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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26. 2021

달을 보며 염원했다.

오늘의 나를 사는 것이 내달, 그리고 내년과 10년 후로 이어지잖아요.

그러니까 '틀' 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나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걸... 

날마다 그런 생각이 절실해져요. 


- 우리함께 호오포노포노 中 타이라, 요시모토의 대화 - 





밤 9시가 다 되어 친정 어머니는 귀가하셨다.

다 함께 배웅을 하러 나갔더니 하늘 위로 달이 보였다. 둘째가 외쳤다. 첫째도 뒤따라 말했다. 소원을 말해야 한다고. 멀리 사라지는 엄마의 차. 떠난 그 자리엔 대신 아이들의 목소리가 채워지고 있었다. 조용했던 동네에 우렁찬 소리가 퍼지는 순간, 제지를 해야 했지만 왠일인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문장은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큰 마음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려 깊고 순수하고 기특하고 누가 들어도 훌륭한 마음이 고스란히 베어난 사랑의 문장... 그것은 세상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받기에 익숙하고 내어주지 않으려는 욕심쟁이 어른이라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생각조차 하기 쉽지 않은 문장이었으니까. 



- 소원 빌어 엄마! 

- 응... 우리 둥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모두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건강하기를.... 

- 할머니 죽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 할머니 부자 되게 해주세요 달님 

- ....

- 우리 할머니랑 오래 오래 안 죽고 살게 해주세요! 제가 가진 거 다 할머니 줄거예요 달님 

- ....저도....다 주게 해 주세요. 더 주게 해 주세요.... 내 사람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가 아플 때, 여전히 내가 아프길 바란다.. .엄마도 그랬다 했었다..지금 나는 그 마음의 사람이 되었다.....



이미 차 오른 눈물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 왈칵 흐르는 건 한 순간이다. 언제나처럼. 

아이의, '다 줄거예요' 라던 문장에 감동을 했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은 나 때문이었겠다. 순간 한껏 붙잡고 있던 끈 하나가 탁 풀어지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요 근래의 나 때문에. 무쓸모하고 소모적이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을 내내 하며 지낸 탓에, 온 심신의 에너지를 한껏 낭비해야 했던 시간 때문에. 그리고 '할머니 다 줄 거예요' 라는 그 말에, 씩씩하게 엄마와 귀가 전에 주고 받았던 대화 때문에...



- 회사, 1년 쉬고 다니려니 힘들지? 도움 필요하면 말해. 애들 볼 수 있으니까. 

- 걱정마 엄마. 아이들 이제 다 커서 등하원 시키면서도 회사 잘 다니고 있어요. 끄덕 없어요. 

- 애가 근데 왜 이렇게 핏기가 없어. 깡 말라가지고. 아프면 다 소용 없다. 너 챙겨 이것아. 

- 아냐. 나 괜찮아. 

- 넌 너무 열심히 살아서 탈이야. 혼자 애쓰지 말고 엄마 불러. 나 간다. 

- ....... 미안해....고마워 엄마....



맞습니다. 엄마...당신이 잘 보셨습니다. 저는 요즘, 어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도 지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지난 주말부터 약을 먹어도 기침이 쉬이 가시지 않았던 첫째 아이로 인해. 등원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되도록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여기저기 온 몸이 자잘하게 고장나버린 그녀였기에. 나 때문에... 쌍둥이를 함께 기르며 두 여자는 여기저기 성할 날이 없었다. 만신창이가 되었었다. 일을 하는 여성에겐 또 한 여성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누가 그랬는데. 그 문장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어쩔 도리 없이 워킹맘의 도움을 선뜻 받아주는 존재. 아니 먼저 나서서 아이들의 돌봄을 자처해주는 여성. 나의 친애하는 당신, 평생의 의지처이자 나의 아픔, 나의 사랑, 나의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긴 대상...엄마.... 



봄밤의 보름달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절실해졌다.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고 그들을 지키려면 나 자신도 같이 지켜야 한다는 어떤 생각이. 뜨거운 무언가가 목울대를 넘어서 올라오려 했다. '다 줄거예요' 라던 아이의 목소리와 '넌 너무 열심히 산다' 면서 혼자 애쓰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던 엄마의 목소리... 



당신에겐 감출 도리가 없다는 걸 압니다. 감추며 살지만 이미 알아채버리곤 모른척 하는 나의 당신이라는 걸 알기에...



누군가에게 자꾸 주기만 하려는 그들의 사랑이 고마워서. 

그리고 그만큼 그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그런데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 삶의 형태가 과연 이들을 제대로 지키며 살고 있는 건지, 일을 다시 한다는 핑계로, 종종 감정이 뒤틀리거나 지쳐 있을 때 괜한 짜증을 가족들에게 내어버리기도 했던 요즘의 나였어서. 이 못난 행태들로 인해 도리어 사랑하는 그들에게 폐만 끼치고, 본질이 훼손된,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결국 사랑하지 않는 형태가 아닌지 가끔 스스로 의심하고 자책하고 흔들리기에. 



달을 보고 간절히 염원했다. 

그들을 지키며 받은 만큼 더 사랑하며 내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만큼, 지금의 '나' 또한 지킬 수 있기를.

사랑하는 일을 부디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당신들을 지킬 수 있는 게 내 삶의 우선순위라는 걸 이제는 잘 압니다. 그래서 지키려 합니다. 당신들과, 이런 연약한 나라도.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용서해....이런 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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