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r 21. 2021

네 옆엔 내가 있어. 엄마가 있어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순 없으니까.


-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 中 - 




아이를 보며 줄리언 반스의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던. 

금요일 밤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다행히 주말이 남아 있었고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나면 금방 나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한편으로 이런 내가 참으로 못나 보이고 우스웠다. 스스로 안도하려고 노력하는 꼴이라니. 아픈 건 아이인데. 위로의 대상은 따로 있는데. 왜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던 걸까. 수시로 쌍둥이가 번갈아 아팠던 시절... 안절부절못하면서 노심초사하다 결국 혼자서 눈물을 삼키는 게 습관이 된 자신을 연민하는 것이 다시금 습관이 된 걸지도 모른다. 그들을 지키려면 내가 괜찮아야 했으니까.



코가 심하게 막혀서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내 뒤척이며 끙끙대는 아이 곁을 지켰다. 

필요하면 물을 먹이고 수시로 열이 오르는 건 아닌지 이마를 매만졌다. 이불을 걷어차며 연신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고통스러워하며 연약한 짜증을 내는 아이의 맨발을 손으로 주무르며 위로하기 급급한 새벽의 시간. 어느새 동이 트고 새벽이 찾아와 그제야 아주 잠깐 지쳐서 결국 잠에 든 아이. 그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못나고 모진 말을 허공에 대고 내뱉어 버렸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생각은 어느새 문장이 되어 탄식과 함께 허공에 부유하고 만다...



- 애 엄마는 역시 안 되나... 일이든 꿈이든. 이 시기에 내가 뭘 한다고.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가족의 존재는 할 수 없게도 그러나 한편 그 생각을 넘어 할 수 있게도 만든다... 가족만 아는 그 사랑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수시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런 생각들과 투쟁해야 했다. 

생존을 향한 본능적 전투력은 상승했으나 동시에 삶의 어떤 지리멸렬한 환멸감과 좌절감도 언제나 따라붙었다. 쌍둥이를 키워내며 가장 곤혹스러웠던 영유아 시절엔 더더군다나. 마음엔 이미 활화산이 피어오르고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감정의 감옥에 갇혀 살았었다. 



한 명을 재우면 한 명이 일어나니, 잠을 잘 수 없어서 스스로 반 괴물이 되어 버린 신생아 시절.

소아과를 가더라도 짐보따리는 남들보다 두 배 그 이상이어야 했었으니까. 필요하면 아기띠를 앞 뒤로 두 개를 메고 다녔고 엄마'만' 찾는 아이 둘을 위해 젖병을 양손에 들고 두 아이를 동시에 먹이며 살려야 했다. 감기에 걸려도 순서대로 반복. 쉬이 낫지 않는 아이들. 그 덕에 늘어가는 건 깡과 오기와 맷집과 같은 생활인의 강한 습성들. 모성 따위 사실 모르겠고 다만 낳아놨으니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만 선명한 채, 남들은 예쁘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그 예쁨과 사랑스러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영유아 시절... 



부모의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웠던가를, 아이를 보살피는 입장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았다. 

노심초사하고 불안한 시간의 반복.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쌍둥이와의 삶. 속수무책으로 밀려오는 어떤 분노와 우울과 자괴감에 도저히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는 인간적 가치를 전혀 찾아보지 못한 채, 정신은 쿠크다스처럼 부서지고 또 가루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었던 시간들... 




@어떤 가족 중. 한 사람의 생이 다수의 생을 살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엄마'가 되어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혹독한 시간을 통과하면서 동시에 깨달은 삶의 새로운 이치들도 맞이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 이외에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에 대해서. 낳았다고 모두가 제대로 된 사랑을 주고받는 부모로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보살피는 이들이 사랑의 대상에 대해 품는 양가감정. 사랑하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어떤 복잡 미묘한 감정선에 대해서. 그러나 결국 완전무결하게 내어주고 마는 사랑의 근원에 대해서. 



아이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리고 낳았다고 다 부모로 제대로 사는 건 더더욱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알아갈수록, 나는 점점 더 아이들로 인해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그들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면으로 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밤새 아이를 지키며, 그의 호전되는 상태를 지켜보며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그의 안위와 안전과 평온과 건강만을 생각하고 말았던 어떤 마음의 근원에 대해서. 



낳는다고 엄마가 되는 게 아니다. 살피고 살리고 사랑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엄마가 된다.... 기억하려 한다. 그 사실에 대해서. 




아이가 아플수록 나는 '진짜 엄마'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스스로 한탄하고 탄식하고 주저앉았던 생각 다음엔 바로 이 본심이 뒤따라왔으니까. 


'네 옆엔 내가 있어. 엄마가 있어.'


이번 생에 단 하나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마음이 그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리고 살피며 아끼고 보듬는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인간으로 살다 가기를... 



그렇게 살다 가는 인생들이, 좀 더 아름답게 꽃 피웠으면 좋겠다... 나의 엄마도, 그리고 지금의 나도... 


작가의 이전글 진짜를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