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pr 16. 2021

지금을 망치지 말자고

다른 사람의 약한 곳은 강한 곳과 똑같이 너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한 사람들이라고 해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약점이 바로 그 사람들의 힘이 될 수도 있어.


- 필립 로스, 울분, P.184 - 



쪽팔린 고백이지만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번 생의 반쯤은 망했다고. 

마음의 답답함과 분노를 일컫는 감정 상태. 바로 '울분'을 참아내는 동안 동시에 드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망했다는 것. 어차피 망했으니 '대충' 살아도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또 그러지도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 건지. 몸과 또 다른 생각의 너머는 부단히 살아서 꿈틀거린다. 꿈틀거리면서 자꾸 두드린다. 그런 생각 하면 안 된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일어나서 열심히 살라고. 특히 넌 더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고. 너를 낳기 위해 피를 흘리며 자궁을 뚫고 나온 네 어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의도치 않게 너를 가진 한 사람에 대한 예의. 선택할 생각 조차 선택할 수 없이 널 낳아서 살아내고 말았을,  한 여성의 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하라고. 그 여성의 한 시절을 통째로 맞바꿔 살려 놓은 한 인간의 도리를 다 하고 악착같이 살아내라고...



연달아 아이가 아팠고 여전히 아픔 중이다. 

내과에서 치과, 다시 치과에서 내과로. 그리고 쌍둥이. 반복 또 반복... 장염과 치아, 게다가 이번엔 코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고 헉헉대다 끝내 약 기운에 취해 잠들기 일쑤인 아이를 돌보는 데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못돼 쳐 먹은 나는 그 와중에 어떤 공부를 하려 했다. SW 관련 코딩 교육과정이었다. 뭐에 뜨였던 건지. 아니면 내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새로운 분야의 무언가를 그저 막연하지만 배워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가사에서 조금 더 열심히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 하여튼 그래서 움직였던 것 같다. 교육비가 전액 지원이 되는 과정이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면접까지 볼 줄은 몰랐는데. 서류를 냈다는 사실도 잃어버리고 다시 아이 돌봄을 하고 있던 중 문자가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면접을 봤고 합격을 했다. 그리곤 당장 현장 OT 3일이 필요하다는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다시금 못돼 처먹기로 결심했다. 그리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를 몇 시간 기관에 맡겨둔 채 참석했다. 꾸역꾸역. 물론 그 꾸역꾸역은 3일째 되는 마지막 날, 가장 중요했던 날...



결국 가지 못했다. 갈 수 없었다. 가서는 안 되었다. 아이가 아팠으니까.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간호가 필요하니까. 아이는 약자이고 나는 그들을 제대로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어른이자 부모이니까. 그래야 정상이니까. 정상인을 쉬이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정상인이 되어 어떻게든 지켜야 하니까. 



시간의 흐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모두 같이 그렇게 하루 하루 죽어 가는 건 분명 평등..하겠다. 영생하지 못하니까. 인간은.




그랬을 거다. 나의 친정 엄마도. 

우습기 짝이 없는 부정적인 생각에 한 움큼 먹혀들어가다가도, 반대로 그런 못난 한 인간을 스스로 구원하려는 심보 마냥 나는 두 여성을 떠올리곤 한다. 외할머니와 친정엄마. 자신에게 가혹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을. 그리곤 생각한다. 그녀들도 그랬을 거라고. '울분'이라는 감정은 그냥 일상이었을 것이라고. 이번 생의 반쯤은 망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는 살아내보려고 애썼을 것이라고. 애쓰고 애쓰고 또 애쓰면서 그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살아보려고 애썼으니 결국 자식들도 자신들도 살아낸 게 아니겠느냐고. 물론 자기 자신은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은 돌아볼 겨를 없이. 돌아볼 때쯤엔 다 늙어 고장 난 몸이 되어 있다는 걸 모른 채로. 



남편 없이 세 인간을 키워냈던 생선가게 아줌마와 7살 때부터 전업주부가 돼야 했던 어린 여자아이였다. 

공부를 곧잘 했음에도 본인 대신 동생들 학교 뒷바라지시키며 혼자 야간 학교에 다녔다던 사람. 공부머리 있는 인간은 가사 노동하게 만들고 공부머리 없는 남자들에겐 다 쏟아부으려 했던 시대가 낳은 어리석은 여자... 살면서 가장 교육비가 많이 '쳐'들어갔지만 결국 가장 망나니로 살다 먼저 죽은 큰삼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교묘히 고통스럽게 살게 만든 환경설정의 대상들 같아서 나는 여전히 죽은 외할머니와 큰삼촌을 증오한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봄이 주는 무게를 처음부터 같이 견딘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엄마는 날 이해하려 애썼다. 네가 글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쌍둥이가 연년생보다 10배는 더 힘든 거 같다 하면서. 오죽 지치면, 네가 기댈 데가 없으면, 책이나 글로 푸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충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버티곤 한다. 내 부모가 대충 살았다면 나도 대충 키워졌을 테니까... 나라는 인간 또한 어느 생을 갉아먹으며 자랐을 테니까.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원래 다들 그렇게 산다고. 정말 '사랑' 하려는 인간들만이 그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별 게 아니라고. 망한 게 아니라 그렇게 망한 것 같은 인생이 원래 당연한 것이라고. 이 세계는 그렇게 돌아간다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내하지 못하는 인간만이 그 시간을 즐길 수 없겠다...



둘째는 울고 첫째는 기어코 악을 쓰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두 아이의 눈물바람과 징징거림으로 가득 메워진 상태다. 부쩍 형제의 난이 잦아진 요즘, 그 와중에 순했던 첫째는 가뜩이나 몸이 고달픈 바람에 신경이 더 날 서 있어서 예전에 있던 순순함과 양보의 미덕은 고갈된 상태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반 미친년이 되어 속으로 실소를 머금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그냥 인정하라고. 애 어릴 때는 뭘 할 수가 없으니 작작 좀 하라고... 쌍둥이나 잘 볼 생각하라고. 너의 40대는 그들의 청소년기로 인해 더 망해갈 것이 분명하노라고. 그러니 지금부터 체념하고 포기하는 연습을 해 보자고. 그러면 덜 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내 눈물이 고였지만 반대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눈을 감고 다시 떴다.

한 아이의 등원 가방을 챙기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가자'라고. 목소리 안에는 절대 누구의 인생도 망치지 않겠다는 사람의 울분과 사랑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아마 어른의 몸이 되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피 흘리게 해서 탄생했고, 그렇게 시절을 살았다는 것을. 



영원히 부모를 잃기 전까지는. 부모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전까지는... 

자식새끼들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들에게 한 시절을 저당 잡혀 지냈던 '개인'에 대함을. 



피다가 시들어 없어지는 건 자연스럽다. 바삭바삭 마르는 속도는 각자 다르겠지만. ..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잘 쓴다는 거짓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