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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31. 2021

두 번째 퇴사

증오의 에너지는 당신을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해요.

하지만 사랑을 통해 나타나는 용서의 에너지는 삶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죠. 


- 오 자히르 中, p 96   - 




퇴사를 했다. 한 달 하고도 일주일간의 시간이었다. 

십여 년을 근무했던 이전 직장과 대비하자면 이 행태는 입사라고도 할 수 없고 퇴사라고도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고용계약서도 없었고 인수인계도 없었으니까. 다만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공간이 있었고 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며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월급명세서가 있었을 뿐. 



고작 한 달 여간을 다녔을 뿐인데, 나는 힘들었다...

언제나 '힘들다'는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다. 스스로 그 말을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아서 이전 직장에서도 버티고 또 버텼었는데. 이번엔 왜 버티지 못했을까...억지로 '버티듯' 살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 덕분에. 생각해보면 초년생 때의 회사라는 곳은 내게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왕복 4시간 출퇴근 덕에 뼛속까지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미라클모닝러가 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 덕에 책은 지겹게 읽었고 자기 계발력도 나름 튼튼하게 쌓이는 '독종' 이 되어갔다. 견디다 보니 좋은 선배 동료들의 좋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자연스레 세상과 사람을 향한 어떤 '맷집' 이 생겼다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번 회사에서도 나름 자신했었다. 게다가 커리어 전환이었고 무엇보다 '일' 이 좋았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백이 없었던 게 탈이었던걸까. 여유가, 여백이 없었던 것이.... 몰아치는 것들을 향한 마음의 여백조차...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던데. 물론 나 또한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었다. 

짧았지만 아주 강한 자괴감과 절망감, 무언의 괴로움과 동시에 소속 조직에서 느껴지는 상당수의 위화감,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마는 일터에서의 가치 충돌까지. 그로 인해 나는 점점 사람이 무서워지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고백일 수 있으나, 십 년 이상을 조직생활을 하고서도 여전히 나는 사람이 무섭고 믿지 못하고 만다는 걸 알았다.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고 말았으니까... 이 회사를 애당초 추천해 주신 분 조차, 사실 깊이 원망하고 의심하고 미워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집에서 '노는' 전업주부 구제해 준 것처럼 (그는 언제나 '논다'는 표현을 썼다. 주부는 노는 인력이라는 올드한 생각이 깔린 그 이면엔 어떤 세계가 있던가) 으쓱하며 고마워하라 농담을 주고받았던 그분 조차 어느 순간 깊이 원망했으니까. 그만큼 힘들어서. 그만큼 속 상해서. 



예쁘게만 보이는 꽃이, 사실 얼마나 열심히 버티는지, 얄팍하게 겉만 보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시린 인내의 시간을.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퇴사를 결심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와 아이들을... 스스로 자책하는 내가 보였고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자괴감에 빠진 내가 보였으니까.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그렇게 묘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터의 말들.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의 소음과 잡음들로 인해. 게다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이미 무언의 스트레스를 풀고 마는 엄마도 보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을 다시 시작한 이유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신호가 아니던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궁극적으로 돈을 벌거나 일을 하려는 이유의 본질은 나로서는 사랑하는 것들을 (사람과 일) 지키기 위함인데, 과연 이것이 잘 지키고 있는 것인가 싶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이들을... 




강한 사람들에게 희생당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연민의 욕구를 채워줄 뿐이죠. 혹은 정반대로,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공격할 준비를 끝낸 보복자로 위장하게 만들든가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사실이에요. 인간적이죠. 하지만 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요. 지상에서 보낼 당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세요. 신께서 늘 당신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요. 그리고 당신 또한 사람들을 용서하세요. 


오 자히르, p. 97 




오늘 아침, 퇴사 전 아이들과의 대화가, 그리고 출근하며 버스에 탔을 때 그이가 건네준 메시지를 내내 기억하려 했다... 



- 엄마 이제 집에 있을 거야. 이제 너희 아프면 할머니 안 오셔도 돼. 엄마가 있을 거야. 내가 지킬 거야. 

- 엄마 회사 좋아했잖아. 엄마 일 매일 하잖아. 일 한다고 안 놀아줬잖아. 

-... 응.. 좋았는데 또 싫어지기도 해... 엄마가 못났어. 그래서...

- 엄마 혼났어? 

-... 아니. 그런 거 아냐.

- 난 좋아. 

- 좋아...? 

- 응. 엄마가 안 힘든 게 좋아. 회사 가지 마 엄마. 근데 우리 이제 돈 없어? 엄마 회사 안 가서?

- 그러게. 아빠가 더 힘내야겠네.... 아빠 도와주려고.... 엄마는 노력 중인데, 아빠한테 미안하네...

- 아빠는 엄마 도시락 열 때 제일 행복하댔어. 아빠가 말하는 거 들었어. 아빠는 괜찮댔어. 

- 아........... 



그의 시간은 새벽에 시작해서 해가 져야 끝난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그가 아파서..... 대신해주고 싶었다...그 뿐이었다. 



짧았지만 다니는 내내 깊이 미워하고 자책하고 원망했던 마음을 흘려보내기로 노력하는 중이다. 

자책하고 절망했던 '나' 조차도 용서하기로... 아울러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누구도 미워하려 하지 않은 채로. 결국 그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기로 선택한 것도 '나'이고, 어떤 환경이 주어졌든, 어떤 장면과 조우했든, 결국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연결들이었기에. 원하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으며 듣고 싶지 않았던 일터에서의 속상함을 겪어야 했지만. 



아픈 경험치가 쌓일수록, 삶의 본질과 사랑의 대상을 깊숙이 살피는 계기가 된다.

심신의 진을 다 빼갈지언정, 곧 있으면 품에 안겨 깊고 순정한 사랑을 주고받을 나의 아이들을. 피할 없는 세상의 굴곡 속에서 '우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당신의 보이지 않는 무거운 어떤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 그러나 도울 길이 딱히 보이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늘 미안하고 고마워서 마음이 아픈 나의 그 사람, 나의 그이... 그리고... 기어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마는 여전히 약해 빠진 울보 한 명을. 



퇴사를 하고 나오며 꽃을 보았다. 

그제서야 봄이 눈에 들어왔다.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다 괜한 자격지심에 초라해져서 눈물이 차오르려 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지 모습 그대로, 다시 껴안고 사랑하며 살면 그만이라고.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잘 했다고. 넌 태만하지도 무능하지도 않다고. 별 거 아니라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열심히, 사랑하며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사랑.......해..... 




#읽지도 쓰지도 못했는데, 한편 감사하다. 계속 다녔다면 눈치보며 못 했을 지 모를..사랑하는 진짜 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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