 환경설정은 자발적 의지에 의해 만든 것들은 사실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다 본가에서 먼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그래서 졸업을 하자마자 입사를 했다. 그리고 일을 했다. 힘들었던 초년생 1년 차를 지나니 3년 차가 되었고, 다시 또 방황하던 시기를 거쳐 5년 차, 그리고 7년 차, 그리고 10년 그 이상을 찍으며 어느새 나는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퇴사 또한 엉겁결에. 그 이후 어쩌다 전업주부로서 평일 한낮의 호사를 누리며 마음껏 책을 읽고 마음껏 질리도록(!) 요리와 청소를 하고 식구들을 살피며 가사노동을 했다. 물론 그 그림자 노동은 여전한 현재 진행형.... 아마 자식들이 다 커도 떠나지 못할 '업' 일 것 같지만.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흘러 어쩌다 받게 된 전화 한 통과 현 회사에서 어쩌다 기획자, 그리고 팀장이 되기 까지. 



해가 뜨고 지는 게 반복되듯, 인생이란 새로움과 끝없는 마주하는 마라톤처럼.... 어떤 산들을 넘는 과정 같기만 하다.



어쩌면 뭐든지 나로 하여금 아프고도 깊은 성장을 하게 만든 시작은 모두 '어쩌다' 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길' 앞에서 인간은 선택이라는 의사결정의 갈림길에 놓일 텐데. 나로 하여금 내적 충돌로 인해 고민은 숱하게 할지언정, 딱 하나. 내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시작' 앞에서 덜 무서워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마치 무식한 놈이 오히려 용감한 것처럼. 세상의 아픈 면들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 가장 세상을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언제나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긴장보다는 설렘이 49:51 정도였다.

그리하여 내 인생 앞으로 불어 닥친 '현실'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한들, 일단 해 본다는 것... 그건 어쩌면 나의 유일한 장점...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헤치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한번 시작한 것에는 나름 '성취'와 '만족'과 '결과'와 '기쁨'이라는 감정을 얻으려는 피곤한 성정의 캐릭터에게는 특히 더.   



어쩌다 팀장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비조직형 캐릭터라 생각하는 내가 근 십여 년 동안 조직생활을 해 왔다는 게 사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현재 조차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꽤 오래 '팀장'으로 일했던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들 정도로 (아니 내가 뭐라고; ) 짧은 시간 안에 크루 간 프로젝트와 회의체를 셋업하고 그녀들에게 나름의 R&R 과 매일 매주 사소한 업무적 미션을 주고받으면서. 더 신기한 건 그렇게 어느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는 '나' 에게, 그리고 그런 나를 매끄럽게 잘 따르는 크루들의 답신을 받게 되면 가끔 신기함을 느끼고 만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루들의 표정이 그 답이라면, 나는 조금 안도했다. 그들의 미소를 보았으니까...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마치 해본 사람(?)처럼 일이 되는 걸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설명이 매끄럽게 나올 순 없지만, 현재 나는 모든 마주하는 일터의 시간이 생소하고 신기하며 가끔 메일이나 대담을 주고받으며 신기하고 긴장되며 설레기도 하다. 한편 그만큼 매일 매 순간이 상당수 거친 챌린지이고 그리하여 어떤 생존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긍정하려 애쓰다 보니. 그 애씀은 짧은 시간 급격한 몰입을 유도하게 되고, 그리하여 개인적으로는 순식간에 지치고 옅은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이고 있다는 신호를 신체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미 식욕은 저하 상태가 되었고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퇴근 후 2차 근무지인 집으로 숨에 헐떡이며 달려가 쉬지 않고 아이들을 양육하던 도중, 자꾸만 떨치지 못하는 어지러움증에 시달리다 보니 결국 다시 빈혈약을 찾기 시작했다... 



한 번 경계를 넘어본 사람은 두 세계, 두 차원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그는 경계를 넘기 전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 일하는 마음 中 경계를 넘게 하는 것 - 



그리고 팀원에서 '팀장' 이 되어 나는 현재 어떤 성장의 경계를 넘어가려 하는 것 같았다. 나'만 생각했던 일터에서 이젠 나뿐 아닌 크루들과 함께, 업적으로도 개인 성장으로서도 좋은 결과물과 함께, 사실 크루들로 하여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팀장, 좋은 리더였다고 훗날 회자될 수 있는 '나' 이기를 바라기에. 



겨울을 지낼 수 있는 건 봄이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그 마음, 희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메일이, 일이, 다음 미션이 기다려진다' 던 크루의 긍정적 피드백과 태도를 느끼면, 묘하게 감동스럽다... 

사실은 내 코가 석자이지만. 언제나 퇴근 시간 전엔 아이들을 데리러, 늦지 않게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과 번뇌와 마음의 불안에 사로잡혀서 전전긍긍하는 찌질한 워킹맘일 뿐인데. 다만 오지랖 넓고 여리고 나 또한 조직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힘들어본 말로 다 하지 못할 에피소드를 숱하게 겪어온 여성 노동자였던지라.... (눈물 콧물 물이란 물은 다 쏟아냈던 것 같던-지난한 시절..... ) 



팀장이 된 현재, 나뿐 아니라 크루들의 성장을 동시에 생각하려는 마음의 기저엔 이 신념이 깔려 있다. 

서로 보살피며 일하기로. 개인감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마음 챙김을 독려하며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명확한 미션을 정의하고 리딩 하기로. 마음적 불안보다 기쁨이 더 한 일터이고 동료로서 연결되어야, 국 개인의 커리어적 퍼포먼스와 효율성, 아울러 업무를 헤쳐나감에 있어 어떤 생산성마저 증대시킬 수 있다는 개인적 '일'을 대하는 이 신념 하나에 의지한 채... 



언젠가부터 워라밸은 이미 붕괴되어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틈틈이 일과 크루 생각을 하고 마는지라.

일이 일상이고 일상이 일이 되어 버린 묘한 덕업 일치(?)가 되어버린 아줌마 기획자이자 팀장이 어쩌다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 시간도 언젠가 지나가고,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 이 되는 삶의 '과정'이라고. 그리고 이왕 믿는 것, 정말이지 강한 긍정을 가지고 믿으려 애쓰는 중이다. 이 모든 시간들 속에서 분명 배우고 또 고마운 것들이 생길 것이라고. 결국 고마워할 줄 아는 이가, 고마운 행운을 득할 수 있으리라고도. 



최근에 다시금 스스로 만든 출퇴근길의 이 주문을 기억하자고 다짐을 거듭한다. 

'씩씩하고 경쾌하게'라는. 언제나 말미에는 나의 아이들을, 후세대의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


봄은 온다. 겨울이 지나가야. 씩씩하게 기다리고 또 나아가다보면. 결국 꽃은 피고 봄도 오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즐길 수 있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