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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05. 2021

차단

아들에게.

자주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지난번 편지 이후 두 달이 지났다. 그 새 계절은 바뀌었지. 겨울에서 봄으로. 느껴지더구나. 우리 살갗에 부는 바람의 온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새 우리의 일상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편지를 쓸 여유가 이제야 다시 날 정도면, 나의 두 달은 너희 둘과 함께했음에도 무엇에 그리 정신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싶다. 고작 두 달에 불과한데 말이다. 여느 때처럼 너희들을 기관에 보내 놓고, 식탁에 앉아 습관처럼 책을 읽으려다 오늘은 키보드에 손이 먼저 올라간다. 너희들에게 이 말을 꼭 남기고 싶었다는 영문 모를 이유에 휩싸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 영혼을 갉아먹는 세상의 모든 소음과 인간들로부터, 너를 지켜라. 

그리하여 되도록 열심히 차단해주렴. 널 통과해서 훼손시키기 못하게. 

네가 너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거나 피하는 건 약한 게 아니란다. 오히려 똑똑한 용자들만 할 수 있지. 

세상의 험상궂고 지저분한 것들로부터, 신념과 사랑을 지키려는 현명한 인간의 투쟁이고 분투일 테니까.



차단을 시킬 수 있는 열쇠,  그리고 다시 열 수 있는 것도, 모두 열쇠를 가진 너 자신뿐이다. 




엄마에게도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단다. 너희들이 아주 어렸던 어느 시절의 일이지. 

어떤 공간의 어떤 소음들, 어떤 이들의 말과 행동들이 나의 눈과 귀를 통과하면서부터. 적합한 표현을 찾는데 실패했지만 아무튼 지간에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환경들이 결국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지. 게다가 너희들에게까지 피해가 끼치는 것 같아서 몹시 고통스러웠다. 일상에서는 이미 일종의 신호들이 찾아오더라. 몸에서부터 반응이 일어나면 우린 꼭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연약한 신호라는 것을. 식욕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괜한 두통에 시달렸다. 생각이 끊임없이 찾아오기도 하더라. 마치 뭐에 세뇌된 인간이 된 것 마냥. 



시간이 조금 지나 이제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몰아갈 정도로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차단하고자 했던 생각을 왜 그렇게 죄스럽게 생각했을까.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예전에 비해 꽤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어. 의사 결정은 빨랐고 나는 웃으며 마무리를 하려 했으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에너지 낭비를 (소비의 영역조차 되지 못하는) 할 필요가 없는 시간으로부터 최선을 다해서 멀어지려 결심한 셈이지. 



그리고 다시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지만 그저 가면서 믿어보는 것이다. 빛도 발견할 것이라는 걸. 



아들... 그래서 정말 강한 사람은,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게다가 한 단계 나아가 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나'라는 자신을 넘어, '너'라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겠지. (너희들을 기르며 내가 얻은 평생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의 정의를 다시 하게 된 순간이지. 덕분에) 그리고 그렇게 살려는 사람은 필요하다면 열심히 생을 흐르면서도, 때로는 네 시간을 파괴하는 것들로부터 열심히 차단하고 단절하며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이겠고. 



네 자신을 소모하고 방전시키는 지독한 것들을 차단한 채 내면을 깊이 이해하며 전진하려는 사람.

그들이야 말로 자신의 생을 진정 현명하게 살아가려는 용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니. 그래서 엄마는..부디 네가 그런 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고약한 인간의 본성들로부터 너를 지키고 그것들을 과감하게 단절시킬 수 있는 용기를 내뿜는 청년으로 자라 주기를... 



길을 가다가 돌이 보였을 때, 굳이 밟거나 차면서 지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불쌍하고 고약한 사람이 이 세상에 꽤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겉으론 강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내면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겠지. 무언가를 어쨌든 헤치고 마는 지극히 더럽고 해로운 습성을 가졌다는 걸 모르기에 더 무서운 법이겠고. 무지가 진정한 악이 되는 경우지. '악의 평범성' 은 그렇게 탄생했을지 누가 아니. 


꽃이 때로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은 무해하기 때문이지. 유해한 모든것들 속에서 유일한 무해함 이랄까..




자신을 비롯하여 사랑하는 생의 신념을 지키려 솔직한 인간들은 원래 아프게 살아간다.

순수함을 간직한 채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을 세상은 가만 두지 않거든. 그런 강한 사람이 무서우니까.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그러니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에 시기하다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중상모략하여 해롭게 만들 수 있는 것들로부터 네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설령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을때가 찾아온다면. 후회는 없이 다만 반면교사 삼아 일찌감치 차단하며 네 길을 걸어갈 것을 다시금 깨달아 주기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너에게서 네가 가진 것을, 네 마음을 빼앗아갈 수 없다. 

네가 진정 주인으로 산다면. 그 누구도 널 다치도록 놔 두어서는 안 된다. 널 헤치는 것들로부터 피할 수 있다면 눈과 입, 귀를 모두 닫고 차단시키자.대신 널 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에겐 온 심신의 에너지와 영혼을 열어 두자.



이 시절, 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열린 채 살아간 것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사람들로 함께 지낸 시간처럼. 




같이 걸었던 우리.  그 때 너는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 말했다. 너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우리가 서로에게 열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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