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져요. 분명히.

by 헤븐

사월의 봄비가 내리던 날, 민님의 편지를 부엌에서 멈춰 서서 읽었습니다.

설거지를 거의 마칠 무렵이었고 편지 제목을 보았을 때 무엇 때문인지 울 뻔했네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라는 그 문장은 되려 제가 누군가를 붙잡고 묻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여전히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 삶이 무거울 때면 신께 말하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괜찮아집니까'라고 말이죠.



루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을 덕분에 떠올리게 되니, 새삼 어떤 '명랑함'을 다시 상기해보기도 했고요.

동시에 민님의 짧아진 단발머리 또한, 무척이나 뵙고 싶은 마음을 내내 누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은 정답입니다. 여성에게는 특히 머리카락의 길이나 모양새의 변화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큰 변화는 없을 테니 말이죠. 나름 파격적인 변신을 유도하는 주체성이 돋보이는 곳이 바로 헤어랄까요...(아참, 저는 헤어보다는 화장인데요. 화장을 정말이지 거의 하지 않고 사는 제게는 마스카라를 발라 본다든지 입술에 색조화장품을 입히는 시간 자체도 나름 큰 변화라는;) 저도 곱슬머리여서 사춘기 시절에는 단발머리가 그렇게 '몽실' 스러울 수 없어서 꽤나 제 헤어를 '버리고 ' 싶었는데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몽실스러운 귀여움이 사뭇 그립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결국 시간이 지나 괜찮아진 것들에 속하네요. 그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리움' 이 생긴 걸 보면 말이죠.



photo-1421435371524-d26441ec7dda.jfif 시간이 흐르듯, 기억도 흘러가다 조금씩 사라져 가죠. 시간도 인간에게는 영원히 주어지진 않은 것처럼요.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죠... 민님.

저도 사실 압니다. 아니. 감히 알 것 같습니다. 그 문장에 담긴 마음의 출렁임에 대해서 말이죠. 특히 편지를 주신 어제는 416이었죠. 네. 그래서 더... 저 또한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 기억'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기록'이라는 건 참 역설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한편 누군가는 어떤 기억을 애써 잊고 싶어서, 괜찮아지지 않는 무거운 시간을 가볍게 덜어내고 싶어서 글이라는 매체로 내뱉어보기도 한다는. 민님도 말씀하셨듯이 '해방'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저 또한 시간, 기억, 그리고 '글'이라는 기록매체에 대한 관심이 지극한지라... 말하자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겠고, '글이 대신 기억한다' 고 말씀하셨던 문장에서 한참 생각에 빠져 버리기도 했고요.



부끄럽지만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대로 완독조차 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해 보며.

다만 저는 정말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산문'에 더 관심이 많아서 (언제나 허구는 글쓴이의 실화가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기에)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이라는 산문시를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다른 책 대신에 빌려 읽은 기억이, 덕분에 떠올랐어요. (아참, 도서관에서 전혀 다른 책을 빌리게 되고 말면, 이상하게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말아 버려요. 프루스트에 대한 저의 기억은 그래서 오히려 유명 대작이 아니라 그 한 권의 책이 되고 말았다는; )



시집의 원제목은 음악, 슬픔, 그리고 바다에 관한 단상들이라 해요.

그리고 저는 민님의 편지를 읽고 이 구절을 다시금 서재의 필사노트를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마침 접어 둔 페이지가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 어떤 사람에게 아주 오래전 어느 날, 프루스트가 우리에게 미리 건네준 답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희극은 우리의 허기를 채워 주는 대신 잠시 잊게 할 뿐이기에 재미있기만 한 작품들보다 비극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인간을 자라게 하는 빵이란 그 맛이 쓰디쓴 법. 삶이 만족스러울 때에는 인간의 운명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데, 이해관계가 이를 가리고 있거나 욕망에 의해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마르셀 프루스트, p 83. 상심의 일시적인 효과 中 -




photo-1554195576-93a79d300165.jfif 확실히 비극이 희극보다 한 수 위라는 말에 정말 동의해요. 비를 맞아봐야 햇살의 고마움을 만끽하는 것과 비슷한 걸지도요.




저는, 사실 디스토피아를 인정하는 회의론자의 태도로 살아가는 꽉 막힌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최근에 나심 탈레브의 4종 세트를 연이어 재독 해 버리고 마는 실수를 범하였기에, 더더욱 냉소로 가득 찬 인간이 되어 버렸;)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인간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내니까 결국 '괜찮지 않음' 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에요. (아 말이 점점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편 또 인간은 그 괜찮지 않다는 고통에서 좀 벗어나 행복을 찾거나 기쁨을 만끽하거나 어떤 욕망을 쫒거나 성취감을 느끼면서 생동감 있게 살아가거나 등등의 '좋은 감정' 상태를 위해서 바로 '기록'을 이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좀 그런 편입니다만...)



좋았던 기억을 글 안에 가둬둬 내내 꺼내보기도 하고, 반대로 안 좋았던 기억을 글로 풀어내곤 해요.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은 마음의 무거움을 릴리징 시키는 편인데요. 물론 이것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드러내다'라는 동사를 실행할 수 있는 나름의 개인적 용기가 필요하겠고요. 한편 인간은 편향적 동물이기에 -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고 살죠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 우리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기록'으로 남겨질 때는 어느 정도 그런 인간의 편향된 시선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또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 혹시 놓치고 감춰진 또 다른 기억은 있지 않을지, 등등의 엉뚱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져서... 결국 책을 파고든다는...(책도 그런데 기록매체인데, 아.. 책 이야기를 하자면 편지가 끝이 없겠습니다 일단 정리를;)



photo-1507150615129-3ba0720f488d.jfif 저는... 좋았던 기억을 글로 꽁꽁 묶어두고 싶어 해요. 잊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편지의 제목을 보고 바로 연이어 이 문장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괜찮아져요. 분명히'.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확신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을 할 수가 애초에 없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진다고. 분명히 나아진다고.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발판 삼아 나아가야 한다고.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예의라고. 괜찮아져야 한다는 것. 괜찮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싶어서 저 문장을 써 보고 싶었어요. 결국 괜찮아진다는 어떤 긍정과 희망이 있어야,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도 덜 아프게...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도 생각해보면 그 법의학자이자 윤리학자이신 작가께서는 이런 시대라도 '희망'을 말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싶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간다'라고 언급하셨죠... (역시 책이라는 기록 매체는 대단하다는!)



희망하고 싶어서 '기록'이라는 게 탄생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민님, 저는 어쩌면 제 생에 어떤 소박한 희망과 또한 어떤 기적을 위해 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 시절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흔쾌히 화답으로 동참해주신 민님께, 그래서 저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듯 또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 재빨리 답신을 띄워봅니다.



기록은 파도가 되기도, 잔잔한 물결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 제 기록은 파도였으나, 지금 이 편지는 잔잔한 물결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헤븐 드림



photo-1582308780777-447a93b047e3.jfif 시간은 흐르고 비는 그치고.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마음에 달려 있을지도요. 괜찮아져요. 분명히..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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