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 오히려 제가 선물해드릴 걸 그랬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리지 못해서 구매를 해 버리셨다는 민님의 편지를 보면서 '아차' 싶었어요. 다음엔 선물할 기회를 꼭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살며시 마음에 다짐을 해 놓아 보며. 편지를 쓰려고 식탁 위에 앉아있는 저는 새삼 시간의 유한함을 느끼고 말았어요. 오늘로서 4월의 토요일은 끝이 나고 있으며 곧 다음 주 이 시간이면 달력 한 장이 넘겨져서 5월이 되고 만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고 나니, 요즘의 '의욕 없음'의 상태였던 제 모습이 어찌나 부끄러워지던지요. 달력 한 장 넘길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들고 아픈 몸을 이끌며 생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사라지는 시간 대신에 살아 있다는 시간에 감사하며 사는 분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면 말이죠. 정말 저란 인간은 여전히 옹졸하고 모자라고 모르면서 살고 있구나 라고 성찰을 하게 될 뿐입니다.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
그리고 그 말을 전해준 민님의 편지를 읽으며 새삼 왜 제가 민님과 글을 교신해보고 싶었는지를. 그 처음의 알 수 없던 마음의 이유를 문득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한나 아렌트' 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나 아렌트' 뿐 아니라 사실상 '에바 일루즈' 나 '토니 모리슨'과 '수전 손택',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의 역작들을 계속해서 '생각' 하면서 읽어 나가시는 분... 게다가 그 사유를 계속해서 자신의 필체로 기록해나가는 사람... 글이 근사한 여성. 민님은 아마도 가장 처음이자 유일한 존재로 제게 다가오셨기에 그런 마음이 들었나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도 그저 책 이야기 하나 만으로도, 또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도 - 가령 결혼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글이나 사람과 관련된 단상 등 - 도란도란 깊은 사유의 향연을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벗' 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었나 봅니다.
민님께 한나 아렌트는 오르고 싶은 높은 산이셨군요.
이번에는 어떤 책을 읽고 계실까요. 궁금해집니다. 제가 한나 아렌트를 접했을 무렵의 '충격' 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때문이겠는데요. 가장 잘 알려진 대중서이자, 그 책을 기반으로 계속 '한나 아렌트'라는 산은, 읽고 또 읽으며 생각하고 또 성찰해야 비로소 작가의 텍스트와 그 속에 담긴 참 뜻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한...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 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을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p.391 -
생각해보니 인간은 '생각'이라는 걸 하는데, 또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라는 한 인간의 '인식' 은 분명 한계가 있을 텐데. 우리는 보통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혹은 내 생각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어떤 이념을 맹렬하게 맹신하는 데에서부터 결국 어떤 '죄'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결국 '아무 생각 없는 무사유'를 범하는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 조차 하지 못하면 '악의 평범성' 이 탄생되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사실 요즘 의욕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어요.
솔직히 이 편지를 쓰면서도 어제의 의욕 없음이 당장 의욕 충만이라는 그린라이트로 변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여전한 현실이지만. 한편 책을 계속 읽으면서 잠시 생각했던 건 그럼에도 나에게는 어떤 기회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있거든요. 아주 느리게, 그리고 곱씹으면서 천천히... (좋은 책은 왜 자꾸만 느리게 읽고 싶어 지는 것일까요) 읽으면서도 계속 파헤쳐보고 싶단 '의욕' 이 생기는 겁니다. 정말 우습게도요. 어쩌면 제가 지닌 지적 욕심과 허영, 혹은 삶의 허기를 책으로나마 만족시켜 보겠다는 얄팍한 의욕을, 이렇게라도 붙잡고 계속 살아가다 보면 또 괜찮지 아니한가 라는 생각으로 안도를 하게 되기도 해요. 그리곤 가라앉으려는 이 시간도 결국 지나가는 '과정' 인가라는 생각과 마주하게 되니, 한편 그 이후엔 참 공허하고도 허탈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맙니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하고 무지했던가!라는 문장이 자꾸만 생각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마니까요...
'장소는 기분을 창조한다'는 말씀에 정말 많은 공감을 했어요.
맞아요 민님. 퍽퍽한 기분에 상쾌함을 선물해주는 공간... 공간은 정화나 치유의 작용을 할 수 있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도서관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넉넉해질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실은 도서관이 아니라 특정 장소와 특정 시간대와 특정한 사물이 배치된 공간이 제게는 그런, 기분전환을 이끌어주는 곳이 되고 말았어요. 말하자면 부끄럽고 또 그리 대단치 않은 지극히 평범한 곳인데요. 바로 다름 아닌 저의 집, 식탁입니다... 그런데 그 식탁이 그냥 식탁이 아니라 특정 시간과 사물이 같이 공존해야 해요.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죠.
연한 참나무색의 식탁 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트북, 책, 그리고 맥주 반 잔.
그리고 거실에는 어느 드라마의 OST 로도 나왔던 사비나앤드론즈의 'DOWN'이라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환경설정으로는 저 혼자 있어요... 혼자의 시간이라는 것이 아직도 제게는 희소하고 자주 가지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기에 이런 순간은 어느새 '꿈' 같기도 합니다만. 한편 이런 희박한 환경이야말로 한 인간에게 있어서 더욱 그 순간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그래서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의욕'을 샘솟게 하기도 해요. 생각해보니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간의 저는 굉장히 감사한 의욕으로 충만한 상태네요. 혼자 있는 시간에 조력해 준 그이와 아이들에게 감사한 지금이면서... 너무 재빨리 지나가버리니 어서 완전히 즐겨버리자는 의욕을...!
시간을 선물 받고 싶었던 민님의 그때.
아..... 말해 무엇한답니까. 민님. 저 또한 초산의 쌍둥이를 낳아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 일상을 겹겹이 쌓아가면서 가장 원하는 선물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는걸요. 한데 생각해보면 제가 언제나 가지고 싶었던 건 눈에 보이는 유형의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것이었던 것 같아요. 가령 첫사랑이 저를 향해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든지 혹은 순간 멈춤을 원했던 삶의 장면들,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의 설렘, 그리고 바다의 차디찬 시원함...
기혼녀가 되고 난 이후 더 깊어지는 자신으로 변하게 됨을 사실은 자주 느끼곤 해요.
여기서 말하는 깊어지다는 동사에는 바로 '타자'를 향한 귀 기울임이 들어있는 걸 의미하는데요. 사실 미혼시절의 저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낮 뜨거워질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때 아닌 반성을 하게 되곤 해요. 생각하는 수준이라든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나 교만하고 오만했던지요. 그 시절의 저는 타자의 아픔과 생활에는 진심으로 귀 기울여 줄 마음의 온기 같은 건 없는 사람은 아니었을까를...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제 스스로 많이... 아프게 삶을 살아내다 보니 그제야 깨닫게 되는 부분 같기만 합니다. 제일 많이 변한 부분은 다름 아닌 '사랑'에 대한 정의인데요. 아마도 이 생각은 기혼 세계에 불나방처럼 뛰어든 이후에 가장 뼈저리게 인식의 변화를 느끼게 해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랑'의 정의가 제게 있어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겪으니 어찌나 또 그렇게 다르게 변하던지요...
생각해보면 가성비와 효율성이 우선이 된 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이 자본주의에서는 사랑을 많이 잃어버리고 또 때로는 놓치기 쉬운 환경이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해보면 사랑은 항상 내 주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기도 한데 말이죠. 내가 그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면... 반드시 지키겠다는 마음의 용자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자본주의의 독화살 혹은 타자의 시린 시선과 맞닥뜨린다 한들, 사랑은 또 다른 방패막이자 그늘이 되어 강렬하고 아픈 것들로부터 한 사람의 삶을 일으켜 완전히 달라지게도 만들 수 있음을...
저는 그런 시대일수록 믿고 싶나 봅니다. '사랑' 이 일으키는 힘을 말이죠.
한나 아렌트는 사랑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셨지만, 저는 감히 그 문장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 졌어요.
사랑은 말할 수 없다지만 입술 밖으로 꺼내고 싶은 문장은 단연코 '사랑한다'는 것임을.
그 마음을 품고 사유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음을...
요즘 저를 구원하는 유일한 사랑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때로는 슬프지만 이제는 제 삶에서 가장 정확한 방향이자 정답이기도 한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다시 의욕을 찾으려 노력해요. 방향이 꽤 선명하니 이젠 길을 잃을 염려는 덜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5월, 어떤 생기를 기다리며.
헤븐 드림